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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선대인 부소장입니다. 어제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방영한 ‘버블 붕괴의 시작인가’편을 잘 보았습니다. 사실 본방송은 보지 못하고 MBC 동영상을 통해 보았습니다. 일주일 전쯤 이번 방송분을 담당한 신기원 기자님께서 인터뷰를 요청하셨기에 일부러 챙겨 보았습니다.
우선 짧은 시간에 많은 내용을 취재했다는 느낌은 들지만 역시나 우려했던 대로 피상적 보도에 그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최근의 미분양 사태 및 미입주사태에 대해서 짚고 이 과정에서 무리하게 빚을 내 투자했던 가계들의 실태를 보여줌으로써 일정하게 많은 시청자들의 경각심을 높였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상당수 신문 보도들처럼 부동산 광고에 눈이 어두워 선동보도를 한 것은 아님이 확실합니다.
하지만 어제 방송 내용을 보고 역시 신기자님이 인터뷰 요청을 해왔을 때 거절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처음 인터뷰 요청을 하셨을 때부터 서로 대척점에 놓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맞세워서 흥미 위주의 보도를 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러면서 기자는 이런 주장, 이런 주장을 함께 소개했으니 판단은 시청자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현재 부동산 시장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으면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것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차라리 부동산 시장의 구조적 흐름만 제대로 보여주라고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역시나 예상과 다르지 않게 끝에 가서 두 사람의 전문가를 맞세우는 식으로 구성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현재 부동산 문제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내용을 상당 부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향후 좀 더 프로그램의 질을 높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쁜 와중에도 이 공개편지를 쓰게 된 것입니다.
몇 가지만 간단히 코멘트 해보겠습니다.
먼저, 아무리 어떤 주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사리에 맞지 않으면 언론은 그런 엉터리 주장을 걸러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언론이 수행해야 하는 합당한 사회적 필터링 기능입니다. 그런데 어제 방송에서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한양대 모 교수님께서 주장한 대로 부동산 버블 붕괴론과 같은 주장이 나왔다고 해서 심리적으로 위축돼 집값이 떨어졌다는 게 가능한가요? 해당 교수가 이야기한 버블론이 나온 3월 이후 실거래가가 떨어졌다는 것은 오비이락일 뿐, 그것이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버블 붕괴론 주장의 영향이 있었다면 이미 부동산시장의 체력이 바닥나있기에 그런 것입니다. 만약, 2005년, 2006년과 같은 부동산 급등기에 그런 경고가 나왔다고 해서 부동산 시장이 이렇게 급격히 무너질 수 있을 것 같은가요?
그리고 기자님이 직접 취재한 현장에서 볼 수 있듯이 빚을 지고 연체이자까지 물어가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입주하게 되는 사태가 당장 몇 달 사이에 나타난 현상이었나요? 이미 부동산 시장은 2007년 이후부터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그런 부동산 버블에 대한 경고가 없어서 올랐나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2007년 이후에도 집값이 오른다는 주장이 훨씬 많았는데, 왜 가라앉고 있나요? 지금도 이른바 대다수의 부동산 재테크 전문가(라고 쓰고 부동산 투기 선동가라고 읽습니다)라는 사람들은 지금의 하락이 일시적이며 올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에는 집값이 오른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집값이 버블이어서 내린다는 주장보다 양적으로는 훨씬 더 많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지금이 집을 살 적기인데, 왜 일반 가계는 집을 살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또 우리 연구소를 비롯해서 그런 일부 연구기관의 발표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동산 부양책을 쓰고 있는 ‘강부자 정권’의 정책보다 더 강력하다는 말인가요? 