글
많은 이들이 최근 강남 재건축을 중심으로 한 일시적이고 국지적인 집값 반등에 이러다 다시 집값이 상승하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한다. 더구나 현 정부는 말로는 온갖 소리를 다 해대지만 부동산 거품 떠받치기에 사실상 올인한 정부가 아닌가. 그러다 보니 상당수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지난번 글에서 필자는 강남 아파트의 거래 현황을 통해 왜 강남 집값 상승이 오래 지속될 수 없는지를 설명했다. 이번에는 좀더 폭을 넓혀 왜 지금의 일시적인 집값 반등이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주저앉을 것인지를 미분양물량의 조정기간을 통해 한 번 살펴보자.
전국 미분양 물량이 16만호를 넘어선 데서 알 수 있듯이 현재 유효 수요에 비해 주택은 매우 과잉 공급된 상태다. 아래 도표에서 알 수 있듯이 90년대 전반에 200만호 주택건설 사업으로 부동산 시장이 가라앉은 후에도 주택은 계속 공급돼 미분양 물량이 꾸준히 늘어났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93년부터 이미 미분양 물량은 크게 늘어나 95년 미분양 물량은 15만 호를 넘어섰다.
(주)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주택 가격이 91년부터 하락하기 시작했으므로 (그래프상으로 명목가격지수는 크게 안 떨어진 것으로 나오지만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실질가격지수로는 외환위기 때까지 거의 반토막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 점을 감안해서 보기를 바란다) 사실 미분양 물량은 91년부터 꾸준히 증가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더구나 당시에는 건설업계가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며 금융시장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공식 미분양 물량과 비공식 미분양 물량의 괴리가 크지는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도 95년 공식적으로만 15만여호를 넘어선 미분양 물량이 해소되는 데에 최소 3~4년 이상 걸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지금 16만호를 넘는 미분양 물량이 해소되는 데에는 얼마나 걸릴까? 여러가지 부동산시장 안팎의 여건을 고려하면 그때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판단된다.
우선, 당시에는 가계 저축률이 20%를 넘어설 정도로 여윳돈도 있었지만 지금은 부동산 담보대출 310조원과 2%대의 가계 저축률이 말해주듯 가계의 매수 여력이 고갈된 상태다. 사실 지금은 그동안 무리하게 집을 산 가계들이 빚 청산과 채무 조정을 하기에 바쁘다. 사실 현재 집값 수준에서 집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다 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극심한 경제 침체 속에서도 여전히 충분한 구매력을 가진 가계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기획부동산을 비롯한 투기꾼들이 준동하거나 정부나 지자체의 토지보상금을 받은 가계들이 집을 살 수도 있겠지만, 전체 부동산시장의 판세를 바꾸는 것은 불가항력이다.
둘째, 당시에는 경제성장율과 가계의 소득 증가율도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 지금은 우리 경제의 마이너스 성장이 기정사실화돼 있고, 가계의 실질소득도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세째, 이어지는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한국의 수출대상인 세계 경기가 호조를 보였지만, 지금은 전 세계가 세계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를 맞고 있다. 더구나 갈수록 세계경제의 장기침체를 알리는 신호들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네째, 더구나 현재의 미분양물량 16만호는 최고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앞으로 한동안 미분양 물량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수도권의 미분양 물량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90년대 초중반 미분양 물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난데는 부동산 시장 침체 속에 뒤늦게 200만호 주택 공급이 본격적으로 이뤄진 탓이 크다. 그런데 2006년경부터 본격화된 제2기 수도권 신도시와 이명박이 서울시장 시절 한꺼번에 지정한 뉴타운 등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량은 2010년대에 본격화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부동산 시장 상황에 따라 변동이 있겠지만, 적어도 계획상으로는 올해부터 2015년까지 공공택지와 뉴타운, 재개발 등 도시 정비사업 지구에서만 약 135만여 가구가 신규로 수도권에서 공급될 예정이다. 참고로, 이 물량은 민간 택지 공급 물량이나 각 지자체별 지구단위 계획에 의한 공동주택 공급 물량은 빠진 수치이다.
다섯째, 2000년대 부동산 버블이 가장 극심했던 수도권의 경우로 한정해본다면 당시에는 수도권으로 매년 20만~30만명이 순유입되던 시기였다. 그만큼 수도권의 미분양 물량 해소에는 유리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수도권 순유입 인구는 지난해 5만명 전후로 줄어들었다. 수도권 인구유입도 이제 포화상태에 이른 것이다. 추세로 본다면 향후 수도권 순유입 인구는 더더욱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자,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현재의 미분양물량을 해소하는데 몇 년 정도가 걸릴까? 지금보다 부동산시장 안팎의 여건이 훨씬 좋았던 90년대 초중반에도 미분양 물량을 해소하는데 미분양 물량이 최고조에 달했던 95년으로부터 계산해도 최소 3~4년 걸렸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 상황에서는 얼마나 걸린다고 볼 수 있을까? 미분양 물량만 놓고 봐도 주택 시장의 침체가 최소 3~4년 이상은 걸린다고 봐야 합리적이지 않을까? 그렇다고 3~4년 후면 주택시장이 침체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말은 아니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미분양 물량 측면에서만 최소 3~4년 걸린다는 것일뿐이다.
다른 요인들까지 고려하면 국내 주택시장은 앞으로는 몇 년 전과 같은 폭등을 기대하기 어렵다. 국내외 경기 침체의 장기화와 가계의 부동산 부채 청산 기간 등 현재의 문제뿐만 아니라 2010년대 이후 본격 전개될 급속한 고령화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새로운 주택시장 유입층인 젋은 세대의 소득 감소, 수도권 순유입 인구의 추세적 감소 등 때문에 주택시장이 90년대 후반과 같은 회복세를 보일지는 의문이다. 이런 마당에 유착에 빠진 건설업계와 '건설족 정부'는 전세계가 부동산 버블 붕괴로 신음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과도한 중대형 분양 위주 공급을 고집하고 있다. 부동산 버블이 본격화하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국민들의 투기심리를 불러일으켜 거품이 잔뜩 묻은 고분양가 아파트들을 팔아먹으려 한다. 하지만 도저히 지속할 수 없는 부동산 거품을 억지로 떠받치려는 이 같은 시도들 때문에 한국 주택시장은 장기침체의 길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현 정권과 정부, 건설업계의 무분별한 정책과 단기적 과욕이 바로 국내 주택시장의 정상적 자기조절 과정을 깨뜨려 장기침체를 가져오는 것이다. 경제의 큰 흐름은 순식간에 바뀌지 않는다. 주택 시장과 이를 둘러싼 국내외 경제의 큰 흐름을 읽고 있다면 부동산시장의 일시적 움직임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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