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보도국 뉴스2팀에서 현직 기자로 일하는 김수진기자가 저희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 의 '언론개혁'란에 최근 MBC파업 사태에 대한 소감을 올렸습니다. 최근 MBC  등 언론파업사태를 잘 보여주고 있어서 좀더 폭넓은 독자들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MBC노조와 YTN노조 등 이 땅에서 공정한 언론을 구현하려는 언론노조 관계자분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안녕하세요. 어린달님입니다.

이번 파업에 대한 저의 생각을 얘기해 보겠습니다.
YTN 기자로서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냥 일반 국민으로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아마 이번 싸움을 '밥그릇 챙기기'라고 보시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그 지적 맞습니다. 솔직히 '밥그릇 챙기기' 맞습니다.

공중파가 민영화 되면, MBC 를 비롯한 방송사에서는 일단 엄청난

구조조정이 일어날겁니다. 당연히 많은 인력이 물갈이되겠지요.

그런 면에서 밥그릇 싸움 맞습니다.

 

  그러나 이 싸움은 MBC나 다른 공중파 입장에서만의 '밥그릇
챙기기'가 아닙니다. 조중동 신문 역시 '밥그릇 챙기기' 차원에서,
생존경쟁 차원에서 이 싸움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하루이틀된 얘기가

아닙니다만은, 신문은 점점 그 입지가 좁아지고 있습니다. 방송은 물론

인터넷 포털과 블로그 등등 신 매체에 밀려서 영향력이 점차 축소되고 있습니다.

최근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조중동 가운데 한 신문사는 언론계에서

공공연히 부도설이 나돌고 있을 정도입니다. 신문사 어차피 점차 구독률

떨어져가는 신문 팔아봐야 남는 것 없다고 합니다. 광고수익이 대부분입니다.

안정된 수익기반을 확보하기 위해서 방송을 가지고 올 수 있다면, 그것도

기본적으로 광고 단가가 높게 책정되어 있는 지상파를 소유할 수 있다면

신문으로서는 미래를 보장받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조중동 역시
언론법 통과를 목숨 걸고 바라고 있는 겁니다. MBC 파업을 '밥그릇 싸움'
이라며 비난하고 있지만 사실은 자신들도 속내는 똑같습니다. 남을 비난할
자격이 못됩니다.
 
  '밥그릇 지키기'대 '밥그릇 빼앗기' 싸움입니다. 사실입니다.
그래, 서로 똑같이 '자사 이기주의'에서 출발한다는 데에서
원점으로 돌아간다고 칩시다.

 

   문제는 이번에 한나라당에 통과시키려 하는 법안의 내용은
'신문과 방송 겸영' 뿐만 아니라 '대기업의 지분 소유'를 허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차피 신문사들 돈 별로 없습니다. 당근 대기업과의

컨소시엄을 통해 지상파를 소유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현재 주로

정부 소유의 지분이 대부분인 지상파 방송의 주인이 신문+대기업 자본으로

바뀌거나 아니면 이 신문+대기업 자본은 아예 보도를 포함한 종합 편성채널을

지상파에 새로 만들 것입니다. 언론법 개정안이 단순히 신방 겸영만 허용하는

내용으로만은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재벌의 자본이 없으면 현실화가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솔직히 기자들이 취재하면서 가장 힘든 때 중 하나가 기업 비판하는
보도를 할 때일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자본이 정부 권력보다 더 무섭습니다.
기업은 아예 광고 빼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도
방송 나가기도 전에 윗선을 통해서 얘기가 내려옵니다. '이거 나가면 광고
억대가 빠진다는데 기사 빼주거나 수위좀 낮춰주면 안돼겠니' 하고. 
일선 기자는 데스크며 간부하고도 싸우다가 결국은 기업 로고 빼고 이름
빼고 뭐 이런 식으로 김빠지는 기사를 내보내게 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광고만 가지고도 이정도인데, 기업이 오너가 되면 기업 비판하는 기사를
쓴다는게 구조적으로 가능이나 하겠습니까?  아직 법안이 통과된 것도 아닌데
벌써 반대하고 나서냐고 하시는 분들은 이런 현실을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길에 나선 아나운서들 말대로 '불량제로' '소비자 고발' 이런 프로그램 당근
못 보게 될 겁니다.


  공중파 방송사 직원들이 돈 많이 받는다고 밥그릇 싸움이라고
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돈 많은 대기업이 인수하면 지금보다 방송사
직원들 돈 더 많이 받을 수도 있습니다. 방송 일이라는게 하루 아침에
아무나 갑자기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보니, 간부급은 잘릴 지 몰라도
일반 사원은 많이 살아남을 겁니다. 저희 YTN처럼, 주인도 없지만
그렇다고 공중파도 아니어서 수신료도 없고 광고 단가도 낮아서
업계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월급 받는 회사는, 심지어 외환위기때
월급 6개월동안 안나왔던 회사는 돈만 생각한다면
대기업이 와서 민영화 해주기를 바래야 정상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저희도 민영화 결사 반대합니다. 기업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방송은
사내방송으로 전락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광고지 보도입니까 ?
비판의 기능을 잃은 언론사는 언론사가 아닙니다. 제대로 된 직업정신을 가진

언론 종사자라면, 반대하는 게 정상입니다.

