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에 나온 기업은행 보고서나 얼마 전 현대경제연구원의 보고서를 보면서 저는 속으로 빙긋이 웃었습니다. 두 보고서 내용이 모두 제가 <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온다>와 <위험한 경제학>에서 이미 주장했던 내용들을 상당 부분 그대로 따라오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은 보고서는 <위험한 경제학>에서 주장한 공급 과잉 추산치를 직접 인용하기도 했고요. 물론 이들 보고서 내용이 저나 우리 연구소 주장을 '표절'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경제 현상을 객관적으로 정확히 분석하다 보면 비슷한 분석도구를 사용하게 되고 결국 비슷한 결론에 이르게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그런데 어제 여러 일로 바빠서 산은경제연구소의 보고서 내용을 보지 못하다가 어제 잠자기 전 인터넷뉴스로 보도내용을 읽으면서 또 한 번 '크크'하며 웃게 됐습니다. 아직 산은경제연구소 홈페이지에 원문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기사 내용만 보면 상당 부분 <위험한 경제학>에서 설명한 내용을 원용한 듯한 부분이 있어서입니다. 아래 링크로 건 기사에서 따온 부분입니다.

 

 

"서울 아파트값, 美·日 버블붕괴 때보다 위험"

(종합)산은경제연 "집값-물가 격차 커"… 빚 상환능력은 감소중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0032316000788231&outlink=1

 

  

산업은행 경제연구소에 따르면 1987 물가와 주택가격을 각각 100으로 놓았을 2009 서울의 아파트 가격과 물가(전국) 각각 505.8 277.9 '아파트가격-물가' 격차는 227.9 조사됐다. 이는 미국의 주택가격 버블 붕괴 당시인 2006 격차(179.2) 일본의 주택가격 거품 붕괴 당시인 90 격차(96.6) 훨씬 웃도는 수치다.

 

 

 

이 부분은 제가 <위험한 경제학> 1권에서 "집값, 언제 어떻게 꺼질까"라고 썼던 내용 중에 제가 했던 작업과 사실상 같은 내용입니다. 그 부분의 설명과 <도표>를 인용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제가 아래 도표 설명에서 3국의 물가 갭의 구체적 수치를 쓰지 않았지만, 사실상 분석 내용은 같은 것입니다. 물론 구체적인 수치는 비교 지역과 시점이 약간 달라 약간의 차이는 있어 보입니다만. 이외에도 산은이 분석한 소득 대비 집값 수준이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문제 등도 이미 <위험한 경제학>에서 모두 다뤘던 내용입니다. 사실은 그 전에 이 내용들 상당 부분을 원래 <경제시평>의 '시사경제'에서 이미 다뤘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올초의 기업은행 연구소, 현대경제연구원에 이어 이제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경제연구소까지 부동산 버블 붕괴와 대세하락을 경고하는 보고서를 발표하는 상황에 이를 만큼 이제 국내 부동산 시장도 한계에 이르렀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이들 연구소들의 행태입니다. 우리 연구소와 같은 전문 연구기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는 사회적 사전경고 기능입니다. 국민경제 전체적으로 버블이 최소화되도록 하고, 또한 일반 서민가계가 위험한 시기에 부동산 선동에 휘둘려 위험한 부동산 올인을 하지 않도록 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미 거품은 부풀대로 부풀고, 정보력이 부족한 일반 서민들은 무리하게 빚을 내 '폭탄'을 떠안은 뒤에야 뒤늦게 뒷북을 둥둥 울리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대다수 언론들이 지난해 하반기 수도권 분양대전을 앞두고서도 '공급이 부족하니 집값이 2~3년내 폭등할 것"이라고 허무맹랑한 선동보도를 쏟아낼 때 이들 연구기관들은 뭘 했습니까? 저는 당시에 공급부족론이 얼마나 허구인지, 그리고 얼마나 주택 공급이 일반 가계의 소득 수준이나 현재 집값 수준 대비 공급 과잉인지, 그래서 지난해 하반기 이후 수도권에서 대규모 미분양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음을 경고했습니다. 저나 저희 연구소 자랑을 하려는 얘기가 아닙니다.

