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도권 전세가가 뜀박질하면서 주택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60%가 넘어서고 있다. 한때 상당수 언론들은 전세가 비율이 60%를 넘어서면 집값이 뛴다는 등 터무니없는 주장을 해왔으나, 이제는 ‘그 같은 공식이 깨졌다’며 아우성이다. 하지만 이는 부동산 대세상승기 때인 2000년대 초반의 경험을 근거로 나온 것으로 나온 잘못된 주장이다.
그러면 매매가와 전세가는 어떤 상관관계를 갖고 움직이게 되는 것일까. 우선, 전세제도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임대제도라는 것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세는 지속적인 주택가격 상승과 이에 기댄 투자(또는 투기) 수익 기대감이 있을 때 존재하는 임대제도다. 예를 들어, 4억원 짜리 아파트를 2억원에 전세로 살 수 있고, 주택을 소유했을 때 주택 가격이 뛰어 투자 차익을 남길 수 있다는 기대가 없다면 주택을 소유할 이유가 없다. 전세를 살면 주택을 소유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주택이 제공하는 거주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계약 만료 기간마다 재계약하거나 이사를 가야 하는 등의 불편은 주택 소유에 따른 세금 부담 및 수리 비용 등으로 상쇄된다고 가정하자) 이렇게 보면 전세제도는 사실 세입자에게 유리한 제도이고 주택 소유주에게는 불리한 제도다.
그런데도 전세가 존재했던 이유는 항상 집을 사두면 언젠가는 집값이 오른다는 기대가 가능했던 시절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이런 시기에 주택 소유자는 주택 매입에 모자라는 자금을 전세보증금을 통해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조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저렴한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했을 때 주택 가격이 뛰면 상당히 큰 차익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전세보증금으로 자금을 일부 조달했을 때 수익률은 훨씬 커지게 된다. 예를 들어, 4억 짜리 아파트를 순수 자기 돈으로만 산 뒤 이 아파트가 5억원으로 올랐을 경우에는 수익률이 25%에 그치지만, 전세보증금 2억원을 끼고 아파트를 샀을 때는 수익률이 50%로 크게 오르게 되는 것이다.
물론 주택 소유자 입장에서는 전세보증금 대신 은행 대출을 이용해 자금을 조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은행에서 자금을 모두 조달할 경우 대출금리에 상응하는 이자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이 중 일부를 전세보증금으로 받아 은행에 예금하면 예금 금리만큼 이자 비용이 줄어드는 셈이 된다. 예를 들어, 대출금리가 5%, 예금 금리가 3%라고 할 때 대출금리로 4억원을 모두 조달하면 연간 2000만원의 이자 부담이 발생하지만, 2억원만큼 전세를 끼고 사면 2억원에 대해 600만원의 예금이자 수입이 생기므로 1400만원의 이자만 부담하면 되는 것이다. 그만큼 싸게 주택 매입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원래는 주택소유자에게 유리할 리 없는 전세제도이지만, 주택가격이 지속적으로 올라주는 상황에서 주택에 대한 투자 차익을 노리는 주택 소유자의 이해도 부합하는 제도가 된다. 주택 소유자에게 아주 싸게 조달할 수 있는 타인자본으로 전세보증금이 기능하는 것이다.
그런데 부동산 호황이 일어 주택 투자자 (또는 투기자)들의 향후 시세차익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 전세를 레버리지로 이용해 주택을 매입하려는 경향이 커진다. 2000년대 부동산 버블기에 많은 이들이 전세를 끼고 두세 채씩 집을 사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던 게 바로 그런 상황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다주택 투자자들의 투자 또는 투기 행위로 인해 자연스럽게 전세 공급이 늘어나게 된다. 반면, 주택 가격 상승세가 지속되면 전세로 머물던 이들도 점점 빚을 내 주택 매입에 가담하게 돼 전세 수요자는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그런데 보통 주택 매매가가 전세가의 기준점이 되기 때문에 주택 가격이 상승할 때 전세가도 이끌려 점진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다만, 전세가 상승세는 매매가 상승세를 따라가지 못해 매매가 대비 전세가의 상대적 비율은 점진적으로 떨어지게 된다. 이 같은 흐름이 부동산 투기가 횡행했던 2002년 이후 지속된 흐름이다.