 

  'OECD 선진국에는 없는 규제가 왜 있냐'는 논리에 대해서도,
언론법 개정을 원하는 쪽은 '우리나라만 재벌 소유와 신방겸영이
불가능하도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는 맞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국가에서 허용하더라도 독과점이 불가능하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는 점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놈의 선진국 그렇게 따라하고
싶으면 제대로 따라해야죠. 껍데기만 제목만 따라하지 말고.
    
  방송을 인수하고 싶어하는 조중동이 보수 성향의 신문이라는 데는
모두가 동의할 것입니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목소리가 존재하고, 이들이 존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사회가 민주국가입니다. 언론의 자유가 있다면,
의사 표현의 자유가 있고 사상의 자유가 있다면 진정 그런 민주주의 사회라면
좌파도 있고 우파도 있고, 중도도 있는게 정상 아닙니까?
방송이 모두 보수 성향으로 바뀌는 게 정상인가요? 모든 지상파가 한 목소리
내는게 정상입니까? 그건 전체주의 사회입니다. 전체주의는 북한처럼
좌파에도 있지만 (사실 실상을 보면 공산주의 이념과는 완전 거리가 멀지만)
과거 나치처럼 우파 전체주의도 있습니다.


 만약 그동안 방송의 내용이 이른바 '좌빨'이었다고 생각하고 이게 불만이신 분이

있다면,(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내용이 편향됐다고 비판하십시오.
얼마든지 비판하고 그래도 맘에 안들면 TV를 꺼 버리십시오. 시청률 낮춰서

광고 못 받게 하십시오.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궁금하고, 방만한 경영이 마음에 안 든다 생각되면
감사하라고, 철저히 받으라고 주문하십시오.

 

그러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보수 성향을 가진 신문사에 주려는 이번 법안은 일방적으로 한 편을 들어주는
게 됩니다. 이게 바로 '특혜'라는 겁니다. 보수 정권이 보수지에 주는
'특혜'. 적어도 지금의 지상파 방송 소유구조는 좌파던 우파던 자본이던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주는 소유구조는 아닙니다. 공기업, 정부지분으로
쪼개고 민간 자본 비중을 낮게 잡아 어느 누구도 독점적으로 소유할 수 없게 되어

있으니까요.
만약에 한겨레나 경향신문이 지상파를 인수하겠다고 덤비는 일이 일어난다면
(물론 매우 가능성이 낮은 경우이지만) 그때도 역시 반대하고 나설 겁니다.


  노무현 정권때는 왜 고분고분하다가 왜 지금은 파업하고 난리냐고요?
이른바 '좌파정권'이라고 불리는 전 정권이 '선진화 방안'인지 들고 나와서
기자실 못질하고 전기 끊을 때도 저희 깜깜한 데서 플래시 켜고 기사 쓰면서

개겼습니다.  전 정권도 KBS에 참여정부 언론특보 출신 서동구씨를 사장으로

앉히려다 실패했습니다. 그래도 전 정권은 아예 법까지 바꿔서 언론사의 소유 구조를

자기네한테 유리하게 바꿔보겠다는 생각까지는 못하는 '순진한' 정권이었던 것 같네요. 언론을 자기들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고 싶어 하는 것은 어떤 정권이건 성격을 막론하고 똑같습니다. 여기에 장단맞추지 말고 현혹되지 말고 비판의 칼날을 세워야 하는 게

언론입니다.

 

  어떤 분들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언론법은 이념대립 문제가 아닙니다.
특정 정권에만 반대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도 아닙니다.
여론을 독과점하는 구조를 만들어줄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민주주의냐, 전체주의냐의 문제입니다.

 

  언론이 굴종해야 할 대상은 자본도 아니고 정권도 아니고 좌도 우도 아니고
국민의 공익입니다. 언론의 본령은 권력과 자본을 감시하고 비판하고
견제하는 데 있습니다. 이번 언론법 개정안은 언론이기를 포기하라는 법입니다.
방송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언론이 약자의 편을 들지 않고 강자의 편만 든다고
쓴소리를 듣는다는 점 알고 있습니다. 많이많이 비판해 주십시오. 그러나 강자의 편을
아주 대놓고 들도록 구조적으로 허용해주는 이런 법안이 통과되어서는 안됩니다.
자기네한테 불리하면 무조건 좌파라고 이름붙이면서 밀어붙이는 논리에 현혹되면
어느 날 여러분은 입만 열면 보수의 논리만 말하고 썼다 하면 기업 논리만 그대로

