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간의 소동 끝에 정부의 종부세 완화안에 대해 여당인 한나라당이 원안을 수용하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일부 의원들이 청와대안에 반기를 드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다가, 결국 ‘당론에 따르겠다’고 정리한 것이다. 처음부터 이럴 줄 알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속이 너무 빤히 보인다. 한 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생쑈’를 벌였다고밖에 볼 수 없다.

 

환율 급등과 경상수지적자, 금융권의 신용 경색, 내수 침체로 온 나라가 난리판인데 이게 무슨 엉뚱한 짓인가? 자신들과 자신들의 정치적 지지층들 민원 들어주는 것이 그리 급했나? 국정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만 있어도 이런 추악한 행태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 경제 곳곳에서 경고음이 울리고 있기에 비교적 시급한 현안이라 할  수 없는 종부세 문제에 대해서는 가급적 언급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가 했다는 발언을 듣는 순간 가만있을 수 없었다. 박대표가 "종부세는 좌파 정권의 대표적 악법이고 일반 세제와도 전혀 맞지 않는 법률이기 때문에 고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는 게 없으니 무조건 좌파, 빨갱이 등 이념공세뿐이다. 여당 대표의 인식이 이 정도 수준이니 국가 경제가 불안하지 않을 수 있나?

 

종부세는 보유 자산에 대해 매기는 세금으로 보유세의 일종이다. 이러한 종부세는 시장의 실패를 초래하는 투기를 막는 제동장치 역할을 한다. 주택가격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 단기간에 급등할 때 보유세를 시장가격에 연동하도록 해놓으면 부동산 가격이 뛸수록 세금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시세차익만 갖고 좋아할 수 없게 되니 부동산을 내놓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공급이 늘어나 부동산 가격 안정에 도움이 된다. 또 같은 동네에서 누군가 투기를 통해 집값을 과다하게 올리려 하면 다른 주민들은 보유세 부담이 늘어나게 되므로 투기적 집값 상승에 반대하게 된다. 따라서 종부세는 잘 디자인되면 부동산 투기에 대해 강한 내성을 가지게 된다. 시장 주체들이 스스로 투기를 방지하고 가격을 안정화하게 하는 가격 안정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박 대표의 주장처럼 좌파 정권이 사회주의 평등사상에 젖어 자산가들을 골탕먹이기 위해 만들어낸 악법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부동산 가격이 오를 때 보유 부담을 늘려 가격을 안정시키고, 부동산을 가장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소유케 하는 매우 시장 친화적인 세금이다.

미국의 보유세율도 주별로 큰 편차가 있지만 평균 1.15%가 넘는다. 보유세율이 이보다 더 높은 선진국도 많다. 그런데 우리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필자가 직접 계산해본 바로는 아직 0.3%도 안 된다. 정말 갑작스러운 종부세 시행으로 문제점이 있다면, 앞으로 ‘미세 조정’을 해나가면 된다. 그런데 선진적인 세제 구조를 만들어가지는 못할망정 갓 시행된 법률을 무력화시킨단 말인가? 그것도 시대착오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이에 앞서 이명박 대통령의 종부세 관련 발언도 자신들의 수준을 밑바닥까지 드러내고 있다. 이 대통령은 며칠 전 정세균 통합민주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종부세 완화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 "잘못된 세금체제를 바로 잡자는 취지"라고 했다고 한다. 도대체 이 대통령이 생각하는 잘못된 세금체제는 부동산 부자들에게 과세하면 안 된다는 뜻이란 말인가?

 