그런데 부동산 투기가 정점을 찍은 뒤 2009년 말 이후 수도권에서처럼 주택 가격이 계속 하락하게 되면 양상이 달라진다. 부동산 거품이 정점에 이르러 서서히 주택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고, 이미 빚을 내서 주택을 살 사람도 다 사버리는 단계에 접어들면 전세 공급은 점진적으로 줄어든다. 반면, 주택시장이 불안하다고 느낀 다수의 사람들은 과거와 달리 전세에 머무는 경우가 증가한다. 즉, 전세 공급은 줄어드는 반면 전세 수요가 늘어나면서 매매가는 약세를 보이는데도 전세가는 계속 상승하면서 매매가 대비 전세가율이 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것이 바로 2009년 이후 수도권에서 나타나고 있는 흐름이다. 특히 주택 가격 하락세가 완연해지면서 과거에는 문제가 되지 않던 주택소유자의 과도한 부채를 세입자들이 꺼리게 되고, 결국 전세보증금을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는 ‘안전한 전세’에 대한 선호가 크게 높아진다. 반면, 빚을 지지 않고 주택을 산 집 주인들이 드물어 ‘안전한 전세’ 공급은 희소성을 띄게 된다. 전세 공급은 사실 적지 않지만, 실제로 세입자들이 안심하고 임대할 수 있는 수준의 전세 공급이 매우 부족해지는 것이다. 이처럼 전세 중에서도 ‘안전한 전세’를 중심으로 전세 수급이 심각한 불일치를 일으켜 전세가가 급등하게 된다.
<그림1>
주) 국민은행 자료를 바탕으로 선대인경제연구소 작성
일반적으로는 이 상태에서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 빚을 많이 진 집주인들의 주택이 시장에서 손 바뀜이 일어나면서 이것이 그 동안 소득을 축적해놓은 세입자들이 주택 소유자로 바뀌면서 전세 수요가 줄거나, 부채가 정리된 채 ‘안전한 전세’의 공급으로 이어지면서 전세가가 하락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 부동산시장 상황처럼 정부가 주택 소유자들을 위해 각종 부동산 세금을 감면하고, 전세자금대출을 늘려 현재의 전세가를 합리화해주는 정책을 계속 실시하면 이 같은 시장의 조정과정이 지연된다. 다주택자들이 올려 받은 전세보증금으로 자신들의 부채 부담을 줄이거나, 보증부 월세 등으로 돌려 얻는 수익으로 부채이자 부담을 상쇄하려 하는 것이다. 주택 가격이 다시 상승할 수 없을 정도로 잠재적 주택 매입 수요가 고갈된 상태여서 주택 가격은 떨어지는데, 이 같은 주택 가격 하락이 지연되다 보니 전세 수요는 몰리고 ‘안전한 전세’공급은 부족한 상태가 장기화되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국내 전세시장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의 전세난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도 정부가 억지로 부동산을 부양하기보다 주택 가격이 국민들의 소득 수준에 맞춰 하향 조정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일정한 충격은 불가피하겠지만, 길게 보면 그것이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렇게 하면 1)전세가의 기준점 역할을 하는 매매가 하락으로 전세가도 동반 하락하며 2) 실제로 전세로서 기능하지 못하는 ‘안전한 전세’가 손바뀜을 통해 대량으로 전세시장에 공급돼 전세가가 하락하고 3) 충분히 주택 가격이 낮아질 경우 소득여력을 축적한 세입자가 매매 수요로 전환함으로써 전세 수요를 줄여서 전세가격 또한 안정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시장의 자연스러운 가격 조정과정을 거스르고 정부가 나서서 부동산 다주택 투기자들과 건설업계, 금융업계의 입장에서 주택시장을 교란하다 보니 애꿎은 무주택서민들만 계속 피해를 보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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