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방선거 투표일이다. 이번 지방선거 역시 중앙 정치 차원의 북풍노풍바람에 묻혀 그 의미가 상당히 퇴색된 느낌이 없지 않다. 특히 현 정부는 자신들의 지지세력 결집을 위해 천안함 조사 결과 발표를 비판한 인사들과 민주노동당에 후원금을 낸 전교조 교사들을 해임하겠다고 밝히는 등 정부 주도의 이벤트를 여러 차례 벌였다. 한마디로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행정력을 노골적으로 동원한 것으로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작태들을 벌였다. 이 정도면 행정부처가 국민을 위한 행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권을 위한 행정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미 정권을 잃고도 환골탈태한 모습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끌어내려 하기보다는 이미 고인이 된 전임 대통령에 기대 지방선거에 임한 민주당의 태도 또한 한심하기 짝이 없다. 유권자에게 새로운 미래를 선택하게 하는 선거에서 이미 선거에서 심판 받은 과거 정권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국민들이 이명박 정부의 거듭된 실정과 시대착오적인 온갖 패악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민주당 지지로 돌아서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 땅의 현실에서 현재의 선거는 최선이 없으면 차선을 고르는 선택이며, 그도 안 된다면 최악을 징벌하기 위해 차악이라도 골라야 하는 고민스러운 선택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같은 선택이 조금이라도 이 땅의 미래를 새롭게 여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처럼 유권자로서는 선뜻 내키지않는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판단 기준을 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필자는 그 판단기준 중 하나가 삽질경제 패러다임극복이라고 생각한다. 알다시피 필자는 세금과 예산, 교육과 보육, 일자리, 경쟁구조, 언론 문제 등 많은 사회경제적 이슈에 관심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은 부동산 문제에 대해 줄기차게 글을 써왔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부동산 문제가 지금 한국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과 규모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이나 현재 미국 등 전세계 대부분 국가들의 부동산 버블 붕괴 사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부동산 문제는 한 나라의 경제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파괴력을 갖고 있다. 또한 부동산 문제는 한국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낡은 패러다임과 기득권 위주의 게임 규칙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문제이다. 현 정부는 사실상 집값을 올려주겠다는 공약으로 집권했고, 이를 철저히 실행에 옮기고 있다. 또한 삽질경제학에 근거한 기득권 중심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정책 대응으로 일반 가계의 고통이 누적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4대강 사업 등 막대한 건설토목 사업에 소중한 자원들을 탕진함으로써 미래세대의 부담 또한 늘리고 있다.

 

한국경제는 지금까지 계속 부동산과 대규모 토건사업에 기반한 경제성장을 지속해왔다. 한국의 대표적 재벌들이 모두 건설업체들을 거느리고 있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건설업은 한국 재벌들의 모태였다. 거기에서 각종 부패와 담합, 사기와 불공정 거래가 만연했다. 각종 부패사건의 절반 이상이 건설사업을 매개로 일어났다. 재벌기업들의 비자금과 정치권 검은 돈의 젖줄이었다. 또한 민간 부문에서는 고분양가로 일반 가계들의 주름살을 늘리고, 공공 부문에서는 뇌물 거래와 음성적 로비 공세에 따라 잔뜩 부풀려진 공사 발주로 예산을 탕진하는 주범이었다. 정치인들은 개발공약을 내세우고 유권자들은 개발공약이 집값을 올려줄 것이라는 환상에 젖어 개발붐에 편승한다. 또한 부동산 광고를 매개로 한국 언론의 왜곡보도가 가장 만연한 영역이기도 하다.

 

이처럼 부동산과 토건사업을 중심으로 한 삽질경제는 한국의 산업구조가 그동안 노동집약 → 자본집약 → 기술집약적 산업구조로 이행하는 동안 줄기차게 지속돼온 패러다임이다. 정권의 좌우에 상관없이 일관되게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패러다임이었다. 또한 일반 서민들의 부동산 재테크에서부터 최고위 경제관료들의 경제 정책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와 경제를 좌우해온 패러다임이었다. 이렇게 해서 삽질경제는 한국의 사회경제 구석구석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하면서도 끈질긴 패러다임이 되었다. 이 같은 삽질경제 패러다임은 이것을 극복해야 할 시점에 가장 극적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바로 현대건설 사장 출신의 대통령을 수반으로 한 ‘건설족 정부’에 의해서 말이다.

 

물론 사회 인프라를 구축하고, 자본의 규모를 키우며 삶의 질을 일정하게 높이는 등 삽질경제의 긍정적 효과 또한 적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 삽질경제는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 한국경제가 여전히 개발연대의 삽질경제에 묶여 있는 가운데 발생하는 폐해가 너무나 크다.