읊어대는 앵무새 보도를 보게 될겁니다. 여러분의 눈과 귀가 가려질 것입니다.

by 선대인 2008. 12. 29. 09:46
 









이명박 정부가 기어코 4대강 하천정비 예산으로 14조원이라는 거액의 예산을 편성해 통과시키는 것을 보고 예전에 썼던 ‘폴 크루그먼에게서 배우는 MB정부에 속지 않는 법(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1&articleId=2083162)’의 내용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폴 크루그먼은 ‘대폭로’라는 책에서 뉴욕타임스 칼럼리스트로서 ‘부업(part-time) 저널리스트’인 자신이 생각하는 다섯 가지 ‘보도 준칙(rules for reporting)’을 소개했습니다. 이른바 조지 부시 행정부와 같은 ‘우파 혁명세력’의 정책에 속지 않고 대응하는 준칙이었던 셈인데요. 그는 “이 같은 규칙은 뉴스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어떤 진지한 시민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말했는데, 그 5가지 가운데 이번 사태를 보면서 준칙 1과 준칙 5가 다시 생각나는군요.

 

준칙 1. (이들이 내세우는) 정책안이 그들이 겉으로 내세운 목표에 부합한다고 가정하지 말라.

 

준칙 5. 혁명세력의 목표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 마라.

 

특히 준칙 5와 관련한 예로서, 폴 크루그먼은 “끊임없이 이유를 바꿔가며 철저히 감세정책을 밀고 나갔던 부시 행정부에 대해 생각해보라. 온건주의자들의 유화적 대처가 그들의 목적을 끝까지 추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라크 전쟁은 ‘부시 독트린’의 출발선일 뿐이었다. 결코 제한된 양보로 그들을 달랠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4대강 하천정비 사업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면 대운하는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도 이 말은 확실히 대운하 추진 포기 의사를 밝힌 것이라기보다 반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잠정 보류라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맞았습니다. 그것은 일보 후퇴 작업이었을 뿐 4대강 하천정비 사업을 통해 대운하는 결국 부활했습니다. 일부에서 4대강 하천정비 사업은 대운하와는 다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위의 준칙 1과 준칙 5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십시오. 현 정부는 그렇게 순수한 세력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십시오.

 

더구나 이명박의 서울시장 시절 정무부시장을 지냈고, 핵심 측근이기도 했던 정두언 의원이 이명박과 올해 5월에 나눈 아래 대화를 상기해보십시오.

 

한나라당 안에서 한반도 대운하 계획을 수정해 추진하자는 기류가 일고 있다.

정두언 의원은 19일, “지난 13일 이명박 대통령과의 청와대 오찬 회동에서 ‘한반도 대운하를 한강 개발과 같은 (하천) 재정비 사업으로 우선 추진하고 (강의) 연결 부분은 (나중에) 계속 논의하자’고 건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반도 대운하는 당초부터 명칭이 잘못돼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 마치 맨땅을 파서 물을 채워 배를 띄우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며 “그러나 실상은 낙동강, 영산강을 지금의 한강처럼 만들고 나중에 연결부분을 만들겠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중략) 정 의원의 주장은 운하의 운송 기능을 뒤로 미루고 치수와 하천정비 사업을 앞세우자는 것으로 운하에 대한 거부감을 누그러뜨리려는 의도로 보인다. 최근 확인된 국토해양부 국책사업지원단의 대운하 추진계획과도 맥락이 비슷하다. 정 의원은 “이 대통령이 ‘그런 방안도 있겠네’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한겨레신문 5월19일자 보도)

 

위에 인용한 기사에서 본 것처럼 이 대통령과 여권 핵심부가 이미 5월에 공감대를 형성한 뒤 이후 대운하를 ‘4대강 정비 사업’으로 말바꿔치기 해서 계속 추진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한 번 작정한 것은 국민들의 어떤 가열찬 국민들의 반대에도 온갖 명분과 포장을 동원해서라도 결국 달성하고 마는 집요함에 치가 떨릴 정도입니다.

 

사실은 대운하뿐만 아닙니다. 공기업 민영화든, 영어몰입교육이든, 방송장악 시도이든 모두 그런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사용한 방식은 ‘프레임 바꿔치기’입니다. ‘프레임(frame)'은 <프레임전쟁>을 쓴 조지 레이코프에 따르면 “문화적 관례나 세상에 대한 믿음, 일을 처리하는 익숙한 방식,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 등에 대해 특정하게 구조화된 심적 체계”입니다. 똑같은 현상 또는 사실에 대해 프레임을 어떻게 구성하고 그것을 전달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은 180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직도 이명박을 불세출의 ‘경제대통령’이라는 프레임으로 보는 소위 명빠들이 있는 반면, ‘건설족의 수괴’라고 보는 저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또는 감세 정책을 ‘경제 살리기 정책’으로 보느냐, ‘강부자와 특권층을 위한 특혜’로 보느냐, 어떠한 프레임이 우세한 프레임으로 자리잡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지지여부는 확연히 갈리게 됩니다.