그런 민간 연구기관들의 발표가 심리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면, 그것은 그런 발표들을 설득력 있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부동산시장의 엄혹한 현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이 몸통이요, 심리는 꼬리일 뿐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조금만 생각해 보면 한양대 모 교수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입니다.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언론이 걸러주지 않으면 엉터리 주장이 계속 난무해 사람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DTI규제를 선별적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어제 방송 내용에서 주장했습니다. DTI규제는 가계소득을 넘어서서 각 가계에 무리하게 대출해 폭리를 취하는 금융기관들의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 관행을 막기 위한 금융소비자 보호 조치입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론 사태도 결국은 금융자유화 흐름 속에서 미국 금융기관들이 저소득층에게 무리하게 약탈적 대출을 일삼았기 때문에 비롯된 것입니다. 국내의 경우에도 금융기관의 부실을 막기 위한 LTV 규제에 비해 DTI규제는 너무 늦게 도입됐습니다. 그만큼 정부가 부동산 붐을 지속하면서도 금융기관은 일정하게 보호막을 치면서도 일반 가계에 대한 보호막은 매우 늦게 도입한 것입니다. 이마저도 2008년말 이후 풀었던 바람에 또 다시 지난해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뛰어든 가계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렇게 해서 지난 한 해에만 가계부채 45조원이 늘어났습니다. '부동산 연착륙'을 명목으로 내세웠지만, 결국 가계부채 45조원이라는 부동산 거품의 에너지만 키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또 다시 선별적이기는 하지만 DTI규제를 완화하라고요. 지금 가계 부채가 800조원까지 늘어났는데, 또 다시 건설업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가계 부채를 더 늘려야 한다는 겁니까? 지금 한국경제 위기의 핵심은 가계부채 위기이지 건설업계의 위기가 아닙니다. 건설업계는 주택시장이 침체에 빠져 있는데도 정부의 막대한 부양책에 힘입어 지난해 경우 부도업체수가 사상 최저를 기록했고, 평균 수주액은 사상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지금 사상 최저금리에 주택담보대출 만기 상환 연장에, 각종 미분양 해소책에 종부세, 양도세, 상속세 등 부동산 세금 감면 혜택에다가 이미 더 이상 건물이 들어설 수 없는 수준인 서울에 각종 재건축 용적률 완화, 연간 30조원의 건설공공사업 추가 등등 어디까지 풀어주고 떠받쳐 줘야 건설업계가 살아난다는 말입니까? 지금은 규제를 더 풀어 건설업계를 부양해줘야 하는 시점이 아니라 너무 부풀어 오른 집값 거품을 빼나가야 하는 시기입니다. 건설업계의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할 시점이며 가계 부채 다이어트를 유도할 시기이지 부채를 더 늘려야 할 시기가 아닙니다. 더구나 부동산 거품은 DTI규제를 푼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셋째로, 주택 가격은 안정시키면서 거래는 활성화해야 한다고요. ‘가격 안정’을 ‘가격 하향 안정화’로 받아들여서 그 부분은 따로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주택 거래가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심리적인 것 때문에 그럴까요? 아닙니다. 지금 거래가 없는 것은 집값이 일반 가계의 소득 수준 대비 너무 높아 더 이상 집을 살 수 있는 여력이 거의 고갈됐기 때문입니다. 도요타 렉서스 자동차가 5000만원 하던 것이 1억원으로 뛰어버리면 수요가 확 줄어들고 공급은 늘어나듯이 지금의 주택시장도 그런 상황인 것입니다. 지금 국내 주택시장에서는 빚을 내서라도 지금의 높은 집값을 떠받쳐줄 수 있는 수요가 거의 고갈됐습니다. 마지막 남아 있던 잠재 수요마저도 지난해 부동산 거품을 띄우면서 거의 다 소진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세계 어느 나라나 부동산 버블의 정점기나 버블 붕괴의 초기에는 이렇게 집값은 높이 유지되는 반면 거래는 확 줄어드는 부동산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일어납니다. 이처럼 주택 수요자가 고갈돼 있는데도 정부 부양책과 신문들의 선동책으로 잠재적 매도자들은 매도가 조정에 인색합니다. 여전히 실거래가 하락을 부인하고 부동산 정보업체들의 호가 위주 시세에 세뇌돼 있습니다. 또한 직간접적으로 수백조원의 부동산 및 건설 경기 부양책을 써서 살려준 건설업체들도 계속 과거처럼 투기심리를 불러일으켜 수요를 메울 수 있는 착각에 사로잡혀 여전히 고분양가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이런 높은 가격에서 더 이상 집을 사줄 수 있는 수요는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입니다.