진정한 의미에서 잘못된 세금체제를 바로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 한국의 재정상태는 결코 건전한 상태라고 할 수 없다. 외환위기 전 50조원이던 국가채무는 2007년 기준으로 300조 원에 육박했다. 또 국가채무 증가 속도도 해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더구나 한국의 경우 연기금 등으로부터 차입한 사회보장기여금 비중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반면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와는 달리 연금 지급을 위한 재정지출 시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지금 정부는 2013~2015년경부터 베이비붐 세대들이 본격적으로 은퇴하는 시기에 대비해 매우 신중한 재정 운용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재정구조의 건전성을 미리 확보하지 못한다면 재정은 급속도로 악화될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실질 생산인구 감소 등에 따른 향후 세입세출 구조 변화에 대한 치밀한 준비 없이 마련한 막무가내식의 감세안을 내놓았다. 이번 종부세 완화안은 그러한 감세안의 최종 마무리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부는 향후 부족해질 수 있는 세수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해 명확한 방침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세원 투명화 및 세원 기반 확대 등에 따른 일시적인 세수 초과 등에 기대 ‘문제 없다’고 하지만, 이는 언제까지나 지속될 효과가 아니다. 일정한 단계에 접어들면 세원 투명화 및 세원 기반 확대는 한계에 이르게 된다. 또한 감세에 따른 경기 활성화로 세수 감소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다양한 실증 연구에 비춰볼 때 정부의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반면 감세에 따른 세수 감소 효과는 향후 세율 조정이 없다면 계속 지속되게 된다. 한 번 내린 세율을 도로 올린다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다. 더구나 한국 경제는 부동산 버블 붕괴 등 향후 수년 내에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지출 수요가 크게 늘게 될 것이다. 감세안 추진에 따라 세수는 줄고, 재정지출 수요는 크게 는다면 국가 재정의 건전성이 심각하게 위협받게 된다. 여기에다 은퇴 세대 증가로 인한 사회보장기여금 지출 수요 및 실질 생산인구 감소로 인한 경기 위축 효과까지 감안할 때 빠른 속도로 재정이 악화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하지만 이번 정부의 감세안에는 불과 몇 년 안에 벌어질 상황에 대한 대비책조차 전혀 없다.

 

또한 급격히 변화한 한국 경제의 구조에 걸맞은 세입세출 구조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비전도 전혀 없다. 한국은 1970년대 기본 조세체계를 구축한 뒤 근본적인 변화가 없이 땜질식 세목 변경으로 일관해왔다. 이 때문에 새로운 경제구조에 걸맞은 조세체계의 정비는 시급히 추진해야 할 필수 과제다. 재정부도 겉으로는 ‘선진조세체계’를 구축한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겉으로 내세운 정책 목표에 전혀 부합하는 것 같지 않다. 현재 조세체계는 개발경제 시절 노동 및 자본집약적 성장 시대에 구축된 것으로 2000년대 이후 자산 경제 비중이 급격히 커진 상황에 맞는 조세체계라고 할 수 없다. 과거 생산경제 활동의 비중이 클 때에는 법인세나 소득세 등 가계나 기업의 생산 활동에 대한 세금 비중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생산경제 비중이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언제까지 그 같은 체계를 그대로 가져갈 수는 없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법인세나 소득세를 깎을 수도 없다. 앞서 말한대로 지속적인 세원을 추가적으로 확보하지 않는다면, 심각한 재정 위기에 노출될 수 있고, 이는 극단적으로는 경제 전반의 침체와 사회보장 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경제상황에 걸맞은 새로운 세원을 확보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부동산 등 자산에 대한 과세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특히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등의 보유세는 선진국 수준으로 계속 높여갈 수밖에 없다. 또한 양도세의 경우에도 보유세제가 정착되기 전까지는 집값 상승으로 인한 우발이익을 환수한다는 측면에서 큰 틀은 좀 더 유지할 수밖에 없다. 또한 앞으로 자산임대소득이 크게 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에 따른 과세를 강화해 생산경제의 세수 감소를 보완해야 한다. 현실적으로도, 근로소득에 대해 수백만, 수천만원의 세금을 부과하면서 불로소득이라고 할 수 있는 부동산 가격 상승이나 임대 소득에 대해 훨씬 적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런 세제로는 근로자들의 근로의욕을 꺾어 현 정부가 말하는 경기 활성화도 어렵게 된다. 따라서 정말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선진조세체계를 구축하려 한다면, 이 같은 세원 구조에 대한 조정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정부는 자산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 방향과는 정반대로 치닫고 있다. 오히려 종부세를 사실상 무력화시키고 감세안을 통해 양도세와 상속세 부담을 급격히 완화함으로써 투자자 또는 투기자들의 불로소득을 용인해주고 있다. 이는 결국 사회 전체적으로 근로의욕을 더욱 감퇴시킬 뿐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종부세 등 보유세 강화도 이 같은 전체적인 조세체계의 개혁을 전제로 해서 추진했어야 한다. 물론 일부 기득권 언론의 왜곡과 선동도 있었지만, 부동산 투기 대책의 성격만 부각되다보니 정책 추진 초기부터 논란을 부르고 불필요한 반발을 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정부의 조세정책도 단편적이고 근시안적으로 추진됐다고 할 수 있겠다.

