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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발표된 2013년 세법개정안이 발표 나흘만에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로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미 자신이 최종적으로 발표를 허락한 사안에 대해 딴 세상 이야기인 것처럼 사과 한 마디 없이 재검토를 지시한 것인데, 전형적인 ‘유체이탈화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박근혜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아직 국민들이 느끼는 이번 세법개정안의 문제가 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박대통령은 전면 재검토를 지시하면서도 “이번 세제 개편안은 우리 세제의 비정상적인 부분을 정상화하려고 했다”며 “특히 고소득층에 상대적으로 유리했던 소득공제 방식을 세액공제 방식으로 전환해서 과세의 형평성을 높였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많은 봉급생활자들이 반발한 것은 단순히 세부담이 늘었기 때문이 아니다. 세부담 증가가 각 납세주체별로 골고루 이루어졌다면 이 같은 박탈감음 없었을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박대통령이 지적한 것과 같은 근로소득세 안에서 소득계층간 형평성에 제고되지 않아서가 아니다. 대기업과 부유층, 자산가의 세부담은 늘리지 않으면서 근로소득자들 부담만 늘리니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것 아닌가.
하지만 세계에서 저출산고령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복지를 획기적으로 확충할 세수를 어디에서인가는 확보해야 한다. 그렇다고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극심하고 조세제도에 따른 소득재분배 효과가 OECD국가들 가운데 가장 낮은 점을 고려하면 무턱대고 모든 납세자에게 세부담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조세 형평성을 확보하고 서민과 저소득층의 혜택을 크게 늘리는 방향으로 세금을 걷고 써야 한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법인세와 자산세 등을 올리고, 고소득층의 최고세율 신설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같은 방향은 틀린 건 아니지만, 결코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아래에서 한국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세수를 마련해 써야 할지를 크게 7가지로 정리해보았다. 아래에 언급한 수치는 선대인경제연구소가 그동안 연구를 통해 이미 확인한 수치임을 참고로 밝혀둔다.
1. 현재 약 시세의 30~50% 수준에 불과한 단독주택과 대기업 보유 부동산의 과표를 현실화하고, 소득조사청을 설립해 법에 명시된 양도소득세와 임대소득세를 제대로 거두면 약 20조 원의 세수를 더 확보할 수 있다. 이렇게 거둔 세금을 서민들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건설과 주거 취약층을 위한 주택바우처 재원으로 사용해 ‘전국민 주거안정망’ 구축에 사용할 수 있다.
2. OECD국가들 대부분이 실시하는 주식 양도차익에 과세하고 주주배당 소득을 강화하는 반면 증권거래세는 폐지해 일반 개미투자자들의 주식거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약 3조원 확보 가능) 지금 매우 낮게 책정된 배당금에 대한 세율도 ‘버핏세’의 취지에 맞게 대폭 올려 불로소득(자본이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3. 재벌대기업에 집중된 법인세 비과세감면 혜택을 대폭 줄이고 해고세를 신설하면 7조원~11조 원 가량의 세수를 더 확보할 수 있다. 그렇게 확보한 재원으로 실업보험 확충과 자영업의 고용보조금 등으로 사용해 실업충격을 줄이고 일자리를 늘리는 한편 최저임금을 꾸준히 올릴 수 있다.
4. OECD 평균 두 배에 이르는 토건사업예산을 크게 줄여야 한다. 20012년 현재 정부가 분류한 SOC사업 예산뿐만 아니라 각 부처에 흩어져있는 토건시설형 사업을 모두 집계하면 약 40조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교통시설특별회계와 광역시설특별회계 등 토건사업의 자금줄인 특별회계를 폐지해 일반회계로 통합하는 한편 건설부패와 예산낭비의 온상이 되고 있는 턴키담합 등 입찰비리를 근절해 토건시설예산을 30% 가량 줄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확보한 연간 약 12조원으로 보육 확대 및 아동수당, 고교무상 교육과 지방 거점국공립대 지원 등 우리 아이들과 청년들의 미래에 투자할 수 있다.
5. 혜택의 대부분이 대기업에 돌아가지만 효율성이 극히 떨어지는 R&D 예산 16조원을 OECD 평균 수준으로 줄이면 4.9조원을 확보할 수 있다. 이들 예산을 중소기업 및 자영업의 직원교육 및 판로, 사업컨설팅 지원과 함께 신진학자와 대학생들의 연구 및 학자금 지원에 쓸 수 있다.
6. 중소기업 업종 침범 대기업에 법인세와 부가가치세를 1.5배 이상 중과하고 재벌대기업 일감몰아주기 및 이로 발생한 대주주의 배당소득에 중과세하면 한 해 1조원 이상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재원으로 중소기업과 자영업 육성 펀드를 조성하고 자영업 R&D센터를 건립, 운영할 수 있다.
7. 각종 입찰비리 등 건설부패 행위에 대해 강력히 대응하고 여기에서 생겨나는 비자금을 엄단해 추가로 거둔 세수(약 2조~3조원)를 적정임금제 도입과 4대 보험 적용 등을 통해 전국 200만 건설노동자의 낮은 임금과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는데 쓸 수 있다.
