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가격이 낮아지면 주택담보대출 때문에 금융기관이 부실화될 우려가 있으니 연착륙을 유도해야 한다.” 요즘 관가와 정치권, 재벌계 연구소 등에서 많이 나오는 얘기다. 필자도 일본처럼 급격히 거품이 붕괴되고 복합불황으로 빠져드는 상황은 피할 수 있다면, 피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현재 거품의 크기와 성격으로 볼 때 연착륙이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일본이 버블 붕괴로 그렇게 큰 경제적 충격을 받았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버블의 규모가 매우 컸고, 두 번째는 버블 붕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잇따른 정책 실패를 했기 때문이다. 버블 붕괴 과정의 정책 대응은 일단 접어두면, 버블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는 버블의 크기를 키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꼭 일본의 예가 아니더라도 버블 붕괴의 충격은 버블의 규모에 비례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온 연착륙론은 사실은 집값 거품을 서서히 꺼트리는 방향으로 작용하지 않았다. 연착륙론이 구체적으로 주장한 내용들이 부동산 경기 부양, 건축 규제 완화, 금리 인하 반대 등이었기 때문이다. 말이 연착륙론이지 사실상 부동산 거품을 계속 키우게 하는 정책 방향이었던 것이다. 2003년경부터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상당수의 정치권 인사와 관료들, 재벌계 연구소, 금융기관, 건설업계가 이런 식의 연착륙론을 내세웠다. 이 주장은 특히 2003년 10.29대책 이후 2004년 상반기 집값이 약보합세로 접어들었을 때 위력을 발휘했다. 이후 2004년 하반기 당시 이헌재 재경-강동석 건교 라인이 10.29대책을 무력화하고, 적극적인 집값 부양책을 쓰게 된다. 이때도 그들은 ‘집값 연착륙을 위해 경기 부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힘입어 2005년 초부터 서울 강남과 분당 등 경기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집값은 다시 거세게 뛰어 올랐다.

 

만약 그때 ‘연착륙’을 명분으로 집값 부양책을 쓰지 않고 확실히 투기심리를 잡았다면 지금 어떻게 됐겠는가? 거품이 지금의 절반밖에 안 됐을 때니 지금처럼 거품 붕괴의 위기감이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계속 ‘연착륙’ 운운하며 집값 거품을 빼는 작업을 늦춘 결과 어떻게 됐는가?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위기가 극대화된 상태에서 부동산 버블 붕괴의 위기를 맞게 됐다.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위기를 이제 가래로 막아야 하는 상황이 돼 버렸다. 2004년에 잡았으면 국가 전체로 2~3년 고생했으면 됐을 것을 지금은 족히 4~5년은 고생해야 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에서 또 미룰 수는 없다. 사실 여러 가지 경제 여건을 고려하면 거품 붕괴는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현 정권이 재건축 규제 완화 등 부동산 부양책을 통해 거품 붕괴를 막으려 한다면 계속 거품만 커지고 향후 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거품 붕괴를 더 큰 거품으로 막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미 우리는 카드채 사태 때 이런 사실을 경험했다. 카드 남발 문제가 처음 문제됐던 2001년 문제를 수습했더라면 2003년 카드대란 사태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라도 막았다면 같은 해 11월 LG카드 붕괴 사태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빼야 할 거품을 제때 빼지 못하고 엄청난 신용불량자만 양산한 채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파국을 맞고 말았다.

 

미국이 취한 조치에서도 배워야 한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FRB)는 2004년 하반기부터 집값이 확고히 안정세를 보이기 시작한 2006년 상반기까지 금리를 꾸준히 인상하며 집값 거품이 더 커지는 것을 막았다. 다른 요인도 있었지만, 2001년경부터 시작된 서브프라임론 대출이 2003~2004년 급증하고, 이에 따라 집값까지 뜀박질한 데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이 같은 연준의 대응으로 미국의 집값은 폭등세를 멈추고 안정세를 찾았다. 우리보다 집값 상승률이 훨씬 낮았는데도 그렇게 선제적인 정책 대응을 펼친 것이다. 물론 서브프라임론 사태가 본격화되고 경기가 위축될 때는 재빠르게 금리를 인하해 대응했다. 미국 정부가 바보라서 일찌감치 집값 거품을 빼기 시작했겠는가? 더 이상 집값 거품이 커지는 것을 방치했다가는 매우 큰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에 브레이크를 밟았던 것이다. 만약 미국이 이처럼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이후로도 계속 거품을 더 키웠다면 어떻게 됐겠는가? 지금의 서브프라임론 사태보다 훨씬 더 큰 위기를 맞았을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점에서 보더라도 현 정부는 지금이라도 집값 거품을 빼 나가면서 앞으로 나타날 위기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또 다시 연착륙론을 들먹이며 사실상 집값 거품을 더 키우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 한 번 곪은 종기는 짜내야 낫는다. 곪은 종기를 안고 평생 살 수는 없다.

