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주택 가격은 소득이나 물가 상승수준에 비해 매우 높다는 점은 거의 대부분 가계가 체감하고 있고 지표상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지나치게 부풀어오른 ‘미친’ 주택 가격은 어떤 식으로든 정상적 수준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 같은 주택 가격이 조정되는 시장의 가격조절 메커니즘을 교란하며 온갖 부양책을 남발했다. 2008년 이후 약 400조원의 공공부문 부채를 늘려 직간접적으로 건설 및 부동산 부양에 쏟아부었다. 저금리 정책과 가계대출 상환 만기 연장, 재건축 규제 완화, 각종 부동산세 감세 등 온갖 제도적 부양책도 아끼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진짜 서민들이 겪고 있는 전세난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는 태도가 역력했다. 오히려 전세난을 방치하며, “서러우면 집을 사라”는 식의 태도를 보여왔다. 그나마 최근 박근혜대통령의 주문에 움찔하며 대책을 논의하고 있지만, 그 대책이라고 논의되는 것들이 모두 무주택서민들이 아닌 부동산 다주택자나 건설업계 등을 위한 대책이다.

 

 

더구나 주택건설업체들의 부설 연구소나 상당수 부동산 광고에 목을 맨 언론들도 주택 매매가가 떨어질 때는 온갖 부양책을 내놓으라고 난리를 치더니 전세가 상승세에 대해서는 “전세시장으로 수요가 몰려서 그런 것이니 매매수요로 전환되도록 하라” “실수요자의 경우 주택을 사는 것을 고려하라”는 식으로 ‘집 사라’는 조언(?)이나 내놓고 있다. 부동산시장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호들갑떨던 언론들이 이제는 표변해 ‘전세대란’ 등의 용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해 세입자들의 불안감을 키우며 다주택 소유자들의 전세가 끌어올리기를 ‘엄호사격’하고 있는 꼴이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정부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부동산 부양책을 통해 다주택 소유자들이 계속 최대한 ‘버티기 모드’로 들어가 주택 처분을 미루는 한편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폐지나 임대소득세 감면 등 세 부담을 줄여주는 등의 방식으로 버티게 하고 있다. 그리고 다주택 소유자들이 투자(또는 투기 실패)를 만회하고 대출이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거나 전세가를 최대한 끌어올리게 방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전세시장 내에서 전세 수요는 느는데, 전세 공급은 줄어 전세가가 치솟고 있는 것이다. 결국 포장은 전월세대책이라고 하지만, 전월세 가격을 계속 치솟게 만들면서 주택 소유자의 손실을 세입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서러우면 집 사라’는 메시지를 계속 던지며 남아 있는 무주택 세입자들로 하여금 무리하게 지금도 너무 높은 집값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전세난 초기부터 써온 표현이지만, 집값을 떠받치기 위해 세입자들을 무리해서라도 집을 사게 몰아대는 ‘토끼몰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나의 억측이라고? 전혀 그렇지 않다. 내가 언론사 토론이나 대담 자리에서 만난 부동산업계, 건설업계를 대변하는 전문가(=이해관계자)들은 “전세 수요를 매매 수요로 전환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권의 경제정책통도 똑 같은 소리를 한다. 그리고 그 같은 소리가 며칠 전 박근혜대통령이 전월세대책을 내놓으라며 한 발언에서도 나왔다. 지금 사람들이 충분히 소득이 있는데도, 집을 일부러 안 사고 있다면 일리 있는 말이다. 물론 그런 이들도 일부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2000년대 내내 집값이 오르면서 빚을 내서 집을 살 사람들도 집을 거의 다 사버렸다. 더 이상 지금의 높은 집값을 떠받칠 수요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뜻이다. 더구나 최근 몇 년 동안 가계소득은 거의 늘지 않았고 정부 부양책으로 집값은 여전히 너무 높으니 집을 살래야 살 수가 없다. 정말 온전하게 집 살 사람이 남아 있지 않다는 방증이 바로 어제 발표된 2분기 가계부채 증가율이다. 올해 1분기에 주춤했던 가계대출 증가액은 정부 4.1부동산대책 발표 후 취득세 감면을 앞두고 급증해 17조원이나 늘어났다. 빚을 지지 않고서는 집을 살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 아닌가. 정부는 이걸 부동산 연착륙 대책이라고 주장하지만, 부동산 거품 붕괴의 에너지라고 할 수 있는 가계부채가 계속 느는데 이게 경착륙 대책이 아니고 무슨 연착륙 대책인가.