 

그런데 대운하가 경제성이 없으며 반환경 사업으로는 비판에 부닥치자, 지금의 집권 세력은 대운하는 쏙 뺀 뒤 4대강 정비 사업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여기에 이재오 류의 사람들은 “이름을 거창하게 대운하라고 한 것이지 사실은 강따라 뱃길을 복원하는 것”이라며 매우 자연스럽고 친환경적인 사업으로 프레이밍을 시도합니다. 그런 식으로 프레임을 바꿔 현 정부는 그들이 당초 계획했던 사업들을 많은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단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어느새 ‘공기업 민영화’는 ‘공기업 선진화’로 바뀌었고, 영어몰입교육은 공정택의 서울교육청을 통해 ‘영어 선도 사업’으로 부활했습니다. 그들의 집요한 방송장악 의도는 ‘방송의 다양성 확보와 글로벌 경쟁력 강화’로 포장됐습니다. 이들은 이처럼 프레임 바꿔치기의 명수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추진하는 사업의 본질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포장만 바뀌었을뿐 그들이 추진하는 알맹이는 사실상 거의 그대로입니다.

 

극심한 경제 위기 앞에서 수많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문을 닫고, 저소득층과 빈곤층은 빈약한 복지 인프라와 복지 사각지대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14조원이라는 돈을 건설족들의 배를 불리고 자신들 일가친척과 땅부자들이 전국적으로 갖고 있는 토지 가격을 올리기 위해 4대강을 정비한다는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성장 잠재력 향상에 기여하지도, 서민들의 복지 수준을 올리는 일도 아닌, 그리고 대다수 국민들이 반대하는 시대착오적인 ‘삽질’에 돈을 퍼붓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곧 죽어도 핑계는 서민들을 위한 경기부양이랍니다. 서민들을 위한 경기 부양이라면서 소수 상류층을 위한 각각 수십조원의 부자 감세와 지방 선거를 앞둔 선심성 사업과 건설업체 배불리기 사업으로 점철된 건설토목 사업 예산 편성에만 목숨을 걸까요? 정말 서민들을 위해서라면 왜 서민들에게 직접 지원할 생각은 안 할까요? 왜 항성 서민들은 항상 상류층에 지원한 돈에서 찔끔찔끔 흘러내리는 국물을 얻어마시며 감지덕지해야 하는 신세가 돼야 하는지 그들은 답을 못 합니다. 부자의 돈을 걷어 빈민을 돕는 로빈 훗 정책(소득재분배 정책이라는 게 원래 이런 취지입니다)이 아니라 서민의 돈을 세금이라는 형태로 갈취해 부자를 돕는 ‘거꾸로 로빈 훗 정책’을 펼치는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입니까?

 

현 집권세력은 프레임 바꿔치기라는 얄팍한 수를 써서 민의에 따른 정책 의사 결정이라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훼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응당 추구해야 할 공익은 포기하고, 자신들과 자신들 지지세력의 사익을 챙기는데 혈안이 된 골수 기득권 세력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폴 크루그먼이 정의한 ‘우파 혁명세력’의 속성을 가지고 있음은 물론이고,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독재정권의 속성 또한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들이 얼마나 한심하고 무능하고 야비하며 저질스러운 세력인지 꿰뚫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말을 바꿔가며, 프레임을 바꿔가며 국민들을 잘 속여 넘기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전체로서의 국민들은 그렇게 순진한 존재들이 아닙니다. 12월 15일자 경향신문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난 1년 동안 63.2%의 국민들이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평가한 결과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국민들은 지금은 현 정부의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권력 행사 방식 때문에 큰 소리를 못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래 안 가서 이들은 민심의 거센 역풍에 호되게 당하게 될 것입니다. 민심이라는 바다 위에 떠있는 배인 정부가 민심을 정면으로 거스를 때는 난파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다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배가 난파한 뒤 그 배를 대신할 수 있는 튼튼한 배를 만드는 작업입니다. 건전한 공동체 정신과 공정한 게임 규칙을 토대로 제대로 된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도덕적이고 능력있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는 정치세력 말입니다. 그 같은 정치세력을 구축하기 위해 많은 분들이 함께 힘을 모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더 많은 토론과 정보 공유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 주십시오. 이 글은 김광수소장님이 쓰신 글이 아니며, 연구소의 공식적인 입장도 아님을 주지하시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08. 12. 17. 08:55

각종 건설부양책과 불요불급한 예산으로 떡칠된 내년도 예산안이 여당의 강행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이 같은 강행 통과를 마치 국가 경제 살리기를 위한 치적이라도 삼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은 ‘예산 조기 집행’을 강조하고 있다. 이대통령은 12월 15일 수출 4000억달러 달성을 기념해 수출업계 대표들과 가진 청와대 오찬에서 “금융위기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 책정된 예산을 조기에 집행하는 것이 관건으로, 그 집행의 결과가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많은 공직자들에게 부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같은 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기획재정부는 내년 전체 예산 가운데 60%를 상반기에 조기 집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돈을 빨리 풀어 극심한 내수 침체를 해소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이 발표 내용만 보면 내년 상반기에 시중에 정부 재정이 상당히 풀릴 것으로 예상할 것이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이 같은 정부 발표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쑈쑈쑈’에 불과하다.

