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의 명단 공개로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 부인, 이수영 OCI 회장, 조욱래 DSDL회장과 장남 조현강씨 등 245명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지금 드러나고 있는 조세피난과 역외탈세는 단순한 일탈행위가 아닙니다. 세금 부담을 최대한 줄이려는 현대 국제금융이 발달해온 방향이며 본질의 한 부분입니다. 한국의 조세피난과 역외탈세도 이미 심각한 지경이고요. 앞으로 뉴스타파의 명단 공개도 계속 나오겠지만 그 조차도 빙산의 일각일 겁니다. 쉽지는 않지만 돈 벌고도 세금 안 내는 재발가 등 수퍼리치들의 행태 관련 전문가 충원과 철저한 추적, 제도 정비, 국제 공조 강화 등을 통해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눈여겨볼 대목은 조세피난처 명단을 발표한 것이 국세청도 아니고 거대 방송사나 신문사도 아닌, 기존 방송사 등에서 공정방송을 위해 싸우다 쫓겨난 독립언론인들의 조직인 뉴스타파라는 점입니다. 국세청이나 기존 언론사들이 돈과 인력이 없어서 이런 일들을 못하겠습니까? 뉴스타파처럼 진정한 언론정신이 살아 있으니 국제탐사언론보도협회와 연대할 기회를 가졌고, 협업 취재를 통해 이런 실태를 많은 국민들께 공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야말로 독립언론의 진가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그런 뉴스타파의 독립적 활동을 뒷받침하는 게 많은 이들이 십시일반으로 내는 후원금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세상을 조금씩 바꿔갈 수 있습니다. 사실 선대인경제연구소도 많은 연간구독회원들의 정성으로 재벌과 정부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일반가계들을 대변하는 정직한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저희도 계속 정진해서 많은 분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이 사회에 기여하는 독립적인 민간 싱크탱크로 꾸준히 성장하겠습니다. 지켜봐주시고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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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3. 5. 23. 11:57

 

한국은 그동안 재벌 총력지원 체제를 통해 각종 자원을 재벌들에게 몰아주고 이들에게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읍소하거나 압박하는 식의 정책을 펴왔다. 하지만 글로벌 경쟁에 직면해 있고, 자선사업가도 아닌 재벌들이 자발적으로 그렇게 할 리 만무하다. 이제는 재벌들은 자체 경쟁력으로 성장하게 하고 재벌들에게 보냈던 자원을 중소기업들에게 돌려야 한다. 특히 중소기업들에 대한 연구개발과 인적자본개발 지원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재벌과의 실질적인 공정거래 질서를 확립해 자생적인 혁신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대만의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한때 개발도상국이었던 싱가포르·대만·한국 등은 이제 고품질의 제품들을 생산하고 있어요. 뒤를 돌아보면 중국이 바싹 그 뒤를 좇고 있죠. 하지만 나는 대만은 그리 걱정하지 않습니다. 대만 사람들은 2개의 명함을 가지고 다닙니다. 바로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와 앞으로 설립할 회사의 명함이죠. 그만큼 창업이 쉽고 정부가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에 숨을 불어넣는 나라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재벌들이 시장을 좌우하고 있고 대만처럼 소규모 창업이 쉽지 않죠. 일본의 뒤를 좇지 않을 것인지 우려되는 대목입니다. 한국 경제의 엔진을 계속 가동하기 위해선 기업가들이 파괴적인 혁신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을 정부가 앞장서 조성해야 합니다. 그래야 살아남습니다.”(조선일보 2007년 3월 23일자 ‘경영학의 아인슈타인’ 역발상 경영을 외치다, 기사 중에서)

마이클 포터 이후 미국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을 대표하는 경영 구루라고 할 수 있는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의 진단이다. 나는 그의 진단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왜 그럴까. AMC와 퀄컴, 애플 등을 주요 고객사로 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주문생산 제조업체인 대만의 TSMC 사례를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TSMC는 숱한 첨단기술기업들의 모태가 된 대만의 국책연구진흥기관인 공업기술연구원(ITRI)에서 1987년 떨어져 나와 중소벤처기업으로 설립됐다. 종래 수직적으로 통합돼 있던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 선진국들이 반도체 칩 설계와 판매를 담당하는 팹리스(fab-less. 반도체 제조공정(fabrication) 없이 하드웨어 장치와 반도체칩의 디자인과 판매에 특화한 반도체 산업 분야)분야에 특화하면서 반도체 제조공정 분야를 아웃소싱할 때 이를 주문받아 급성장해온 회사다. TSMC는 이 같은 시장을 초기에 포착해 끊임없이 기술력을 높여온 결과 2010년 말 기준 시장가치가 70조 원에 이르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1997년 중소기업에서 출발해 10여 년 만에 RFWS 무선 칩셋 분야 2위, 전세계 반도체 팹리스 분야 4위를 기록한 미디어텍이라는 회사도 있다. 이 회사는 기술혁신을 거듭해 2001년부터 10년 동안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0배 가까이 성장했다.

