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영화 관계자들 한국, 아시아 영화산업의 중심지






멜번 국제영화제 사무실 한 쪽 벽면에 걸려 있는 '와이키키 브라더스' 포스터.
"한국 영화가 부럽다."
호주 멜번 국제영화제 관계자들의 말이다. 올해로 53회째를 맞았던 멜번 국제영화제는 호주 제일의 영화제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도 가장 전통 있는 영화제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이 영화제는 최근 3년동안 매년 15~20편 가량의 한국 영화를 소개하는 등 아시아 영화에 대한 관심을 부쩍 높이고 있다.

이 영화제 집행위원회의 마케팅 매니저인 엠마 메리건과 단편영화 코디네이터인 닉 페익은 지난 2일 호주 멜번 시내 영화제 사무실에서 미디어다음과 가진 인터뷰에서 "최근 몇 년 동안 아시아 영화가 급성장하고 있고 영화가 대중성이나 작품성 측면에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그런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영화의 성장은 한 마디로 환상적(fantastic)"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또 "이 때문에 호주의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 영화관객들도 점점 더 아시아 영화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며 "멜번영화제도 아시아영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소개하고 있다"고 말했다.반면 이들은 영어권 국가인 호주가 할리우드 영화와 직접 경쟁해야 하고 최근 국내의 영화 투자도 줄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도 좋은 대본과 민간 투자, 정부 지원 등이 이뤄지면 니콜 키드먼과 러셀 크로우 같은 호주 출신 배우들이 속속 돌아와 호주 영화의 중흥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이들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했던 사실을 거론하며 "아시아의 유명 영화인과 감독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을 보고 한국 영화의 위상을 느끼게 됐다"며 "한국이 명실상부한 아시아 영화산업의 중심지가 아닌가 하고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기자가 한국 영화 쿼터제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이들은 "결국은 관객들이 판단하겠지만 한국에서 쿼터제가 사라진다고 한국 영화가 살아 남지 못하는 상태는 아니지 않느냐"며 "그런 점에서 한국 영화가 참 부럽다"고 말했다.영화제 사무실 곳곳에 걸려 있는 '실미도'와 '화산고', '와이키키 브라더스' 등의 한국 영화 포스터들은 이들의 칭찬이 한국 기자들을 의식한 '립 서비스'가 아님을 보여줬다. 사실 한껏 높아진 한국 영화의 위상은 사실 호주 곳곳에서 감지됐다. 호주관광청의 샤론 로스도 기자들을 만나자 첫 번째 화제로 한국 영화 '올드 보이'를 본 감상을 꺼냈다. 출연 배우들의 연기력과 영화 구성이 매우 인상적이었다는 것이었다. 또 기자들이 호주에 머무르는 동안 호주의 대표적 방송 중 하나인 SBS에서는 '친구' 등 한국 영화 두 편을 잇따라 방영하기도 했다. 다음은 멜번 국제영화제 관계자들과의 인터뷰 내용 요약. 실제 인터뷰에서는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답변했으나 편의상 두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답변 내용을 소개한다. "호주 젊은층들 발전하는 아시아 영화에 큰 관심"
"한국 영화 발전상 환상적"






멜번 국제영화제 마케팅 매니저 엠마 매리건.
-한국인들에게는 멜번 국제영화제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어떤 영화제인지 설명해달라.

아시아권에서는 부산영화제 다음으로 가장 큰 영화 페스티벌이다. 호주가 유럽 등 서구 지향 국가일 때는 유럽 예술 영화들에 초점을 뒀지만 지난 5년간은 아시아 영화를 소개하는데 중점을 뒀다. 한국의 김기덕 감독이나 이란의 아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특별전 등 유명한 아시아 영화제작자나 감독 등의 영화를 집중적으로 보여줬다.

-호주가 아시아 국가라면 생소하게 느낄 한국인들이 적지 않다. 왜 아시아 영화에 비중을 두고 영화제를 준비하게 됐나.

호주는 지리적으로 아시아에 더 연계돼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아시아 영화를 소개하는 데 비중을 많이 두는 것은 지역적으로 가까워서만 그런 건 아니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을 중심으로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영화가 급성장하고 있고 영화가 대중성이나 작품성 측면에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영화의 성장은 한 마디로 환상적(fantastic)이다. 발전 속도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호주의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 영화관객들도 점점 더 아시아 영화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제도 아시아영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나.

-멜번영화제가 올해 53년째를 맞이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영화제가 한국인들에게는 아직 잘 안 알려져 있는데, 이유는 뭐라고 보나.

우리가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다. 첫 번째 이유는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재정 여건이 좋지 않기 때문에 광고 등을 통해 국제무대에까지 널리 알리는 것은 역부족이다. 또 한국 관광객들이 직항편이 있는 시드니에 몰리고 있어서 아직 멜번으로는 잘 오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멜번영화제가 한국인들에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것 같다. 한국 영화와 교류를 확대해 우리 영화제가 한국인들에게 가깝게 다가가도록 노력하겠다.

-멜번영화제가 어떻게 시작됐으며 호주 영화산업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어떠한가.

처음에는 멜번대학에서 영화동호회로 시작했다. 이 같은 동호회들이 묶여서 조그만 영화 커뮤니티가 형성됐고 이게 계속 커지면서 호주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성장했다. 아까 말 한대로 아시아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다 보니 '영웅' 같은 중국영화나 한국 영화들이 개막적으로 상영되는 경우들이 늘고 있다. 지금 영화제를 한창 키워나가는 과정인데 아시아영화를 비중있게 소개한 지난 5년 동안 영화제 규모가 두 배 정도로 커졌다. 적극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관객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는 영화들을 유치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아시아 영화에 치중한 지난 5년동안 영화제 규모가 두 배로 커진 이유는 뭔가.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했나.