by 선대인 2008. 9. 3. 01:20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기 직전 부동산 시장이 극도의 침체를 보이니 정부와 정치권 에서는 부동산 경기 부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재건축 규제 완화니 전매제한 기간 단축이니 집값 거품 유지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것이든 전방위적으로 동원하는 양상이다. 경기가 위축되니 부동산 경기를 살려 이를 상쇄해야 한다는 식이다. 이 같은 주장은 현재 한국 경제의 상황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엉뚱한 처방이다. 왜 이 주장이 말이 안 되는가?

 

지금 한국 경제의 핵심적 문제들인 소비 위축, 내수 침체, 실업률 증가, 양극화 확대, 고물가 고비용 구조 등의 문제는 상당 부분 부동산 거품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우선, 가계부채의 증대와 이에 따른 이자 부담 증가로 가계의 소비 여력이 급격히 위축됐다. 또한 소비재와 달리 가장 값비싼 생활 필수재인 주택 값은 상승하면 그만큼 실질 소득이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한다. 또 주거비 부담이 상승하면 이를 부담하기 위한 임금 상승이 합리화돼 기업의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자산 양극화가 심해지고 이로 인한 사회적 위화감도 증대된다. 토지 비용의 상승으로 경제가 고비용 구조로 흐르게 돼 중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 이처럼 거품은 형성되면서 이미 막대한 경제적 폐해를 낳는다.

 

한 나라의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부동산 등 자산 경제의 영역과 생산경제의 영역이 균형을 맞춰야 한다. 그런데 2000년대 한국 경제는 부동산 등 자산경제에 돈이 몰리면서 생산경제에는 돈이 몰리지 않는다. 2000년 이후 늘어난 가계 부채 340조원 가운데 200조원 이상이 부동산에 들어갔다. 상당수의 기업이 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리고, 직장인이 직무 전문성을 쌓기보다 집값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가계가 집 사느라 은행 빚 갚기에 바쁜 나라에서 어떻게 경제의 생산성이 높아지겠는가? 올라가는 점포 임대료 때문에 점원 월급을 깎아야 하는 곳에서 얼마나 값싸고 질 좋은 서비스가 나오겠는가? 그런데도 정부는 경제 자원이 부동산에 편중되도록 집값 거품을 키우고 유지하면서 7~8년을 지속해왔다.

 

정말 경제를 살리고 싶다면 이제라도 거품을 빼야 한다. 물론 과도기적인 충격은 불가피하다. 한 동안은 버블 붕괴의 고통으로 많은 경제 주체들이 시달릴 것이다. 하지만 계속 부동산에 계속 돈이 몰리게 해서 거품을 키운다면 한국 경제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거품을 깨트려 부동산에 몰린 돈이 생산경제로 이동할 수 있게 하는 것만이 미래를 기약하는 방법이다. 만약 7~8년 동안 자산 경제에 몰렸던 돈들의 절반만이라도 생산경제에 몰렸다면 지금 이 나라는 아마 일자리가 넘쳐나 주체를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왜 정부는 건설경기, 그리고 부동산 경기 부양론을 펼칠까? 경기가 나쁘면 건설경기와 이와 연관된 부동산 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개발주의 시대의 관성에 젖어서 그런 것 같다. 경기가 위축되면 부동산 경기를 부양한다는 게 개발시대의 공식처럼 돼 있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당시에는 각종 사회간접자본이 부족했고, 주택도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또 주택을 포함한 건설산업의 연관효과도 컸다. 하지만 첨단기술집약적인 산업 위주로 산업구조가 급격히 변했다. 더 이상 ‘삽질해서’ 경제성장을 하는 시기가 지났다는 말이다. 당장 건설산업의 연관효과도 크지 않다.

