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낙찰=부실공사'는 건설업계의 거짓말


상당수 건설업체는 매년 10조원 가량의 국민 혈세 낭비를 막을 수 있는 최저가 낙찰제 도입을 극구 반대하고 있다. 처음 도입이 논의될 때는 도입 반대를, 단계적 도입이 결정되고 나서는 시행 유보 요구를 해마다 되풀이하고 있다.

아파트 투기거품이 붕괴된 뒤 건설 경기가 침체하자 건설업계는 이를 명분으로 지난 해 하반기부터 줄기차게 최저가낙찰제 시행 유보를 정부에 건의했다. 이를 받아들여 재경부는 지난 달 29일 올해부터 시행할 예정이던 100억원 이상 공공공사의 최저가낙찰제 시행을 유보한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확대 시행을 유보하는 이유로 ▲2004년 하반기 이후 건설투자 증가율이 대폭 둔화되는 등 건설경기 선행지표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으며 ▲최저가낙찰제의 낙찰율이 지나친 수주경쟁으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건설경기 위축에 따른 건설업계의 채산성 악화가 수주경쟁을 심화시키게 되고, 수주경쟁 심화가 다시 채산성을 악화시키게 된다는 논리였다. 한 마디로 건설업체들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수 조원의 국민 혈세를 들여 건설업계의 이익을 보전해주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정부의 논리는 이보다 두 달 전인 지난 해 10월 대한건설협회 등 11개 건설사업자 단체와 전경련이 정부에 건의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건설업계는 '건설산업 활성화를 위한 정책개선과제'라는 건의서에서 "최저가낙찰제 시행으로 최근 낙찰률이 급락하는 등 덤핑이 속출하고 있어 건설산업의 기반 와해 및 국가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업계는 또 최저가낙찰제를 시행할 경우 ▲예산절감 효과는 발생하나, 장기적으로 공사부실 증가에 따른 추가비용이 발생하고 ▲건설업계의 적자 누적에 따른 경영 악화 및 기술 개발 투자여력 상실로 산업 경쟁력이 사라지며 ▲부실소지가 있는 공공시설물 이용으로 국민 안전에 위협이 된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였다.얼핏 들으면 그럴 듯 하지만 정부와 건설업계의 논리는 사실과는 다른 측면이 많다. 경실련 김헌동 국책사업감시단장은 이 같은 주장에 대해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수조원의 돈을 걷어 건설업계에 몰아주는 현실을 호도하는 논리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왜 그런지를 따져보자. 54%에 수주한 도로공사도 20% 마진 남겨...'밑지고 장사한다'식 엄살?





[표]서울지하철공사가 2003년과 2004년 발주한 공사의 낙찰율. 공사측은 "낙찰율이 낮아져도 시공업체들은 이윤을 봤다"고 밝혔다.

▲10~20%씩 남는데도 밑진다고?=

건설업계의 덤핑 수주 우려는 사실일까. 우선 단기적으로 밑지면서도 장기적으로 이익을 보는 것까지 덤핑 수주로 정의해야 할지 논란이 일 수 있다. 하지만 일단 공사 한 건당 밑지고 수주하는 것을 덤핑 수주라고 정의하자. 이렇게 따져도 우리 건설업계가 최저가낙찰제 시행 이후 지금까지 정부 공공발주 공사를 밑지고 수주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재경부 자료에 따르면 최저가낙찰제의 낙찰율은 65.8%(2001년)--- > 63.0%(2002년)--- > 60.1%(2003년)---- > 59.7%(2004년)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하지만 건설업체들은 이 정도 낙찰율로 수주해도 밑지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상당한 수준의 이윤을 남기고 있다.

미디어다음이 입수한 한국도로공사의 '2001년~2002년 부대입찰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1년 최저가낙찰제에 따라 시행된 공사 가운데 가장 낮은 낙찰율을 보인 공사는 익산~포항간 고속도로의 익산~장수간 건설공사(제3공구)였다. 정부 예정가격 1080억원이었던 이 공사를 S기업은 599억여원에 수주했다. 당시 낙찰율 53.95%는 지난 해 이 제도 시행 대상 전체 공사의 평균 낙찰율보다 6%포인트 가량 낮은 수준. 하지만 이 공사에서 S기업은 S토건에 토공공사와 철근콘크리트공사 부분 235억여원의 공사를 186억여원에 하청을 줘 여기에서만 49억원 가량의 마진을 남겼다. 20% 가량의 마진을 남기는 셈. 이들 공사 수주업체들은 각종 관리비용을 빼더라도 상당한 액수의 순수입을 올리는 셈이다.