 

저희 같이 유료 회원들의 십시일반으로 꾸려가는 조그만 연구소도 하는 일을 왜 수십, 수백 명의 인력을 가진 연구기관들이 수많은 가계들이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데도 사전에 경고하지 않는가 말입니다. 거꾸로 정부에 건설부양책이나 부동산 부양책을 주문하면서 가계를 희생해서라도 건설업계를 살려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했는가 말입니다.

 

도대체 이런 연구기관들을 정말 전문 연구기관이라고 믿고 살아가야 하는 이 땅의 서민들의 현실에 가슴이 저며올 뿐입니다. 이들 연구기관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않고, 부동산 광고에 목을 맨 한국의 대다수 언론들이 부동산 시장의 구조적 위험성을 경고하기보다는 선동보도에 열을 올리는 현실이 가슴 아파 저는 더더욱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또한 그렇기에 '서민들은 모르는 대한민국 경제의 비밀'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부제까지 달아가며 <위험한 경제학>을 통해 사전경고하려고 노력했던 것입니다.

 

제 잘났다는 얘기로 들리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결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어떻게 한 나라의 전문기관이나 언론들이 서민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기보다는 서민들을 등치고 우려먹기에 정신 없는지 개탄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어쨌거나 이제 제가 아니더라도 부동산 거품에 대해 경고하는 기관들이 생겨나고 많은 분들도 새롭게 인식을 가지게 됐기에 이제 저는 조금씩 목소리를 낮춰가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 저는 저의 새로운 소명의식이 인도하는 대로 앞으로 세금 및 재정 오남용 문제에 대해 좀더 비중을 두고 연구를 해가려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 연구소의 부동산 문제 연구 비중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조만간 좀더 구체적으로 밝힐 기회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뼈가 있는 사족: 조선일보 등 일부 신문들은 지난해 10월경 저와 우리 연구소의 주장을 멋대로 왜곡해 '폭락론자' '종교적 종말론자'라고 비난한 적이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왜 산은경제연구소의 주장은 '폭락론' 종교적 종말론'이라고 비난하지 않는지 궁금합니다.

 

 

 

<아래>는 위험한 경제학 1권, 132~136쪽에서 인용한 내용입니다. 지난해 '시사경제'에서 소개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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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의 부동산 거품이 다른 나라에 비해 얼마나 과도하며 향후 어떤 식으로 꺼질 것인지 추정해보자. <도표3>은 한미일 3국의 물가지수와 명목 주택가격 추이, 그리고 두 지수의 차이를 도표로 나타낸 것이다. 미국의 주택가격 지수(케이스-쉴러지수)는 한국의 서울이나 수도권에 대응하는 미국10대 도시 가격지수를 사용했으며, 일본 역시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 3대 도시의 주택가격지수를 사용했다.


이 도표를 통해 직관적으로 알 수 있듯이 역사적으로 주택 가격이 한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물가 수준을 지속적으로 뛰어넘어 무한히 상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부동산 버블이 발생할 때 상당 기간에 걸쳐 물가 수준을 뛰어넘어 버블 주택가격이 유지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더 긴 흐름에서 보면 결국 물가 수준으로 수렴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우선, 일본을 보면 1986년부터 주택가격이 급상승해 1991년 정점을 기록했다가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2003년경에야 물가지수 수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버블 붕괴 시기에 부실채권 정리 및 건설, 금융업 등의 구조조정 지연, 급속한 고령화와 인구감소 추세, 부동산 거품 붕괴 여파 등이 맞물리며 소비자물가지수 이하 수준에서도 상당 기간 주택 가격이 머무르고 있다.

