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공사가 300억원 예산절감한 비결은?


"최저가낙찰제를 도입하면 부실공사가 많아진다." "외국은 몰라도 최저가낙찰제는 우리 나라엔 안 맞는 제도다." "지금으로선 시기상조다." 등등.

최저가낙찰제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도 이 같은 건설업계의 주장을 근거로 당초 올해부터 100억원 이상 공사로 최저가낙찰제를 확대하려던 계획을 바꿨다.

2001년 처음 도입된 이 제도가 수조원의 예산 절감 효과를 보는 가운데 별 문제 없이 실시돼오는 데도 이 같은 반대논리는 계속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같은 위력은 표에 민감한 정치권이나 로비에 약한 정부 부처에 강하게 작용한다. 국민 대다수에게 도움되는 이 제도의 확대가 계속 늦춰지는 이유다.하지만 서울지하철공사의 사례는 최저가낙찰제에 대한 반대논리가 설득력이 없음을 여실히 입증한다. 공사는 공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지난 해 3월부터 최저가낙찰제를 도입, 건설공사 예산의 30%가량인 300억여원을 절감하는 효과를 올렸다. 한라중공업 대표 출신인 강경호 사장이 취임한 뒤 일어난 변화다. 강사장은 공사 내부의 우려와 관련 건설업계 등의 반발을 무릅쓰고 이 제도를 시행, 거액의 혈세를 절감했다.물론 이는 최저가낙찰제뿐만 아니라 하청과 재하청 과정 등 중간단계의 생략, 전자구매 등을 통한 노력이 함께 어우러진 결과였다. '최저가낙찰=부실공사'라는 세간의 우려는 철저한 감리감독을 통해 불식시켰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미디어다음은 공사 강경호 사장을 26일 만나 공사의 생생한 경험담을 들어보았다. "최저가 낙찰제 도입으로 공사 예산 30% 절감"
"최종 시공자가 바로 입찰할 수 있게 중간단계도 없애"






-최저가 낙찰제를 도입한 이유가 뭔가.

현행 공공기관 낙찰제도의 중심이 되고 있는 적격심사제는 부실공사 방지 등을 위해 도입된 제도이나 적격심사기준의 변별력 부족으로 경쟁력 있는 우량업체를을 선별하지 못한다. 수주만을 목적으로 하는 건설업체(Paper Company)를 양산하고 있고 특히 일정 낙찰하한선을 보장해 운에 의하여 낙찰자가 결정된다. 결국 이는 경쟁력 있는 건전한 건설기업의 육성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기업의 예산을 낭비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이유로 정부에서도 건설산업의 구조조정 촉진과 경쟁력 제고 및 예산낭비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최저가낙찰제 대상공사를 점차적으로 도입하려고 하는 걸로 안다. 우리 공사의 취약한 재무상태와 지속적인 시설투자에 수반되는 막대한 예산 소요액을 감안할 때 예산의 효율적 운용이 불가피했다. 그래서 최저가낙찰제를 2004년 3월부터 시행하게 된 거다.

일부에서 부실공사 우려를 제기하는데 사실 외환위기 이전에는 덤핑 입찰도 있었지만 외환위기 이후에는 밑지는 공사에는 업체들이 입찰을 안 한다. 지금까지 부실공사가 한 건도 없었다. 철저하게 감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산 절감 효과가 커서 바람직한 걸로 보고 있다. 일정 시간 지나 부작용이 있다면 보완책을 마련해야 하겠지만 지금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고도의 기술이나 실적을 필요로 하는 경우에는 2단계 동시입찰을 실시한다. 업체의 실적이나 규모 등을 정해놓고 1차 통과된 기업들에 한해 경쟁입찰을 하고 있다.

-최저가낙찰제 도입 결과 나타난 예산절감효과를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최저가낙찰제를 도입해 경쟁입찰하게 한 결과 30% 정도의 예산 절감 효과가 있었다. 1180억원가량의 예산을 잡았는데 300억원 정도를 절약했다. 이게 엄청난 거다. 공기업은 시민들 세금으로 운영되는 회사인데 세금을 그만큼 줄여준 거다.

-상당수 건설업체나 일부 관료들은 최저가낙찰제를 시행하면 부실공사가 될 우려가 있다고 하는데.

그런 우려는 전혀 없다. 내가 여기 오기 전 민간기업(한라중공업)에 있었지만 시공회사에 따라 원가가 다르다. 건설기업 입장에서는 손익분기점을 넘기 위해 고정비를 커버할 수 있는 물량을 확보해야 한다. 물량이 확보된 건설회사는 공사를 좀 덜 해도 되고 물량을 못 채운 회사들은 물량을 채워야 한다. 그런 회사들은 좀더 낮은 낙찰가에도 공사를 하려고 한다. 또 각 기업들이 가진 기술력에 따라 원가가 10~30% 정도 차이가 날 수 있다. 실적 있고 경험 있는 회사들은 이렇게 할 수 있다.