 

물론 이들에게는 개발주의 시대의 관성 때문만이 아니라 다른 속내도 있을 것이다. 자신들을 포함해 부동산 부자들을 위한 집값 거품 떠받치기 말이다. 정부의 부양책 가운데 종부세나 양도세 완화 방안도 마찬가지다. 투기자나 부동산 부자들을 위한 정책은 서민의 삶은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 왜 그런가?

 

종부세를 예로 들어보자. 현 정부는 부동산 경기를 살린다며 재산 가치로 상위 2%가 내는 종부세 부담을 완화한다고 하는데 그로 인해 덜 걷히는 세수는 누가 부담하는가? 결국 서민들이 부가가치세 등 간접세 형태로 내는 세금에서 더 걷어갈 수밖에 없다. 세계 자본주의 종주국이라는 미국에서도 직접세와 간접세 비율이 7 대 3 정도다. 그런데 우리는 그 비율이 정반대로 돼 있다. 그만큼 조세의 역진적 성격이 강해 서민들의 조세 부담이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OECD 국가들이 재정의 소득 재분배 기능을 통해 불평등도를 40%이상 완화하는데 비해 우리는 5%도 못 줄이고 있다. 종부세는 보유세의 하나로 부동산 가격이 오를 때 보유 부담을 늘려 가격을 안정시키고, 부동산을 가장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소유케 하는 매우 시장 친화적인 세금이다. 미국의 보유세율도 주별로 큰 편차가 있지만 평균 1.15%가 넘는다. 보유세율이 이보다 더 높은 선진국도 많다. 그런데 우리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필자가 직접 계산해본 바로는 아직 0.3%도 안 된다. (정부는 0.6%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하지만 부실한 과표기준 등을 고려할 때 엉터리 주장에 가깝다) 갑작스러운 종부세 시행으로 문제점이 있다면, 앞으로 ‘미세 조정’을 해나가면 된다. 그런데 선진적인 세제 구조를 만들어가지는 못할망정 갓 시행된 법률을 무력화시킨단 말인가? 그것도 시대착오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한나라당의 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중과세 조치 완화안도 마찬가지다. 다주택자의 양도세 중과 조치는 다주택자의 비거주 주택 처분을 유도하고, 불필요한 주택 소유를 억제하자는 게 도입 취지다. 2006년부터 시행된 이 법을 2년 만에 다시 없던 일로 되돌리자는 것이다. 툭하면 ‘법제도의 일관성’을 거론하며 제대로 된 개혁에는 굼뜬 이들이 이런 데는 얼마나 재빠른지 모르겠다.


결론은 이렇다. 당장 정부 재정을 더 풀어 부동산에 돈을 더 집어넣어 봐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부동산 거품의 판돈을 정부 재정으로 더 채워봐야 오래가지 못한다. 첨단 기술경제 시대이고, 지식정보화 시대, 창의 경제 시대라고 한다. 그러면 국가 전체의 자원 배분이 이런 영역으로 배분되도록 해야 한다. 첨단 기술을 고안하고 지식과 정보를 창출하며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에게 투자해야 한다. 한 나라의 자원은 유한하기에 제한된 자원 안에서 최적의 생산성을 낼 수 있는 자원 배분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비정규직 양산과 저임금으로 천대하면서 땅과 집만 신주단지 모시듯 하면 경제가 사는가? 전매제한 완화 등을 통해 사람들이 투기판에 뛰어들게 만드는 것이 과연 정부가 할 일인가? 정부부터 부동산에 돈을 잔뜩 집어넣고, 가계와 기업까지 덩달아 부동산 투기판에 뛰어들게 하면 경제가 사는가? 집값이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보다 더 비싸진다고 한국 경제가 최일류 국가가 되는가? 전국 곳곳에 아파트를 즐비하게 짓는다고 한국의 성장 잠재력이 높아지는가? 더구나 부동산 경기 부양을 한답시고 시중 유동성을 억지로 늘리면 안 그래도 높은 물가를 더욱 뛰게 할 뿐이다. 그렇게 되면 더욱 고통받는 사람들은 서민이다. 이처럼 지금 정부가 하려고 하는 짓은 실제로는 기득권층을 위해 집값 거품을 띄우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속셈은 감추고 경기를 살린다는 명목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경기 부양은 경제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한국 경제를 죽이는 길이다.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키우는 방향에 역행하는 길이다. 그리고 서민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길이다. 부동산 거품을 키우면 키울수록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들은 더욱 악화될 뿐이기 때문이다.

