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국내 건설업계의 경영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상위 50위권 건설업체의 경영현황을 살펴보자. 이를 보면 상위 10개 건설업체를 제외한 중견건설업체들이 평균적으로 이미 부실업체 수준에 다가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상위 50위권 건설업체(참고로, 건설부문 매출 비중이 50% 미만인 삼성물산, 두산중공업, 삼성에버랜드, 삼성중공업, 서브원, 효성 등 6개 업체는 제외했다)가 국내 건설업계의 향방을 좌우하는 업체들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상위 50위권 건설업체들의 매출액은 2006년 67.9조원에서 2012년 118조원으로 증가했다. 상위 50위권 건설업체의 영업이익은 2006년 5.1조원에서 2012년에는 2조원으로 절반 이상 감소했다. 또한 당기순이익은 2007년에 6조원을 기록했으나 2012년에는 -2.3조원으로 대규모 적자가 발생했다. 상위 50위권 업체들의 이익 감소 원인은 과당 경쟁으로 인한 원가율 상승과 PF사업 중단에 따른 부실사업장 증가로 인한 이자부담과 부실채권 등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또한 상위 대기업 건설사들이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해외 건설 사업에서 저가 수주로 인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것도 원인이다.
이 중에서도 상위 10위 건설사들은 정부의 각종 토목사업을 수주하고 해외 진출 등을 통해 어느 정도 버티고 있으나, 11~50위권 중견 건설업체들의 경영 상황은 훨씬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상위 10위 업체의 당기순이익은 2007년 3.2조원에서 2012년에는 1.7조원으로 거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그런데 같은 기간 11위~50위권 업체의 당기순이익은 3.2조원 흑자에서 -4조원까지 반전했다.
건설업체들의 경영 상태가 악화되면서 중견건설업체들의 부채가 위험 수위에 근접했다. 시공능력평가 순위 그룹별 부채비율을 <그림 1>에서 보면, 상위 10위권 업체의 부채 비율은 2006년 162%에서 2012년에는 193%로 소폭 증가했다. 그러나 11~50위권 업체(법정관리 및 워크아웃 업체 제외)의 부채 비율은 2006년 155%에서 2012년에는 317%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 비율은 상위 50위 업체 가운데 현재 법정관리 및 워크아웃을 진행하고 있는 업체들이 부실업체로 지정되기 직전인 2008년 평균 부채 비율인 341%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상위 10위 업체를 제외한 50위권 이내 건설업체가 사실은 거의 대부분 부실업체 수준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림 1>
주) 전자공시시스템 자료를 바탕으로 선대인경제연구소 작성
지금까지 본 것처럼 건설업계는 부동산 호황기에 앞 다투어 과잉 투자를 했던 건설업계는 구조적인 부동산 침체기를 맞아 심각한 경영 위기를 맞고 있다. 아직 국내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본격적으로 빠지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경영 악화가 심각한 것이다.
이처럼 건설업계의 전반적인 경영 사정이 악화된 것은 정부 차원에서 추진한 각종 구조조정 실패와 부동산 및 건설 부양책과 관련 있다. 경제위기 이후 정부의 각종 부동산 부양책과 건설업계에 대한 직∙간접적인 자금 지원 등으로 시장에서 퇴출돼야 할 부실 건설사들이 계속 살아남았다.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등을 통해 경쟁력 없는 이른바 '좀비기업' 상태에서 건설시장 파이를 잠식했다. 그 결과 그나마 양호했던 다른 중견 건설업체들의 체력이 계속 약화되면서 부실 건설사로 전락하고 있다.