 

물론 서민들 생계 지원 형태의 예산은 빨리 풀 수 있다면 빨리 풀수록 좋다. 하지만 장애인과 독거노인, 빈곤층 등 대부분의 복지 지원 대상자들에게는 월 단위로 정기적으로 지원금이 지급될 뿐이다. 중앙 정부 차원에서 시군구 기초 자치단체나 동사무소까지 빨리 내려보내는 것일 뿐 실제 정부 지원이 필요한 현장에 돈이 빨리 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정부 예산액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건설토목사업 예산의 현실을 살펴보면 기가 차기 짝이 없다. 예를 들어, 2008~2009년에 걸쳐 2000억원짜리 공사를 한 대형 건설업체가 수주했다고 치자. 이 공사를 수주한 대형 건설업체는 정부의 경기 활성화를 위한 예산조기 집행 방침에 따라 연차별로 공사할 금액의 절반을 선급금으로 받는다. 이렇게 받은 선급금 가운데 60~70% 가량은 아예 처음부터 선급금으로 지급할 대상이 아니다. 일단 자재비는 거래관행상 미리 안 준다. 정부에서 미리 준다고 자신들도 자재대금을 미리 주는 원도급업체들이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직원급료도 미리 안 준다. 대기업이 정부에서 돈을 미리 받았다고 직원들 월급을 미리 당겨주겠는가?

 

결국 건설 대기업이 정부에서 받은 돈을 조기집행할 수 있는 돈은 기껏 하도급 업체들에게 주는 공사대금 뿐이다. 이는 정부 예산 집행액에서 겨우 30~40% 정도를 차지한다. 그런데 이마저도 실제 집행해야 하는 액수의 보통 3분의 1 밖에 집행을 안 한다.

 

철도공사를 하청하는 한 기업의 사례를 보자. 이 업체는 원도급업체가 정부로부터 공사대금 선급금을 받은 것을 확인했다. 원도급업체는 정부에서 공사대금을 받은 뒤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따라 15일 이내에 자기가 정부에서 받은 같은 비율만큼 하청업체에 줘야 한다. 하지만 원도급업체는 2008년 공사물량이 원래 100억원이라면 50억원어치 공사만 하는 것처럼 축소하고, 선급금 적용 비율도 최대한 줄였다. 이런 방법으로 이 업체는 원래 받아야 할 돈의 30% 수준밖에 못 받았다. 예산 집행액의 30~40% 가운데 다시 원래 받아야 할 돈의 30% 수준밖에 못 받았다. 에산 집행액의 30~40% 가운데 다시 원래 받아야 할 돈의 30% 수준만 하도급업체에 전달됐으니 결국 이 업체에는 정부예산 집행액의 9~12%만 전달됐다. 이런 양상이 이 업체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전국인 양상이다.

 

이런 식이면 정작 돈이 필요한 하도급업체에는 돈이 내려가지 않고, 대기업에만 머물러 있게 된다. 정부가 경기부양을 한다고 하는데 정작 도움을 받아야 할 중소건설업체들과 건설 노동자들에게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신 최근 몇 년간 부동산붐으로 배룰 잔뜩 불렸다가 유동성 위기에 처한 재벌건설업체들의 호주머니로만 들어갈 뿐이다.

 

이렇게 해서야 무슨 경기부양 효과가 있겠는가? 정부가 예산을 조기 집행했으면 제대로 줬는지 관리감독해야 한다. 하지만 각 해당 부처는 대기업에만 돈을 줬으면 예산을 집행했다고 기획재정부(과거에는 기획예산처)에 통보하고, 기획예산처는 이를 ‘실적’으로 잡아 예산 집행 계획을 달성했다고 홍보하고 있다. 정부가 혈세를 들여 정책을 실시했다면 실제로 현장에까지 내려가는지, 그래서 정책적 효과가 있는지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매련 이런 정책을 쓰면서도 정부는 한 번도 제대로 실태를 조사해 평가한 적이 없다. 무조건 대형건설업체에 돈만 갖다 안긴다고 정책 효과가 생기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정부관료들은 앞뒤 재지 않고 경기가 안 좋다는 소리가 나오면 ‘조기 예산 집행’을 입버릇처럼 외고 있다.