2002년 고속국도 무안~광주간 건설공사(제2공구)의 낙찰율은 56.96%. 이 공사를 수주한 D건설은 모두 214억원 규모의 토공공사와 철근콘크리트공사를 184억원 가량에 하청업체에 넘겨 13.7%의 마진을 챙겼다. 같은 공사의 제 1공구 사업을 59.52%의 낙찰율로 수주한 N토건도 15%의 마진을 챙기고 하청업체에 공사를 넘겼다. 고속국도 고창~장성간 건설공사(제 3공구)에서도 예정가격의 58.5%에 수주한 S기업도 18.3%의 마진을 남기고 하청을 줬다. 최저가낙찰 도입한 서울지하철 "우리가 30% 절감해도 건설업체 이윤 남아"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지하철 공사가 전동차 안에 설치한 스테인레스 불연 의자. 공사는 최저가낙찰제 등을 활용해 여기서도 다른 지하철공사에 비해 30% 이상 예산을 절감했다.[사진제공=연합뉴스]

최저가낙찰제 아래에서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수주한 경우라도 공사를 수주한 원도급 업체는 상당한 마진을 남기는 셈이다. 물론 이렇게 수주된 공사의 대부분은 하청과 재하청을 거치기 때문에 실제 공사 원가는 더욱 낮아진다. 이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예상 못한 자재값 등의 인상 등으로 적자 공사를 하게 되는 하청 업체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불필요한 중간단계 때문이지 입찰제도 때문에 적자를 보는 것은 아닌 셈이다.

실제로 지난 해 3월부터 최저가낙찰제를 도입한 서울지하철공사의 사례는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2003년 적격심사제 방식에 따라 지하철공사가 발주한 사업의 평균 낙찰률은 86.33%. 하지만 지난 해의 평균 낙찰률은 67.73%로 크게 떨어졌다. 이를 통해 지하철공사는 당초 예산액의 25~30%가량인 300억원 가량의 예산을 아낄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지하철공사는 최종 시공사가 바로 공사를 수주할 수 있게 해 몇 단계에 걸치던 복잡한 중간단계를 없앴다. 강경호 공사 사장은 "최저가 낙찰제를 시행하면서 복잡한 중간단계를 줄이고, '나눠주기식'으로 배정하던 공사 물량을 일괄 발주해 공사도 예산을 절감했지만 건설업체도 충분한 이윤을 남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헌동 단장은 "건설업체들이 정말 밑진다면 밑지는 공사를 왜 수주하느냐"며 "정말 밑지고 공사를 한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건설업체들 스스로의 경영상 문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덤핑 현상이 있다고 해도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적정 이윤을 보전해주는 것은 경영노력에 의한 비용절감을 통한 시장경쟁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경쟁을 통해 생존할 수 없으면 시장에서 퇴출하게 하는 게 시장원리인데 그런 기업들을 왜 국민 혈세로 지탱해줘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김단장은 또 "대형 건설업체들은 최저가보다 20%이상 높은 가격에 하청을 주는 직원이 있으면 처벌하지 않겠느냐"며 "그런데도 정부 관료들 가운데 이 때문에 처벌받는 관료는 한 사람도 없다"고 비판했다.

재정정책학 전공 학자 출신인 한나라당 박재완 제3정책조정위원장도 "최저가낙찰제를 시행하면 건설기업들의 기술개발과 인력의 효율적 관리 등을 유도해 건설산업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며 "그런데 경쟁력 없는 건설기업들을 살린다고 정부예산으로 적정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을 덤으로 얹어줘야 하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예산이 줄어드는 최저가낙찰제를 찬성해야 하는데 오히려 건설업계의 수익을 걱정하며 시행을 미루고 있다"며 "건설업계와의 밀착구조 때문인지 국민 입장을 공정하게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든다"고 비판했다.

과거 대형 부실공사 낙찰율 93~98%...비용 높아도 부실시공
"낙찰가격과 부실시공은 무관"
"부실시공 시장에서 거르면 되지 왜 정부가 개입하나"






[표]낙찰율과 부실공사의 상관성이 높지 않음을 보여준다.
▲최저가낙찰제 공사는 부실공사?=

적격심사제도 유지를 부르짖는 정부 관료들이 내세우는 가장 큰 명목은 "건설업체에 적정한 수준의 공사비를 보장해줘야 부실공사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건설업체들도 '최저가낙찰제를 시행하면 과당경쟁으로 낙찰율이 낮아져 부실공사로 국민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논리인 셈. 결국 고품질을 유지하려면 고비용을 들여야 한다는 논리다. 정말 그럴까.

벽산건설이 시공했던 행주대교와 대림산업이 시공한 서해대교 1공구는 공사 도중 교각붕괴 사고가 발생했다. 삼성물산이 시공한 대구지하철 2-8공구 공사에서도 공사 도중 지반 붕괴사고가 발생했다. 역시 삼성물산이 시공한 제천시 국도대체 우회도로는 준공 한 달 만에 램프고가교량이 무너지기도 했다. 이들 공사의 낙찰율은 93.06%~98.20%로 지난 해 최저가낙찰제 평균 낙찰율보다 무려 35%가량 높았다. 최저가낙찰제의 낙찰율과 비교할 때 엄청난 고비용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부실시공이 이뤄진 셈이다.

