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2012년말 기준 한국은행의 자금순환표상의 개인(가계 및 비영리단체) 금융부채 규모가 발표됐다. 개인금융부채는 총규모가 1158.8조원으로 2011년말 기준 1105.9조원보다 약 13조원 가량 다시 늘어났다. 하지만 개인 금융부채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개인 부문 대출금은 같은 기간 1039.2조원에서 1089.8조원으로 약 50.6조원 가량 늘어나 또 다시 큰 폭의 증가세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그림>에서 보다시피 개인 가처분소득 대비 개인 금융부채 비율은 163.8%까지 올라갔다. 그나마 2012년 경기 침체 양상이 확연해지며 물가 상승세에 제동이 걸려 개인 가처분소득이 늘어난 덕으로 2011162.9%에서 크게 늘어나지 않은 것이다. 이것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

주) 한국은행 자료를 바탕으로 선대인경제연구소 작성

 

하지만 통계 발표 전까지 이 비율이 지난해보다 낮아질 것이라던 한국은행의 전망은 여지 없이 빗나갔다. 또한 2004년 이 비율이 122.1%였던 것에 비하면 이미 매우 높은 수준으로 올라와 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미국의 같은 비율이 글로벌 경제위기 전인 2007131% 수준에서 지난해 기준으로 105% 수준으로 하락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은 정반대로 역주행을 한 것이다. 대다수 국가가 경제위기를 맞아 공공부채는 늘리더라도 가계부채는 다이어트를 유도했는데, 한국은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겠다는 심산으로 가계부채를 계속 늘리는 위험천만한 모험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이명박정부 이후 박근혜정부의 4.1부동산종합대책까지 정부의 각종 부동산 정책은 단기 부양책 일색이었다. 심지어 수도권 아파트 전매제한 완화나 자산가들의 다주택 투자에 대한 세금 감면 등 사실상 투기 조장책도 적지 않았다. 수조원의 세금이나 공기업 자금을 동원해 건설업체 미분양 물량을 사들였다. 각종 다주택 투기자들을 위한 감세 정책 등 부동산 부자들을 위한 정책이 넘쳐났다. 아직도 전국적으로 40%, 수도권 기준 45%에 가까운 무주택 서민들을 위한 정책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가계 소득이나 인구구조 변화 등에 발맞춰 중장기적으로 한국 사회의 주택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로지 집값 떠받치기에 목을 맨 정책 기조였다.

 

이럴 때마다 정부나 기득권 언론들은 연착륙을 부르짖었다. 부동산시장이 경착륙하면 한국경제가 위험하다면서 말이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서민들이 더 힘들다는 협박(?)까지 곁들였다. 하지만 정부의 미봉책 또는 미루기 대책은 사실 경착륙 조장책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이렇게 계속 미룰수록 부동산 거품 붕괴의 충격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정부의 부동산 부양책과 투기 조장책에 힘입어 2008년 이후 가계부채가 292조원 이상 늘어난 것이 대표적 예다. 주택대출 거치기간 만기를 지금처럼 계속 연장하면 분기별 대출 만기 도래액은 눈덩이처럼 커지게 돼 있다. 이런 판에 하지만 정부도, 금융권도, 가계도 계속 미루기를 선택해 90% 이상의 주택대출이 재연장되고 있다. 계속 이런 식으로 미루다가는 정말 걷잡을 수 없는 사태를 부를 수 있다.

 

