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부여당이 지방 미분양 물량에 대한 양도세와 취등록세 감면혜택을 연장하기로 했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 집값이 금방이라도 폭등할 것처럼 선동하던 언론들이 180도 입장을 확 바꿔 이대로 가면 건설사 줄도산으로 한국 경제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국민들을 협박한 결과로 보인다. 어떻게 보면 건설업계의 로비와 부동산업계-부동산 선동 언론들의 합작품의 결과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지금의 정부 여당은 그 자신들이 대부분 부동산 투기 세력이므로 당연히 모른 체 할 리 없었다. 정부 여당은 국민들의 반발이 두려워 일단 지방 미분양 물량에 대해서만 연장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분위기를 봐서 이를 수도권까지 도입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고, 그밖의 다른 부양책들도 사용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 건설업계 요구사항을 모두 들어준다고 한들 주택시장이 살아나기는 어렵다. 언론보도를 보면, 건설업계나 부동산업계의 주요 요구는 분양가 상한제 폐지,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 연장, dti규제 완화 등인 것으로 보인다. 이들 요구 조건이 관철됐을 때 시장에 미칠 파장을 한 번 생각해보자.
우선,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하고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을 연장해보라고 하자. 그러면 지금의 고분양가 아파트가 팔릴까. 이미 절대 다수의 국민들이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집값을 유지한 채 이미 마른 수건 짜내듯 마지막 남은 수요까지 다 짜내 부동산 투기 부양을 한 결과 이제 지금 가격대에 집을 살 수요는 이미 거의 고갈됐다. 이런 판에 분양가를 내리지 않고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해 계속 분양가를 올리겠다면 올려보라.
특히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 연장은 생각해보나마나다. 그동안 주택 거래가 위축되고 미분양이 급증한 것이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이 없어서 그런 것인가.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을 전면에 내걸고 온갖 마케팅을 펼쳤지만 대규모 미분양이 난 것이다. 그동안에도 효과가 없었는데, 양도소득세 혜택을 연장한다고 해서 효과가 있을 리 없다.
DTI규제 완화? 이것도 정 원한다면 DTI규제를 풀어줘 보라. 사실 현재 경제 상황을 제대로 알고 있고, 정부가 제 정신이라면 다른 건 몰라도 DTI규제만큼은 절대 풀어서는 안 될 시기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하지만 가계 경제가 파탄나고 나라 경제가 망해더라도 건설업계와 부동산업계만은 살아야 하겠다면 DTI 규제를 풀라고 해보자. 대신 DTI규제를 풀면 DTI규제보다 훨씬 더 강력한 조치인 기준금리 인상 시기를 최소 몇 달은 앞당기게 될 것이다. 현재 사상 최저 금리 수준에서도 부동산시장이 빠른 속도로 가라앉고 있는데, 금리가 조금이라도 오르면 어떻게 될지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겠다.
이처럼 건설업계의 요구대로 모두 했는데도 부동산시장이 살아나지 않아 일반가계들의 기대심리가 더 꺾이거나 기준금리 인상으로 이어진다면 건설업계는 더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연착륙이 아니라 경착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무리한 부동산 부양책은 부동산 시장을 장기침체로 몰아갈 공산이 크다. 일본의 경우 버블 붕괴기 정부의 건설경기 부양책으로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돼야 할 건설업체들이 부지기수로 ‘좀비기업’으로 살아남았다. 그 결과 초기의 줄도산 행렬에도 불구하고, 90년대 중반까지 일본의 건설업체 수는 오히려 늘어났다. 일본의 건설 토목산업 종사 수는 91년 604만명에서 96년에는 676만명으로 오히려 72만명이 늘어났다. 반면 이 기간에 제조업 종사자 수는 1563만명에서 1450만명으로 113만명이나 줄어들었다. 또한 이 기간의 건설 토목관련 업체 수를 보면 60만 2000개에서 64만 7000개로 약 4만5000개나 늘어났다.
부동산 거품이 일면 당연히 건설 붐도 일고,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건설 경기도 죽기 마련이다. 부동산 거품 붕괴기에는 그만큼 건설시장의 파이가 줄기 때문에 부동산 붐 때 생겨났던 건설업체 수가 감소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오히려 일본의 건설업체 수는 정부의 막대한 공공사업 확대에 힘입어 버블 붕괴기에 더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부 예산이라는 호흡기로 연명하는 좀비기업들이 대폭 늘어났다. 제대로 부실기업의 퇴출이 이뤄졌더라면 살 수 있었던 기업들조차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좀비기업으로 전락했다. 그 결과 건설사의 부실은 계속 증가했고, 결국 금융권의 부실 증가로 이어져 일본의 장기 경기 침체를 가져오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일본의 저명한 경제전문가인 사이토 세이치로씨는 “90년대의 재정지출이란 이러한 특정산업(=건설산업)의 보호와 지원에 도움이 되었을 뿐이고, 경기의 자율적인 힘을 회복시킨다는 케인스이론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평했다.
