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용산개발사업)의 좌초 책임론에 대해 “당시 서부이촌동 주민 동의 등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사업을 결정했다”며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갑자기 개발 계획에 포함돼 재산권 행사를 제약 당했던 서부 이촌동 주민들에게 사죄와 반성을 하기는커녕 정말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행태다.
1) 주민 동의를 받았다는 주장에 대해
오 전 시장은 서부이촌동 통합개발에 대한 '최종' 주민동의율은 57.1%였다며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식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해명이다. 오 전 시장측은 스스로 2008년 10월부터 주민 동의 절차를 거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서부이촌동 통합개발은 오 전 시장의 ‘제2차 한강르네상스계획’ 발표 한 달 후인 2007년 8월 17일 결정됐다. 합의 2주 후인 2007년 8월 30일부터 서울시는 서부이촌동까지 포함해 토지거래허가 지역으로 지정했다. 이 과정에서 서울시는 서부이촌동 주민들과 상의하거나 그들의 의견을 청취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오 전 시장측이 주민 동의 절차에 들어갔다는 2008년 10월보다 1년 여 전부터 일방적으로 개발계획을 정해놓고, 주민들 반발이 일자 형식적 동의절차에 들어간 것이었다. 관이 결정해놓고 나서 요식행위에 가까운 동의절차를 이끌어낸 것이었다. 이런 경우 보통 개발업자들은 온갖 장밋빛 환상을 유포하는 한편 반대 주민들에 대한 압박을 통해 ‘억지 동의’를 끌어내기 마련이다. 실제로 2008년 3월 시행사인 용산역세권개발은 주민설문조사를 실시하면서 공무원을 사칭하거나 무단 정보 수집 등을 자행하면서까지 반대 주민들을 압박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민주적인 절차이며, 주민들이 참여하는 형태의 도시개발 진행과정이었을까. 전혀 아니다. 서부이촌동 주민들이 아파트에 내걸었던 구호 그대로 ‘독재개발’이었을 뿐이다. 오 전 시장측은 당시 부동산 투기에 대한 우려 때문에 주민 의사를 사전에 반영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치더라도 사업이 결정된 2007년 8월 이후에도 반대 주민들의 의사는 거의 무시당했다. 실제로 2007년 10월부터 주미들은 서울시를 항의방문하거나 항의시위 및 촛불집회, 행정소송 등을 제기했으나 이로 인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2) 파산 위기에 책임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
물론 나도 용산개발사업이 좌초된 책임을 오 전 시장 혼자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철도청이 공기업으로 전환하면서 떠안은 4.5조원의 막대한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 계획을 세운 코레일, 이를 부추긴 국토해양부, 당시 ‘버즈 두바이(현재 버즈 칼리파)’ 건설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장밋빛 환상을 부추긴 삼성물산-국민연금 컨소시엄, 오 전 시장의 잘못된 결정을 제어하기는커녕 영합했던 서울시 간부들 등 책임을 져야 할 주체는 많다.
그렇다고 오 전 시장이 자신은 책임이 없다고 발뺌하는 것은 무책임과 파렴치함의 극치다. 오 전 시장이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다.
첫째, 서부이촌동 지역까지 통합개발하는 결정을 내린 것은 오세훈 전 시장이며 이는 ‘한강르네상스’ 계획 추진에 대한 자신의 욕심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당초 용산개발사업은 서부이촌동 지역은 제외하고 코레일의 철도정비창 부지만 대상으로 했던 사업이었다. 이렇게 할 경우 한강변과 사업예정지가 분리되는데, 오 전 시장과 관련 공무원들은 서부이촌동 지역을 포함해 한강변까지 사업대상지를 확장한 것이다. 이 같은 결정은 이해관계자들을 크게 늘리는 결과를 낳았다. 당초 계획안에 따르면 코레일의 철도정비창 부지 등 정부나 공공기관 소유 토지가 99.7%여서 부지 매입과 이해관계 조정에 거의 장애물이 없었다. 그런데 서부이촌동이 사업계획에 포함되면서 민간 부지가 0.3%에서 11.5%로 크게 늘었다. 면적 비율로는 그나마 크게 안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이해관계자 수에서는 훨씬 더 커져 버린 셈이었다. 당초에는 10여 개 주체의 이해만 조절하면 됐으나, 서부이촌동 편입으로 2200여명의 주민 이해를 조정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당시 시점에서 입주 5년밖에 안 된 아파트단지가 사업부지에 포함되게 되면 상당수 주민들의 반발이 일어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많은 주민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과정은 상당한 시간이 걸리게 되며, 조율 과정에 들어가는 시간은 사업 지체와 금융 비용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 그 결과 사업 추진 주체들은 이를 보상받기 위해 더 높은 용적률 등 무리한 요구를 할 수밖에 없게 되고 이는 사업 지체의 악순환으로 다시 이어지게 된다. 실제로 용산개발사업은 이 같은 상태가 계속됐다. 또한 이 같은 사업 지체와 비용 증가에 대한 책임은 논외로 하더라도 오 전 시장의 잘못된 결정으로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된 서부이촌동 주민들의 피눈물을 생각해 보라. 이것만 생각해봐도 오 전 시장이 감당해야 할 책임은 작지 않다.