 


<도표3> 한미일 3국 물가 및 주택가격 추이

  

               ㈜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미국의 경우에도 1980년대 후반에 주택 가격이 물가지수 수준을 약간 상회했으나, 이후 1990년대 내내 물가지수 수준을 밑돌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주택가격이 급상승하면서 2006년 6월에 정점을 찍고 이후부터 서브프라임론 사태가 본격화되면서 빠른 속도로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있다. 2009년 2월 현재 미국 10대 도시의 주택가격은 고점 대비 약 30% 가량 하락했다. 그런데도 상당수 전문가들은 10~15% 정도의 추가 하락을 전망하고 있다. 각 전문가들의 전망이 현재 미국 주택가격이 물가지수 수준과 보이는 격차와 비슷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일본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 또한 부동산 버블이 해소된 뒤에도 상당한 기간 동안 주택가격이 회복하지 못하고 바닥권에서 최소 수 년 동안 머무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경우 2008년 하반기부터 아파트 가격이 하락하는 초기단계에 진입했지만, 부동산 거품이 거의 해소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울의 경우 아파트 가격과 소비자물가지수와의 갭은 부동산 버블 정점기의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결코 적지 않다. 따라서 한국의 주택 가격도 어떤 식으로든 미국이나 일본처럼 부동산 거품이 상당한 기간에 걸쳐서 빠질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상당한 충격이 동반되는 것 또한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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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0. 3. 24. 08:04

 

아래 도표들을 보면서 설명을 읽어주십시오.

 

아파트 거래량은 2006년 이후부터 집계됐으므로 그 이전의 거래량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제가 1996년 이후 아파트 거래량 추이를 추정해보았습니다.

가계부채와 아파트 거래량의 상관관계 함수를 이용해 한국은행의 가계부채 증감에다

주택 가격 수준을 감안해 아파트 거래량을 추정하는 방식으로 작성한 것입니다.

도표에서 분홍색 부분은 바로 추정에 의한 거래량 지표입니다.

 

이 같은 추정이 상당히 정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두 번째 도표인 '매도-매수세 동향' 도표입니다.

국민은행이 가격을 조사할 때 부동산 중개업소들을 통해 함께 조사하는 자료인데, 매도세가 우위인지, 매수세가 우위인지, 아니면 비슷한지를 나타낸 그래프입니다. 이 가운데 보시기 편하도록 매수세 우위 그래프만 도표로 나타냈습니다. 2000년 이후부터 조사해서 위의 거래량 도표와는 시기가 딱 맞지는 않지만, 적어도 2000년 이후 매수세가 우위를 나타내 매도세와 매치되면서 거래량이 폭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패턴이 첫번째의 거래량 도표와 매우 유사함을 쉽게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도표1> 

(주)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도표2>

                                                   (주)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다시 <도표1>의 아파트 거래량 지표에 대해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도표에서 국민은행의 전국 아파트 가격 지수 추이도 함께 나타냈습니다.

사실 호가 위주의 가격이라 사실 정확한 모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동산 정보업체들 지수를 사용할 수는 없는지라 방법이 없습니다.

참고로, 아래 주황색 점선은 전국 아파트 거래량 10만호를 기준으로 제가 표시한 것입니다.

시계열상의 데이터 분석과 경험으로 짐작하건대, 거래량이 이 이하로 떨어질 경우 주택시장이

침체기로 빠져드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도표1>의 거래량 지표를 보면 1차 폭등기 때는 전국적으로 집값이 뛰면서

전국 아파트 거래가 매우 활발했습니다.

2차 폭등기 때는 수도권에서만 집값이 뛰었고 이미 집값이 많이 뛴 상황이어서

거래량이 1차 폭등기 때에 비해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006년 하반기의 거래량은 1차 폭등기 때를 능가하는 것으로

이 때 가격과 거래량이 단기간에 폭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차 폭등기 이후인 2007년부터는 거래량이 급감하면서 국토부 실거래가가 점진적으로

하락했음을 여러 차례 설명한 바 있습니다.

사실 2003년 하반기부터 2004년까지 주택시장이 침체되면서 집값이 일정하게 떨어졌는데

(국민은행 가격지수로는 소폭의 조정기로 나오지만 당시 실거래가 조사가 됐다면 상당폭

떨어진 것으로 나타날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파트 거래량은 2003년 1분기부터 급감했습니다.

거래 침체가 지속되면서 빚을 지고 산 사람들이 몇 분기 후부터 초조한 마음에

집값을 낮춰 내놓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현상은 2006년 폭등기 이후 거래량 감소에 따른 집값 하락이 2007년 하반기부터

시작됐던 것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거래량 감소가 집값 하락에 2~4분기 가량 선행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주택 거래 침체기는 어떨까요?