지금 거래가 활성화되지 않는 것은 이처럼 정부와 언론 등이 나서서 자산시장의 가격 조절 메커니즘을 교란시켜 잠재적 매도자와 매수자의 기대가격 간에 매우 큰 괴리가 생겨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부동산 버블 붕괴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가격이 더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나마 남아 있는 수요도 주택시장에 뛰어들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지금 단계에서는 가계 부채를 더 늘리고 국민 세금으로 건설업계를 더 도와주는 식의 임시 미봉책으로 주택 거래는 활성화되지 않습니다. 단적으로 정부가 4.23미분양 해소 대책을 내놓았지만 전혀 거래가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오히려 일정한 수준까지 자산시장의 가격 조절 메커니즘에 맡겨서 지금 남아 있는 수요자들이 반응할 수 있을 때까지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거래를 가장 빨리 활성화하는 방법입니다. 자산시장의 가격 조절 메커니즘을 교란할수록 시장의 침체는 길어질 뿐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한국경제가 파탄나는 상황은 막아야 하겠지만, 세계 어느 나라가 금융권도 아닌 건설업체를 먹여 살리기 위해 온갖 재정력과 행정력을 거품이 붕괴하기도 전에 다 써버리는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도 잔뜩 부풀어 오른 부동산 거품 때문에 신기자님 또래나 후배 학번들이 변변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집값이 너무 올라 결혼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새로운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미래의 사회 구성원이 태어나지 않는 나라가 무슨 미래를 기약할 수 있습니까? 부동산 거품이 결코 안고 갈 수 없는 ‘악성 종양’이라는 인식만 명확해도 어제 방송 내용과 같은 안이한 보도는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밖에도 언급하고 싶은 것은 몇 가지 더 있지만, 제가 다른 일로 바쁘기 때문에 이 정도에서 멈추겠습니다.
제가 기자님과의 통화에서도 말씀드린 바 있지만, 기자의 전문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신기자님이 과거에 리포트한 내용들을 보니 상당히 좋은 보도도 많이 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자님의 의도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주어진 여건 속에서 단기간 내에 취재하다 보니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웠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섣불리 결론을 내리려 하기보다는 현재 부동산 시장의 구조적 흐름만 잘 보여주면 시청자들이 얼마든지 판단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이처럼 기자가 해당 사안에 대해 전문성을 갖추지 못하고 겉핥기 보도를 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건설업계를 위해 국민경제를 희생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기자가 그렇게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말입니다. 또한 결과적으로 부동산 광고라는 이해관계에 직접적으로 얽매이지 않은 MBC가 부동산 광고에 목을 맨 언론들에 비해 전혀 차별화되지 않은 보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수록 전문화하는 세상에서 언론사와 기자는 ‘올바른 관점’ 못지않게 그것을 뒷받침하는 전문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 제대로 된 전문성이 없으면 언론의 객관성이나 공정성은 사상누각일 뿐입니다. 제가 전화 통화에서 아무리 갑자기 맡은 아이템이라 마음이 급하더라도 현재 부동산 시장에 대한 학습을 제대로 하고 취재에 임하라고 말씀드렸던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제 방영 내용을 보면 그러지 못한 것 같아 유감입니다.
제가 이렇게 드리는 말씀은 부동산 문제에 대한 사심 없는 전문가로서뿐만 아니라 ‘올바른 언론의 길이 무엇인가’를 앞서 고민했고, 지금도 고민하고 있는 기자 선배로서도 드리는 고언으로 받아들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굳이 이렇게 공개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은 이렇게 냉철한 평가를 받아야 향후 프로그램 제작 과정에서 좀더 충실하고 깊이 있는 접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점 잘 이해하시고 향후 취재활동을 하시는데 참고로 삼기를 바랍니다.
트위터를 하시는 분들은 http://twitter.com/kennedian3로 저를 팔로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트위터를 지난해 하반기부터 개설했지만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주부터입니다. 향후 제가 아고라와 제 블로그(다음뷰), 오마이뉴스, 네이버 부동산, 한겨레신문 등에 연재하는 글뿐만 아니라 각종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합해서 매일 소개할 생각입니다. 참고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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