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들하십니까? 이 단순한 인사말이 이처럼 깊은 사회적 울림을 주는 사회는 진정 안녕하지 못한 것이다. 왜 이렇게 안녕하지 못하게 된 것일까? 지금 우리가 안녕하지 못한 것은 단순히 한 정권 차원만의 문제는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최근 집권한 정권의 책임이 결코 가볍다는 것을 말하는 것 또한 아니다.) 좀 더 긴 사회경제적 흐름 속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1960년대 경제개발을 시작한 이래로 1980년대 후반까지 고속성장을 거듭해왔다. 이 때 한국경제는 만성적인 고물가와 노동 탄압, 재벌 편중과 토건 중심 성장 등 문제점도 많았지만 고속성장을 통해 많은 부분을 상쇄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지금보다는 가난했지만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좋아질 거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고도성장이 가져오는 경제적 혜택이 워낙 컸다. 대체로 경제 성장에 따라 일자리는 꾸준히 생겨났고, 가계소득도 해가 다르게 늘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가계소득이 매년 20~30%씩 늘어나는 게 다반사였다. 올해 연봉 5000만원이던 것이 내년에 6000만원이나 6500만원으로 늘어나는 식이었다. 유럽식의 복지와 사회안전망은 개념조차 희박했던 때였지만 경제성장에 따른 소득 증가로 대체로 많은 이들이 만족할 수 있던 시대였다. 물론 군부독재 시절의 정치적 폭압이 사람들을 불안하게 했지만, 경제성장의 과실이 그 같은 공포와 불안감을 달래주었다.

 

이 같은 고도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1980년대 후반부터 외환위기 직전까지 한국경제는 상당히 안정된 시기를 구가했다. 경제성장률이 한 단계 떨어졌지만 여전히 6~8% 수준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소득 격차는 사상 최저로 줄어들었다. 특히 1987년 이후 민주화운동과 노동자투쟁의 성과가 임금 상승과 가계소득 증가로 이어지면서 가계의 형편도 크게 좋아졌다.

 