 

이런 조기 예산 집행은 결국 유동성 위기에 시달리는 대형 건설업체에게 현금 다발만 안기는 효과가 있을 뿐이다. 각종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극심한 신용경색 때문에 돈 구경하기 어려운데 왜 대형건설업체들은 직접 시공하지도 않은 관급공사를 수주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백억~수천억 원의 현금을 미리 받아챙기는 엉터리 같은 일이 매년 벌어지는 것인가? 과연 공공사업을 진행하기도 전에 정부가 돈을 막 퍼주는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치고 어디 있을까? 더구나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또 다시 엄청난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 예산을 조기 집행하려면 국채를 발행해야 하고, 정부는 거기에 해당하는 이자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상반기에 60%를 조기 집행한다는 것은 40%를 쓴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조기 집행을 하면 일자리가 더 늘어나고, 경제 성장률 향상에 도움이 될 것처럼 주장한다. 상반기에 50% 쓰일 것이 60%가 쓰이면 정부가 주장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런 효과가 생기기는 할 것이다. 그런데 예산의 40%를 집행하게 되는 하반기에는 어떻게 되는가? 원래 쓰여야 할 예산보다 덜 집행되니 그만큼 경기는 더 가라앉을 것이 아닌가? 한 마디로 조삼모사일 뿐이다. 정부가 국민들의 지능 수준을 원숭이 정도로 여기고 있다고 광고라도 하는 셈이다. 그런데 경제위기가 심화돼 하반기 경제 상황이 더 어려워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가서 또 온갖 핑계를 대면서 쓸데 없는 건설토목사업으로 가득한 추경예산을 다시 편성해 여당 단독으로 밀어붙일 작정이 아니겠는가?

 

 

지난 몇 년간 건설업체들은 신문 광고와 홍보성 기사 등을 통해 국민들의 부동산 투기 심리를 부추겨가며 터무니없는 고분양가로 엄청난 폭리를 취해왔다. 그같은 부동산 거품에 취해 과욕과 무리한 경영판단으로 사업을 벌이다 보니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과정에서 생겨난 미분양 물량으로 지금은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 거품이 일 때 폭리를 취한 것을 모두 자신들이 차지했듯이,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생겨나는 모든 손실은 자신들이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무주택 서민들의 세금까지 포함된 막대한 건설토목 예산을 편성하는 것도 모자라 예산 조기집행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퍼붓고 있다. 서민들을 위한 경기 부양을 위해 예산 조기집행을 한다고 하지만, 결국 감춰진 속내는 유동성 위기에 빠진 재벌건설사들을 구제하기 위한 ‘눈 가리고 아웅 쇼’일 뿐이다. 말 끝마다 서민을 외치지만, 그들에게 서민은 뒷전이다. 건설족의 수괴인 MB를 비롯한 현 정권 눈에 보이는 것은 지금 자금난에 시달리는 건설업체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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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08. 12. 16. 10:33

최근 부동산 가격 하락폭이 커지면서 각종 분양사고가 잇따르고, 입주대란과 역전세난으로 많은 가계가 피해를 입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피해가 실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주택 선분양제 때문에 증폭되고 있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이 잘 모르고 있다.

 

 

선분양제 하에서 주택 수요자들은 완성된 주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기한까지 입주할 수 있는 분양권을 청약해 사게 된다. 그런데 완공 전에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주택업체가 부도를 낼 경우 피해의 상당 부분을 분양자가 떠안아야 한다. 물론 대한주택보증을 통해 분양을 보증하도록 하고 있지만, 입주 지연으로 인한 분양자의 금전적, 정신적 피해 등은 상당 부분 불가피하다.

 

 

실제로 주택업체의 부도나 자금난 등으로 인한 주택 보증사고는 최근 급증하고 있다. 대한주택보증에 따르면 최근 3개월 사이에 보증사고가 난 세대 수만 7,000 가구에 사고금액은 1조5,877억 원에 이른다. 올 들어 11월까지 발생한 보증사고 세대수의 80%와 사고금액의 68%에 이를 정도다.

 

 