 

또 한국의 경우 국세에서 차지하는 간접세 비중이 높아 직접세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 국세청이 발간하는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05년 기준으로 한국의 직접세 대 간접세 비율은 46.8 대 53.2로 간접세 비중이 더 높다. 그나마도 2000년 40%선이던 직접세 비율을 많이 끌어올린 것이다. 그런데 일본(62.4 대 37.6), 미국 (92.7대 7.3. *미국의 경우 판매세 등이 모두 주세로 잡히므로 연방정부의 국세 비율로만 보는 데는 한계가 있으나, 감세정책의 효과를 보는 측면에서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영국(59.1 대 48.9) 등 상당수 선진국들은 직접세 비중이 더 높다.

 

조세체계에서 간접세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으면 그만큼 세금의 역진성이 강화된다. 이건희 회장이든 노숙자든 같은 액수의 세금을 내는 비율이 그만큼 높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휘발유에 붙는 세금은 소비자들이 기름을 넣을 때마다 소득에 상관없이 똑같이 간접세 형태로 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가 지금까지 추진한 종부세, 양도소득세, 종부세, 상속세, 소득세 등이 모두 직접세다. 간접세를 그대로 둔 채 직접세만 집중적으로 깎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직접세 비중이 주는 만큼 간접세의 세수 비중이 더 높아질 것이다.

 

실제로 기획재정부가 25일 발표한 '2009년 국세 세입예산 및 중기 국세 수입전망'에 따르면 대표적인 간접세인 부가가치세의 내년 세입은 48조5000억원이다. 올해 전망치(44조3000억원)보다 4조2000억원, 9.5% 늘어난 수치다. 또 다른 간접세인 증권거래세는 27.6% 증가했다. 간접세 성격의 교육세와 관세의 증가율은 각각 8.5%, 8.1%로 총 국세 증가율 7.6%보다 높다.

 

반면 직접세는 근로소득세와 종합소득세, 양도소득세 등을 합한 소득세가 16.1%로 큰 폭의 증가세를 보이는 것 외에 다른 세목들은 소폭 증가에 그치고 있다. 특히 직접세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법인세는 1.5% 늘어나는데 그친다. 내년 국세 증가율 7.6%와 비교하면 법인세는 사실상 줄어드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보유세인 종합부동산세는 31.4%나 감소한다.

이렇게 되면 세금의 역진성이 갈수록 높아져 빈부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그렇지 않아도 세금을 통한 분배개선 효과가 5% 정도에 불과해 OECD국가 평균인 40%에 비해 현저히 낮다. 그런데 이를 개선하지는 못할망정 간접세 비중을 더 높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자신들의 후안무치한 행태가 드러날까봐 “지방세수를 추정하기 어려워 간접세와 직접세 비중을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자신들도 내놓고 말하기가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이렇듯 이번 종부세 완화안과 이미 9월 1일 발표된 감세안은 큰 틀에서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세금체계와 반대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 대통령의 발언은 착각이어도 심각한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종부세 완화안에 대해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잘못된 징벌적 과세로 1명의 피해자라도 있다면 다소 인기가 없더라도 원칙에 따라 바로잡는 것이 정부 여당의 역할”이라고 했다고 한다. 언뜻 들으면 좋은 말인 것 같다. 하지만 ‘강부자’ 1명의 피해자를 구제하는 데는 그렇게 열심인 서민들 피해를 구제하는 데는 그토록 관심이 없을까? 오히려 현 정부의 종부세 개편안은 수많은 근로소득자들의 사기를 꺾고, 분배의 역진성을 강화한다는 측면에서 대다수 국민을 괴롭히는 징벌적 과세다. 이 나라에서는 강부자만 국민이고, 서민은 국민도 아니란 말인가?

 

이 글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의 '부동산문제'란에도 띄웠습니다. 좀더 깊이 있는 정보와 토론을 원하시는 분은 방문해주세요. 이 글은 연구소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08. 9. 29. 17:18
 


이명박 정부가 각종 건설경기 부양책과 부동산 세제 개편안을 무더기로 발표하고 있다. 출범 이후 첫 번째 부동산 대책인 소위 ‘8·21대책’부터, 9·1 감세안, 9·19 500만 호 주택공급안, 9·22 종합부동산세제(이하 종부세) 개편안 등이 잇따랐다.