하지만 그 상태는 오래가지 않았다. 1997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한국사회는 크게 달라졌다. 외환위기 여파로 상당수 중견기업들이 무너졌고, 상시적인 정리해고가 일상화됐다. 기업의 비용 절감이라는 명목 아래 비정규직이 급증했다. 1980년대부터 대기업을 중심으로 조금씩 도입됐던 일본식 종신고용제는 정착되기도 전에 무너졌다. 그렇다고 소수 상위 재벌들의 독식구조가 고착되면서 미국처럼 활발한 창업 및 산업생태계가 형성되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안정적인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일자리가 뿌리부터 흔들리니 삶이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일자리와 소득은 늘지 않는데, 가계지출은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가계들이 사치해서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거듭된 정책 실패와 왜곡된 경제구조 때문이었다. 부동산 거품을 제어하지 못해 주거비용이 올라갔고, 공교육이 무너져 사교육비가 늘어났고, 소수 대기업의 독과점 담합구조가 고착돼 상대적으로 비싼 물가를 감당해야 했다. 이 때문에 가계소득에서 가계지출을 뺀 개념인 가계수지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외환위기 이후 80% 가계의 삶이 뒷걸음쳤다. 양극화를 넘어 국민 대다수의 빈곤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다고 유럽식의 복지와 사회안전망이 있어 고용불안에 따른 생활수준 악화를 막아주거나 시장소득의 부족을 메워준 것도 아니었다. 김대중, 노무현정부를 거치면서 사회안전망과 복지 인프라가 큰 틀에서 조금씩 확충되기는 했으나 여전히 OECD 꼴찌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이 같은 불안감은 더 한층 증폭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4~5%대라도 기록했던 경제성장률이 2008년 이후에는 2%대를 기록하는 저성장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그나마 성장의 과실도 대부분 재벌대기업과 고소득층에 편중되고 있다. 2008년부터 5년 동안의 누적 경제성장률이 12%를 넘는데 실질가계소득 증가율은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이 단적으로 보여준다. 보통 가계소득 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더 큰 것이 정상인데 정반대 현상을 보인 것이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이 사상 최대의 실적을 연거푸 기록하는 동안 대다수 중산층과 서민들이 물가 부담과 생활고에 시달렸던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한국 경제는 만성 위기구조를 갖고 있다. 산더미처럼 부풀어 오른 부동산 거품과 가계부채는 언제 터질지 모른다. 공공부채도 이명박정부를 거치며 400조원 이상 더 늘어난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저출산고령화 충격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밀려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안녕하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상하다.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감과 스트레스 정도를 보여주는 단 하나의 지표가 있다면 자살률이라고 할 수 있다. 인구 10만명 당 자살자 수가 1983년에는 8.7명에 불과했고, 이 같은 자살자 수는 1991년에는 7.3명 수준까지 조금씩 떨어졌다. 하지만 이후부터 자살자 수는 꾸준히 늘기 시작하더니 외환위기 때인 1998년에는 18.4명까지 늘어났다. 외환위기 직후 이 수치가 좀 낮아지는가 싶더니 2002년 이후 다시 상승세로 반전했다. 그래도 노무현정부 후반에 살짝 떨어졌던 이 수치는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계기로 다시 껑충 뛰어올라 2011년에는 31.7명까지 늘어났다. 자살자 수가 가장 낮았던 1991년부터 따져보면 단 20년 만에 자살자 수가 네 배 이상 늘어나 OECD국가 가운데 가장 높다. 자살률이 늘어나는 과정을 보면 민생경제가 붕괴하는 과정과 거의 궤를 같이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사회경제적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얼마나 고조되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잘못된 사회경제적 구조로 인해 느끼는 불안감을 연령대별로 들여다보자. 20대는 치열한 사교육 경쟁과 대학시절의 스펙 경쟁에 시달리지만 대학 졸업 시점에는 겨우 10명 가운데 4.5명 정도만이 취업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일자리조차 없는데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있고, ‘미친 등록금으로 사회에 진출할 때부터 빚을 진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가까스로 결혼해도 결혼 시작부터 허니문푸어로 전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30대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디며 고용불안 등 경제적 풍상을 온몸으로 겪은 수난의 세대다. 2000년대 부동산 거품기에는 돈이 없어 깊은 상대적 박탈감을 맛봐야 했다. 30대 후반 가운데는 2005년 이후 뒤늦게 무리하게 빚을 내서 집을 샀다가 하우스푸어로 전락한 경우도 많다. 이 세대는 비정규직이 많고, 집값 폭등과 일자리 부족 등에 따른 생활고로 세계 최저 출산율을 현실화한 세대이기도 하다.

 

흔히 486세대로 불리는 40대는 그나마 상황이 좋은 편이다. 직장에서는 중견간부 이상의 역할을 맡고 있고, 상대적 직업 안정성과 고소득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세대다. 하지만 2000년대 부동산 거품기에 적극 가담해 하우스푸어로 전락한 이들도 많고 아이들의 사교육비 부담 등으로 큰 부담을 지고 있다. 직장 내에서도 극심한 승진경쟁과 과로에 시달리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승진경쟁에서 낙오하면 50대 초반에 조기은퇴가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모든 연령대를 통틀어 현재 50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불안한 세대가 돼가고 있다. 50대 초반에 정규직장에서 쫓겨나다시피 퇴직해 소득이 끊기는데 평균 30년 이상의 긴 노후가 남아 있다. 대체로 대학생 연령대인 자녀와 부모 부양 부담 때문에 돈은 한창 들어가야 할 시기다. 하지만 변변한 직장에 재취업하기란 쉽지 않고 노후준비는 거의 돼있지 않는데 국민연금을 받기까지는 10년 이상 남게 된다. 일자리는 쫓겨나고 소득은 끊겼는데 복지 혜택도 누릴 수 없으니 50대가 느끼는 막막함과 불안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일자리든, 소득이든, 복지든 모든 차원의 공백을 일시에 맛보게 돼 공포에 가까운 불안감을 맛보게 되는 게 바로 50대다. 특히 2011년부터 베이비부머들이 대거 퇴직하게 되면서 현재와 노후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는 50대는 어느 때보다 급증하고 있다. 2012년 대선에서 50대의 투표율은 상대적으로 매우 높았는데 50대의 불안감이 표출된 선거라고도 할 수 있다. 그 표출의 방향이 올바른 것이었는지는 정치적 견해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말이다.