사실 2008년말 집값 급락 후 집값이 죽 빠지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부동산에 사활을 건 현 정부의 부동산 투기 선동책으로 억지로 집값을 떠받쳤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늘어난 거래량이라는 것이 1,2차 폭등기에 비해 매우 미미한 수준이라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식으로 거래량 침체가 2분기 이상 지속된다면 가격은 상당 수준 떨어질 것으로 판단됩니다.

특히 2007년 이후의 가격 하락을 경험한 덕(?)으로 이번에는 아마 거래 침체가 가격 하락 본격화로

이어지는 기간이 훨씬 짧아질 것 같습니다.

전통적인 이사수요가 있었던 2월초까지 거래 상황이 반영된 2월 실거래가 사례로는

아직 가격 하락세가 분명하진 않지만, 3월 실거래가부터는 가격 하락이 확연히 나타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올해 하반기 이후 출구전략이 본격화된다면 어떤 상황이 연출될까요?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겠습니다. 다만 지금 위의 아파트 거래량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이제 주택 가격을 끌어올릴 에너지는 사실상 모두 바닥났습니다. 이는 결국 가격이 국민경제와 일반 가계의 평균적인 체력 수준까지 '정상화'돼 새로운 수요층이 생겨날 때까지 긴 침체 기간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사족: 며칠 전 건산연이 '10년내 부동산 불패가 끝난다'고 주장했다면서요.

정말 웃깁니다. 이미 부동산 불패가 끝나가고 있는데, '10년내'라니 말입니다.

어쨌든 기간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건설업체 부설 연구소조차 부동산 불패가 끝난다는 의견을

내놓는 것을 보니 이미 갈 만큼 간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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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0. 3. 22. 11:00


정부여당이 지방 미분양 물량에 대한 양도세와 취등록세 감면혜택을 연장하기로 했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 집값이 금방이라도 폭등할 것처럼 선동하던 언론들이 180도 입장을 확 바꿔 이대로 가면 건설사 줄도산으로 한국 경제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국민들을 협박한 결과로 보인다. 어떻게 보면 건설업계의 로비와 부동산업계-부동산 선동 언론들의 합작품의 결과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지금의 정부 여당은 그 자신들이 대부분 부동산 투기 세력이므로 당연히 모른 체 할 리 없었다. 정부 여당은 국민들의 반발이 두려워 일단 지방 미분양 물량에 대해서만 연장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분위기를 봐서 이를 수도권까지 도입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고, 그밖의 다른 부양책들도 사용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 건설업계 요구사항을 모두 들어준다고 한들 주택시장이 살아나기는 어렵다. 언론보도를 보면, 건설업계나 부동산업계의 주요 요구는 분양가 상한제 폐지,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 연장, dti규제 완화 등인 것으로 보인다. 이들 요구 조건이 관철됐을 때 시장에 미칠 파장을 한 번 생각해보자.


우선,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하고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을 연장해보라고 하자. 그러면 지금의 고분양가 아파트가 팔릴까. 이미 절대 다수의 국민들이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집값을 유지한 채 이미 마른 수건 짜내듯 마지막 남은 수요까지 다 짜내 부동산 투기 부양을 한 결과 이제 지금 가격대에 집을 살 수요는 이미 거의 고갈됐다. 이런 판에 분양가를 내리지 않고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해 계속 분양가를 올리겠다면 올려보라.


특히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 연장은 생각해보나마나다. 그동안 주택 거래가 위축되고 미분양이 급증한 것이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이 없어서 그런 것인가.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을 전면에 내걸고 온갖 마케팅을 펼쳤지만 대규모 미분양이 난 것이다. 그동안에도 효과가 없었는데, 양도소득세 혜택을 연장한다고 해서 효과가 있을 리 없다.