 

삽질경제를 폐기해야 할 시점에 부동산 버블에 편승해 더욱 기승을 부린 삽질경제는 자산양극화와 국토의 황폐화, 민간 부담 증가와 국가 자원 낭비를 낳는 주범이다. 지식정보화 창의경제시대로 도약해야 할 한국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최대 걸림돌이다. 부패와 반칙, 사기, 불공정 거래로 상징되는 삽질경제로는 한국경제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콘크리트에 투자하는 삽질경제가 아니라 인적 자원에 투자하는 경제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이명박 정부는 이 같은 전환을 준비하기는커녕 오히려 시대착오적인 삽질경제학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삽질경제로 한국경제가 계속 발전할 수 있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는 사이 수면 아래에서 한국경제는 점점 무너져 내리고 있다. 서민중산층과 20~40대 젊은 세대의 피해 또한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것이 필자가 줄기차게 부동산 문제를 중심으로 글을 쓰는 이유이다. 삽질경제 패러다임을 극복하지 않으면 한국경제에 앞날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필자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 동안 계속 연재해온 지방재정 분석 시리즈에서 설명한 것처럼 전국 지자체의 재정 상태가 빠르게 악화되고 복지와 문화, 교육 분야의 사회적 투자 요구가 커지고 있는데도 여전히 각 지자체들이 각종 개발사업에 무분별하게 나서며 예산을 탕진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이에 대한 최소한의 문제 의식도 없이 온갖 막가파식 개발공약을 내세운 후보들을 이번 선거에서 보고 있다. 이미  토건국가라 불리던 일본을 훨씬 능가해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건설업 비중을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개발사업을 벌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이미 토건사업 위주의 개발사업에 지나치게 많은 재정이 투입되면서 지식정보화와 첨단기술 개발, 교육 및 사회복지 등 소프트 부문에 대한 투자 여력을 소진시켜 한국의 성장 잠재력이 크게 약화되고 있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필자가 지방재정 분석 시리즈 마지막 편에서 왜 지금 한국이 삽질경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하는지를 설명한 부분을 인용한다.  

 

토건사업과 지식서비스업, 두 가지 산업에만 자원을 배분할 수 있는 경제에서 경제구조 변화에 따라 자원 배분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를 생각해보자. 이를 위해 두 산업에 배분할 수 있는 자원은 100이라고 가정하자. 먼저 토건사업에 75, 지식서비스업에 25를 쓸 때 경제 발전에도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국민경제 전체의 효용, 즉 후생수준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경우가 개발연대 시절의 자원배분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토건사업에 25, 지식서비스업에 75를 쓸 때 경제 발전에도 가장 효과적이면서 국민들의 후생 수준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경우가 현대의 첨단지식정보화시대의 자원배분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경제는 후자와 같은 자원 배분을 해야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개발연대 시절의 관성이 강하게 남아 각종 토건사업에 여전히 60, 지식서비스업에 40 정도의 자원이 배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개발연대 시절에 비해서는 25에서 40으로 지식서비스업에 자원이 좀더 배분되고는 있으나 자원의 최적배분 면에서 볼 때 여전히 토건사업에는 과도하게, 지식서비스업에는 과소하게 자원이 배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의 자원 배분은 국민경제의 잠재력을 극대화하지 못하게 하고 비효율적으로 자원을 탕진하는 한편 결과적으로 국민경제 전체의 후생 수준도 시간이 갈수록 떨어뜨린다.”

 

이처럼 삽질경제의 결과가 너무나 뻔한데도 개발연대 시절의 자원배분 방식이 강력히 남아 있는 것은 개발연대 시절의 정부주도 정책 및 제도 등의 틀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시대가 변하고 경제상황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 및 제도의 틀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은 사람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책 및 제도를 결정하는 사람들은 크게 정부 관료들과 선출직 공직자들이다. 정부 관료들은 국민이 직접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선출직 공직자들은 얼마든지 국민이 바꿀 수 있다.

 

오늘 투표장에 가실 분들은 한 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삽질경제, 토건경제가 한국 경제의 미래를 열 패러다임인지 지식창의 경제가 새로운 미래패러다임이 돼야 하는지 말이다. 개발연대의 낡고 칙칙한 개발 공약을 남발하면서도 우리 아이들의 교육과 우리 부모들의 노후와 우리 세대의 삶의 질을 이야기하지 않는 후보는 우리의 미래가 아니다. 여기에는 말로는 지식창의경제를 외치면서도 실제로 예산은 각종 토건개발사업에 퍼붓는 겉포장 후보도 포함된다. 말보다 행동이 그 사람의 본질을 훨씬 더 정확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들은 역사의 뒷무대로 퇴장해야 하는 낡은 세력이며 이 땅의 미래를 후퇴시키는 사람들이다. 각종 개발 공약으로 부동산 거품을 더욱 띄우겠다는 후보야말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가장 철저히 짓밟고 가뜩이나 부족한 우리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가장 확실히 없애는 후보다. 가장 반서민적인 후보다. 오늘 투표에 임하는 분들은 여야를 떠나 삽질경제 패러다임을 끝내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후보가 누군인가를 심사숙고해줄 것을 진심으로 바란다.

