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정부 들어 내놓은 각종 주택 및 부동산 정책은 단기 부양책 일색이었다. 심지어 수도권 아파트 전매제한 완화 등 투기 조장책에 가까운 정책들도 있었다. 수조원의 세금이나 공기업 자금을 동원해 건설업체 미분양 물량을 사들였다. 각종 다주택 투기자들을 위한 감세 정책 등 부동산 부자들을 위한 정책이 넘쳐났다. 아직도 40%를 넘는 무주택 서민들을 위한 정책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가계 소득이나 인구구조 변화 등에 발맞춰 중장기적으로 한국 사회의 주택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마디로 집값 떠받치기에 올인한 정책 기조였다.
이럴 때마다 정부나 기득권 언론들은 ‘연착륙’을 부르짖었다. 부동산시장이 경착륙하면 한국경제가 위험하다면서 말이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서민들이 더 힘들다’는 협박(?)까지 곁들였다. 하지만 숱한 부동산대책을 내놓으면서도 국토해양부 장관은 건설업계와는 수시로 만나지만, 무주택 서민들 한 번 만났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연착륙이 처음 나온 것은 2004년 초였다. 2003년 발표된 10.29대책 등이 일정하게 효과를 발휘하면서 부동산 가격이 하향 안정화되던 시기였다. 하지만 카드채 버블 붕괴와 부동산시장의 일시적 침체로 건설업계와 금융권이 함께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이에 2004년 하반기부터 이헌재 당시 경제부총리는 강동석 건교부장관과 함께 연착륙이라는 미명 아래 ‘한국판 뉴딜’ 등 적극적인 부동산 및 건설 부양책을 썼다. 그 결과 2005년 초 ‘판교발 로또’ 열풍을 계기로 부동산 2차 폭등을 초래하고 말았다.
이후 단기적으로는 연착륙 대책이지만, 길게 보면 경착륙을 조장하는 정책이 되풀이돼왔다. 그 사이 가계부채는 470조원에서 920조원대로 두 배로 부풀었다. 특히 이명박정부 들어 가계부채는 더욱 가파르게 증가했다. 노무현정부 5년 동안 가계부채가 202조원 증가했는데, 이명박정부 4년 1분기 동안(2008년1분기~2012년 2분기)에만 240조원 이상 증가했다. 이기간 동안 부동산 거래 침체가 지속됐는데도 부동산 활황기였던 노무현정부 때보다 더 많은 가계부채가 더 짧은 시간에 늘어난 것이다.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가계부채뿐만 아니다. 현 정부 들어 400조원 이상 늘어난 공공부채와 각 지자체 재정난 및 LH공사 등 개발공기업들의 부채 위기, 늘어나는 하우스푸어, 건설업체들의 잇따르는 도산, 끝없는 저축은행 부실 위험 등이 지금 부동산 거품이 폭발 직전 상태까지 이르렀음을 방증한다. 나는 이 모든 ‘예고된 위기들'에 대해 숱하게 경보음을 울려왔다. 그러나 거듭된 정부·정치권의 정책실패와 건설업계와 부동산업계의 이해를 대변하는 세칭 부동산전문가들, 그리고 아파트 광고에 목을 맨 상당수 언론들의 선동보도 때문에 대처를 미뤄 이제 선택지가 하책 또는 최하책 밖에 안 남은 상황이 됐다. 이미 많이 그르친 상태에서 지금의 부동산 위기를 아무 일도 없었던 양 되돌릴 방법은 없다. 그래도 최하책에 이르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은 적극적으로 가계부채 다이어트를 유도하는 것, 정치적 탐욕에 따른 각종 부동산 막개발을 줄이고 기존 무리한 사업을 정리하는 것, 시장 퇴출이 실제로 일어나는 건설업체와 저축은행에 대한 강력한 구조조정 등이다. 또한 부동산 거품의 진폭을 키우고 투기를 부추겼던 양대 제도인 선분양제와 3~5년 거치 후 원리금 상환식 대출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투기에 강한 내성을 가지는 부동산 보유세제 강화도 부동산 시장 건전화를 위한 기본 과제다.
안타깝지만 하우스푸어들은 자기투자 책임의 원칙에 따라 스스로 빚을 정리하도록 해야 한다. 다만, 하우스푸어들을 위해 공공부문이 주도해 대대적인 재무상담을 진행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과도한 빚을 지고 있으면, 생활의 다른 부분들을 조정해서 부채를 줄일 수 있는 플랜들을 마련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급증하는 렌트푸어들을 위해 독일 등 유럽국가들처럼 임대 기간을 5~10년 정도로 연장하고 정부나 지자체가 주도하는 ‘공정임대료’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 급증하는 저소득 1인가구와 고령가구들이 안정적 주거를 누릴 수 있도록 공공임대(또는 전세)주택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일본주택공단이 버블 붕괴 후 분양 주택 공급은 중단하고 공공임대주택 공급으로 전환한 경험에서 배워야 한다.
무엇보다 단기적 고통이 따르더라도 부동산 거품을 빼야 한다. 그래야 한국사회의 고비용 구조를 해소하고 사람값이 올라갈 수 있다. 일례로, 자영업자의 부동산 임대료를 줄여야 자영업자도 살고 자영압자들이 고용하는 ‘알바’들의 임금도 올라갈 수 있다. 또 그렇게 해야 집값과 전세값이 떨어져 서민들의 주거비용과 고통을 해소할 수 있다.
누구 못지않게 나는 진정으로 연착륙을 원한다. 하지만 그것은 정부 정책과는 반대로 단기적으로는 일정하게 경착륙이 되더라도 길게 보면 부동산시장과 한국경제가 연착륙하는 방안이다. 지금 한국경제가 살아나려면 단기적인 충격이 있더라도 부동산시장이 일본과 같은 장기침체에 빠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일본이 건설업계와 금융권 등의 부실 구조조정을 미룬 탓에 계속 부동산시장에 대한 불안감이 지속돼 장기침체에 빠져들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정부가 일정한 위기대응 시나리오를 짠 뒤 통제 가능한 형태로 부동산 거품과 가계부채 폭탄의 뇌관을 제거하고 지나가는 게 낫다. 거품 빼기를 미룬 채 계속 ‘폭탄 돌리기’ 식으로 가면 부동산시장은 저출산고령화 충격과 맞물려 회복하기 힘든 수렁에 빠지게 된다.
거품 빼기를 미루면 거품 붕괴의 충격은 점점 커지게 된다. 일례로, 주택대출 거치기간 만기를 지금처럼 계속 연장하면 분기별 대출 만기 도래액은 눈덩이처럼 커지게 돼 있다. 당장은 모면할 수 있겠지만, 결국에는 위기의 순간 더 큰 충격으로 돌아오게 된다. 사람이 아메바가 아닌 이상 지금껏 정부의 단기 연착륙대책이 장기 경착륙 유도책으로 작용했던 것은 명확하다.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른 법이다. 지금부터라도 거품을 빼서 충격을 분산해야 그나마 일시에 충격이 몰리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아직 시중은행은 재무상태가 괜찮은 편이다. 지금 단계적으로 분할해서 부동산 거품을 빼나가면 시스템적인 금융위기는 피해가면서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또 다시 폭탄 돌리기에 나선다면 다음에는 진짜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그나마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점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선대인경제연구소(www.sdinomics.com) 는 99%가 1%에 속지 않는 정직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연구소의 연간 구독회원이 되시면 경제를 보는 안목을 키우는 한편 연구소의 정직한 목소리를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