이처럼 대만은 TSMC나 미디어텍 외에도 에이서, 아수스, MSI(노트북 및 PC제조 분야)와 UMC (반도체제조분야), HTC(스마트폰), 치멜 이노룩스, AU 옵트로닉스(TFT-LCD 분야) 등 탄탄한 기술력과 혁신능력으로 대기업으로 성장한 기업들이 많다. 우리처럼 재벌기업 계열사이거나 재벌기업을 모태로 하지 않고서도 실력 하나로 성장한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에서 중소벤처기업에서 시작해 10여 년 또는 20여 년 만에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예를 잘 상상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도 숱핱 재벌 협력업체 등이 있지만 자체적으로 다양한 국내외 거래처를 가지고 대기업으로 성장한 회사는 눈을 씻고 봐도 찾기 어렵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활발한 중소기업 산업생태계가 있고 없음의 차이다. 대만은 정부 주도의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을 해왔고 국토가 비교적 좁고 천연자원이 부족하며 경제개발의 출발 시기가 비슷하고 비슷한 발전 단계에 와있다는 점 등 여러 면에서 한국과 비교되는 나라다. 하지만 경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한국보다 물가 상승률이 낮고 사회복지 수준이 우리보다 높으며 경기의 진폭이 훨씬 적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다른 점은 경제성장의 핵심 축이 재벌 중심의 한국과는 달리 중소기업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 중소기업들이 공정한 경쟁 규칙에 따라 치열하게 기술력과 사업모델 혁신을 통해 경쟁한 결과 탄탄하고 안정적 일자리를 만드는 대기업들로 꾸준히 성장해왔다. 그 결과 대만의 중소기업은 전체 기업 수의 97%를 차지하지만 고용의 77%만 담당하고, 3% 정도인 대기업이 23%나 고용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그러면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는 관계를 만들어 중소기업이 수출의 51%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중소기업 수출 비중이 38%에 불과하고 대기업이 62%를 차지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구조다.

이렇게 된 데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수평적 관계가 큰 기여를 했다. 한국의 경우 재벌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는 흔히 갑을관계로 표현된다. 하지만 말이 갑을 관계이지 최근 남양유업 사태나 편의점주 연쇄 자살 사태에서 봤던 것처럼 실제로 재벌대기업은 쥐 앞의 고양이처럼 ‘수퍼 초강력 울트라 갑’으로 행세한다. 협력업체 기술 탈취와 이들 업체에 대한 납품단가 인하 압력, 판매 물량 떠넘기기 등은 기본이고, 협력업체가 다른 대기업에는 납품할 수 없도록 해 거래관계를 종속적으로 만든다. 이런 식이다 보니 2000~2009년 10년 동안 삼성전자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13.28%인데, 삼성전자 하도급업체는 6.71%로 절반에 불과했다.

하지만 대만의 중소기업은 여러 기업체에 동시에 납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만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외국 업체들과 동시에 거래한다. 이러다 보니 이들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에 종속되지 않고 독자적인 기술력을 확보하는 한편 납품 단가와 관련해서도 대등한 협상력을 가진다. “대만의 기업들은 서로 협력하되 지배하지 않는다”는 전통이 깊숙이 자리 잡아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상생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 결과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매우 전문화되면서도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들이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다. 또 이들 중소기업들이 기술력과 자본력을 축적함에 따라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경우도 매우 흔하다.