 

 

 

트위터를 하시는 분들은 http://twitter.com/kennedian3로 저를 팔로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트위터를 지난해 하반기부터 개설했지만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주부터입니다. 향후 제가 아고라와 제 블로그(다음뷰), 오마이뉴스, 네이버 부동산, 한겨레신문 등에 연재하는 글뿐만 아니라 각종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합해서 매일 소개할 생각입니다. 참고바랍니다.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10. 6. 2. 07:57

 

 

 

 6월 2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북풍'과 '노풍'이라는 중앙정치 차원의 세몰이로 지자체의 재원 사용에 관한 협치구조를 만드는 지방선거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지방재정 상태의 문제점을 진단해보는 시리즈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마지막인 다섯번째 순서입니다. 참고로, 앞선 글들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북풍? 노풍? 문제는 지방재정이야, 이 바보들아!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1004652

 

급전직하하는 지방 재정자립도, 당신의 삶이 흔들린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1006644&RIGHT_DEBATE=R3

 

서울시 예산 21조, 어떻게 쓰이는지 아는가?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25&articleId=254638&RIGHT_DEBATE=R10

 

삽질 남발에 공기업 부채도 급증, 2012년이 위험하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25&articleId=255259

 

 

 

전국 지자체의 재정 상태가 빠르게 악화되고 복지와 문화, 교육 분야의 사회적 투자 요구가 커지고 있는데도 여전히 각 지자체들이 각종 개발사업에 무분별하게 나서며 예산을 탕진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지자체의 정책 틀이 과거 3,40년 전의 개발연대에 비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개발연대에는 도로, 항만, 공항, 철도 등 각종 기반시설 등 사회간접자본(SOC)이 턱없이 부족한 시절이었다. 따라서 이 같은 SOC를 확충하는 것이 경제 발전을 위해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였다. SOC 확충 등을 전제로 한 대규모 토건사업들은 전후방 연계효과를 통해 그 자체로 경제 성장에 큰 기여를 해왔음은 물론이다. 대규모 토건사업들은 즉각적인 경기부양 효과를 가져왔고,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이 가시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생활상의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또한 SOC 확충은 교통편의 확대 등 삶의 질을 단기간에 끌어올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지금도 개발연대의 급속한 경제성장을 경험한 세대에게는 개발사업=경제발전=삶의 질 향상이라는 등식이 뿌리 깊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각종 SOC가 확충돼 공항과 도로, 항만 등 대부분의 시설이 이미 충분히 갖춰졌거나 과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개발사업이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효과는 크게 줄어들고 있다. 또한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중후장대형의 시설투자를 중심으로 하는 자본집약적 산업구조에서 첨단기술과 고부가가치 지식서비스 위주의 산업구조로 빠르게 전환하면서 개발연대식의 토건사업의 경제적 효과는 크게 감소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은 과거 토건국가라 불리던 일본을 훨씬 능가해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건설업 비중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중앙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지자체 역시 개발연대 시절의 토건사업 위주로 정책에 막대한 재정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토건사업 위주의 개발사업에 지나치게 많은 재정이 투입되면서 지식정보화와 첨단기술 개발, 교육 및 사회복지 등 소프트 부문에 대한 투자 여력을 소진시켜 한국의 성장 잠재력이 크게 약화되고 있다.

 

이를 간단히 설명하기 위해 토건사업과 지식서비스업, 두 가지 산업에만 자원을 배분할 수 있는 경제에서 경제구조 변화에 따라 자원 배분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를 생각해보자. 이를 위해 두 산업에 배분할 수 있는 자원은 100이라고 가정하자. 먼저 토건사업에 75, 지식서비스업에 25를 쓸 때 경제 발전에도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국민경제 전체의 효용, 즉 후생수준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경우가 개발연대 시절의 자원배분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토건사업에 25, 지식서비스업에 75를 쓸 때 경제 발전에도 가장 효과적이면서 국민들의 후생 수준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경우가 현대의 첨단지식정보화시대의 자원배분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경제는 후자와 같은 자원 배분을 해야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개발연대 시절의 관성이 강하게 남아 각종 토건사업에 여전히 60, 지식서비스업에 40 정도의 자원이 배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개발연대 시절에 비해서는 25에서 40으로 지식서비스업에 자원이 좀더 배분되고는 있으나 자원의 최적배분 면에서 볼 때 여전히 토건사업에는 과도하게, 지식서비스업에는 과소하게 자원이 배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의 자원 배분은 국민경제의 잠재력을 극대화하지 못하게 하고 비효율적으로 자원을 탕진하는 한편 결과적으로 국민경제 전체의 후생 수준도 시간이 갈수록 떨어뜨린다.

 

이처럼 개발연대 시절의 자원배분 방식이 강력히 남아 있는 것은 개발연대 시절의 정부주도 정책 및 제도 등의 틀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시대가 변하고 경제상황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 및 제도의 틀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은 사람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료적 틀은 여전히 개발연대 시절의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개발연대 초기 정부산하 공기업들과 재벌기업들을 중심으로 차관 등 제한된 자본을 배정해 특정 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개발사업들을 추진하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 관료들과 산하 공기업은 한 덩어리로 움직이게 됐고, 재벌기업 등 업계와도 강력한 유착 아래 정책과 제도가 결정돼 추진됐다.