둘째, 공익성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잘못이다. 이 부분 또한 오 전 시장의 책임이 매우 큰 부분이다. 용산개발사업은 공공과 민간의 토지를 대상으로 민간자본이 참여해 사업을 추진해 사업에 따른 개발이익을 향후 나누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대규모 도시 개발사업의 경우 전체적인 도시 계획상의 조화나 균형, 그리고 주민들의 이해와 욕구를 민주적으로 수렴하고 민간 개발업자들에게 전달, 요구하는 것은 주로 정부나 지자체의 몫이다. 여기에서 도시계획상의 여러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서울시는 이 같은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가진 주체였다. 그런데 오 전 시장과 당시 서울시 관료들은 이 같은 주민들의 이해와 욕구를 수렴하고 도시 계획상의 공공성을 관철시키기보다는 개발업자들이 내세우는 장밋빛 환상에 젖어 수익성에 치중할 뿐 공익성을 관철시키려는 노력은 거의 없었다. 법에 정한 기부체납과 임대주택 비율을 확보하는, 행정적 절차만 겨우 따랐을 뿐이다. 이미 당초 코레일이 제시한 평균 용적률 580% 개발계획안만 해도 과밀 개발과 주변 교통 혼잡 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오 전 시장이 이끄는 서울시는 이 같은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부이촌동 통합개발을 하면서 오히려 용적률을 608%까지 올렸다. 앞서 말한대로 서부이촌동 편입으로 민간사업자들이 사업성 확보를 위해 용적률 완화를 요청한 때문이었다. 더구나 용산개발사업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것을 명문화하는 규정도 전혀 두지 않았다. 2200명이 넘는 주민들을 사업대상에 포함시키고도 사업자들이 이들의 요구를 존중하도록 하는 제대로 된 장치도 두지 않았던 것이다.
셋째, 부동산 경기 예측에 실패한 것은 물론 부동산 경기 악화를 겪고 나서도 계획을 바로잡지 않은 잘못이다. 이 부분은 오 전 시장 혼자 책임져야 할 부분은 분명 아니다. 무엇보다 시행주체 측의 오판도 크다. 하지만 오 전 시장과 당시 서울시 관료들도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한다. 물론 경제문제에 대한 이해가 크게 떨어지는 오 전 시장과 그 보좌진들이 부동산 경기를 정확히 예측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더구나 오 전 시장이 통합개발 결정을 내렸을 때까지는 온 나라가 부동산 거품에 빠져 허우적대던 시대가 아닌가. 하지만 그 이후 부동산 경기가 급락할 때부터는 사업을 재고했어야 한다. 실제로 내가 그를 보좌하던 2008년 1월경 나는 “부동산 거품이 꺼질 가능성이 있다”며 이에 대한 서울시 차원의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독대해 따로 보고한 적이 있다. 그 같은 보고가 용산개발사업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으나, 분명히 그 같은 사업에 대해서도 조치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몇 개월 후 나는 서울시를 떠났기에 이후 사정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2008년 말 글로벌 경제위기가 발생한 시점에는 용산개발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했어야 한다. 특히 서부이촌동 통합개발에 대한 판단을 반드시 재고했어야 한다. 그런데 그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계경제위기를 겪으면서도 용산구를 통해 올라온 용산지역 주민들의 반대 의견을 무시했고, 2009년에 용산개발구역을 확정하기까지 했다. 자신의 과시적 치적 사업 추진이라는 욕심에 눈이 흐려져 무모하게 사업을 밀어붙인 것이다.
이제 이 글을 맺도록 하자. 사실 개인적으로는 오 전 시장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 않다. 유학 후 1년 가량 그를 보좌했던 일이 이제는 스스로도 부끄러운 경력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시를 떠난 뒤에도 그에 대한 언급은 가급적 삼가려 했다. 하지만 ‘망국적 복지 포퓰리즘’ 운운했던 그의 태도도 그렇고, 새빛둥둥섬이나 이번 용산개발사업에 대해 자신의 책임은 전혀 인정하지 않는 그의 파렴치한 태도는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오 전 시장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없지 않을 것이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오 전 시장 혼자 책임질 일은 아니고 책임질 주체들은 너무나 많다. 굳이 이해하려고 한다면 우리 모두가 부동산 거품기의 ‘거대한 착각’에 빠져 있다가 이제야 깨어났는데, 자신만이 희생양으로 지목되는 듯한 심정일 수 있겠다. 그렇다고 그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희생양이 된 사람이 아니다. 책임론에서 분명히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다. 특히 지금 서부이촌동 주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 매우 큰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다. 그런 이가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반성하거나 사죄하기는커녕 책임을 온갖 곳으로 떠넘기고 있다. 도대체 그가 책임이 없다면 누가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나.
*용산개발사업은 추진 과정에서 굉장히 많은 문제점이 노출됐고, 한국 사회가 두고두고 타산지석으로 되새겨야 할 대표적 실패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은 오 전 시장의 무책임한 변명에 대한 비판이 중심인 글이므로 이에 대해서는 생략했다. 양해를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