또 하나의 요인은 앞서 언급한 ITRI 등을 통한 대만 정부의 지속적인 R&D 투자라고 할 수 있다. ITRI는 1973년 대만 경제성 산하 국책 연구소로 출범했다. ITRI는 경제성과 민간기업들의 자금을 반반씩 출자 받아 기초 연구개발과 응용과학기술연구를 진행한다. 이들 연구는 중소기업들과 긴밀한 협력 아래 이뤄지면 이렇게 개발된 기술들은 이들 기업에서 활용해 상용화한다. 또 여기에서 연구하던 팀들이 별도 회사를 차려 나가기도 하는데, 지금까지 이렇게 독립한 업체가 TSMC를 포함해 140여 개가 넘는다. 또한 ITRI가 매년 기업에 이전하는 기술만 700여 건에 이를 정도로 뛰어난 성과를 보이고 있다. ITRI는 또한 인큐베이션센터 등을 활용해 벤처창업 등을 적극 지원하고 루슨트 테크놀로지와 마이크로소프트, MIT 등 첨단 기업 및 대학들과 연구협력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ITRI의 역할이 한국과 크게 다른 것은 일부 대기업이 아닌 주로 중소기업을 위해 일한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의 자금과 연구 인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한 뒤 여기에서 개발된 기술들을 중소기업이 활용토록 하는 것이다. 한국이 연구개발비 예산의 90%를 최종적으로는 재벌들에게 몰아주는 것과는 상반된다. 이런 식으로 ITRI가 보유한 기술특허만 약 1만개가 넘는데 이는 한국의 삼성전자와 비슷한 숫자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기술특허는 자사 이익을 위해서만 사용되는 반면 ITRI의 기술특허는 중소기업들에게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최근으로 올수록 대만에서도 대기업이 점점 늘어나고 이들의 매출과 이익 규모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 상황과는 사뭇 다르다. 오랫동안 중소기업에서 시작해 기술력을 키워온 업체들이 대기업으로 성정했고, 협력업체들과의 관계도 수평적이어서 동반성장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이렇게 해서 지금 대만은 노트북, 넷북, 마더보드, 케이블모뎀 등에서 전세계 시장의 90% 가량을 지배하게 됐고, LCD모니터와 LCD TV, LCD패널 등에서도 상당한 시장을 차지하고 한국기업들을 뒤쫓고 있다.

야구에 비유하자면 한국은 홈런 치는 거포만 있는 야구단이다. 홈런 타자는 환호를 받지만 다른 선수들은 이 타자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한다. 홈런 타자에게는 거액의 연봉과 광고수입이 따라붙지만, 다른 선수들은 박봉에 끼니 걱정을 해야 할 판이다. 더구나 홈런타자가 큰 부상을 당하거나 노쇠해지면 그 야구단은 앞날을 기약하기 어렵다. 하지만 대만은 어느 정도 실력 차이는 있지만 타자들이 돌아가며 안타를 치며 득점하는 야구팀이다. 한국의 홈런 타자 한 사람에 집중되는 연봉을 대만 선수들은 골고루 나눠가지며 좋은 팀웍을 유지하며 경기를 치른다.

크리스텐슨 교수가 대만은 걱정하지 않으면서도 한국은 걱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경제가 가야 할 방향은 정해져 있다. 홈런타자도 필요하지만 홈런타자와 함께 돌아가며 안타를 치며 득점에 기여하는 타자들도 필요하다. 이런 타자들을 길러내기 위해 한국정부는 재벌의 독과점적 지위 남용과 불공정 거래를 엄벌하고, 대만처럼 지속적인 혁신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쉽게 말해 고질적인 갑을관계를 이번 기회에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보다 재벌들에 몰아준 자원들을 이제는 중소기업들에 지원해야 한다. 예를 들면, 연구개발 예산의 상당 부분을 중소기업에 배분하고, OECD국가들 가운데 가장 낮은 인적자원개발 예산을 대폭 늘려 중소기업 인력의 질을 높이고, 마케팅 능력 향상 및 해외 판로 개척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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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3. 5. 21. 10:11

 

“여기에 지하 동굴이 있다. 동굴 속에는 죄수가 갇혀 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두 팔과 다리가 묶인 채로 동굴 벽만 보고 산다. 목도 결박당하여 머리를 좌우로도 뒤로도 돌릴 수 가 없다. 죄수의 등 뒤 위쪽에 횃불이 타오르고 있다. 죄수는 횃불에 비추인 자신의 그림자만을 보고 산다.



죄수와 횃불 사이에는 무대 높이의 회랑이 동굴을 가로질러 설치되어 있다. 이제 이 회랑 뒤에서 누군가가 인형극 놀이를 한다고 상상하자. 돌이나 나무로 만든 동물 모형, 사람 모형을 담장 위로 들고 지나가는 것이다. 죄수는 횃불에 의해 투영되는 모형의 그림자만을 볼 뿐, 실재의 모형을 본적이 없지. 인형극을 연출하는 사람들이 대사를 읽을 경우, 죄수는 모형의 그림자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인식할 거야.