발표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자면 △분양가 상한제 무력화 및 사실상의 후분양제 폐지 △최저가낙찰제 확대 적용 연기 △지방 미분양 아파트 환매조건부 매입 △ 수도권 전매 완화 △ 정부 예산 120조 원을 동원한 주택 공급 △뉴타운 및 신도시 추가 지정 △재건축 사업 촉진 △1가구 1주택 양도세 부담 및 상속세 부담 완화 △부유층 중심의 소득세 완화 △종부세의 유명무실화 등이다.


이들 대책의 공통점은 미분양 물량 증가로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건설업체들에게 유동성을 공급하고, 고가 주택 보유자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한마디로 ‘건설 및 부동산 경기 부양’과 ‘집값 거품 떠받치기’로 일관한 정책들이다. 이밖에 정부가 향후 5년 간 56조 원을 투입하는 ‘광역경제권 선도 프로젝트’ 사업 또한 도로, 항만, 공항 건설 및 산업단지 조성 등 각종 개발사업이다. 정부가 새만금개발사업 추진에 속도를 붙이고, 제2 롯데월드 건설을 신속히 허가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모든 정책은 건설업계와 부동산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이들 대책을 내놓는 속도와 규모가 엄청나다는 점이 주목된다. 정부는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은 괜찮다’고 허장성세(虛張聲勢)를 부리지만, 속으로는 부동산 거품 붕괴에 대해 극심하게 걱정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대책들을 쓴다고 해서 부동산 거품 붕괴를 막을 수는 없다. 최근의 국내외 거시경제 구조를 보면 부동산 거품 붕괴는 어떤 형태로든 피할 수 없다. 실제로 정부의 각종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시장은 거의 반응하지 않고 있다. 물론 이들 대책은 부동산 거품이 좀더 지속되도록 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렇다고 이미 커질 대로 커져버린 거품을 없앨 수는 없다.


또 당장 발등의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국가의 미래에 필요한 사회적 기반을 근본에서 허물고 있어 염려스럽다. 감세안이 그 대표적 사례다. 외환위기 전 50조원 수준이던 국가채무는 지난해 300조 원에 육박했다. 그런 가운데 2013년경부터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는 등 ‘저출산 고령화’ 충격이 본격화될 것이다. 복지재정 충당금 등 재정 수요는 급증하는데 반해 경제 활력 저하로 세수(稅收) 기반은 줄어든다. 더구나 과거 일본이나 현재 미국에서 보는 것처럼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면 막대한 재정이 들어간다. 그런데도 지금 정부는 세원 투명화로 일시적으로 늘어난 세수를 돌려준다는 명목으로 철저히 부유층을 위한 감세안을 단행했다. 나중에는 어떻게 되든 ‘지지층을 위한 복지’를 실현하는데 골몰하는 형국이다.


근시안적인 건설 부양책은 오히려 향후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당장 500만 호 주택 공급 계획안은 2010년대 이후 주택 공급 과잉으로 부동산시장을 장기 침체로 몰아갈 수 있다. 이미 미분량 물량이 공식적으로만 15만 호 이상이고, 뉴타운과 2기 신도시 등 수도권에서 이미 계획된 물량만으로도 2010년 이후 막대한 공급이 이뤄진다. 반면 저출산, 고령화 추세에 따라 주택수요인구는 2010년대 이후 급감하고 수도권 인구 유입도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추가 공급 대책을 내놓은 정부를 보자니 정말 어이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의 상황을 바람이 잔뜩 든 풍선에 비유하자면 최대한 서서히 바람을 빼가야 한다. 물론 현재 부동산 거품 크기나 가계 부채로 잔뜩 쌓아 올린 거품 구조로 볼 때 상당한 충격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지금 정부가 하듯 풍선에 바람을 더 집어넣어 거품을 키워서는 안 된다. 풍선이 지금보다 더 부푼 상태에서 터진다면 그 충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부동산 거품은 한국경제라는 신체에 자라는 악성종양과 같은 것이다. 악성종양은 더 커지기 전에 수술을 통해 도려내야 한다. 계속 안고 가다가는 한국경제가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일반 국민들은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한국경제는 부동산 거품이라는 악성종양이 자라면서 이미 엄청난 중증을 잃고 있다. 한국경제의 핵심적 문제들인 소비 위축, 내수 침체, 실업률 증가, 양극화 확대, 고물가 고비용 구조 등의 문제는 상당 부분 부동산 거품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우선 가계부채의 증대와 이에 따른 이자 부담 증가로 가계의 소비 여력이 급격히 위축됐다. 또한 소비재와 달리 가장 값비싼 생활 필수재인 주택가격은 상승하면 그만큼 무주택 서민들의 실질소득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발생한다. 또 주거비 부담이 상승하면 이를 충당하기 위한 임금 상승이 합리화돼 기업의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자산 양극화가 심해지고 이로 인한 사회적 위화감도 증대된다. 토지 비용의 상승으로 경제가 고비용 구조로 흐르게 돼, 중장기적으로 국가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


