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가격이 낮아지면 주택담보대출 때문에 금융기관이 부실화될 우려가 있으니 연착륙을 유도해야 한다.” 요즘 관가와 정치권, 재벌계 연구소 등에서 많이 나오는 얘기다. 필자도 일본처럼 급격히 거품이 붕괴되고 복합불황으로 빠져드는 상황은 피할 수 있다면, 피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현재 거품의 크기와 성격으로 볼 때 연착륙이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일본이 버블 붕괴로 그렇게 큰 경제적 충격을 받았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버블의 규모가 매우 컸고, 두 번째는 버블 붕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잇따른 정책 실패를 했기 때문이다. 버블 붕괴 과정의 정책 대응은 일단 접어두면, 버블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는 버블의 크기를 키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꼭 일본의 예가 아니더라도 버블 붕괴의 충격은 버블의 규모에 비례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온 연착륙론은 사실은 집값 거품을 서서히 꺼트리는 방향으로 작용하지 않았다. 연착륙론이 구체적으로 주장한 내용들이 부동산 경기 부양, 건축 규제 완화, 금리 인하 반대 등이었기 때문이다. 말이 연착륙론이지 사실상 부동산 거품을 계속 키우게 하는 정책 방향이었던 것이다. 2003년경부터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상당수의 정치권 인사와 관료들, 재벌계 연구소, 금융기관, 건설업계가 이런 식의 연착륙론을 내세웠다. 이 주장은 특히 2003년 10.29대책 이후 2004년 상반기 집값이 약보합세로 접어들었을 때 위력을 발휘했다. 이후 2004년 하반기 당시 이헌재 재경-강동석 건교 라인이 10.29대책을 무력화하고, 적극적인 집값 부양책을 쓰게 된다. 이때도 그들은 ‘집값 연착륙을 위해 경기 부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힘입어 2005년 초부터 서울 강남과 분당 등 경기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집값은 다시 거세게 뛰어 올랐다.

 

만약 그때 ‘연착륙’을 명분으로 집값 부양책을 쓰지 않고 확실히 투기심리를 잡았다면 지금 어떻게 됐겠는가? 거품이 지금의 절반밖에 안 됐을 때니 지금처럼 거품 붕괴의 위기감이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계속 ‘연착륙’ 운운하며 집값 거품을 빼는 작업을 늦춘 결과 어떻게 됐는가?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위기가 극대화된 상태에서 부동산 버블 붕괴의 위기를 맞게 됐다.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위기를 이제 가래로 막아야 하는 상황이 돼 버렸다. 2004년에 잡았으면 국가 전체로 2~3년 고생했으면 됐을 것을 지금은 족히 4~5년은 고생해야 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에서 또 미룰 수는 없다. 사실 여러 가지 경제 여건을 고려하면 거품 붕괴는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현 정권이 재건축 규제 완화 등 부동산 부양책을 통해 거품 붕괴를 막으려 한다면 계속 거품만 커지고 향후 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거품 붕괴를 더 큰 거품으로 막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미 우리는 카드채 사태 때 이런 사실을 경험했다. 카드 남발 문제가 처음 문제됐던 2001년 문제를 수습했더라면 2003년 카드대란 사태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라도 막았다면 같은 해 11월 LG카드 붕괴 사태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빼야 할 거품을 제때 빼지 못하고 엄청난 신용불량자만 양산한 채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파국을 맞고 말았다.

 

미국이 취한 조치에서도 배워야 한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FRB)는 2004년 하반기부터 집값이 확고히 안정세를 보이기 시작한 2006년 상반기까지 금리를 꾸준히 인상하며 집값 거품이 더 커지는 것을 막았다. 다른 요인도 있었지만, 2001년경부터 시작된 서브프라임론 대출이 2003~2004년 급증하고, 이에 따라 집값까지 뜀박질한 데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이 같은 연준의 대응으로 미국의 집값은 폭등세를 멈추고 안정세를 찾았다. 우리보다 집값 상승률이 훨씬 낮았는데도 그렇게 선제적인 정책 대응을 펼친 것이다. 물론 서브프라임론 사태가 본격화되고 경기가 위축될 때는 재빠르게 금리를 인하해 대응했다. 미국 정부가 바보라서 일찌감치 집값 거품을 빼기 시작했겠는가? 더 이상 집값 거품이 커지는 것을 방치했다가는 매우 큰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에 브레이크를 밟았던 것이다. 만약 미국이 이처럼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이후로도 계속 거품을 더 키웠다면 어떻게 됐겠는가? 지금의 서브프라임론 사태보다 훨씬 더 큰 위기를 맞았을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점에서 보더라도 현 정부는 지금이라도 집값 거품을 빼 나가면서 앞으로 나타날 위기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또 다시 연착륙론을 들먹이며 사실상 집값 거품을 더 키우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 한 번 곪은 종기는 짜내야 낫는다. 곪은 종기를 안고 평생 살 수는 없다.

by 선대인 2008. 9. 3. 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