by 선대인 2008. 9. 3. 01:16

 

기획재정부가 9월1일자로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경제재도약 세제’라는 제목으로 감세안을 발표했습니다. 감세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이미 신문과 방송 등 여러 매체들을 통해 이미 접했을 것으로 믿고 이번 감세안을 세 가지 문제를 중심으로 평가해보겠습니다.

 

1. 향후 중장기 조세구조 개혁 방안에 대하여

 

현재 한국의 재정상태는 결코 건전한 상태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외환위기 전 50조원이던 국가채무는 2007년 기준으로 300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또 국가채무 증가 속도도 해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한국의 경우 연기금 등으로부터 차입한 사회보장기여금 비중이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반면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와는 달리 연금 지급을 위한 재정지출 시기는 아직 도래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정부는 2013~2015년경부터 베이비붐 세대들이 본격적으로 은퇴하는 시기에 대비해 매우 신중한 재정 운용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재정구조의 건전성을 미리 확보하지 못한다면 재정은 급속도로 악화될 수 있습니다. 실질 생산인구 감소 등에 따른 향후 세입세출 구조 변화에 대한 치밀한 준비 없이 마련한 막무가내식의 감세안은 무책임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시점을 불과 4~5년 남긴 시점에서 미국의 조지 부시 행정부가 막대한 감세안을 추진한 결과가 어땠습니까? 클린턴 행정부때 쌓은 흑자를 다 까먹고 막대한 재정 적자를 만들어 미국이 현재 겪고 있는 경제 위기의 단초를 제공한 전례를 세심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그런데 정부는 향후 부족해질 수 있는 세수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해 명확한 방침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원 투명화 및 세원 기반 확대 등에 따른 일시적인 세수 초과 등에 기대 ‘문제 없다’고 하지만, 이는 언제까지나 지속될 효과가 아닙니다. 일정한 단계에 접어들면 세원 투명화 및 세원 기반 확대는 한계에 이르게 됩니다. 또한 감세에 따른 경기 활성화로 세수 감소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다양한 실증 연구에 비춰볼 때 정부의 희망사항에 불과합니다. 반면 감세에 따른 세수 감소 효과는 향후 세율 조정이 없다면 계속 지속되게 됩니다. 한 번 내린 세율을 도로 올린다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더구나 한국 경제는 국내외의 각종 구조적 문제로 향후 수년 내에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지출 수요가 크게 늘게 될 것입니다. 감세안 추진에 따라 세수는 줄고, 재정지출 수요는 크게 는다면 국가 재정의 건전성이 심각하게 위협받게 됩니다. 여기에다 은퇴 세대 증가로 인한 사회보장기여금 지출 수요 및 실질 생산인구 감소로 인한 경기 위축 효과까지 감안할 때 빠른 속도로 재정이 악화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하지만 이번 정부의 감세안에는 불과 몇 년 안에 벌어질 상황에 대한 대비책조차 전혀 없습니다.