현재 정부 정책은 과거 일본이 장기 경기 침체로 치달았던 궤적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부동산 시장을 부양한다는 명목으로 주택대출 규제를 푼 결과 지난 한 해 동안에만 44조원의 주택담보대출이 더 늘어났다. 나중에 주택경기가 바닥을 치고 회복기에 들어설 무렵 마중물로 쓸 수 있는 돈을 버블을 키우는 방향으로 써버린 것이다. 또 부동산 시장에서 미분양과 미입주 물량의 급증으로 공급과잉의 신호가 명백한데도 서민들이 필요로 하는 공공주택은 짓지 않고 분양용/매매용/투기용 주택만 계속 지어대게 하고 있다. 미분양 물량 매입과 대규모 토건사업으로 건설업체에 자금을 공급해 건설업계의 구조조정을 지연시켰다. 그렇게 해서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부동산 거품기에 세 배 이상 늘어난 건설업체 수는 거의 그대로 유지되는 가운데 계속 분양물량을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거품기에 잔뜩 늘어난 건설업체들을 국민 경제 전체가 언제까지 먹여 살릴 수는 없다. 자신들의 경영 판단 잘못과 과욕으로 빚어진 잘못은 그들 스스로 책임지게 해야 한다. 미분양 물량의 급증은 건설업체의 터무니없는 고분양가 전략이나 주택 수급 사정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공급 물량을 주먹구구식으로 늘려온 정부의 정책 실패 책임이 크다. 그런데도 문제의 본질에 대한 제대로 된 접근은 외면한 채 건설업체 위기를 다시 국민 세금으로 도와달라는 것은 형평에도 맞지 않는다.
지금 국내외의 악화된 경제 상황 때문에 고통 받는 것은 건설업계뿐만이 아니다. 자영업자와 제조중소기업, 저소득계층 등 우선순위를 가리기 힘들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업계나 계층도 적지 않다. 그런데 굳이 건설업계를 최우선적으로 도와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전체의 50%가 넘는 비정규직, 자금난에 시달리다 못해 도산하는 중소제조업체, 사실상 폐업 직전인 자영업자,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층 등 정부 예산이 가야 할 곳은 천지다. 그런데 경제적 약자에게는 쥐꼬리만한 예산을 지원하면서 도덕적 해이에 빠진 건설업계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특별대우해야 할 근거라도 있는가.
당장 눈에 보이는 버블 붕괴의 충격을 줄이겠다는 근시안적 시각을 탈피하는 것이 우선이다. 현 정부는 자신들 임기 내에 돌아올 버블 붕괴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이 우선일지 모른다. 하지만 대대손손 이 땅에서 살아갈 국민들에게는 중장기적으로 한국경제를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구조로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물론 어떤 경우에도 한국 경제가 파탄나는 상황은 피해야 하겠지만, 지금 한국의 재벌급 건설업체 가운데 단 하나라도 쓰러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집값이 여전히 일반 가계의 소득 수준 대비 지나치게 높은 상태이고, 어떤 은행도 파산 위험에 처해 있지 않은데 온갖 부양책을 동원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파렴치하다.
더구나 아래 <도표>에서 보는 것처럼 현재 집값 수준은 고점에서 어느 정도 빠지기는 했으나 큰 틀에서 볼 때 부동산 부양책을 쓸 때가 아니라 여전히 집값 거품을 빼야 할 때이다.
[도표] 부동산 파동기로 본 현재 집값 수준과 부양책의 적실성
국민은행 자료로부터 KSERI작성. 국민은행 가격조사가 시작된 1986년 이후 서울의 한강 이남 11개구의 주택가격을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실질가격으로 나타냈다. 흔히들 국내 집값은 계속 오른다고 알고 있지만, 국내 집값도 10여년 이상의 주기를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06년말 이후 실질 주택 가격은 고점을 찍고 내려왔으나 외환위기 때와는 달리 여전히 집값 거품을 빼야 할 시기임을 알 수 있다.
어렵더라도 당분간은 냉철한 자산시장의 가격 조절 메커니즘에 따라 부동산 거품이 자연스레 해소되도록 해야 한다. 부동산 거품에 취해 무리하고 부실한 경영을 해온 건설업체는 명확한 원칙과 기준에 따라 자연스레 퇴출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집값이 일정한 바닥을 찾고 유효수요가 살아나도록 하는 것이 부동산 경기를 가장 빨리 활성화하는 방법이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인위적으로 가격을 떠받치면 거래가 형성되지 않아 부동산시장의 침체가 길어질 뿐이다.
반면 건설업계를 부양하기 위한 재정력과 행정력은 아껴뒀다가 부동산 가격이 소득 수준에 맞게 조정된 일정한 시점에서 붕괴의 충격으로 고통받는 가계와 기업들에 대해 원칙과 기준을 정해 도와줘야 한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수급이 무너져 더 이상 지탱하기 힘든 지경까지 와 있다. 이제는 그야말로 시장원리에 맞춰 건설업계의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고 부동산 가격이 자산시장의 가격 결정 메커니즘에 맞춰 일정한 수준까지 조정되도록 하는 게 순리다. 이를 거부하고 또 다시 무리한 부양책을 쓴다면 그것이야말로 경착륙으로 가는 지름길이자, 장기침체를 부르는 조치라는 점을 건설족들은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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