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우리는 종종 통계와 현실 사이에 놓인 괴리 때문에 혼란스러워 한다. 예를 들어서, 2013년 들어서 물가는 디플레이션이 걱정될 정도로 극히 낮은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몇 만원으로는 장도 볼 수 없다’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용어가 ‘기저효과(base effect)’’다.
기저효과는 착시효과와 비슷하다. 위 그림은 여섯 개의 원에 둘러싸인 가운데 원의 크기를 비교하는 것이다. 왼쪽과 오른쪽 그림 중에서 어느 쪽의 가운데 원이 더 큰가? 우리의 눈에는 자연스럽게 왼쪽의 가운데 원이 더 크게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이미 많은 분들은 알고 있겠지만) 두 원의 크기는 같다. 주위에 작은 원들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크게 보이고, 주위에 큰 원들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작게 보이는 착시 현상인 것이다.
기저 효과도 착시 현상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2013년의 경제 성장률이 3.0%라고 가정해 보자. 만약 2012년의 성장률이 4.0%였다면 상대적으로 올해 우리 경제의 성적이 별로 좋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반대로 2012년의 성장률이 2.0%이었다면 올해 우리 경제는 나아진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서, 현상을 평가할 때 비교 기준점이 어디인지에 따라서 똑 같은 현상도 다르게 보이는 것을 기저효과라고 할 수 있다.
<그림1>에서 상품수출액 추이를 실제 사례로 살펴보자. <그림1>의 위쪽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상품수출액은 2010년 1월부터 지속적으로 늘어났으나 2011년 말부터는 거의 정체 상태에 접어들어 이후로는 거의 증가하고 있지 못함을 알 수 있다. 큰 흐름에서 상품수출액이 4500억 달러 수준에서 거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수출 일변도 경제를 추구해온 한국경제가 이처럼 장기간 수출 정체를 빚고 있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며, 위험한 신호다. 그런데 이처럼 수출 정체를 빚고 있지만, 전년 동기대비로 수출 증가율을 나타내면 상당히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2013년 8월의 수출 증가율은 7.75%로 꽤 양호한 실적을 나타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처럼 수출 증가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것은 비교 기준점이 되는 2012년 8월의 수출 증가율이 -5.97%를 기록할 정도로 나빴던 측면이 크게 작용했다. 즉, 기저효과가 작용한 것이다.
<그림1>
최근 발표된 2013년 10월 소비자 물가가 지난해 10월에 비해서 0.7% 상승률로 14년 내 최저치를 기록한 것 역시도 기저효과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태풍 피해 때문에 물가가 급등한 시점을 기준으로 물가상승률을 계산하다 보니 물가상승률이 상대적으로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특히 지난해 같은 기간 물가 불안을 자극했던 농산물가격은 올해 10월에는 10.6%나 하락하면서 물가 안정세를 주도했다.
그런데 이 같은 기저효과에 따른 착시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또는 알면서도 착시현상을 그대로 전달해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정부 발표나 언론 보도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예로 최근 보도된 9월 주택 거래량에 관한 기사를 들 수 있다. 국토교통부는 8.28대책을 내놓은 뒤 9월 주택 거래량이 급증했다는 보도자료를 내놓았고, 언론들도 이를 거의 그대로 받아 ‘수도권 주택 거래량 81% 증가’ 등의 제목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림2>의 위쪽 그래프에서 보는 것처럼 수도권 주택 매매거래량은 2006년 말 이후 일시적 등락에도 불구하고 큰 흐름에서 구조적 침체기를 이어가고 있다. 2013년 9월의 2만 6766호의 거래량도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한 거래량이었다. 하지만 9월의 거래량은 4.1부동산대책의 일환으로 취득세감면 혜택이 주어진 6월 이후 찾아온 7,8월의 거래절벽 상태에 비해서는 미미하지만 늘어난 것이었다. 그런데 9월의 거래량을 거래절벽 상태에 가까운 8월 거래량을 기준으로 증가율을 구해보면 <그림2>의 아래 그래프에서 보는 것처럼 81%로 나타난다. 주택거래량이 바닥을 기고 있는 큰 흐름을 도외시한 채 지난 달 대비 증가율로만 나타내면 상당히 큰 폭의 거래 증가가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림2>
이처럼 기저효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한 엉터리 정보와 언론 보도가 이 나라에서는 난무하고 있다. 따라서 경제와 관련된 수치나 통계가 발표될 때 좀 더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국면을 보여주지 않고 기저효과에 따른 변화를 침소봉대하는 보도를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수치와 통계의 상대적 변화가 어떤 이유에서 일어났는지 그 원인을 정확하게 볼 수 있어야 기저효과의 함정을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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