 

더욱이 외환위기 이후 무분별하게 이른바 민간 방식을 효율성이라는 명분하에 공적 부문에 무리하게 도입하다 보니 정부와 민간의 역할이 명확히 정립되기는커녕 오히려 뒤죽박죽이 돼버렸다. 심지어는 민간이 주요 정책결정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각종 정부 태스크포스 조직을 보면 사실상 민간기업 직원들이 정부 조직에 파견돼 규제 완화의 구체적 내용을 입안하고 결정하고 있다. 또한 민간기업의 기법을 파악한다는 취지로 아예 정부 관료들이 민간기업에 2~3년간 파견돼 해당기업 직원으로 고액의 연봉을 받고 형식적으로 일하는 제도를 버젓이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제도는 관료적 행정을 바꾸는데 기여하기보다는 사실상 정부와 민간이 유착하거나 민간이 대정부 로비 창구를 제도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공공과 민간의 역할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고 민간과의 유착이 당연시돼버리다 보니 정치 민주화가 진전됐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정책결정 과정에서 일반 소비자 내지는 국민들의 의사보다는 이해관계를 가진 업계의 업자들이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업자들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는 중앙정부는 물론 각 지자체 관료들의 전문성과 도덕성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인재들을 폭넓게 공직에 채용하는 선진 각국과 달리 시대착오적인 고시제도나 획일적인 공무원 임용시험의 틀 속에서 채용된 공무원들이 해당 분야 민간기업의 전문성을 쫓아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주요 사업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민간기업에 구체적인 방안을 의존하는 경우가 일상화되어 왔다. 특히 지자체의 특성상 각종 도시계획과 관련한 사업들이 많은데, 지자체들은 각종 도시계획상의 세부 개발계획을 짜거나 세부 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도 이해관계를 가진 업체들에게 용역을 주거나 아예 실시방안까지 짜오도록 해서 정책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서울시가 역점을 두어 추진하는 디자인서울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남산르네상스 사업의 경우도 특정 건축사무소가 마련한 마스터플랜을 기본 컨셉으로 해서 추진하고 있다. 수많은 서울시민들이 이용하는 공간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시민들의 여론이나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심층적으로 반영해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은 거의 없다. 설사 공청회 등을 연다고 해도 이미 마련한 정책안을 추진하기 위한 요식절차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것들을 서울시장은 남산르네상스한강르네상스니 하는 식으로 포장해서 어느 날 갑자기 대외적으로 발표한다.

 

일반적으로 제대로 된 정책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정책 기획(plan)-집행(do)-평가(see)의 과정을 거쳐 체계적으로 진행돼야 하며 한 사업이 끝나면 다시 피드백을 거쳐 차후의 정책 품질을 높일 수 있도록 진행돼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정책기획 단계에서 정책 목표를 명확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수립하고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정책 수단들을 강구해야 한다. 또한 정책 집행단계에서는 필요한 정책 수단들과 자원을 투입(input)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과정(process)을 거쳐 정책 목표에 걸맞은 바람직한 결과(outcome)를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시민들의 문화 향유 기회 확대와 같은 결과는 상당히 추상적일 수 있기 때문에 이 같은 결과를 구체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지표인 산출물(output), 예를 들면 시민들의 공연관람 회수의 증가나 공공도서관 대출 횟수 증가 등을 내세우기도 한다. 이 같은 집행 과정이 끝나면 최종 산출물이나 정책 결과를 당초의 정책 목표와 비교해 엄밀하게 사후 평가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미 상당수 국가에서는 이처럼 결과 지향적인(outcome-oriented) 행정체계를 통해 정부시스템 개혁을 이룬 나라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중앙정부뿐만 지자체들 대부분이 정책목표에 상응하는 바람직한 산출물이 나오는 지와는 관계없이 과거 개발연대 방식의 콘크리트 토건 사업 및 시설 확충에만 치중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글에서 거론한 바 있는 한강 예술섬과 같은 사업은 일견 정책사업을 한다는 모양새를 낼 수 있고 대중이나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쉽기 때문에 해당 관료는 일 잘하는 것으로 평가 받기 쉽다. 그래서 전시행정의 콘크리트 토건사업들이 남발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한강 예술섬이 건립된 뒤 공연문화를 활성화하고 일반인들의 문화예술적 수준을 끌어올리고 풍부하게 하는 일에는 예산이 충분히 배정되지 않고 뒷전으로 밀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책에 대한 사후평가 기능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한강 예술섬이 운영 면에서 만성적자에 빠지거나 당초의 정책목표 달성과는 거리가 멀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업을 벌인 선임자가 그 자리를 떠나 버리면 그만이며 후임자가 뒤치닥거리를 하는 경우도 많다. 결국 한강 예술섬과 같은 사업은 당초 설정한 목표의 달성에 관계없이 채 토건사업으로 끝나버리거나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같은 예산을 들여 공연예술가들의 예술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시민들이 좀더 저렴한 가격에 이들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훨씬 직접적으로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설건립 사업으로 끝나버릴 공산이 상당한 것이다. 

 