 

이미 60대 이상 노령세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미 50대에서 악화되기 시작한 이런 문제들이 60대 이상이 되면 가파른 상승곡선을 타게 된다. 특히 건강 악화 등에 시달리지만 빈약한 복지인프라는 우리 노인들의 삶을 비참한 수준까지 끌어내리는 경우가 흔하다. 그 결과 60대 이상의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는 1980년대 15명 수준에서 이제는 80명을 넘기고 있다. 한국은 전반적인 소득 빈곤율도 높은데 65세 이상 노령인구의 소득 빈곤율은 OECD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다.

 

이처럼 우리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 극도의 불안감을 갖게 됐다. 이렇게 불안감이 커진 데는 이 나라가 시간이 지날수록 대다수 사람들이 살기 힘든 불량사회이자 나쁜 나라가 됐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과거 일본식의 종신고용제와 같은 안정된 일자리도, 미국식의 활발한 산업생태계도, 북유럽식의 탄탄한 사회안전망과 복지시스템도 없다. 우리가 예전에 가졌던 가족 간의 끈끈한 유대와 마을공동체의 상부상조의 미덕도 사라진지 오래다. 당장 내 한 몸 먹고 살기 힘든 판에 가족도, 공동체를 돌보는 것도 점점 사치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사회에 필요한 근본적 개혁을 하기는커녕 이명박정부는 가계부채와 공공부채를 막대하게 늘리면서 부동산 거품을 떠받쳐 한국경제가 새로운 활로를 찾는 것을 지연시켰다. 친재벌 정책과 4대강사업, 경인운하 사업과 같은 시대착오적 토건사업으로 노후 복지와우리 젋은이들의 교육에 투자할 소중한 자원들을 낭비했다. 국가를 수익모델로 삼은 집권세력의 부정부패는 심각했다. 이런데도 방송을 장악하고 국민들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이명박정부 5년 동안에도 크게 고통받았는데, 박근혜정부 또한 다를 게 없다. 어떤 면에서는 한 술 더 떠는 느낌이다. 대선 때 내세웠던 경제 민주화복지 강화니 하는 것은 이미 사기성 헛공약이라는 게 드러났다. 기초연금은 돈이 없어서 못하겠다는 자들이 길게 봤을 때 거래 활성화 효과가 전혀 없는 취득세 깎아주는 일에는 얼마나 적극적인가. 그렇게 해서 우리 아이들 무상보육에 쓸 수 있는 24천억원을 날려 버렸다. 이명박정부 시절에 가계부채를 동원해 집값을 떠받치는 것을 넘어 이제는 세입자들까지 물귀신처럼 부동산시장으로 끌어들여 제물로 삼고 있다. 일부 부동산 기득권세력의 탐욕을 충족하기 위해 왜 온 국민들이 고통을 받아야 하나?

 

민자사업으로 추진한 인천공항철도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 코레일에게 떠맡기고 장밋빛 환상 아래 추진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 무산 등 정책 실패에 따라 부채를 산더미처럼 쌓아올리고도 그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묻고 있다. 그리고 알짜배기 KTX노선을 넘겨주는 것을 경쟁이라는 미명 아래 실행하려 하고 있다. 뻔히 돈 될 수 있는 독점사업 노선을 넘겨주는 것은 경쟁 촉진이 아니라 특혜 제공일 뿐이다. 이미 몇 개 철도 노선을 민간에 매각하기로 했다는 언론 보도에서 볼 수 있듯이, 이것이 사유화(privatization)의 사전단계가 아니라고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국민이 안녕할 수 있는가. 박근혜정부, 이렇게 가다가는 국민만 안녕하지 못한 게 아니라 정권도 안녕하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국민을 안녕하지 못하는 정권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가?

 

 

 

 

 

 

<선대인, 미친 부동산을 말하다>가 전체 서점 종합 12위까지 올랐습니다.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대다수 언론이 '집값 바닥론'을 떠들고 있지만, 지금 부동산시장은 실은 매우 위험합니다. 평소 제 메시지를 잘 아시는 분들은 이 책 안 보셔도 됩니다. 다만, 제 경고의 목소리를 평소에 잘 듣지 못하는 50, 60대 분들을 위주의 주변분들에게 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 분들이 변화 양상을 알지 못하면 노후 생활이 위험해질 수 있고, 부동산정책의 구조적 전환도 지연되니까요. 미리 감사드립니다.  

 

by 선대인 2013. 12. 19. 1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