연착륙론에 기댄 정부의 부동산 부양책이 가계부채를 증가시키는 등 경착륙 위험성을 높인 것과 똑 같은 현상이 건설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건설 부양책으로 당장 일부 건설업체들이 도산하는 것은 막았지만, 결국 시장파이에 비해 비대한 건설업계 전체가 공멸할 위험성이 더 높아진 것이다. 상위 50위 내 대다수 중견건설업체들의 부채 비율이 지난 몇 년 동안 계속 높아져 이들 업체 대부분의 부채비율이 부실업체 수준에 이른 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금의 건설업계는 개발연대와 주택 투기 붐이 일던 시대에 급속도로 몸집을 불려왔다. 그러나 언제까지 개발과 투기가 이어질 수는 없다. 국내 건설업 비중은 OECD 국가들 평균의 두 배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를 언제까지 유지하며 건설업체들을 모두 먹여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고 4대강사업과 같은 대규모 공공토건사업을 통한 건설 부양책도 한계에 이른 마당이다.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해지면 건설업계는 지금보다도 훨씬 심각한 줄도산 사태를 맞을 위험이 점점 커지고 있다. 퇴출되어야 할 기업들조차도 ‘좀비’처럼 살아남아 영업활동을 전개하다 보니 시장 상황은 갈수록 어지러워지고 있다. 이른바 ‘핸드폰 컴퍼니’라고 부르는 업체들이 ‘일단 살고 보자’는 심산으로 건설 입찰 과정에서 덤핑 수주를 남발해 건실한 업체들까지 함께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회생가능성이 거의 없는 부실 건설사들에게 채권단이 추가 자금을 지원하게 되면 장기적으로는 부실 규모와 손실액이 커질 수 있다.
지금 한국은 일본의 전철을 피한다고 하면서 실은 일본의 전철을 되밟아가고 있다. 일본도 부실 건설업체와 부실 채권 정리를 미루면서 대규모 건설부양책을 동원하는 바람에 오히려 큰 위기를 맞았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자 이를 막기 위해서 1992~1995년 동안 무려 66.9조 엔에 이르는 경기부양 대책을 쏟아냈다. 경기부양 대책 말고도 2조 엔씩 세 차례 보완 대책이 나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총 재정투입은 73조 엔에 이른다. 이는 1994년 일본 정부의 일반예산 규모와 맞먹는 액수였다.
이처럼 막대한 재정을 경기부양 대책에 투입했지만 결국에는 버블 붕괴를 막지 못했다. 오히려 시장에서 퇴출돼야 할 부실 건설업체들의 상당수가 ‘재정호흡기’에 매달려 목숨을 부지했다. 그 결과 버블 붕괴 초기 건설업체의 도산이 일어나다가 1990년대 중반까지 일본의 건설업체 수는 오히려 늘어났다. 이에 따라 업체들간 과당 경쟁이 벌어졌고 부실기업의 퇴출이 제대로 이뤄졌더라면 살 수 있었던 기업들조차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좀비기업으로 전락했다. 그 결과 건설사의 부실은 <그림2>에서 보는 것처럼 1991년 버블 붕괴 후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계속 증가했다. 결국 금융권의 부실 증가로 번져 장기 침체를 가져오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림2>
주) 일본 총무성 통계국 자료를 바탕으로 선대인경제연구소 작성
따라서 건설업계에 대한 정부 정책 방향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국민의 혈세를 동원한 대기업 건설업체 퍼주기를 중단하고 부실 건설사들을 과감히 시장에서 퇴출시켜 건실한 건설업체들이라도 살리는 ‘옥석 가리기’를 지금이라도 진행해야 한다. 만약 이런 상태로 시장 퇴출이 일어나는 본격적인 구조조정을 계속 미룰 경우 수익 악화와 유동성 위기로 수 년 안에 중견건설업체들이 줄도산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정부 정책은 이 같은 건설업 구조조정과 부동산 시장 축소로 발생할 충격을 최소화하는 정책에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퇴출 건설업체 임직원들과 관련 종사자들에 대한 실업 대책, 그리고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도록 재정지출의 우선순위를 바꿔야 하는 것이다.
건설업계 역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진행해야 한다. 지금까지 선분양제와 분양가 폭리로 손쉽게 돈을 벌어오던 아파트 건설에 치중된 사업 비중을 줄여야 한다. 각종 로비나 비리, 담합, 불법하도급과 같은 부패 경영에서 벗어나야 하며, 특히 재벌 계열 건설사는 ‘대기업의 비자금 창구’라는 오명을 씻어야 한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사업 영역의 변화도 필요하다. 친환경 에너지 절감 빌딩, 재생에너지 및 관련 플랜트 산업을 비롯해서 기술력 향상과 신규 사업영역 확대를 통해서 변신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부동산 패러다임 전환기의 생존법> 특강(11월 25일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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