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매경이 '국내 대표 경제전문가' 6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는 결과를 보면, 공무원 연금 개혁 찬성이 82%, 담뱃값 인상 찬성이 90%란다.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4&no=1262489
이건 사기나 조작에 가깝다. 매경이 말하는 '국내 대표 경제전문가'라는 표현은 실은 '자신들 입맛에 맞춰 고른 경제전문가'라는 표현이 훨씬 더 적절할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기자 시절 나도 데스크 지시로 비슷한 작업을 해본 적이 있다. 기자들한테 각자가 아는 전문가들한테 전화 돌려서 의견 들어서 숫자를 채우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런 기사가 다음날 신문에 1면 등 주요면 기사로 올라간 것을 여러번 경험했다.
비슷한 식으로 매경 기자들 수첩에 올라있는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일까. 이렇게 선택된 전문가들은 전체 집문가집단과는 거리가 멀다. 전체 전문가집단에서 무작위 샘플링을 한 게 아니라 매경 성향에 가까운 전문가들이 선택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대표성에서 심각한 왜곡이 일어난다. 그런데 매경은 이들이 전체 경제전문가 집단을 대표하는 것처럼 표현한다. 매경 스스로 찔려서일까. 매경은 이들 가운데 일부의 이름을 기사에서 인용했지만, 60명의 명단은 어디에도 밝히지 않았다.
더구나 60명이라는 숫자 가운데 82%, 90%씩의 비율을 계산한다는 것 자체가 웃긴다. 이 정도 작은 숫자에서는 2~3명만 의견이 달라져도 비율이 확확 바뀌기 때문이다. 이런 의견도 있다는 정도를 넘어 이게 '전체 전문가 집단의 의견이다'는 식으로 보도하는 건 여론조작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경제전문가' 집단의 의견이라는 외양을 빌어 사실은 매경이 보도하고 싶은 내용을 보도하는 것일 뿐이다.
실은 매경뿐만 아니라 국내의 다수 언론들이 비슷한 엉터리 짓을 되풀이한다. 조금 수법은 다르지만,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부동산정보업체들이나 OO은행의 PB센터 고객들을 대상으로 온라인조사한 결과를 전체 국민의사처럼 보도하는 경우다. '국민 절반, 3년 안에 내 집 마련 계획' 이런 식의 제목을 단 황당한 보도들이 그런 기사들이다. 조금만 주변을 돌아봐도 이런 기사의 제목이 얼마나 현실과 거리가 먼가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부동산정보업체들에 등록한 회원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부동산정보업체들의 온라인 조사에 응답하는 사람들이 전체 국민을 대표할 표본집단이라고 할 수 있을까. 황당하고 어이없는 조사요, 보도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런 기사들이 매번 버젓이 상당수 신문사의 주요 기사로 오르거나 인터넷 포털에 등장하고 있다. 정말 한심한 언론 수준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지금 이 나라가 이렇게 막장으로 떨어진 것은 한없이 낮은 언론의 수준과도 연관돼 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정보를 보도하는 언론의 역할은 정말 소중하다.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언젠가는 제대로 된 경제미디어를 만들어 저런 엉터리 정보들을 걸러내는데 기여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