이제 죄수의 몸을 묶고 있는 사슬을 풀어주자. 모형을 죄수에게 보여주자. 당신이 보아온 동굴 벽의 이미지는 모형의 그림자였음을 설명해 주자. 죄수는 악을 쓸 것이다. 평생 그림자만 보아온 죄수는 그림자를 실재보다 더 실재적인 것으로 고집할 게야.”



(플라톤의 ‘국가(Politeia)’중에서)







지배세력이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는 장치는 ‘희생양 만들기’다. 반면 피지배세력은 현재 자신이 겪는 고통이 ‘극소수 지배세력’의 음모 때문이라고 비난한다. 그런데 희생양 만들기와 음모론의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현실의 문제를 단순화해 실체적 진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방해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동굴의 비유’에서 동굴 벽에 투영된 인형극 놀이일 뿐이다. 동굴 벽에 투영된 그림자는 허상일 뿐 실체가 아니다. 실체적 진실은 동굴 밖 찬란한 태양 아래 놓여 있다.



매트릭스(Matrix). 이 영화에서 매트릭스는 기계에 의해 가상 현실을 진짜 현실로 인식하도록 만드는 프로그램 체계를 뜻한다. 한국 사회경제에도 분명히 매트릭스와 같은 현실이 있다. 그것은 삼성에버랜드 사건과 관련해 이건회 회장 등이 무죄판결을 받은 현실에서,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자신들에게 광고를 주는 건설업체를 위한 기사를 쏟아내는 한국 신문들의 현실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매트릭스는 워낙 복잡하고, 그것을 떠받치는 세력 또한 워낙 강고하므로 일반인들이 매트릭스를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설사 매트릭스가 있다고 인식하는 것과 매트릭스가 어떤 식으로 구성돼 당신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지를 인식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매트릭스를 빠져 나와 ‘자유로운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매트릭스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인터넷과 SNS의 발달을 통한 집단지성의 발현은 많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하지만 아직 대다수 사람들은 여전히 매트릭스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를 잘 모른다.



그것은 한국의 정보 생산과 유통, 소비 과정이 기득권에 유리하게 왜곡돼 있기 때문이다. 정보를 생산하는 정부부터 많은 경우 정보를 통제하거나 왜곡한다또 정부 정책이나 경제현상을 설명하는 증권사나 정부 산하 연구소, 재벌계 연구소 등은 이해관계나 ‘상부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예를 들어, 한국의 증권사들은 매도 의견 보고서를 내는 경우가 거의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한국의 정보 유통 구조 또한 많이 일그러져 있다. 한국의 대다수 언론은 광고주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오히려 많은 사안에서 상당수 기득권 신문들은 자사의 기득권과 광고주, 그리고 그들 신문이 대변하는 기득권 세력을 위해 진실을 호도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모자라 이명박 정부는 방송을 장악했고, ‘조중동방송’이라고 불리는 종편방송도 허용했다.



일본의 저명한 저널리스트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일본 언론들이 정부의 거짓 발표를 무비판적으로 보도함으로써 일본 국민들이 제대로 경제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다카시는 태평양전쟁 당시 대본영의 발표만 전달했던 상황에 비유하며 버블 붕괴라는 ‘제2의 패전’ 뒤에 가려진 진실을 국민들이 보지 못하게 했다고 비판했다. 지금 한국 언론의 상황은 당시 일본 언론의 상황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못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일부 기득권 언론을 비판하는 매체들이 있지만, 충분한 깊이를 지니지 못하고 있다. 또한 그런 언론들조차 ‘진보진영’ ‘개혁진영’으로 스스로를 표방하며 기득권세력을 은연중에 ‘보수세력’으로 미화해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들 언론 또한 낡은 이념의 틀로 사람들의 정확한 인식을 방해하는 측면이 있다. 더구나 그들 언론은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서는 비교적 다른 목소리를 내지만 경제 문제 등의 보도는 깊이와 전문성에서 미흡한 부분이 많다.