최저가낙찰제를 실시하면서 전에는 역사 하나하나씩 발주하던 것을 이제는 세 개를 묶어서 한꺼번에 발주했다. 그랬더니 상당히 큰 업체가 당초 예산액의 절반 이하 가격으로 수주를 했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이윤을 안 남긴 것도 아니다. 실력으로 공사를 딴 거다. 물론 물량이 합쳐져서 공사 관리비 등이 줄어든 때문에 가능하기도 했다. 최소 발주물량 단위를 키워주면 겅설 경비도 줄어든다. 제도라는 것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예산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실제 시공자를 입찰에 참여토록 하면 된다. 예전에는 적격심사제를 하면서 4,5단계까지 중간단계를 거치는 경우도 있었다. 최저가낙찰제로 경쟁입찰을 붙이되 원가를 줄일 수 있도록 물량을 '나눠주기'식으로 분배하지 않고 합치거나 중간단계를 배제하면 된다.

"공조직에서 기존 제도, 관행 바꾸기 매우 힘들어"
"국민세금인데 한 푼이라도 아껴야지"






-이렇게 하면 예산절감 효과가 매우 큰데 다른 데서는 왜 최저가낙찰제를 안 하나.

공조직에서 기존의 제도와 관행을 바꾸는 게 그렇게 힘이 드는 거다. '변하자' 하는데 이해 당사자들이 개입돼 있어 쉽지 않다. 밖에서 보면 바꾸는 게 간단한 것 같지만 무척 어렵다. 공기업에서는 우리가 처음이다. 내가 사장 취임했을 때 1년에 3600억원씩 적자나는 상황이었는데 이렇게라도 해서 예산을 아껴야 하지 않나. 세금이 한 단계 거쳐서 나갈 뿐이지 결국 국민의 세금 아니냐.

-공사 사장으로 취임할 때부터 이런 구상을 갖고 있었나.

민간기업에서는 보편화돼 있으니 당연하게 생각한 거다. 제도는 상당히 융통성 있게 대응할 수 있다. 최저가가 최선은 아니기 때문에 보완은 필요하지만 경쟁입찰하면 투명하고 얼마나 좋나.

-이 제도를 처음 추진할 때 얼마나 힘들었나.

남들 안 하는 것을 하니 얼마나 저항이 심하겠나. (정부나 공공기관의 계약행위를 규정한) 국가계약법에 얽매인 줄 알고 이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하니 큰일날 줄 알더라. 그런데 자문 들어보니 다 할 수 있다고 하더라. 정부도 사실 이 제도를 시행한다고 발표를 했다. 저항이 있으니 주춤하고 연기를 하는 것일 뿐이지. 정부도 어려움이 있는 거지. 그래서 주춤주춤하는 거다. 건설협회 등은 상당히 많이 저항한다. (기자가 '저항이라니 어떤 걸 말하느냐'고 묻자 약간 망설이다가) 민원이라는 것이지. 공사를 많이 하는 통신사업자, 전기협회 등에서 연명으로 민원을 넣더라. 최저가낙찰제를 하면 수지가 안 맞아서 부실공사가 된다는 거지. 그래도 입찰하는 것 보면 남으니까 하겠다는 게 아닐까.

-건설업체들은 건설 경기가 침체한 가운데 최저가낙찰제를 시행하면 경영상황이 더 나빠진다고 주장하는데.

믿기가 어렵네. 경쟁입찰을 하게 하면 수주단가는 내려간다. 실력 있는 기업이 공사를 따게 된다. 우리는 예산을 아끼고 실력 있는 기업이 공사를 따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정부관료들이 이런 사실을 몰라서 최저가낙찰제 확대에 미온적인가.

글쎄, 그 부분은 내가 대답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다른 정부나 공공기관들이 최저가낙찰제와 관련해서 문의해오지는 않았나.

문의가 많다. 우리는 최저가낙찰제를 시행하면서 전자입찰도 실시했다. 같은 물건을 대량으로 구매하니까 조달청을 통한 조달구매보다 더 싸다. 동네가게에서 사는 것보다 할인점에서 사면 더 싸지 않나. 그런 원리다. 또 전자구매를 하면 중간 유통단계가 없어지고 인건비도 줄어든다. 생각해봐라. 물건을 사는 유통단계, 시점에 따라 같은 물건도 100원짜리를 20원에 살 수도 있다. 빚덩이에 앉은 회사가 그렇게라도 줄여야지 그렇게 안 하면 어디서 줄이나. "제도 변경 과정에서 이해당사자들 반발 엄청 나"

"부실과 가격은 상관 없어"

"우리처럼 하면 정부 예산 10조 아낄 텐데"





-최저가낙찰제나 전자입찰을 시행하면서 중간단계를 건너뛰면 중간단계에 있던 업체나 사람들은 이권이 없어지므로 반발하지 않나.