 

 

정말 정부가 전세 수유가 매매 수요로 전환되기를 바란다면 가장 좋은 방법이 있다. 집값을 지금처럼 억지 부양하지 말고 부동산시장의 가격조절 메커니즘에 맡겨 주택 가격이 순리대로 떨어지게 하는 것이다. 집값이 충분히 떨어지고 집값 바닥이 일정하게 형성되면 어느 시기부터는 집을 사지 마라고 말려도 소득 여력이 축적된 세입자들부터 매매 수요로 전환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세가의 기준점이 되는 매매가가 떨어지니 전세가도 떨어지고, 전세 수요가 매매로 자연스레 전환되니 전세가가 떨어지고, 빚 많은 집주인들의 고부채 전세가 부실을 정리하고 ‘안전한 전세’로 바뀌어 시장에 나오게 되니 전세가가 안정된다. 즉 집값만 교란하지 않고 순리대로 떨어지게 하면 지금의 전월세난은 다 해결된다. 그런데 그것을 억지로 가로막으니 전월세가 상승과 같은 온갖 문제가 발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다시 부동산업계나 건설업계가 자신들과 부동산 다주택자 등을 위해 제시한 내용을 전월세대책이라고 포장하는 과정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겉으로는 세입자들을 위한 대책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집값 떠받치기 대책인 경우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전월세자금 대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국민주택기금 등에서 전세 대출을 확대해 당장은 서민가계에 도움을 주는 것처럼 생색내고 있지만, 이는 길게 보면 서민가계를 더욱 힘들게 할 뿐이다. 실제로 <그림1>을 보면 전세가격이 급등하면서 전세대출 역시 급증하고 있다.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전세대출보증 금액 추이를 <그림1>에서 보면, 2006 17353억원이었던 전세자금보증 금액이 2012년에는 108679억원으로 늘었다.

 

<그림1>

 

) 한국감정원 및 주택금융공사 자료를 바탕으로 선대인경제연구소 작성

 

물론 전세 가격이 뛰어서 전세자금 대출이 늘었던 다른 한 쪽의 측면도 무시할 수 없으나 기본적으로는 전세자금 대출이 전세시장의 유동성을 늘려 집주인들이 높여 부르는 전세가에 세입자들이 맞춰주도록 만들어 상승세를 오히려 부추긴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시장이든 돈이 풀리면 그 시장에서 거래되는 재화의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매우 간단한 경제원리다. 따라서 향후 전월세자금 대출은 지금처럼 무분별하게 퍼주는 식이 아니라 오히려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을 위해 그들의 상환능력을 고려해 한도와 전체적인 대출 규모를 대폭 축소해 필요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

 

 

이제 결론을 내자. 앞서 설명했듯이 주택가격이 본격적으로 하락하면 전세가도 떨어지게 돼 있다. 그 같은 자연스러운 시장의 가격조정을 정부가 나서서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주택시장의 침체는 길어지고, 서민들의 고통은 더욱 가중될 뿐이다. 서민들이 전세가 상승으로 고통 받고 있는 것은 한두 해가 아니다. OECD국가 수준이 10~35% 수준에 비해 형편없이 적은(4% 수준) 공공임대주택 비중을 시급히 늘려야 한다고 우리 연구소는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또한 유럽 등에서 활발하게 공급되는 협동조합주택 공급 등을 늘려 주택 수요자의 다양한 욕구를 반영하면서도 저렴한 가격에 쾌적한 주거생활을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공공임대주택과 조합주택 등을 획기적으로 늘리면 이처럼 매년 이사철만 되면 많은 서민들이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도 이명박정부는 오히려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줄이고 분양용, 매매용 주택을 대대적으로 짓는 보금자리정책을 펼쳤다. 박근혜정부도 더 나을 게 없다. 분양용, 매매용 주택으로 공급된 보금자리 주택을 중단하거나 취소할 수는 있으나 정말 지금의 전월세난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그 자리에 장기전세나 장기공공임대 주택을 짓겠다는 정책이 따라나와야 한다. 그런데 일언반구도 없다. 또한 최근 1,2년 사이에 도시형생활주택이 공급되면서 월세가 떨어졌는데, 이를 공급 과잉이라며 공급 억제책을 쓰겠다고 했다. 정말 정부가 전월세가격이 안정되기를 바란다면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수급이 조정되도록 하면 될 텐데 이를 억지로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세입자가 아닌 건설업계나 월세 수익을 노리는 부동산 부자들의 입장에 서 있음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세입자들은 정부의 이 같은 토끼몰이에 당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당장 전월세 가격이 올라 서럽고 힘들겠지만, 기득권 언론들의 선동에 혹해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사면 '하우스푸어'로 가는 고속도로를 타게 되는 것이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현재의 소득 여력에 맞춰 전월세를 택하기를 바란다. 통근 거리가 좀 멀어져도 수도권 외곽으로 빠지면 아직도 전월세 가격은 상대적으로 낮은 지역이 많다.정부가 아무리 부동산가격을 떠받치려고 해도 98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를 근원으로 한 부동산 거품은 떠받칠 수 없다. 집값이 본격적으로 하락하면 지금의 전월세난은 해소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정부의 근본적인 태도 전환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지금처럼 기득권세력들을 위해 억지로 집값을 떠받치려는 시도는 서민들의 고통만 낳을 뿐이다. 지금이라도 집값이 일정한 수준까지 하락하도록 하는 것이 서민들의 전월세난을 완화하고 인구감소, 저출산고령화 시대 변화하는 주택 패러다임에 걸맞은 주택정책을 마련하는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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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3. 8. 23. 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