이처럼 일곱 가지 조세재정개혁만 제대로 실현해도 연간 50조~55조원의 추가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물론 이 가운데 일부는 일반 납세자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낭비성 지출을 줄이거나 재벌대기업 등 1%가 누리던 특혜를 일반 납세자의 혜택으로 전환해주는 것이다. 즉, 나라 살림살이를 잘만 운영하면 국민들의 추가적인 세금 부담 없이 얼마든지 복지와 문화, 교육 예산을 늘리고 우리들 삶의 질도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증세(增稅)에 앞서 새나가는 세금을 잡아내고 공정하게 걷는 정세(正稅)와 낭비성 재정지출을 줄여 복지 등 친생활 부문으로 전환하는 전세(轉稅)만 제대로 해도 막대한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 이 같은 정세와 전세를 먼저 진행하거나 병행하면서 사회적 합의에 따라 증세를 도모하는 것이 좀 더 합리적이고 효과적이다. 세금 적게 내는 부자가 주변에 널려 있고, 우리가 낸 세금이 4대강 바닥에 허무하게 소진된다면 세금을 기꺼워하며 더 내겠다는 사람은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공정한 과세가 없이는 증세에 대한 합의도 이루기 어렵다. 예를 들어, 한국은 상대적으로 소득 파악이 손쉬운 봉급생활자들의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하는 등 매우 엄격히 매기지만 고소득 전문직들의 소득 파악은 허술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니 봉급생활자들은 ‘유리지갑’이라고 스스로를 비웃는 실정이다. 소득 파악이 안 되니 탈세가 만연하고, 꼬박꼬박 성실하게 세금을 내는 사람이 오히려 바보 취급을 당하는 풍토가 만연해 있다. 이번 세법개정안에 대한 반발이 커진 것도 바로 이런 봉급생활자들을 또 한 번 바보 취급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예로, 법인세 부담 실태는 어떤가.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세금 부담 때문에 기업하기 어렵다고 엄살을 피우고 있다. 그러나 2012년 기준으로 OECD 34개국 가운데 한국은 21위로 법인세율이 낮은 축에 속한다. 그나마 우리나라보다 세율이 낮은 나라들을 보면 인구가 많아야 수백만 명 수준인 도시국가와 과거에 공산권에 속해 있던 동유럽 국가들이 대부분이다. 반면 경제 대국인 일본과 미국이 1, 2위를 다투고 대부분의 선진국이 우리보다 법인세율이 높다. 법인세율이 높아 기업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기득권 언론들의 주장은 거짓말인 셈이다.
명목상의 세율이 아닌 각종 비과세 감면 혜택을 받고 난 뒤 내는 실효법인세율은 더욱 낮다. 더구나 어이없는 것은 대기업의 실효세율이 중견기업보다 오히려 낮다는 것이다. 2010년 국세청의 법인세 과세표준 기준으로 200억~500억 사이의 중견 기업은 18.6%의 실효 세율을 내지만, 5000억 원 이상 대기업은 17.0%만 낸다. 특히 2008~2011년 삼성전자의 실효세율은 16.7%였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의 31%나 IBM의 28.1%와 비교하면 형편없이 낮은 세율을 적용받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재벌 기업이나 고소득층에 대한 과세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세금은 4대강사업과 같은 토건사업이나 대기업 위주의 R&D 투자 등에 과도하게 쓰다 보니 과세와 공공소득 이전을 통한 불평등 완화 효과가 OECD국가들 가운데 가장 낮다. 이 같은 추세는 이명박정부의 감세정책으로 더욱 극심해졌는데, 계층별 세금 증가율을 분석해 보면 명확히 드러난다. 노무현정부 당시 소득계층별 세금증가율은 하위 20%는 7.2%, 하위 20~40%는 3.8%인데 반해 상위 20%는 63.7%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서는 하위 20%는 43.5%, 하위 20~40%는 65.7%나 세금 부담이 늘었지만 상위 20%는 13.2%에 불과했다. 부자 감세의 부담을 고스란히 서민과 중산층이 뒤집어 쓴 것이다.
이처럼 돈을 어떻게 걷고 어떻게 쓰느냐에 복지는 취약한데 서민들 세금 부담은 크게 늘 수도 있고, 복지 혜택을 충분히 누리면서도 서민들 세금 부담은 최소화할 수도 있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복지 선진국들은 대체로 후자의 방향으로 나라 살림살이를 꾸려왔다. 북유럽 국가들의 부자들이 많게는 50%가 넘는 세금을 내면서도 큰 불만을 가지지 않는 이유도 소득을 투명하게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공정하게 과세했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재벌일가들이나 고소극층이 비자금을 만들고 탈세를 관행(?)으로 여기는 풍토와는 천지차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세금을 공정하게 걷고, 제대로 쓰기만 해도 서민들이 세 부담을 크게 늘리지 않으면서도 충분한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상당수 언론들은 복지를 확충하면 마치 서민들도 ‘세금 폭탄’을 맞을 것처럼 선동해 왔다. 이런 얄팍한 선동에 속지 않고 정의로운 세금혁명을 이룰 수 있다면 우리의 미래가 확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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