정말 한국경제를 살리고 싶다면 이제라도 부동산 거품을 서서히 빼가야 한다. 한동안은 버블 붕괴의 고통으로 많은 경제 주체들이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부동산에 몰린 돈을 생산경제로 이동할 수 있게 하는 것만이 미래를 기약하는 방법이다. 만약 2000년 이후 자산경제에 몰렸던 수백 조원의 돈 가운데 절반만이라도 생산경제에 몰렸다면, 지금 이 나라는 일자리가 넘쳐나 주체를 못했을 지도 모른다. 당장 정부가 재정을 더 풀고 민간의 투기 심리를 자극해 부동산에 돈을 더 집어넣어봐야 ‘언 발에 오줌 누기’에 그칠 공산이 크다.


첨단 기술경제 시대이고, 지식정보화 시대, 창조경제 시대라고 한다. 그러면 국가 전체의 자원이 이런 영역에 더 배분되도록 해야 한다. 첨단기술을 고안하고 지식과 정보를 창출하며 창의성을 발휘하는 주인공은 사람이다. 부동산이 아니다. 따라서 사람에게 투자해야 한다. 한 나라의 자원은 유한하기에, 제한된 자원 안에서 최적의 생산성을 낼 수 있는 자원배분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비정규직 양산과 저임금으로 사람은 천대하면서 부동산만 신주단지 모시듯 하면 경제가 사는가? 서울 집값이 미국 뉴욕보다 비싸진다고 한국이 일류국가가 되는가? 전국 곳곳에 아파트를 즐비하게 짓는다고 성장 잠재력이 높아지는가? 현 정부의 부동산 경기 부양책은 경제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길게 보면 경제를 죽이는 길이다. 사람에 투자하지 않고 콘크리트에 투자하는 경제는 희망이 없다.


이 글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의 '부동산문제'란에도 띄웠습니다. 좀더 깊이 있는 정보와 토론을 원하시는 분은 방문해주세요. 이 글은 김광수소장님께서 쓰신 글이 아니며 연구소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08. 9. 25. 11:26

9월 19일 국토해양부는 저렴한 주택 공급을 위해 그린벨트를 대규모로 해제하는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이에 앞서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꼭 필요하다면 다소간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한이 있더라도 땅값과 건축비를 내려 분양하면 훨씬 싼 가격으로 집을 공급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모양새가 됐습니다.

그린벨트를 해제해 싼 가격으로 서민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말은 참으로 후안무치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시장 재임 시절 33개 뉴타운을 무더기로 지정한 탓에 대규모 동시 철거가 이뤄져 서민들이 원래 살던 곳에서 쫓겨나게 한 장본인이 아닙니까? 서민 주거에는 관심 없이 정치적 욕심 때문에 강북 집값 올리기에 여념 없었던 사람이 바로 이 대통령 자신입니다. 그런 사람이 이제 와서는 그린벨트를 풀어 서민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한다면 뻔뻔스럽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내놓은 대부분의 주택 및 부동산 정책은 계속 높은 집값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정책들입니다. 국내외 거시경제 환경이 부동산 버블 붕괴 압력을 높이고 있어서 집값이 떨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하면서도 정작 이대통령 본인은 전혀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나 심리적 갈등도 못 느끼는 것 같습니다. 뉴타운 지역의 극심한 전세난을 보면서도 한 번 사과나 반성을 한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더해 새로 뉴타운 지정권을 가진 서울시와 협의도 없이 뉴타운을 추가 지정한다니요? 한 마디로 말이야 서민 주거 안정을 내세우지만, 건설업계에 사업물량 퍼주기에 여념이 없는 꼴입니다.