더 많은 젊은이들을 영화제로 끌어들이기 위해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흐름을 과감히 영화제에 반영했다. 예를 들면, 음악 다큐멘터리라든지 일본의 호러 필름 같은 것들이다. 또 할리우드에서 볼 수 없는 특색을 가진 '볼케이노 하이(화산고)'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등은 호주 관객들에게 놀랄 만큼 좋은 호응을 얻었다. 영화제 기간 내내 이들 영화의 매진 행진이 계속됐다. (기자가 '두 영화는 한국에서는 흥행에 크게 성공하지 못했는데 아이러니다'라고 하자) 알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도 성공한 '공동경비구역 JSA'나 '올드 보이', '실미도' 등은 여기서도 성공했다. '실미도'는 영화제에 소개된 데 이어 정식 상영해 흥행에 성공했고 조만간 '올드보이'도 정식 상영할 것으로 아는데 기대된다. "호주 영화, 미국 영화업계의 압력 강하게 느껴"

"뛰어난 연기자들과 제작 기술로 호주 영화 중흥 이루고파"





멜번 국제영화제 단편영화 코디네이터 닉 페익.
-멜번 영화제를 향후 어떤 식으로 계속 키워갈 생각인가.

뚜렷한 답은 없지만 영화제 동안 호주와 뉴질랜드의 영화제작자와 감독들이 모여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회의를 갖고 논의했다. 이런 행사는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내년부터는 한국 영화제작자들과 젊은 감독들도 초빙해서 이런 모임을 갖고 조언을 구할 생각이다.

-호주 영화 산업 실태는 어떤가.

호주 영화만 가지고 이야기하면 지난 2년 동안 뚜렷한 작품은 없었다. 한국처럼 영화에 대한 민간 투자가 많이 안 들어온다. 하지만 영화 관객 측면에서 보면 호주는 세계에서 1인당 가장 영화를 많이 보는 국가 순위에서 5위나 된다. 영화 제작 기술은 우수한 데 재정 지원이나 민간 투자가 부족해 영화 제작은 오히려 줄어드는 양상이다. 영화 제작 기술이 우수하다는 점은 한국 영화들 가운데 상당수가 여기서 후반부 작업을 한다는 점에서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호주의 감독이나 배우들이 할리우드에 가서 매우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데 호주 영화가 활성화되면 호주 국내에서 이들을 위한 더 많은 기회가 생기리라고 믿는다. ('호주 출신 영화인들이 어떤 사람들이 있느냐'고 묻자) 니콜 키드만, 가이 피어스, 에릭 버너, 헤드 레저, 멜 깁슨, 제프리 러시, 러셀 크로우 같은 사람들이다. 이들이 좋은 대본과 민간 투자가 곁들여 지면 향후 몇 년 안에 다시 호주로 돌아와 호주 영화 발전에 기여할지도 모른다.

-왜 영화에 대한 민간 투자가 많이 안 이뤄지나.

세제 측면에서 영화에 투자하는 데 인센티브가 별로 없다. 우리가 많이 고치고 시정하려 하지만 별 진전이 없다. 또 다른 이유는 지난 몇 년 동안 호주 영화 가운데 이렇다 할 대작이 없다 보니 일반인들의 관심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90년대만 해도 상당히 많은 영화들이 나왔고 당시에는 재정상태가 괜찮았는데 최근에는 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에서처럼 영화산업에 투자를 많이 하고 영화 마케팅을 많이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상업적으로 활력 있는 산업으로 되살아나기를 바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될 것 같지 않다. 한국에는 영화 쿼터제가 있지만 호주에서는 극장에서 영화가 돈이 안 되면 절대 상영하지 않으려 한다. 한 마디로 흥행성 측면에서 할리우드 영화와 직접 경쟁해야 한다. 그런데도 미국에서는 할리우드 영화가 더 많이 수입되기를 바라는 것 같다. 미국 영화산업계에서 받는 압력을 강하게 느낀다.

(기자가 '한국도 영화쿼터제를 철폐하라는 미국의 압력을 받고 있고 이와 관련해 국민들 뿐만 아니라 문화관광부와 외교통상부 등 정부 부처 간에도 의견이 분분하다'고 하자) 한국에서 쿼터제가 사라진다고 한국 영화가 살아 남지 못하는 상태는 아니지 않는가. 그런 점에서 한국 영화가 참 부럽다.

-한국에서는 영화쿼터제 폐지 반대론자들은 쿼터제가 없어지면 대자본에 의해 만들어지는 대중영화는 몰라도 독립영화나 예술영화가 명맥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고 우려한다. 호주의 경험에서 볼 때 한국이 영화쿼터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보나.

그 결과는 관객들이 좌우하지 않겠는가. 호주는 영어 사용국가이기 때문에 할리우드 영화가 아무런 언어장벽 없이 그대로 전달되지만 한국은 호주와 달리 자국 언어가 있기 때문에 직접적 비교는 힘들 것 같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걸로 아는데 참석한 소감이 어땠나.

매우 신났다(exciting). 또 아시아의 유명 영화인과 감독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을 보고 한국 영화의 위상을 느끼게 됐다. 한국이 명실상부한 아시아 영화산업의 중심지가 아닌가 하고 느꼈다.
by 선대인 2008. 9. 4. 1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