그런 이해당사자들이 당연히 반대하지. 경쟁 없는 사람들은 쫓겨나고 그런 사람들은 불만 토로하겠지. 하지만 그렇게 하면 우리는 싸게 사고 투명하게 좋은 물건을 살 수 있다. 우리 공사 안에서는 각 파트별로 나눠서 하던 것을 일괄해서 하니 일도 많이 줄었다. 예산 절감과 함께 업무 절감도 가장 큰 효과중 하나다.

-서울지하철공사에서 하는 것을 정부나 다른 공공기관에서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럼, 다른 데서도 다할 수 있다. 왜 못 하나.
-외국에서는 어떻게 하나.

이렇게 다 하고 있지. 물건이라는 건 전 세계에서 가장 싼 걸 싸야 하지 않나. 이제는 프라이스 퀄리티(Price Quality)다. 제품에 대한 품질이 어느 정도 수준을 넘고 그러면서도 싸야 한다. 뭘 해도 세계에서 제일 좋고 제일 싼 게 돼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줄이는 비용이 엄청난 것이다. 말이 10%, 20%이지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냐. 정부 관리들이 내 물건을 산다면 웃돈 주고 그렇게 사겠느냐 말이다. 그렇게 살 사람 아무도 없을 것이다.

(기자가 '그런데도 정부 관료들이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 하자) 이해관계 때문 아니겠느냐. 또 제도를 바꾸어야 하고 절차를 밟아야 하니 그렇겠지. 적격심사제를 바꾸는 것은 어려움이 있더라. 건설협회 등의 로비도 있고...

-정부는 건설을 통한 경기부양도 최저가낙찰제를 미루는 이유로 내세운다. 중소 건설업체의 수익을 어느 정도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인데.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야지. 국민 세금으로 운용하는 정부 기관이 기업에서 세금 아낄 생부터 해야지. 정 건설경기를 부양하고 싶으면 다른 프로젝트를 만들든지 해서 부양해야지 왜 그런 식으로 하나. 입찰 자체는 경쟁적이고 투명하고 공정하게 돼야 한다. 다른 민간기업들도 그렇게 다 하잖아. 지하철은 대중수단이고 시민들의 수준이 높아져 있어 시설 개선과 안전 문제에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 반면 우리는 막대한 운영적자를 지고 있으니 어떤 형태로든지 경비를 줄여야 한다. 줄인 경비를 바탕으로 안전에 대한 투자도 할 수 있다. 정부 는 실수요자 부담원칙에 입각해 공사가 시민들 요금으로 해결하라고 한다. 우리가 그렇게 하면 서비스 개선을 어떻게 하나. 나름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은 모든 분야에서 경비를 줄이자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1년에 1000억원씩 적자폭을 줄였다. 2002년에 3600억 적자난 게 2003년에 2690억, 지난 해엔 1652억원으로 줄였다.

-최저가낙찰제에서 덤핑 입찰이나 오찰, 등의 문제점이 나타날 수 있지 않나.

덤핑 입찰이나 오찰 등으로 공사를 낙찰 받은 후 공사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입찰자 평균입찰 금액의 70%이하 입찰자를 낙찰대상에서 제외하는 제도를 지난 해 10월부터 도입했다. 그 동안 입찰 사례들을 분석해 보니 기술개발 등의 요소를 감안해 30% 정도면 적당하지 않겠는가 하고 본 것이다. 그 이하 금액으로 들어오면 덤핑으로 보고 아예 자격을 안 주는 거다.

-그래도 가격과 부실공사와의 상관관계가 있을 수 있지 않나.

가격과 부실과의 상관 관계는 없다. 입찰 사양을 정확하게 해주고 사후 감리감독을 철저히 해주면 아무 문제 없다. 입찰의 문제가 아니라 구매 방법의 문제일 뿐이다.

-공사에서 한 방식을 전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에 확산하면 엄청난 예산을 아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공공공사 규모가 매년 45조, 50조인데 그 가운데 10조는 아낄 수 있지 않을까. 숫자는 자꾸 만지고 따지면 줄게 돼 있다. 우리는 각 분야에서 다 그렇게 하고 줄이는 거다.
by 선대인 2008. 9. 4. 1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