또한 급격히 변화한 한국 경제의 구조에 걸맞은 세입세출 구조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비전도 전혀 없습니다. 한국은 1970년대 기본 조세체계를 구축한 뒤 근본적인 변화가 없이 땜질식 세목 변경으로 일관해왔습니다. 이 때문에 새로운 경제구조에 걸맞은 조세체계의 정비는 시급히 추진해야 할 필수 과제입니다. 재정부도 겉으로는 ‘선진조세체계’를 구축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겉으로 내세운 정책 목표에 전혀 부합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현재 조세체계는 개발경제 시절 노동 및 자본집약적 성장 시대에 구축된 것으로 2000년대 이후 자산 경제 비중이 급격히 커진 상황에 맞는 조세체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과거 생산경제 활동의 비중이 클 때에는 법인세나 소득세 등 가계나 기업의 생산 활동에 대한 세금 비중이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생산경제 비중이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언제까지 그 같은 체계를 그대로 가져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법인세나 소득세를 깎을 수도 없습니다. 앞서 말한대로 지속적인 세원을 추가적으로 확보하지 않는다면, 심각한 재정 위기에 노출될 수 있고, 이는 극단적으로는 경제 전반의 침체와 사회보장 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경제상황에 걸맞은 새로운 세원을 확보해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부동산 등 자산에 대한 과세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등의 보유세는 선진국 수준으로 계속 높여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양도세의 경우에도 보유세제가 정착되기 전까지는 집값 상승으로 인한 우발이익을 환수한다는 측면에서 큰 틀은 좀 더 유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앞으로 자산임대소득이 크게 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에 따른 과세를 강화해 생산경제의 세수 감소를 보완해야 할 것입니다. 현실적으로도, 근로소득에 대해 수백만, 수천만원의 세금을 부과하면서 불로소득이라고 할 수 있는 부동산 가격 상승이나 임대 소득에 대해 훨씬 적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이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이런 세제로는 근로자들의 근로의욕을 꺾어 현 정부가 말하는 경기 활성화도 어렵게 됩니다. 따라서 정말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선진조세체계를 구축하려 한다면, 이 같은 세원 구조에 대한 조정이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정부 감세안은 생산소득에 대한 감세안은 있지만, 자산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 방안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보유세의 실질적 부담을 낮추고, 양도세와 상속세 부담을 급격히 완화함으로써 투자자 또는 투기자들의 불로소득을 용인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결국 사회 전체적으로 근로의욕을 더욱 감퇴시킬 뿐입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종부세 등 보유세 강화도 이 같은 전체적인 조세체계의 개혁을 전제로 해서 추진했어야 합니다. 물론 일부 기득권 언론의 왜곡과 선동도 있었지만, 부동산 투기 대책의 성격만 부각되다보니 정책 추진 초기부터 논란을 부르고 불필요한 반발을 샀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정부의 조세정책도 단편적이고 근시안적으로 추진됐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 한국의 경우 국세에서 차지하는 간접세 비중이 높아 직접세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바꿔야 합니다. 국세청이 발간하는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05년 기준으로 한국의 직접세 대 간접세 비율은 46.8 대 53.2로 간접세 비중이 더 높습니다. 그나마도 2000년 40%선이던 직접세 비율을 많이 끌어올린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62.4 대 37.6), 미국 (92.7대 7.3. *미국의 경우 판매세 등이 모두 주세로 잡히므로 연방정부의 국세 비율로만 보는 데는 한계가 있으나, 감세정책의 효과를 보는 측면에서는 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영국(59.1 대 48.9) 등 상당수 선진국들은 직접세 비중이 더 높습니다. 조세체계에서 간접세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으면 그만큼 세금의 역진성이 강화됩니다. 이건희 회장이든 노숙자든 같은 액수의 세금을 내는 비율이 그만큼 높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휘발유에 붙는 세금은 소비자들이 기름을 넣을 때마다 소득에 상관없이 똑같이 간접세 형태로 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감세안은 어떻습니까? 이번 감세안에 포함된 양도소득세, 종부세, 상속세, 소득세 등이 모두 직접세입니다. 간접세를 그대로 둔 채 직접세만 집중적으로 깎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직접세 비중이 주는 만큼 간접세의 세수 비중이 더 높아질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세금의 역진성이 높아져 빈부격차가 커질 수 있습니다. 한국은 그렇지 않아도 세금을 통한 분배개선 효과가 5% 정도에 불과해 OECD국가 평균인 40%에 비해 현저히 낮습니다. 그런데 이를 개선하지는 못할망정 간접세 비중을 더 높이면 어떻게 될까요?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무조건 미국 조지 부시 행정부를 흉내내 감세를 통한 경기 활성화 효과가 큰 직접세를 집중적으로 감세하기로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직접세 비중이 낮기 때문에 경기 활성화 효과는 크게 떨어지는 반면, 분배개선 효과를 더욱 약화시킬 우려만 커집니다. (경기부양효과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이렇듯 이번 감세안은 큰 틀에서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위에서 본 것처럼 당장 몇 가지 조세개혁 과제의 측면에서 볼 때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2. 중저소득층을 위한 것이라는 거짓말에 대하여

