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피케티 주장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평가도 시작되지 못했는데 "때리기"부터 나서는 전경련과 동조 학자들, 그리고 사실관계도 제대로 따지지 않고 받아쓰는 언론들, 걱정스럽다. 이들 주장의 대부분은 거짓이거나 사실 호도이거나 왜곡된 해석에 가깝다.
일례로, 외환위기 이후 저성장 기조의 상당 부분이 바로 재벌 경제력 집중과 고용 불안 등과 연결돼 있다. 그런데도 이런 부분은 도외시하고 단순히 저성장 기조와 고령화 때문으로만 환원시키는 주장은 취사선택을 통한 왜곡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생산성 증가에 비해 저조한 노동소득 증가율을 언급하지 않는 것도 비슷한 주장이다.
시간이 있으면 더 자세히 반박하고 싶으나, 연구소 이벤트 기간에다 이번 주말에 있는 연구소 주최 특강 준비 때문에 다음으로 미룬다. 다만, 한국의 기득권 학자들의 주장은 피케티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매우 단순화거나 왜곡된 형태로 정리한 뒤 두들겨 패는 식이다. 이에 대해서는 현재 옥스퍼드대 경제사박사 과정에 재학중인 김동진씨가 다음달쯤 출간할 "피케티패닉(가제)"이라는 책을 참고해 보면 좋겠다.
그리고 피케티 방한 토론을 주최하는 매경에서 오늘 피케티교수와 사전 이메일 인터뷰를 한 제목이 "부자증세만큼 성장도 소득격차 해법"이다.
인터뷰전문을 공개하지 않고, 피케티교수의 답변을 중간중간 인용하는 식으로 돼 있지 않아 피케티교수의 답변이 정확히 인용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솔직히는 이런 경우 언론사 입맛에 맞춰 취지가 일정하게 굴절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당장, 인터뷰의 질문 내용이 답변의 방향을 규정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한국상황을 잘 모르는 피케티교수에게 기득권시각에서 보는 한국의 상황을 설명한 뒤, 이런 한국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으면 당연히 그런 질문 속에 포함된 주장을 전제로 한 답변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번 피케티교수의 답변도 그런 식으로 얻어낸 것이었을 가능성이 문맥상 높아 보인다. 그럼에도 피케티교수가 어떤 취지로 말했을지 기사를 읽어보면 어느 정도는 짐작된다.
그런데 매경의 제목과 부제목들은 "성장"을 강조하고, "한국, 미국-유럽과 불평등 처방 달라" 등의 제목으로 마치 피케티 주장과 진단 자체가 한국에서는 좀 달라져야 한다는 식으로 뽑혔다. 물론 구체적 상황에 따라 진단과 처방이 분명히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불평등이 매우 심각해졌고, 이미 피케티가 우려하는 세습자본주의가 재벌체제로 뿌리내린 나라에서 피케티의 문제의식과 주장의 적실성을 먼저 앞세우는 게 중요한 것 아닌가.
그런 부분들에 대한 얘기는 없이 결국 자신들 입맛에 맞춘 내용들을 주로 제목으로 뽑았다. 전경련 세미나처럼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아니나 결국 "한국에서 피케티 진단과 처방은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식의 주장으로 끌어가려는 시도로 보인다. 이게 내가 피케티의 한국 데뷔를 매경이 주관하는 것을 우려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피케티의 주장과 취지를 제대로 소개하기 이전에 재계와 이들의 대변자들은 때리기부터 하고, 매경은 피케티 주장의 핵심보다는 자신들 입맛에 맞게 굴절시키는 작업부터 하고 있다. 참 우려스럽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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