문제는 한국경제 최대의 난제인 가계부채 폭탄이 더 이상 미루기 힘든 상황까지 이르렀다는 점이다. 필자가 선대인경제연구소의 유료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보고서 주제로 가계부채 문제를 분석해보니 이명박정부 이후 가계부채 문제가 정말 심각해졌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노무현정부 5년 동안 가계부채(개인 금융부채와 달리 가계부문에 대한 대출 및 신용판매액 합계를 뜻하는 가계신용 통계 기준임) 가 202조원 증가했는데, 이명박정부 5년 동안에만 292조원 증가했다. 이명박정부 초반인 2008년 말부터 부동산 가격이 대세하락기에 접어들고 부동산 거래 침체가 지속됐는데도 부동산 활황기였던 노무현정부 때보다 더 많은 가계부채가 더 짧은 시간에 늘어났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명박정부 이후 가계부채가 늘어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정상적으로 빚을 내 집을 살 수 없는, 소득 여력이 적은 사람들에게 정부가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사도록 부추긴 때문이다. 주택 거래량은 줄었어도 주택 거래당 부채 크기는 더 커졌다. 이 같은 기조는 박근혜정부의 4.1부동산대책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둘째, 고환율-저금리에 따른 고물가와 재벌편중 경제 심화로 가계 소득이 늘지 않아 가계들이 빚을 내 생활할 수밖에 없게 만든 때문이다. 노무현정부 때 평균 경제성장률은 4.3%였고 가계소득이 꾸준히 성장했으나 이명박정부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2.8% 수준으로 낮아졌다. 더구나 실질 가계소득은 대기업 편중 성장과 고물가부담 때문에 거의 정체됐다. 그 결과 이명박정부 기간 동안 누적 경제성장률은 12%를 넘지만 가계가처분소득 성장률은 7.5% 수준에 그쳤다. 그런데 가계부채가 2012년 말 기준으로 959조원을 넘어섰으니 일반 가계가 느끼는 부채 부담은 훨씬 더 커졌다고 봐야 한다.

 

더구나 2008년 이후 가계부채는 크게 세가지 측면에서 더욱 악화됐다. 첫째, 다른 나라가 부동산거품을 빼고 가계부채를 줄일 때 오히려 한국은 가계부채를 막대하게 늘렸다. 둘째, 보험사, 대부업체, 신용카드 할부까지 대출금리가 높은 악성 부채가 늘어 가계부채의 질이 더욱 악화됐다. 셋째, 부산, 대전 등 지방 부동산까지 가격이 부풀어 상대적으로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지 않던 지방의 가계부채까지 크게 늘리고 악화시켰다.

 

만약 가계부채가 지금 속도로 증가한다면 5년 후인 2016년에 가계부채(한국은행 가계신용 통계 기준) 총액은 2012년말 959조원에서 1377조원으로 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지금 163.8% 수준인 개인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180% 수준에 육박할 수도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한 가계가 버는 소득이 5000만원이라고 가정할 경우 9000만원의 빚을 지게 된다는 뜻인데, 그 정도 부채 비율을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가계부채 다이어트를 유도하지 않고 폭탄 돌리기모드로 간다면 한국경제는 회복하기 힘든 재앙을 맞게 된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이명박정부가 5년 내내 폭탄 돌리기모드를 지속하더니 이어받은 박근혜정부도 설거지를 하기는커녕 다시 5년 동안 폭탄 돌리기를 지속할 모양새다. 4.1부동산대책이 명확히 그런 신호를 보낸 것이다.

 

그런데 가계부채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다. 한국의 가계부채나 주택담보대출의 규모는 한국에만 있는 전세제도 때문에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킨다. 국내 전세금 규모는 최소 600조원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는 집 주인이 투기적 목적이 아니라 여유 있는 주거공간을 세입자에게 전세로 준 경우도 있겠지만, 전세를 끼고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아 집을 여러 채 산 경우도 허다할 것이다. 따라서 전세금의 절반인 300조원을 주택 소유자가 금융회사 대신 세입자에게 빌린 돈이라고 보면 현재 가계부채는 959조원 수준에서 1259조원 수준으로 증가하게 된다. 주택대출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과소평가되는 착시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지금 주택대출액은 404조원 수준이지만 전세금의 절반만 포함해도 바로 704조원 수준으로 급증하게 된다.

 

이처럼 이미 가계부채가 폭발 직전 상황인데도 정부는 마른 수건 쥐어짜듯 30대 등 젊은 세대 중심의 무주택세대와 자산 가진 노후세대까지 빚 내서 집을 사라며 세금을 줄여주고 DTI규제 완화책을 내놓고 있다. 이 정도면 부동산 떠받치기와 가계부채 폭탄 돌리기에만 혈안이 돼 정신이 나간 정부라고 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지금부터라도 단계적으로 가계부채 다이어트를 유도하고 부동산 거품을 빼서 충격을 분산해야 그나마 일시에 충격이 몰리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다. 지금 시중은행은 재무상태가 괜찮은 편이다. 지금 단계적으로 분할해서 부동산 거품을 빼나가면 시스템 차원의 금융위기는 피해가면서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이명박정부가 그랬듯 박근혜정부에서도 폭탄 돌리기 모드로 간다면 2~3년 안에 정말로 피하기 어려운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그나마 지금이라도 설거지를 해야 한국경제에 그나마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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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3. 4. 26. 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