사실 이 대통령은 자신이 추진하는 정책의 실제 효과나 정책 조합(Policy mix)의 정합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개념도 없는 사람입니다. 다만 자신이 느끼기에 점수 딸 수 있다고 느끼면 정반대의 정책 효과를 가져와도 내지르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아무 정책이나 듣기에 솔깃하다면 막 질러대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 쪽에서는 뉴타운을 통해 서민들을 쫓아내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린벨트를 해제해 서민주택을 만든다는 얘기를 아무렇지나 않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독교 신자라서 ‘한 손이 한 것을 다른 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을 엉뚱하게 실천하는 것입니까?

하지만 이 글에서는 이 대통령의 스타일에 대해서는 길게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린벨트 해제를 통해 저렴한 주택을 공급한다는 이대통령 발언과 국토부 발표의 허구성을 짚고자 합니다.

시계 태엽을 되돌려 2004년 7월로 가봅시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국민임대주택건설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통해 대규모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국민임대 주택 공급을 추진합니다. 당시 이슈가 됐던 판교신도시의 경우 공영개발을 통해 100% 장기임대주택을 공급해야 한다고 김광수경제연구소는 주장했습니다. 김광수 소장님은 이 같은 방식의 주택사업이 재무적으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며 이론적 모델까지 만들어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고, 판교를 로또 투기판으로 만들어 투기세력에게 먹잇감만 제공했습니다.

정부 스스로 벌린 로또 투기판 때문에 판교발 집값 광풍이 일자, 정부는 전량 국민임대주택을 짓겠다며 해제한 고양 삼송과 남양주 별내 지역의 절반을 분양 물량으로 채우겠다고 했습니다. 이때 당시 건교부가 내세운 명분은 ‘판교급 신도시’를 만들어 주택 수요를 흡수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집값은 어땠습니까? 집값이 잡히기는커녕 해당 지역까지 투기가 극성을 부려 오히려 집값을 치솟게 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직접 추진했던 은평뉴타운 지역을 예로 들어봅시다. 은평뉴타운 사업지구는 대부분 그린벨트 풀어서 조성했습니다. 그런데 평당 토지 보상비가 판교신도시의 평균 3.5배가량 됐습니다. 지금 거론되는 서울과 수도권 경계 지역의 그린벨트라고 보상비가 크게 더 적게 들어갈까요? 더구나 황당하게도 아파트 짓는데, 턴키방식(여기에서 길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상위 재벌건설업체들에게 엄청난 폭리를 취하게 해주는 발주방식입니다)으로 발주를 해서 엄청난 고분양가 만들었습니다. 후임 오세훈 시장이 똥바가지 뒤집어썼지만, 2006년 은평뉴타운 고분양가 사태로 주변 집값 들썩이게 만들었죠. 은평뉴타운 인접 서대문구나 은평구의 아파트 가격이 평당 700만~800만원이던 시세가 1200만~1300만원으로 수직상승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사전 치밀한 도시계획 없이 그린벨트 풀어서 급하게 만들었더니 어떻게 됐습니까? 도로나 학교가 제대로 확보 안 돼 언론에서 욕 엄청 먹었죠? 오세훈 시장이 분양가심의위원회 가동해 분양가를 평균 12%정도 낮춘 덕에 분양은 다 됐는데, 지금 입주율 여전히 낮은 수준입니다. 생활 인프라가 없어서 주민들 불만 대단하고요. 물론, 뉴타운 사업으로 추진됐다는 특수성을 어느 정도 감안은 해야겠지만, 그린벨트 풀어서 집값을 낮췄습니까? 그렇다고 도시기반시설이 잘 갖춰진 주택단지가 들어섰나요? 사람은 그 사람이 해온 과거 행적을 통해 판단하는 게 가장 정확합니다. 사기꾼이 어느날 갑자기 ‘난 사람 안 속여’ 하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시겠습니까


by 선대인 2008. 9. 23. 0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