앞에서 본 것처럼 각 지자체의 예산사업 내역을 보면 사업이름만으로는 일견 소프트웨어사업 예산이 크게 증가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속 내용을 뜯어보면 여전히 하드웨어 위주의 사업이 과도하게 편성되고 있다. 이처럼 정책의 기획-집행-평가 체계를 제대로 확립하지 않고 전시행정 위주로 추진하다 보니 서울시의 디자인 서울 사업처럼 취지가 좋고 필요한 사업조차도 도시의 품격을 올리고 시민들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기보다는 그저 업자를 위한 토건사업들로 바뀌어 버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 같은 예산 낭비는 개발연대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관료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지자체장의 정치적 전시행정 수요와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자체장은 자신의 임기 내에 주민들 눈에 띠는 가시적 사업을 추진해 재선 등에 활용하려는 정치적 욕구가 작용한다. 지자체 관료들 역시 실적을 눈으로 보여줄 수 있는 시설물 건립사업을 선호한다. 뿐만 아니라 각종 개발사업에 강한 이해관계를 가진 지역 토호들이 지자체장이 되거나 지방의회 등을 장악하면서 이권을 추구하고 음성적으로 뇌물을 수수하는 것도 이들 하드웨어 위주의 사업예산이 낭비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각 지자체가 앞다투어 호화청사를 짓거나 비슷비슷한 온갖 첨단사업 명칭을 내건 산업단지 조성계획을 내걸고 각종 스포츠대회 및 경주대회를 개최한다면서 대형 운동장이나 컨벤션센터 등을 만들지만 정작 시민들의 삶과는 대부분 무관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자체장의 정치적 이해와 관료들의 개발연대 사업방식이 일치해 벌어진 대표적 사업으로 영어마을사업을 들 수 있다. 몇 년 전 당시 학규 경기도지사의 정치적 욕구에 따라 시작된 영어마을사업은 초기에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에 각 광역지자체들이 앞다투어 비슷한 사업을 펼쳤다. 영어마을사업은 당초 국내에서 외국과 비슷한 환경에서 초중학생들이 영어를 배울 수 있도록 해 조기유학에 따른 외화낭비를 막는다는 것이 사업 목표였다. 이를 위해 대규모 영어마을을 건설하느라고 한 곳당 수백 억원씩 예산을 투입했고 전국적으로는 수천억원의 예산을 쓴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적지 않은 수업료 부담과 실력 있는 강사 확보 실패로 당초 목표했던 학생들의 영어 수준 향상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적자투성이로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렸다. 차라리 같은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각 지자체의 학교에 원어민 강사를 두 배로 늘리거나 상대적으로 영어를 습득할 기회가 적은 저소득층 학생들을 중심으로 수업료를 경감해주는 쿠폰으로 지급했다면 더 적은 예산으로 더 좋은 성과를 올렸을 지도 모른다. 전국 곳곳에서 영어마을이라는 시설이 생겨나 해당 지자체장이나 관료들이 당장은 전시행정의 성과를 남긴 것처럼 보였지만 정작 궁극적인 정책 대상인 학생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으며 적자운영으로 애물단지가 된 것이다.

 

이것은 그나마 나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는 지식서비스산업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개발연대 방식으로 추진된 사업들은 오히려 당초 정책 목표에 역행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서울시가 지난해 첫 정책 방향을 발표한 데 이어 올초 마포구 서교동과 동교동 등 홍익대 일대를 포함한 74개발진흥지구(산업뉴타운)으로 지정한 것이다. 서울시는 이들 지역에 대해 각 지역산업 특성에 맞는 업종을 집중 육성하고 입주업체에는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마포구는 이에 발맞춰 올해 735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마포DCF (Design Core Facilities)를 건립하는 한편 1,00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상업시설, 지원시설 등이 들어서는 기반시설과 주변 지상가로를 정비한다고 발표했다. 예산사업의 대부분이 예술 창작 활동과 같은 직접적인 지원보다는 개발계획 발표와 시설물 조성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서울시와 마포구의 정책은 오히려 홍대 앞에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문화예술 생태계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디자인 거리 등 홍대 일대를 개발하는 각종 정책을 내놓자 이 일대에서 일하는 디자인 및 예술분야 종사자들이 임대료 급등으로 현장을 떠나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홍대 앞 예술거리가 시간이 갈수록 대규모 상권으로 변모하면서 값비싼 임대료를 부담하지 못하고 인근의 망원동과 합정동 일대로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이들 지역이 개발계획에 포함되자 또 다시 더 먼 곳으로 떠나고 있는 것이다. 예술가들이 모여 열었던 조그만 갤러리나 공방들이 음식점이나 주점으로 대체되는 것도 전혀 무리가 아니다. 이들 지역의 문화예술 생태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이 일대에서 살고 있는 배 고픈 아티스트들이 안정적으로 예술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창작 활동을 직접 지원하는 일이 가장 시급한데도 서울시와 마포구는 건물을 짓고, 용적률과 건폐율, 높이제한 등 개발규제를 완화해 임대료만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작 홍대 앞 예술가들은 서울시의 정책을 반대하는 반면 건물주들과 부동산 업계만 이를 반기고 있다.

 