거꾸로 2001년부터 단계적으로 최저가낙찰제가 도입돼 200여건의 공사가 시행됐지만 한 건도 부실시공 사례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부실시공이 공사비 또는 입찰제도의 방식 때문에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한나라당 박재완 제3정조위원장은 "부실공사를 해도 안 걸릴 수 있고, 걸려도 뇌물을 주고 피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덤핑수주를 하는 것이지 덤핑수주 때문에 부실공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며 "건설업계의 논리는 이 같은 인과관계를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감리감독 과정에 부패구조가 형성돼 있어서 부실공사를 눈감아주는 대신 뇌물을 받는 관행이 남아 있어 부실이 생기는 것"이라며 "부실공사는 감리감독을 철저히 하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공사이행 보증시장을 개방해서 건설업체의 주거래은행이 공사의 적정성 여부를 따져 보증하게 하는 것도 부실시공을 막는 방법이 될 수 있다"며 "부실시공은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스크리닝될 수 있도록 해야지 정부가 입찰가격을 통제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로 품질과 낙찰가격의 상관율이 낮음은 각종 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97년 감사원이 건설업 종사자와 공무원 148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부실시공의 원인으로 △기능공의 능력부족(20.88%) △사전조사 부실(16.46%) △설계부실(14.80%) △시공업체 의지 부족(8.15%) △공기 부족(7.7%) 등이 꼽혔으며 공사비 부족은 5위 안에도 들지 못했다. 99년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정부 발주 관계자와 감리원, 시공자 등 962명을 대상으로 '건설공사의 품질결정 요소'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공사수주 낙찰율은 5위(5.3%)에 머물렀다. △시공자의 성실성(42.9%) △공사 참여자의 책임의식(33.2%) △감리, 감독체계(9.4%) △공사 수행능력(8.7%) 등이 이보다 앞에 왔다.

강경호 사장은 "공사에서 최저가낙찰제를 시행해본 결과 낙찰가격과 부실과의 상관 관계는 전혀 없었다"며 "입찰 사양을 정확하게 하고 사후 감리감독을 철저히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건설업체들의 기술력 차에 따라 공사비가 10~30%정도 차이가 난다"며 "실적 있고 경험 있는 회사들은 낮은 낙찰가격에서도 얼마든지 질 좋은 공사를 한다"고 덧붙였다. 최저가낙찰제 확대로 피해볼 중소 건설업체 "다 죽는다" 반발

"퇴출돼야 할 기업들 국민 돈으로 살려주면 오히려 경쟁력 약화"





[표] 감사원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부실시공의 원인으로 낮은 공사비를 꼽은 비율은 상당히 낮았다.

▲한계기업 국민 돈으로 먹여살려야 하나=

정부나 건설업계에서는 가뜩이나 위축된 건설경기가 위축된 가운데 최저가낙찰제를 확대하면 중소 건설업체의 경영난이 가중된다고 주장한다. 중소 건설업체들의 경영난은 경제에도 부담이 되므로 이들을 어느 정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다.

위에서 보았듯이 최저가낙찰제를 시행해도 원도급업체가 손해를 보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 하지만 하도급업체의 사정은 다른 게 사실이다. 원도급업체가 수주한 공사의 대부분은 하청과 재하청을 거쳐 시공되기 때문에 실제 최종 공사 원가는 상당히 낮아진다. 하청과 재하청의 사슬은 4~5단계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불필요하게 복잡한 중간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중간단계의 하청, 재하청 기업들의 개별 이윤 폭은 크지 않다. 단기적으로는 예상 못한 자재값의 인상 등으로 적자 공사를 하게 되는 하청 업체도 나올 수 있다. "자재와 건설장비를 놀리느니 공사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상당수 하청업체는 정부 예정가격의 40% 선에서 공사를 하기도 한다. 그나마 공사대금을 현금 대신 어음으로 주는 경우도 많아 경영난에 봉착하기도 한다. 한 중소 건설업체 관계자는 "대형 건설업체들은 꽤 많은 돈을 챙기지만 하청업체들은 한 번 공사에 5~10%정도 남기는 게 고작"이라며 "대형 건설업체와의 지속적인 관계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적자 공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런 중소 건설업체들의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결국 불필요하게 만들어진 복잡한 중간단계를 따라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복잡한 중간단계에서 공사를 따기 위한 뇌물과 접대가 오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 같은 복잡한 '유통단계'는 적격심사제 때문에 유지돼온 측면이 크다. 정부가 어느 정도 이윤을 보장해주므로 건설업체들이 원가절감이나 기술 혁신 노력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최저가 낙찰제를 시행하면 원가절감 압박이 커져 복잡한 하청, 재하청의 고리가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중소건설업체들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지만 이는 '업계 이기주의'일 뿐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나라당 박재완 제3정조위원장은 "최저가낙찰제가 도입되면 경쟁력이 없는 일부 업체는 어려워지겠지만 경쟁이 촉발돼 장기적으로는 기술 개발과 인력의 효율적 운용을 위해 노력하는 회사는 더 유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소 건설업체를 국민 돈으로 먹여살리겠다는 발상은 정상적인 시장경쟁을 통해 퇴출돼야 할 기업들을 살려두는 것으로 장기적으로는 건설산업의 경쟁력을 저해해 경제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by 선대인 2008. 9. 4. 1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