DTI규제 완화? 이것도 정 원한다면 DTI규제를 풀어줘 보라. 사실 현재 경제 상황을 제대로 알고 있고, 정부가 제 정신이라면 다른 건 몰라도 DTI규제만큼은 절대 풀어서는 안 될 시기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하지만 가계 경제가 파탄나고 나라 경제가 망해더라도 건설업계와 부동산업계만은 살아야 하겠다면 DTI 규제를 풀라고 해보자. 대신 DTI규제를 풀면 DTI규제보다 훨씬 더 강력한 조치인 기준금리 인상 시기를 최소 몇 달은 앞당기게 될 것이다. 현재 사상 최저 금리 수준에서도 부동산시장이 빠른 속도로 가라앉고 있는데, 금리가 조금이라도 오르면 어떻게 될지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겠다.


이처럼 건설업계의 요구대로 모두 했는데도 부동산시장이 살아나지 않아 일반가계들의 기대심리가 더 꺾이거나 기준금리 인상으로 이어진다면 건설업계는 더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연착륙이 아니라 경착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무리한 부동산 부양책은 부동산 시장을 장기침체로 몰아갈 공산이 크다. 일본의 경우 버블 붕괴기 정부의 건설경기 부양책으로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돼야 할 건설업체들이 부지기수로 ‘좀비기업’으로 살아남았다. 그 결과 초기의 줄도산 행렬에도 불구하고, 90년대 중반까지 일본의 건설업체 수는 오히려 늘어났다. 일본의 건설 토목산업 종사 수는 91년 604만명에서 96년에는 676만명으로 오히려 72만명이 늘어났다. 반면 이 기간에 제조업 종사자 수는 1563만명에서 1450만명으로 113만명이나 줄어들었다. 또한 이 기간의 건설 토목관련 업체 수를 보면 60만 2000개에서 64만 7000개로 약 4만5000개나 늘어났다.


부동산 거품이 일면 당연히 건설 붐도 일고,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건설 경기도 죽기 마련이다. 부동산 거품 붕괴기에는 그만큼 건설시장의 파이가 줄기 때문에 부동산 붐 때 생겨났던 건설업체 수가 감소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오히려 일본의 건설업체 수는 정부의 막대한 공공사업 확대에 힘입어 버블 붕괴기에 더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부 예산이라는 호흡기로 연명하는 좀비기업들이 대폭 늘어났다. 제대로 부실기업의 퇴출이 이뤄졌더라면 살 수 있었던 기업들조차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좀비기업으로 전락했다. 그 결과 건설사의 부실은 계속 증가했고, 결국 금융권의 부실 증가로 이어져 일본의 장기 경기 침체를 가져오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일본의 저명한 경제전문가인 사이토 세이치로씨는 “90년대의 재정지출이란 이러한 특정산업(=건설산업)의 보호와 지원에 도움이 되었을 뿐이고, 경기의 자율적인 힘을 회복시킨다는 케인스이론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평했다.


현재 정부 정책은 과거 일본이 장기 경기 침체로 치달았던 궤적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부동산 시장을 부양한다는 명목으로 주택대출 규제를 푼 결과 지난 한 해 동안에만 44조원의 주택담보대출이 더 늘어났다. 나중에 주택경기가 바닥을 치고 회복기에 들어설 무렵 마중물로 쓸 수 있는 돈을 버블을 키우는 방향으로 써버린 것이다. 또 부동산 시장에서 미분양과 미입주 물량의 급증으로 공급과잉의 신호가 명백한데도 서민들이 필요로 하는 공공주택은 짓지 않고 분양용/매매용/투기용 주택만 계속 지어대게 하고 있다. 미분양 물량 매입과 대규모 토건사업으로 건설업체에 자금을 공급해 건설업계의 구조조정을 지연시켰다. 그렇게 해서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부동산 거품기에 세 배 이상 늘어난 건설업체 수는 거의 그대로 유지되는 가운데 계속 분양물량을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거품기에 잔뜩 늘어난 건설업체들을 국민 경제 전체가 언제까지 먹여 살릴 수는 없다. 자신들의 경영 판단 잘못과 과욕으로 빚어진 잘못은 그들 스스로 책임지게 해야 한다. 미분양 물량의 급증은 건설업체의 터무니없는 고분양가 전략이나 주택 수급 사정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공급 물량을 주먹구구식으로 늘려온 정부의 정책 실패 책임이 크다. 그런데도 문제의 본질에 대한 제대로 된 접근은 외면한 채 건설업체 위기를 다시 국민 세금으로 도와달라는 것은 형평에도 맞지 않는다.