다행히 쌍방향 정보 소통이 가능한 인터넷과 SNS의 발달은 이 같은 정보 유통과정의 왜곡을 어느 정도 중화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고, 일정 부분 그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동시에 기존 미디어가 만들어낸 왜곡된 컨텐츠를 대량 유포하는 통로가 되는 등 문제점도 적지 않다. 또한 인터넷이나 SNS 또한 정파적, 진영적 논리에 함몰된 글들이 넘쳐나 합리적 이성에 근거한 공론의 장으로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정보를 소비하는 수용자의 태도도 매우 왜곡돼 있다. 왜곡된 정보 생산과 유통이 오랫동안 지속되다 보니 거기에 많은 이들이 길들여진 탓이다. 예를 들어, 현 정부를 비판하면 그 논리를 따지기 전에 정치적 또는 이념적 색깔부터 따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심지어 여야 안에서도 다시 친노, 반노, 안빠 등으로 딱지를 붙여 서로의 생각과 주장을 왜곡하고 공격하는 성향이 크게 강해졌다. 경제적 문제에서도 집값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면 그 논리적 근거를 보기보다 ‘집이 없으니 배 아파서 그러느냐’는 인신공격이 이어지는 식이다.



이 같은 정보 환경에서 일반인들이 중요한 사회경제적 사안들에 대해 제대로 현실을 인식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런데 정확한 정보가 유통되지 않아 생기는 폐해는 매우 크다. 소비자나 투자자로서 제대로 된 정보가 없으면 공급자인 기업과 그 기업의 내부자들에게 판판이 당하기 십상이다. 한국의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에 사기와 선동이 난무하는 것도, 수많은 하우스푸어가 양산된 것도 그 때문이다. 시민으로서 올바른 정보를 얻지 못하면 올바른 정치적 선택을 할 수도 없다. 그 같은 잘못된 정치적 선택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탄생이었다. 또한 전적으로 그 이유만으로 한정할 수는 없으나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야권 성향의 유권자들이 기득권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언론지향을 문제 삼은 것도 그 때문이다.



필자는 기자나 연구자, 저자로서의 경험 등을 통해 올바른 정보가 얼마나 소중한지 너무나 잘 알기에 한국 사회의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고 알리는 작업을 필생의 소명으로 여기고 있다. 물론 필자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고, 또 필자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 모두 진실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해관계를 멀리하고 최대한 양심적이고 독립적인 자세로 현상의 이면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작업을 좀 더 큰 틀에서 하기 위해 선대인경제연구소를 만들었다. 이 같은 취지에 따라 연구소를 시작하면서 내세운 목표는 크게 두 가지였다.




1. 재벌과 정부정치권 눈치 보지 않고 정직한 목소리 낼 수 있는 연구기관을 만든다.

2. 연구소를 모태로 일반 시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경제미디어를 만든다.




이 두 가지 목표를 완전한 형태로 달성하는데 당초에는 7년 정도의 목표시한을 잡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시기를 좀 앞당길 수 있겠다는 자신감과 앞당겨야 하겠다는 절박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이를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여러 이유로 국내에 아직 없는 정보 DB를 구축할 계획이다. 정부 관료들과 정치인들의 행적을 기록하는 DB, 전국 곳곳의 예산 낭비사례를 감시하고 축적하는 DB,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부동산 실거래가 DB, 각종 공기업 등 공공기관의 사업과 예산, 투자, 조직, 임원 등의 정보 DB, 그리고 재벌 대기업의 지분 및 내부거래, 회계정보 및 사업정보 등을 담은 DB 등을 구축할 생각이다. 이 DB들을 바탕으로 광범위하면서도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할 생각이다. 또 국민들의 알권리를 확장하고 올바른 정치, 경제적 의사결정을 돕도록 노력하고 싶다.



이와 함께 한국경제를 좀더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구조로 만들 수 있는 정책대안을 개발하고, 정책 전환에 기여할 수 있는 전문인력들을 키워내고 싶다. 외환위기 이후 여야가 번갈아 집권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민경제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못한 데는 올바른 인식과 역량을 갖춘 전문 인력이 부족했던 탓이 크다. 선대인경제연구소를 통해 정책 대안의 개발뿐만 아니라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전문인력을 양성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일 생각이다. 그래서 최소 20~30명 이상의 전문인력들이 눈치 보지 않고 소신껏 연구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런 든든한 울타리를 만들어주고 싶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고 많은 이들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 일들을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반드시 실현할 생각이다. 그것이 필자가 이 사회에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여일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의 성원과 채찍질을 부탁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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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3. 5. 16. 09: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