서울시가 문화시정창조경제를 내세우지만 사실은 문화와 창조성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 창조적 계급의 부상(The Rise of Creative Class)으로 경제지리학 분야에서 큰 주목을 받은 리처드 플로리다 토론토대 경영대학 교수는 경제발전의 3T라고 불리는 기술(technology)과 함께 재능을 가진 인재(talent)와 관용(tolenrence)을 강조했다. 그는 지역의 경제적 발전은 다양하고 관대하고 새로운 아이디어에 개방적인 지역을 선호하는 창조적인 사람들에 의해 촉진된다사람들의 지역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같은 창조경제의 진면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도시개발 정책이 오히려 중장기적으로 도시의 발전을 저해한 사례로 미국 피츠버그시를 예로 들었다. 피츠버그시는 카네기멜론대를 바탕으로 뛰어난 인재들이 배출되고 1980년대 이전에 미국의 철강산업, 알루미늄산업, 전기산업이 매우 활발했던 도시였다. 특히 워싱턴하우스, 유에스스틸, 알코아 등 대기업들의 R&D센터가 자리잡아 한때 세계적인 산업혁신의 중심지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피츠버그는 철강산업 등의 쇠퇴와 함께 빠르게 몰락했다. 플로리다 교수는 피츠버그 시의 쇠퇴 원인 가운데 하나로 과도한 재개발을 꼽았다. 피츠버그시 당국이 공동체 문화가 살아 있던 지역을 낙후된 지역으로 지정해 대규모 재개발을 실시해 도로가 많은 교통 순환선으로 둘러싸인 밋밋한 쇼핑몰 스타일의 단지로 대체했고, 결국 그 지역의 거대한 창조적 공동체는 뚜렷한 소규모 집단주거지로 쪼개지고 분열되었다고 설명했다. 피츠버그시는 1990년대 말에 2개의 새로운 스포츠 경기장과 컨벤션센터 건립을 위해 10억 달러를 지출했는데 그는 이를 두고 그 지역의 진정한 건축물을 교외의 쇼핑몰에서 찾을 수 있는 일반상표로 대체함으로써 파괴하고 태우는 재개발 전략을 계속 장려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서울시가 홍대 앞의 문화 생태계에 대해서도 사실상 이와 똑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창조성의 인적, 문화적 토대를 활성화하기보다는 물리적인 인프라 구축에 더욱 열을 올리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문화공동체마저 파괴하며 흩뜨리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뿐만 아니라 이 같은 양태는 전국적으로 거의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앞에서 본 것처럼 지자체의 재정상황이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고, 중앙정부의 감세정책과 무리한 토건부양책이 지자체 재정악화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지자체의 재정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서 정부의 무분별한 감세정책을 바로잡고 대규모 불요불급한 토건사업 남발을 줄이는 등 세입세출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 같은 세입세출 구조조정은 현재의 행정시스템 변화와 함께 병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처럼 업자들을 끼고 정책을 결정하는 구조가 아니라 보다 폭넓게 시민들의 여론과 사심 없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되는 구조가 형성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예산편성 과정에서부터 시민들의 정책 수요를 반영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며, 시민들이 예산의 상당 부분을 직접 요구하고 편성할 수 있는 참여예산제를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적절한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 공무원들을 평가할 수 있도록 주요 정책에 대해서는 정책실명제를 도입해 정착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경제구조와 시대 상황에 걸맞은 방식으로 공무원 채용 방식과 성과 평가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고시나 공무원 시험 등을 통해 전문성이 없이 일률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채용하기보다는 서구의 공무원 채용 방식처럼 각계 분야에서 전문성과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 폭넓게 채용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또 투입이 아닌 결과 지향적인 방식으로 사후 평가를 철저히 하고 이를 인사고과에 반영할 수 있도록 조직과 인사 체계를 바꿔야 한다.

 

물론 관료 시스템의 변화 못지 않게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 구조를 바꾸거나 일반 시민들이 단순한 개발 욕구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제기하고 해결을 요구할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각 지자체들이 앞다투어 각종 명분을 내세워 콘크리트 정책 사업을 남발할 뿐이며 결국에는 시민들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지 못한 채 소중한 재원들만 낭비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뿐이다.

 

 

 

트위터를 하시는 분들은 http://twitter.com/kennedian3로 저를 팔로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트위터를 지난해 하반기부터 개설했지만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주부터입니다. 향후 제가 아고라와 제 블로그(다음뷰), 오마이뉴스, 네이버 부동산, 한겨레신문 등에 연재하는 글뿐만 아니라 각종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합해서 매일 소개할 생각입니다. 참고바랍니다.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by 선대인 2010. 6. 1. 06:21

  

안녕하세요. 선대인 부소장입니다. 어제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방영한 ‘버블 붕괴의 시작인가’편을 잘 보았습니다. 사실 본방송은 보지 못하고 MBC 동영상을 통해 보았습니다. 일주일 전쯤 이번 방송분을 담당한 신기원 기자님께서 인터뷰를 요청하셨기에 일부러 챙겨 보았습니다.


우선 짧은 시간에 많은 내용을 취재했다는 느낌은 들지만 역시나 우려했던 대로 피상적 보도에 그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최근의 미분양 사태 및 미입주사태에 대해서 짚고 이 과정에서 무리하게 빚을 내 투자했던 가계들의 실태를 보여줌으로써 일정하게 많은 시청자들의 경각심을 높였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상당수 신문 보도들처럼 부동산 광고에 눈이 어두워 선동보도를 한 것은 아님이 확실합니다.


하지만 어제 방송 내용을 보고 역시 신기자님이 인터뷰 요청을 해왔을 때 거절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처음 인터뷰 요청을 하셨을 때부터 서로 대척점에 놓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맞세워서 흥미 위주의 보도를 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러면서 기자는 이런 주장, 이런 주장을 함께 소개했으니 판단은 시청자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현재 부동산 시장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으면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것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차라리 부동산 시장의 구조적 흐름만 제대로 보여주라고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역시나 예상과 다르지 않게 끝에 가서 두 사람의 전문가를 맞세우는 식으로 구성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현재 부동산 문제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내용을 상당 부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향후 좀 더 프로그램의 질을 높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쁜 와중에도 이 공개편지를 쓰게 된 것입니다.


몇 가지만 간단히 코멘트 해보겠습니다.


