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된 세계경제포럼의 국가경쟁력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종합 국가경쟁력이 1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인 26위를 기록했다. 2007년 11위에서 한참 미끌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도 가장 내 눈길을 끈 것은 은행건전성(soundness of banks)이었다. 세계 144개국 가운데 122위를 기록했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하는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과 이것이 향후 은행건전성에 미칠 영향을 기업가와 자본가 중심의 세계경제포럼이 이를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건 사실 너무나 뻔히 드러나 보이는 문제점이다.



우리 정부도 겉으로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해결하겠다고는 했다. 대표적으로 올해 초 박근혜대통령은 이른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밝히는 담화문에서 “내수기반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소비를 짓누르고 있는 가계부채와 전세값 상승 문제를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우선 가계부채부터 확실하게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박대통령은 이어 “2017년까지 가계부채 비율을 지금보다 5%포인트 낮춰서 처음으로 가계부채의 실질적 축소를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얼핏 보면 박대통령이 가계부채 문제 해결에 상당한 의지를 보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박대통령의 표현을 잘 뜯어보면 실상은 다르다. 그는 가계부채 문제를 해소하거나 해결하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관리’하겠다고 했다. 또한 가계부채의 절대액을 줄이기보다는 가계부채 비율을 낮춰서 가계부채의 ‘실질적 축소’를 이루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진정으로 가계부채를 해결할 뜻이 없이 가계부채 문제가 더 커지지 않는 선에서 ‘관리’하는 수준에 그치겠다는 표현으로 읽힌다. 문제는 ‘빚 내서 집 사라’는 식의 대책으로 일관하는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 기조 등을 고려하면 가계부채 관리나 실질적 축소 자체도 거의 불가능하며 오히려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2012년 말부터 어느 정도 증가 속도가 둔화되던 가계부채가 박근혜정부의 부동산 부양책을 배경으로 지난해 다시 급증했기 때문이다. 이런 부동산 부양책 기조를 지속하면서 가계부채를 관리하거나 축소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박대통령은 스스로 그렇게 믿든 믿지 않든 상관없이 결과적으로는 가계부채 폭탄을 더욱 키우는 결과만 낳을 공산이 매우 크다. 이미 한계에 이른 가계부채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위험천만한 ‘폭탄 돌리기’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구나 그 같은 우려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체제가 출범하면서 더욱 심화됐다. 이른바 최경환노믹스의 핵심은 온갖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주택대출규제 완화를 통한 집값 띄우기일 뿐이다. LTV, DTI 한도를 높이는 것은 빚을 더 내서 집을 사라고 하는 건데, 빚을 더 낼 수도 없다. 3~4개월 가량의 효과는 있겠지만, 그 효과가 이후에도 지속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실질적으로 노리는 효과는 제2 금융권에서 상대적으로 고금리대출로 빚내던 걸 제1 금융권으로 옮겨타라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이 대책으로 잠시 위험 요인을 완화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렇게 해서 하우스푸어들에게 5~6년을 버텨오게 했는데, 더 버티라고 하는 시그널을 주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 같은 조치들이 더 큰 폭탄으로 돌아올 때 절대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이다.


요약하자면 최경환노믹스의 본질은 빚 내서 경기 띄우기를 새롭게 포장한 것일 뿐이다. 일본의 아베노믹스를 흉내낸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부실 구조조정을 지연시켜 ‘잃어버린 20년’을 초래한 시절의 일본 정부의 정책과 더 닮아 있다. 그리고 이대로 가면 박근혜 대통령이 연초에 얘기한 가계부채 ‘관리’조차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지금도 가계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70%로 세계 최고 수준인데, 박근혜정부 말까지 이 기조로 가면 이 비율은 185%를 넘어서게 된다. 계속 이렇게 위태로운 길을 가려 하는가. 지금도 한국은 은행건전성 문제가 심각하다고 자본가와 기업가 집단의 대표격인 세계경제포럼이 보고 있는데, 한국경제의 조타수들은 ‘내 임기 안에 사고 안 나면 된다’는 안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이렇게 국민경제와 국민의 앞일을 생각하지 않을 때는 국민이 정부를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국민 스스로가 가계부채 다이어트를 서두르는 등 자구책을 차근차근 실행해야 한다. 내년으로 예정된 미국 FRB의 금리 인상을 신호로 전세계적인 금리 인상 시점이 멀지 않았다. 시간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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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4. 9. 30. 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