 

이번 감세안이 대부분 부동산 부자와 고소득층 등 부유층에 혜택이 집중된다는 것은 이미 상당수 언론이 보도했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간략히 넘어가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지적하고자 합니다. 정부의 가증스럽고 파렴치한 거짓말에 관한 것입니다. 정부의 감세안 보도자료를 보면 이번 감세안의 기본 목표 및 방향을 ‘일자리 창출․신성장동력 확충을 위한 저세율․정상과세체계 확립’으로 잡고, 주요 개편내용의 첫 번째 항목으로 ‘중․저소득층 민생안정 및 소비기반 확충 지원’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는 정말 너무나 뻔뻔스러운 거짓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먼저 소득세율 인하에 대해 한 번 살펴봅시다. 국세청의 2007년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06년말 기준으로 연말 정산 대상 근로자 1259만명 가운데 하위 47.6%는 근로소득세 면세 대상입니다. 한마디로 현행 제도로도 하위 절반가량은 이미 근로소득세를 한 푼도 안 내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다음으로 근로소득세를 내는 52.4%를 5개 분위로 쪼갤 때 최하위 분위는 평균 4.0만원, 차하위 분위는 평균 15.8만원을 냈습니다. 이들 2개 분위 계층에 대해 세율을 2% 인하한다고 해도 혜택은 불과 1, 2만원 안쪽입니다. 연말 정산 대상 근로자 1259만명 가운데 하위 70%가 아무런 혜택이 없거나 쥐꼬리만한 혜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 70%가 거의 아무런 혜택을 받지 않는다면, 정부가 말하는 ‘중저소득층’은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한나라당 이종구 의원이 ‘서울 강남의 종부세 대상자는 대부분 중산층이다’라고 말한 식으로 상위 10% 안에 들어야 중저소득층이란 말입니까? 실제로 재정부는 과표 8800만원 이하 계층을 중저소득층으로 잡고, 이들에게 감세 혜택의 53%가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과표 8800만원이라면 연간 급여가 약 1억2000만원에 해당합니다. 이들은 근로소득세 납부 기준으로 최상위 분위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까지 포함해도 감세 혜택의 절반 가량밖에 안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의 이면은 바로 이번 감세 혜택의 절반이 연간 급여 1억2000만원 이상 계층에 돌아간다는 얘기입니다. 한 마디로 이번 감세안은 최소한의 염치도 없는 부유층 감세안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흉내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부시 행정부가 추진한 감세안의 감세 효과가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살펴봐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의회예산처(CBO)의 2004년 보고서에 따르면 상위 20%가 감세혜택의 60%를 챙겼습니다. 또 최상위 1% 가구가 중간 소득계층보다 약 40배에 해당하는 혜택을 입었습니다.


이런 식의 현상이 한국이라고 안 나타날까요? 이미 그 효과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전례가 있습니다. 2004년 소득세율과 법인세율의 인하 효과에 대해 국회 예산정책처가 2005년 추정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말하는 중저소득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1~6분위 계층에서는 3885억원(6분위)에서 7799억원(1분위)의 후생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중고소득층인 7분위(788억원)부터 10분위(1조4454억원)까지는 후생이 증가했습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하위층의 후생이 줄지는 않았는데, 한국의 경우는 하위층의 후생을 희생해 상류층의 후생을 증진시킨 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지 않을 정부가 부유층이 주로 혜택 보는 사상 최대 감세안을 추진한 것을 수긍할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이번 감세안은 말로는 중저소득층을 위한 감세라고 주장하지만, 철저하게 부자들을 위한 감세안입니다. 그런데 이들 부자들은 누구입니까? 바로 이번 감세안을 추진하는 이명박 정부의 ‘강부자내각’과 청와대 보좌진,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다수 정치인들, 그리고 이들의 강력한 지지층들입니다. 종부세, 양도세, 상속세 완화는 바로 이번 감세안을 주도한 1% 부자들의, 1%부자들에 의한, 1% 부자들을 위한 감세안입니다. 그런데도 이를 중저소득층을 위한 감세안이라고 포장하고 있으니 얼마나 비열하고 파렴치합니까?


