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안정적이고 여유로운 노후생활 보장"을 명분으로 내세운 정부의 퇴직연금 활성화 대책. 확정기여형의 위험자산 비율을 40%에서 70%로 올리며 어떻게 안정적이고 여유로운 노후생활 보장이 된다는 건지,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된다. 자본시장에서 수익과 위험은 비례하게 돼 있다. 위험자산 비율을 높인다는 것은 수익률이 높아질 수도 있지만, 크게 떨어질 위험도 커진다는 걸 내포한다. 그런데 위험자산 비율을 높이면서 어떻게 '안정적'일 수 있다는 건가. 정부는 계속 주식이나 펀드 수익률이 올라가는 경우만 생각하는가.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어제 정부 대책은 절대 "안정적" "여유로운"이라는 수식어를 쓰면 안 된다. 집값 띄우기가 주목적인 부동산 대책을 내놓으면서 "서민주거 안정"이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와 비슷해 보인다.
더구나 향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저출산고령화 충격을 겪게 돼 있고, 부동산 거품과 가계부채 문제는 해소되기는커녕 큰 흐름에서 계속 악화되고 있다. 나같은 사람뿐만 아니라 이제 많은 전문가들, 정반대 의도이기는 하지만 심지어 최경환 부총리까지 일본식 장기침체를 우려하는 지경이다. 만약 일본식 장기침체로 갈 경우에는 부동산뿐만 아니라 주식시장조차 장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 실제 일본 주식시장은 4만에 육박했던 주가가 1만포인트까지 떨어져 장기간 머물렀다. 만약 그런 현실이 나타난다면 결코 안정적이고 여유로운 노후생활 보장이 될 수 없다.
이런 우려는 단순한 기우가 아니어서 이미 많은 대기업과 대기업과 그 종사자들이 이에 맞춰 퇴직연금을 가입하고 있다. 현재까지 퇴직연금 가운데 사내가 아닌 사외에 적립하는 방식일 뿐 기존 퇴직금 제도와 상대적으로 비슷해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높은 확정급여형 가입 비율이 약 3분의 2를 차지했다. 반면, 이자율과 수익률 변동에 따라 안정성이 떨어지는 확정기여형 가입 비율이 30% 정도였다. 그런데 대기업들은 대부분 확정급여형에 가입한 반면, 안정성이 떨어지는 확정기여형 가입자는 대부분 중소기업 종사자나 직장 이동이 잦은 노동자들이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만큼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높은 소득을 얻는 대기업 노동자들이 '안정성' 측면에서 자발적으로 확정급여형을 선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 같은 확정기여형의 위험자산 편입 비율을 훨씬 더 높여 위험성을 더욱 강화했다.
그래서 이번 퇴직연금 활성화 대책은 노동자들의 노후생활 보장 강화라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속내는 퇴직연금 시장 확대를 통한 금융권 먹거리 확대와 주가 등 자산시장 띄우기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최근 2~3년 사이 은행, 증권사, 보험사 가릴 것 없이 영업실적이 악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퇴직연금 확대를 통해 사업거리를 던져주려는 의도가 오히려 더 강해 보인다.
물론 아직 대기업을 제외한 중소기업과 영세사업장의 퇴직연금 가입이 저조하고, 그 결과 상당수 노동자들이 퇴직금을 어떤 형태로든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퇴직연금을 일정하게 활성화하려는 시도는 이해한다. 또한 그 동안 퇴직연금 사각지대에 있던 기간제 노동자 등에 대한 퇴직연금 확대 조치 등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정말 퇴직연금 가입을 확대하려 했다면, 퇴직연금 가입이 저조한 중소기업 이하에 대한 세제혜택과 재정 지원 확대 등에 초점을 맞추고, 위험자산의 가치 하락시 충격을 보전하는 펀드 조성 등의 해법이 더 적절한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