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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7월 11일 기업활동 관련 규제개선 과제 628개를 두 차례에 걸쳐 관련 부처에 건의했다고 밝혔다. 전경련은 지난 3월 대통령주재 규제개혁장관회의 이후 회원사로부터 1,300여 건의 규제개혁 과제를 발굴하였으며, 한국경제연구원과 공동으로 ‘규제개혁 TF’를 구성하여 과제를 검토한 후 4월과 6월에 정부에 건의했다.
이들은 별도의 보도자료를 배포해서 마치 자신들의 건의사항이 황당무계한 규제와 국제 추세와 동떨어져 한국에만 있는 이른바 ‘갈라파고스식 규제’를 혁파하기 위한 내용들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먹는 샘물 공장에서 탄산수를 만들려면 공장을 따로 세워야 한다든지, 에너지 효율이 좋아서 난방을 따로 안 해도 겨울에 제한 온도 이상으로 올라가는 건물은 제한 온도를 무조건 맞춰야 하는 규제 때문에 에어컨을 틀어야 한다든지, 치아미백제의 과산화수소 함량 제한이 국제 기준보다 지나치게 강하다든지 하는 것들을 ‘황당규제’의 예로 내세우고 있다.
과연 전경련이 제시한 628개의 규제개선 과제들은 이렇듯 황당하거나 국제 기준과 동떨어진 ‘갈라파고스식 규제’일까? 전경련이 겉으로 내세운 일부 규제들 가운데 그런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자신들의 숨은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대국민 홍보용일 뿐이다. 전반적인 실태는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전경련이 내세운 규제개선 과제 곳곳에는 대기업의 이익을 노골적으로 편드는 건의 사항들이 들어가 있다. 건의 중에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 폐지’, ‘소프트웨어 사업의 대기업 참여 허용 범위 완화’, ‘대기업 집단 소속 회사의 대규모 내부거래 변경공시 기준완화’, "대기업의 공간정보산업 공공입찰 허용", " 대기업의 레미콘 공공시장 참여 허용" 등 대기업 이익을 대변해온 전경련의 속이 훤히 보이는 건의사항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폐지’, ‘하도급 업체 단가결정(인하) 관련 예외조항 추가’와 같은 식으로 대기업의 하도급 관련 횡포를 막기 위한 장치를 없애거나 무력화하려는 시도들도 눈에 뜨인다.
‘유흥시설 없는 호텔의 학교주변 설립 허용’(한진그룹의 학교 주변 호텔 건설 추진), ‘대규모유통업체 영업규제 완화’(예를 들어 마트 영업시간 제한 및 휴일 영업 제한 완화) 등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사안에서 대기업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챙기기 위한 노골적인 건의도 수두룩하다.
전기요금의 3.7%에 해당하는 전력산업기반기금 재원 부담 축소 건의 역시도 대표적인 기업 이기주의적인 건의다. 안 그래도 산업용 전력은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으로 공급되고 대기업일수록 정부로부터 막대한 보조금을 받는 효과를 누리는 반면 상대적으로 가파른 누진구조로 인해 상당한 부담이 가정용 전력 요금으로 전가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력산업기반기금도 못 내겠다고 하는 것은 염치 없는 기업 이기주의에 불과하다. 전력산업기반기금을 내지 못하겠다면 대기업에 대한 사실상의 보조금 효과를 없애 산업용 전력 요금을 인상하고 사용량에 따라 누진제로 개편하면 된다. 자신들이 누리는 막대한 특혜는 생각지 않고, 최소한의 부담조차 지지 않겠다는 태도인 것이다.
‘부당노동행위 규정 명확화’, ‘불법파업의 정의 명확화’, ‘쟁의행위 기간 중 대체근로 허용’, ‘노사협의회 근로자대표성 부여’, ‘직장폐쇄 요건 합리화’ (사전적, 예방적 직장폐쇄 허용) 등 노동조합과 노동권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시도, 그리고 ‘연장근로 한도 위반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 삭제’, ‘해고금지기간・해고 예고 위반에 대한 벌칙 규정 완화’, ‘파견 허용 업종 확대’, ‘고령자 비정규직 차별 규제 완화’ 등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 사용자의 노동자에 대한 부당행위 등에 대한 처벌을 없애거나 완화해 달라는 건의들도 들어 있다.
재벌그룹들이 대부분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는 건설업체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건의도 빼놓을 수 없다. ‘분양가 상한제 폐지", " 미실현이익에 대한 개발부담금 폐지", "재건축부담금 폐지", "하도급 제한 일부 완화", " 재건축・재개발 소형주택건설 의무비율 완화", " 재개발 임대주택 의무건설비율 완화" 등이 그 예다.
이렇듯 전경련의 규제 개혁 건의는 몇 가지 황당해 보이는 규제들을 포장으로 두르고 있을 뿐 실제로는 대기업의 횡포를 막기 위한 장치들을 무력화시키고 노동권과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려는 시도들로 점철돼 있다. 이들이 내세우는 ‘황당규제’는 건의사항 곳곳에 박혀 있는 온갖 이기적인 요구에 비하면 지엽적인 내용들이다. 이런 내용을 자세히 분석해 보도하기는커녕 대다수 언론들은 전경련 보도자료에 나온 몇 가지 ‘황당규제’ 사례를 그대로 옮기며 전경련이 국민들 이익을 대변하는 것처럼 포장하거나, ‘갈라파고스에도 없을 규제’(매일경제신문 7월 11일자) 같은 선정적 제목으로 전경련 주장을 노골적으로 옹호했다.
이미 한국은 재벌 대기업들에 대한 각종 세제 및 재정상의 혜택과 각종 정책제도적 특혜들이 남발돼 왔다. 그 결과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의 법인 소득은 크게 늘어난 반면 중소기업은 설 자리를 잃었고 대다수 가계의 고용 불안과 소득 정체가 지속돼 왔다. 이런 상황에서도 ‘규제 완화’를 부르짖는 정권이나 이 와중에 국민들을 위하는 척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려는 전경련, 그리고 이들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읊어대는 대다수 언론들이 오늘날 서민경제의 붕괴를 가져온 주범들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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