부시 행정부의 감세정책에 강하게 비판했던 저명한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경제학 교수는 그의 저서 ‘대폭로(The Great Unraveling)’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레이건 행정부는 감세 정책에 대해 정직하기라도 했다. 공급주의 경제학에 따라 부유층 세금을 깎아주면 낙수효과에 따라 중저소득층도 혜택을 본다는 식의 이론(현실에서는 실현되지 않은)에 따라 부유층에게 혜택을 준다는 사실을 속이지 않았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는 모든 사실을 왜곡했다. 그는 감세가 중산층을 위한 것이고, 정부 재정 구조에도 부정적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기자들에게 거짓말하는 데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도 않았다.” 현 정부는 이런 면에서 미국의 부시 행정부보다 더 하면 더했지 결코 덜 하지 않다고 봅니다.

 

3. 경기 부양 및 일자리 창출 효과에 대해

 

글이 길어지니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짚겠습니다. 정부가 말하는 소위 경기 부양과 일자리 창출 효과입니다. 감세가 이뤄지면 노동자의 근로 유인과 기업의 투자 유인이 커진다는 것은 경제학 이론에 비춰보면 틀린 주장은 아닙니다. 그러면 무조건 감세를 하면 좋을까요? 감세를 하지 않는다고 하면 정부는 징수한 세금으로 재정지출을 할 수 있습니다. 정부 재정 지출을 통해 다른 경기부양책을 쓸 수도 있고, 사회복지정책의 형태로 저소득층에 직간접적인 소득 보조를 해줄 수도 있습니다. 이번처럼 21조원의 감세를 한다는 것은 21조원의 재정지출을 할 수 있었던 것을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징세와 재정지출에 따른 행정 비용 등이 들어가니 같지는 않습니다만, 큰 틀에서 비슷하다고 봅시다) 그러면 이와 관련된 비용 대비 편익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21조원이라는 돈을 가지고 경기 부양과 일자리 창출에 가장 효과적인 정책을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가능한 정책 대안들 가운데 같은 비용으로 가장 많은 편익을 만들어내는 사업부터 우선적으로 재원을 배분해가는 게 원칙적으로 맞으니까요.


그러면 과연 감세정책은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먼저 미국 감세정책의 효과를 살펴봅시다. 이에 대해서는 재정부가 2005년 재경부 시절에 스스로 정리한 부시 행정부의 감세정책 효과를 소개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당시 재정부 문건에 따르면, Economy.com 연구소의 연구 결과 감세에 따른 세입손실 $1당 0.74$의 수요증대 효과를발하는데 그쳤다고 합니다. 또 미국 경제정책연구소(EPI; Economic Policy Institute)가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3년 감세안이 통과된 이후 2004년8월까지 정부 예측 430만개의 38%에 불과한 160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됐다고 합니다.