또 선분양제 하에서는 주택 소비자들이 갑작스러운 집값 하락으로 피해를 볼 가능성이 후분양제에 비해 높다. 선분양제에서 주택 소비자는 상대적으로 소액인 계약금만 있으면 되므로 예산제약 범위를 벗어나 무리한 주택청약을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부동산 투기 붐이 극심할 때는 분양만 받으면 몇 억원을 벌 수 있다는 생각으로 너나 할 것 없이 주택 청약에 나섰다.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는 분양자들이 수억 원의 빚을 지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만일 극심한 청약열풍이 불었던 판교신도시 주택을 지금쯤 후분양제로 공급했다면 2~3년 전과 같은 엄청난 고분양가에 청약할 가계가 얼마나 있었을까? 결국 주택업체들은 고분양가로 상당한 폭리를 취한 뒤 분양자들만 자산가치 급락과 엄청난 부채 부담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 곳곳의 신규 아파트 단지에서 대규모 입주 지연과 역전세난이 벌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리하게 아파트를 청약한 계약자는 집값은 떨어지고 은행 빚은 감당하기 어려워 손해를 보더라도 입주 예정 아파트나 기존 주택을 팔아 대출을 상환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거래가 마비되면 기존 주택이든 신규 분양 아파트든 전세로 돌려 최대한 금전적 손실을 줄이려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처지의 계약자들이 한둘이 아니므로 입주 지연과 역전세난이 함께 빚어지는 것이다. 만약 후분양제였다면 이처럼 극심한 입주지연과 역전세난은 발생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공급자에게 유리한 선분양제 하에서 건설업체들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선분양제는 부동산 호황기에 무리한 주택사업이 일어나는 유인으로 작용한다. 주택업체들은 3년 후 입주 시점의 주택경기에 대한 판단은 거의 하지 않고 근시안적 시각에서 사업을 진행한다. ‘떴다방’이든 무어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장의 분양에만 성공하면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욕과 무리한 사업판단으로 택지를 매입해 분양을 시도하다가 부동산 경기가 죽자 미분양 물량이 급증하게 된 것이다.

 

 

국토해양부가 집계한 올해 9월 기준 미분양 15만7241가구 가운데 4만 436가구가 준공 후 미분양 물량으로 나타나고 있다. 후분양제였다면 생겨나지도 않았을 미분양 물량이 11만7000여 가구에 이른다고 추론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 등 후분양제를 시행하는 대다수 국가에서 주택건설 경기가 위축된다고 해서 한국처럼 막대한 미분양 물량이 쌓이는 경우는 없다.

 

 

건설사들의 유동성 위기도 미분양 물량이 급증하면서 돈이 묶인 탓이 크다. 또한 2006년 이후 과도한 PF사업 확대로 건설사뿐만 아니라 제 2금융권을 중심으로 금융권 전반의 부실화 우려를 높이고 있는 것도 바로 급증한 미분양 물량 탓이 크다. 나아가 한국 경제의 화약고라고 할 수 있는 가계의 부동산담보 대출과 PF사업 대출, 건설/부동산업 대출을 증폭시키는데도 일조했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기로 하자. 한국 부동산시장의 구조적 문제점이 전적으로 선분양제 때문에 비롯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선분양제가 부동산시장의 위기를 증폭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선분양제의 경제적 폐해가 너무나 크다는 것은 이제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설업계의 반대와 이를 비호하는 정부와 정치권, 관변학자들의 엉터리 논리에 의해 후분양제 도입은 계속 지연됐다. 분양가 자율화와 함께 오래 전에 바뀌었어야 할 제도가 그대로 온존함으로써 한국경제의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필요한 제도개혁을 제때 하지 않을 때 경제 전체로 얼마나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되는지를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도리어 ‘8.21 부동산 대책’에서 ‘후분양제 보완’이라는 식의 편법으로 민간 주택건설업체가 자율적으로 후분양제와 선분양제 가운데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사실상 후분양제를 무력화시켰다. 특히 국토해양부는 11월초 ‘건설사들이 조기 분양에 나서 자금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한다는 명목으로 재건축 후분양제를 폐지했다. 이명박정부는 여전히 건설업계와의 유착에 빠져 임기응변적 처방과 특혜 주기에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임기응변적 처방과 건설업계 특혜 주기에 골몰하는 정부가 현 경제 위기를 해결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더 많은 토론과 정보 공유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 주십시오. 이 글은 김광수소장님이 쓰신 글이 아니며, 연구소의 공식적인 입장도 아님을 주지하시기 바랍니다.