지금 국내외의 악화된 경제 상황 때문에 고통 받는 것은 건설업계뿐만이 아니다. 자영업자와 제조중소기업, 저소득계층 등 우선순위를 가리기 힘들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업계나 계층도 적지 않다. 그런데 굳이 건설업계를 최우선적으로 도와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전체의 50%가 넘는 비정규직, 자금난에 시달리다 못해 도산하는 중소제조업체, 사실상 폐업 직전인 자영업자,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층 등 정부 예산이 가야 할 곳은 천지다. 그런데 경제적 약자에게는 쥐꼬리만한 예산을 지원하면서 도덕적 해이에 빠진 건설업계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특별대우해야 할 근거라도 있는가. 


당장 눈에 보이는 버블 붕괴의 충격을 줄이겠다는 근시안적 시각을 탈피하는 것이 우선이다. 현 정부는 자신들 임기 내에 돌아올 버블 붕괴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이 우선일지 모른다. 하지만 대대손손 이 땅에서 살아갈 국민들에게는 중장기적으로 한국경제를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구조로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물론 어떤 경우에도 한국 경제가 파탄나는 상황은 피해야 하겠지만, 지금 한국의 재벌급 건설업체 가운데 단 하나라도 쓰러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집값이 여전히 일반 가계의 소득 수준 대비 지나치게 높은 상태이고, 어떤 은행도 파산 위험에 처해 있지 않은데 온갖 부양책을 동원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파렴치하다. 

 

더구나 아래 <도표>에서 보는 것처럼 현재 집값 수준은 고점에서 어느 정도 빠지기는 했으나 큰 틀에서 볼 때 부동산 부양책을 쓸 때가 아니라 여전히 집값 거품을 빼야 할 때이다.

 

 

 [도표] 부동산 파동기로 본 현재 집값 수준과 부양책의 적실성

국민은행 자료로부터 KSERI작성. 국민은행 가격조사가 시작된 1986년 이후 서울의 한강 이남 11개구의 주택가격을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실질가격으로 나타냈다. 흔히들 국내 집값은 계속 오른다고 알고 있지만, 국내 집값도 10여년 이상의 주기를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06년말 이후 실질 주택 가격은 고점을 찍고 내려왔으나 외환위기 때와는 달리 여전히 집값 거품을 빼야 할 시기임을 알 수 있다. 

 
 
 

어렵더라도 당분간은 냉철한 자산시장의 가격 조절 메커니즘에 따라 부동산 거품이 자연스레 해소되도록 해야 한다. 부동산 거품에 취해 무리하고 부실한 경영을 해온 건설업체는 명확한 원칙과 기준에 따라 자연스레 퇴출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집값이 일정한 바닥을 찾고 유효수요가 살아나도록 하는 것이 부동산 경기를 가장 빨리 활성화하는 방법이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인위적으로 가격을 떠받치면 거래가 형성되지 않아 부동산시장의 침체가 길어질 뿐이다. 

 

반면 건설업계를 부양하기 위한 재정력과 행정력은 아껴뒀다가 부동산 가격이 소득 수준에 맞게 조정된 일정한 시점에서 붕괴의 충격으로 고통받는 가계와 기업들에 대해 원칙과 기준을 정해 도와줘야 한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수급이 무너져 더 이상 지탱하기 힘든 지경까지 와 있다. 이제는 그야말로 시장원리에 맞춰 건설업계의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고 부동산 가격이 자산시장의 가격 결정 메커니즘에 맞춰 일정한 수준까지 조정되도록 하는 게 순리다. 이를 거부하고 또 다시 무리한 부양책을 쓴다면 그것이야말로 경착륙으로 가는 지름길이자, 장기침체를 부르는 조치라는 점을 건설족들은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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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0. 3. 19. 1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