그래도 어쨌거나 수요증대 효과도 있고, 일자리도 창출됐으니 나쁘지 않네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지만, 21조원을 들여서 같은 목적으로 재정지출을 했을 때와 비교해 더 효과가 있어야 한다는 게 전제가 돼야 합니다. 감세정책의 기회비용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과연 다른 재정지출에 비해 더 효과적인지는 매우 의문입니다. 시일이 좀 지나기는 했으나, 실제로 재정부 산하 조세연구원의 2001년 연구 결과는 한국의 경우 재정지출이 감세 정책보다 약 두 배 가량 더 효과적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정부의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 부양책도 효과가 그리 크지 않고, 남발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미국의 경우 직접세 비중이 매우 커서 감세에 따른 경기 활성화 효과가 한국보다 더 큰데도 이렇습니다. 한국처럼 오히려 간접세 비율이 큰 나라에서 미국만큼의 경기 부양 효과라도 나타날까요? 어림도 없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이번 감세안은 대부분 상류층에게 혜택이 집중적으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상류층에 감세 혜택이 돌아갈 경우 경기 부양 효과는 상당히 제한적입니다. 2007년 소득계층별 평균소비성향을 보면 최하위 소득계층인 1분위는 220.7%, 2분위는 112.7%인 반면, 상류층인 9분위는 69.2%, 10분위는 61.0%입니다. 저소득층은 돈이 없어서 못 쓰고 있을 뿐 돈이 생기면 생기는 족족 소비하지만, 고소득층은 1000만원이 생기면 그중에 600, 700만원 정도밖에 소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기득권 언론에서 말하는 ‘돈 있는 사람이 돈을 써야 경제가 좋아진다’는 말은 경제적 양극화를 합리화하기 위한 궤변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같은 21조원으로 어느 쪽에 돈을 쓰는 게 경기 부양에 유리할까요? 당연히 저소득층에 돈을 쓰는 게 훨씬 유리합니다. 저소득층을 위한 감세와 바우처 제도를 실시하는 게 이번 감세안보다 훨씬 경기 부양에도 유리할 것입니다. 소비 승수효과를 통해 저소득층에 쓸 경우에는 100%씩 모두 지출해 연쇄적인 소비 효과가 일어나겠지만, 고소득층은 60~70%씩의 승수효과밖에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여론의 비판을 의식한 한나라당의 주장으로 한 해 연기됐지만, 법인세 인하를 통한 기업 투자 의욕 고취도 거의 효과가 없음이 입증됐습니다. 기획재정부는 법인세율 5%P 인하 시 0.6%P의 경제성장률 상승효과가 있고, 10조원 이상의 투자 증가로 18만명의 취업자가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장밋빛 분칠에 불과합니다. 정부가 2003년 기업들에 대해 임시투자 세액공제 조치를 취한 적이 있는데, 이후 기업들의 설비투자 총액은 거의 변화가 없이 70조원대 초반에 머물렀습니다. 실제로 2004년 법인세를 인하할 경우 기업들의 투자 의향에 대해 대한상공회의소가 회원 기업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도 같은 결론을 내리게 합니다. 당시 설문에 대해 내부 유보후 관망(60.0%)과 투자 계획 없음(27.8%) 응답이 88%에 이른 반면 당장 투자 확대하겠다는 응답은 1.0%, 투자 계획을 수립하겠다는 응답은 11.2%에 불과했습니다. 이처럼 법인세 인하를 통한 투자 활성화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거의 없습니다.


이미 상위 재벌기업들은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갖고도 투자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지금처럼 국내외 거시경제 환경이 불안한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기업이라면 정권이 아무리 회유와 압박을 가해도 쉽사리 투자에 나서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법인세를 인하한다면 결국 재벌기업들의 세금 부담만 낮춰, 빈인빈 부익부 구조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구나 이 같은 무분별한 감세정책은 경기 활성화 효과는커녕 재정적자를 늘이고, 물가 상승 등 문제점만 더 키울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과도한 재정적자로 민간투자가 구축되고 금리가 오히려 상승한 결과 민간 투자가 계속 위축되는 악순환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경험적으로도 감세를 단행해 막대한 재정적자를 초래했던 레이건과 부시 행정부 때에 비해 증세를 통해 재정적자를 흑자로 반전한 클린턴 행정부의 경제 성적표가 훨씬 좋았던 점도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물론 한국의 경우 미국처럼 재정적자가 과도한 상황은 아니라고는 하나, 향후 경제 상황이 급격히 악화될 경우 재정적자가 급속히 확대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지금까지 본 것처럼 이번 정부의 감세안은 ‘중저소득층 민생안정’과 경기활성화, 일자리 창출 등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허울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본질은 현재 집권세력인 ‘강부자 패거리’들 자신들과 핵심 지지층인 부유층을 위한 감세안에 가깝습니다.

 

4. 글을 맺으며

 

앞서 언급한 크루그먼 교수는 조지 부시 행정부를 기존 시스템의 정통성을 송두리째 부인하는 ‘급진적인 우파 혁명 세력’으로 규정하면서 “(이들이 내세우는) 정책안이 그들이 겉으로 내세운 목표에 부합한다고 가정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크루그먼은 “이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으며, 그 목표를 추진하기 위한 어떤 주장도 서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리스트로서 ‘부업(part-time) 저널리스트’인 자신이 생각하는 다섯 가지 ‘보도의 규칙(rules for reporting)’ 가운데 첫 번째 내용입니다. 그는 “이 같은 규칙은 뉴스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어떤 진지한 시민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 같은 규칙은 현재 한국 상황에서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고 믿습니다.

by 선대인 2008. 9. 3. 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