먼저, 아무리 어떤 주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사리에 맞지 않으면 언론은 그런 엉터리 주장을 걸러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언론이 수행해야 하는 합당한 사회적 필터링 기능입니다. 그런데 어제 방송에서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한양대 모 교수님께서 주장한 대로 부동산 버블 붕괴론과 같은 주장이 나왔다고 해서 심리적으로 위축돼 집값이 떨어졌다는 게 가능한가요? 해당 교수가 이야기한 버블론이 나온 3월 이후 실거래가가 떨어졌다는 것은 오비이락일 뿐, 그것이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버블 붕괴론 주장의 영향이 있었다면 이미 부동산시장의 체력이 바닥나있기에 그런 것입니다. 만약, 2005년, 2006년과 같은 부동산 급등기에 그런 경고가 나왔다고 해서 부동산 시장이 이렇게 급격히 무너질 수 있을 것 같은가요?


그리고 기자님이 직접 취재한 현장에서 볼 수 있듯이 빚을 지고 연체이자까지 물어가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입주하게 되는 사태가 당장 몇 달 사이에 나타난 현상이었나요? 이미 부동산 시장은 2007년 이후부터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그런 부동산 버블에 대한 경고가 없어서 올랐나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2007년 이후에도 집값이 오른다는 주장이 훨씬 많았는데, 왜 가라앉고 있나요? 지금도 이른바 대다수의 부동산 재테크 전문가(라고 쓰고 부동산 투기 선동가라고 읽습니다)라는 사람들은 지금의 하락이 일시적이며 올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에는 집값이 오른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집값이 버블이어서 내린다는 주장보다 양적으로는 훨씬 더 많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지금이 집을 살 적기인데, 왜 일반 가계는 집을 살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또 우리 연구소를 비롯해서 그런 일부 연구기관의 발표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동산 부양책을 쓰고 있는 ‘강부자 정권’의 정책보다 더 강력하다는 말인가요? 그런 민간 연구기관들의 발표가 심리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면, 그것은 그런 발표들을 설득력 있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부동산시장의 엄혹한 현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이 몸통이요, 심리는 꼬리일 뿐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조금만 생각해 보면 한양대 모 교수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입니다.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언론이 걸러주지 않으면 엉터리 주장이 계속 난무해 사람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DTI규제를 선별적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어제 방송 내용에서 주장했습니다. DTI규제는 가계소득을 넘어서서 각 가계에 무리하게 대출해 폭리를 취하는 금융기관들의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 관행을 막기 위한 금융소비자 보호 조치입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론 사태도 결국은 금융자유화 흐름 속에서 미국 금융기관들이 저소득층에게 무리하게 약탈적 대출을 일삼았기 때문에 비롯된 것입니다. 국내의 경우에도 금융기관의 부실을 막기 위한 LTV 규제에 비해 DTI규제는 너무 늦게 도입됐습니다. 그만큼 정부가 부동산 붐을 지속하면서도 금융기관은 일정하게 보호막을 치면서도 일반 가계에 대한 보호막은 매우 늦게 도입한 것입니다. 이마저도 2008년말 이후 풀었던 바람에 또 다시 지난해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뛰어든 가계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렇게 해서 지난 한 해에만 가계부채 45조원이 늘어났습니다. '부동산 연착륙'을 명목으로 내세웠지만, 결국 가계부채 45조원이라는 부동산 거품의 에너지만 키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또 다시 선별적이기는 하지만 DTI규제를 완화하라고요. 지금 가계 부채가 800조원까지 늘어났는데, 또 다시 건설업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가계 부채를 더 늘려야 한다는 겁니까? 지금 한국경제 위기의 핵심은 가계부채 위기이지 건설업계의 위기가 아닙니다. 건설업계는 주택시장이 침체에 빠져 있는데도 정부의 막대한 부양책에 힘입어 지난해 경우 부도업체수가 사상 최저를 기록했고, 평균 수주액은 사상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지금 사상 최저금리에 주택담보대출 만기 상환 연장에, 각종 미분양 해소책에 종부세, 양도세, 상속세 등 부동산 세금 감면 혜택에다가 이미 더 이상 건물이 들어설 수 없는 수준인 서울에 각종 재건축 용적률 완화, 연간 30조원의 건설공공사업 추가  등등 어디까지 풀어주고 떠받쳐 줘야 건설업계가 살아난다는 말입니까? 지금은 규제를 더 풀어 건설업계를 부양해줘야 하는 시점이 아니라 너무 부풀어 오른 집값 거품을 빼나가야 하는 시기입니다. 건설업계의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할 시점이며 가계 부채 다이어트를 유도할 시기이지 부채를 더 늘려야 할 시기가 아닙니다. 더구나 부동산 거품은 DTI규제를 푼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셋째로, 주택 가격은 안정시키면서 거래는 활성화해야 한다고요. ‘가격 안정’을 ‘가격 하향 안정화’로 받아들여서 그 부분은 따로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주택 거래가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심리적인 것 때문에 그럴까요? 아닙니다. 지금 거래가 없는 것은 집값이 일반 가계의 소득 수준 대비 너무 높아 더 이상 집을 살 수 있는 여력이 거의 고갈됐기 때문입니다. 도요타 렉서스 자동차가 5000만원 하던 것이 1억원으로 뛰어버리면 수요가 확 줄어들고 공급은 늘어나듯이 지금의 주택시장도 그런 상황인 것입니다. 지금 국내 주택시장에서는 빚을 내서라도 지금의 높은 집값을 떠받쳐줄 수 있는 수요가 거의 고갈됐습니다. 마지막 남아 있던 잠재 수요마저도 지난해 부동산 거품을 띄우면서 거의 다 소진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세계 어느 나라나 부동산 버블의 정점기나 버블 붕괴의 초기에는 이렇게 집값은 높이 유지되는 반면 거래는 확 줄어드는 부동산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일어납니다. 이처럼 주택 수요자가 고갈돼 있는데도 정부 부양책과 신문들의 선동책으로 잠재적 매도자들은 매도가 조정에 인색합니다. 여전히 실거래가 하락을 부인하고 부동산 정보업체들의 호가 위주 시세에 세뇌돼 있습니다. 또한 직간접적으로 수백조원의 부동산 및 건설 경기 부양책을 써서 살려준 건설업체들도 계속 과거처럼 투기심리를 불러일으켜 수요를 메울 수 있는 착각에 사로잡혀 여전히 고분양가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이런 높은 가격에서 더 이상 집을 사줄 수 있는 수요는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입니다.