by 선대인 2008. 12. 15. 11:06

최근 서울 및 수도권 지역의 집값이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집값이 고점에서 유지되는 가운데 부동산 거래량이 줄어드는 ‘부동산 스태그플레이션’ 기간을 지나 이제 집값 거품 붕괴가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 보도를 보면 서울 강남과 목동, 경기 분당과 용인 등 소위 ‘버블 세븐’ 지역을 중심으로 2006년말~2007년초 고점 대비 ‘반값 아파트’가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일부 엉터리 부동산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급매물 가격이기 때문에 시세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정부 공인 통계인 국민은행 아파트 시세 통계를 보면 이 같은 현장의 폭락 분위기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수도권 내에서도 인천이나 일부 개발 호재 지역에 따라 집값이 소폭 상승하거나 상대적으로 덜 하락한 경우도 많아 전체적으로는 통계상 집값 하락폭이 적게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점을 고려한다고 치더라도 실제 부동산시장의 현장 분위기와 각종 부동산 통계의 하락폭은 딴판인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집값 하락세가 본격화된 올해 하반기 들어서도 수도권의 주택 가격이 소폭이지만 꾸준하게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 “급매물 가격은 시세가 아니다”라는 주장은 왜 엉터리일까? 이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우선 주식시장의 주가지수 산출방식을 보면 된다. 예컨대 삼성전자 발행주식을 100만주라고 할 때 100만주 모두가 거래돼 주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전체 발행주식 가운데 실제 매일 증권시장에서 거래되는 물량은 불과 1%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거래되는 1% 미만의 물량이 삼성전자 주식 전체의 시가총액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 전체 삼성전자 주식 100만주 가운데 1%인 1만주가 거래돼 어느 날 상한가를 기록했다고 하자. 증권시장에서 거래된 물량은 1만주밖에 안 되지만 이 1만주만 상한가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전체 삼성전자 주식 100만주의 가격 모두가 상한가로 상승한 것이 되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의 가격지수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주택 전체 재고가 약 1,300만호이므로 한 가구당 1억 원만 쳐도 1,300조원이다. 그런데 전국의 아파트 거래물량은 2006년 112.5만호, 2007년 84만호 수준이다. 계산의 편의상 연간 100만호 가량이 거래된다고 가정하면 전체 주택 재고의 약 7.7%가 거래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주식시장에서와 마찬가지로 7.7%의 주택 물량이 거래되면서 전체 1,300조원에 이르는 주택의 자산가격이 함께 오르내리게 되는 것이다. 물론 세부적으로는 증권시장에 상장돼 있는 개별 종목들처럼 주택시장에서도 대치동 은마아파트 102㎡형, 분당 서현동 108㎡형처럼 같은 지역의 같은 규모 아파트 별로 부동산도 일종의 ‘종목별’ 시세가 형성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층별이나 조망권 여부 등에 따라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부동산 폭등기에 일부 주택 물량이 거래돼 전체 주택의 가격이 결정됐듯이 부동산 폭락기에도 일부 주택 물량이 거래돼 전체 주택의 가격이 결정되는 것 또한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최근 서울 강남 등 ‘버블 세븐’ 지역의 주택가격은 이미 최소 30~40% 이상 떨어진 것으로 보는 게 정상이다. 각 부동산 중개업소별로 고점 대비 최소 30% 이상 떨어진 매물들이 수십~수백 건씩 쌓여 있기 때문이다. 물론 거래량이 과거 부동산 활황기에 비해 급격히 줄었다고 하지만 어쨌든 거래가 일어나는 가격대는 이들 매물 가운데 가장 싼 매물의 가격대이고, 현재 매도자 입장에서는 그 가격대 이상으로는 주택을 아무리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는 게 부동산 시장의 냉엄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지금 거래되는 아파트들이 급매물이므로 정상적인 시세로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하지만 지금 부동산 중개업소마다 쌓여 있는 매물들은 모두 급매물들이다. 급매물이라는 표현도 모자라 ‘급급매물’ 또는 ‘초급급매물’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상황이 이 정도라면 말이 급매물이지 사실은 정상적인 매물이라고 봐야 한다.

 

 

물론 시장 상황에 따라 정상적인 시장 거래 가격으로 보기 어려운 일시적인 급매물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특정 아파트의 전체 평균 시세가 10억 원으로 형성돼 거래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어떤 가계가 해외 이주나 지방 전근, 또는 급한 현금 확보 필요성 등의 이유로 시세보다 낮은 9.5억 원에 집을 팔았다고 치자. 이 경우 9.5억 원에 그 집이 팔렸다고 해서 같은 종류의 아파트 시세가 9.5억 원으로 수렴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해당 급매물 하나만 부동산시장에서 거래되고 나면 나머지 아파트들은 여전히 10억원 선에서 거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버블 세븐 지역의 상황은 한 두 물건이 거래된 뒤 나머지 물건들이 다시 과거 고점 가격대로 환원돼 팔릴 상황이 아닌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급매 가격은 시세가 아니다”라는 일부 엉터리 전문가들의 주장이나 국민은행이나 사설 부동산 업체들의 아파트시세 통계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안방에서 클릭 한 번으로 주식 거래를 할 수 있는 주식시장과 달리 부동산 시장의 거래 회전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주택 통계상으로는 이 같은 집값 하락을 바로 바로 반영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부동산시장에서 직접 사고 팔 수 있는 가격을 실제 거래가격이라고 본다면 현재의 급매가격은 정상적인 시세라고 봐야 한다. 집값 거품을 아무리 유지하고 싶은 강부자나 사기꾼 전문가들이 아무리 부인을 해봐도 ‘버블 세븐’을 중심으로 집값이 사실상 반토막 난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시간이 좀더 지나면 그들도 그같은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시기가 올 것이다. 집값이 계속 더 떨어질 것이고, 시차를 두고 부동산 통계에도 그 같은 시세가 반영될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에서도 부동산 버블 붕괴 초기 버블의 붕괴를 한사코 부인하던 소위 부동산 전문가들이 결국 나중에 줄줄이 반성문을 썼다. 국내의 엉터리들은 반성문을 쓸 염치나 갖고 있을지 의문이다.

by 선대인 2008. 12. 5.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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