지금 거래가 활성화되지 않는 것은 이처럼 정부와 언론 등이 나서서 자산시장의 가격 조절 메커니즘을 교란시켜 잠재적 매도자와 매수자의 기대가격 간에 매우 큰 괴리가 생겨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부동산 버블 붕괴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가격이 더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나마 남아 있는 수요도 주택시장에 뛰어들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지금 단계에서는 가계 부채를 더 늘리고 국민 세금으로 건설업계를 더 도와주는 식의 임시 미봉책으로 주택 거래는 활성화되지 않습니다. 단적으로 정부가 4.23미분양 해소 대책을 내놓았지만 전혀 거래가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오히려 일정한 수준까지 자산시장의 가격 조절 메커니즘에 맡겨서 지금 남아 있는 수요자들이 반응할 수 있을 때까지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거래를 가장 빨리 활성화하는 방법입니다. 자산시장의 가격 조절 메커니즘을 교란할수록 시장의 침체는 길어질 뿐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한국경제가 파탄나는 상황은 막아야 하겠지만, 세계 어느 나라가 금융권도 아닌 건설업체를 먹여 살리기 위해 온갖 재정력과 행정력을 거품이 붕괴하기도 전에 다 써버리는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도 잔뜩 부풀어 오른 부동산 거품 때문에 신기자님 또래나 후배 학번들이 변변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집값이 너무 올라 결혼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새로운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미래의 사회 구성원이 태어나지 않는 나라가 무슨 미래를 기약할 수 있습니까? 부동산 거품이 결코 안고 갈 수 없는 ‘악성 종양’이라는 인식만 명확해도 어제 방송 내용과 같은 안이한 보도는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밖에도 언급하고 싶은 것은 몇 가지 더 있지만, 제가 다른 일로 바쁘기 때문에 이 정도에서 멈추겠습니다.


제가 기자님과의 통화에서도 말씀드린 바 있지만, 기자의 전문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신기자님이 과거에 리포트한 내용들을 보니 상당히 좋은 보도도 많이 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자님의 의도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주어진 여건 속에서 단기간 내에 취재하다 보니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웠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섣불리 결론을 내리려 하기보다는 현재 부동산 시장의 구조적 흐름만 잘 보여주면 시청자들이 얼마든지 판단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이처럼 기자가 해당 사안에 대해 전문성을 갖추지 못하고 겉핥기 보도를 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건설업계를 위해 국민경제를 희생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기자가 그렇게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말입니다. 또한  결과적으로 부동산 광고라는 이해관계에 직접적으로 얽매이지 않은 MBC가 부동산 광고에 목을 맨 언론들에 비해 전혀 차별화되지 않은 보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수록 전문화하는 세상에서 언론사와 기자는 ‘올바른 관점’ 못지않게 그것을 뒷받침하는 전문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 제대로 된 전문성이 없으면 언론의 객관성이나 공정성은 사상누각일 뿐입니다. 제가 전화 통화에서 아무리 갑자기 맡은 아이템이라 마음이 급하더라도 현재 부동산 시장에 대한 학습을 제대로 하고 취재에 임하라고 말씀드렸던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제 방영 내용을 보면 그러지 못한 것 같아 유감입니다.


제가 이렇게 드리는 말씀은 부동산 문제에 대한 사심 없는 전문가로서뿐만 아니라 ‘올바른 언론의 길이 무엇인가’를 앞서 고민했고, 지금도 고민하고 있는 기자 선배로서도 드리는 고언으로 받아들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굳이 이렇게 공개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은 이렇게 냉철한 평가를 받아야 향후 프로그램 제작 과정에서 좀더 충실하고 깊이 있는 접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점 잘 이해하시고 향후 취재활동을 하시는데 참고로 삼기를 바랍니다.


 

 

트위터를 하시는 분들은 http://twitter.com/kennedian3로 저를 팔로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트위터를 지난해 하반기부터 개설했지만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주부터입니다. 향후 제가 아고라와 제 블로그(다음뷰), 오마이뉴스, 네이버 부동산, 한겨레신문 등에 연재하는 글뿐만 아니라 각종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합해서 매일 소개할 생각입니다. 참고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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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0. 5. 31. 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