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안녕하세요. 제가 며칠 동안 몸살을 앓았던 관계로 문화방송 <피디수첩>팀이 제작한 ‘2013 부동산 보고서’편을 뒤늦게 보고 시청 소감 올립니다.
1. 지금의 부동산 거품과 가계부채가 폭발 직전까지 이른 데에는 선량한 가계를 투기심리를 부추겨 고분양가 폭리를 취해온 건설사뿐만 아니라 국토해양부와 산하 LH공사, 인천시와 같은 각종 지자체의 책임이 얼마나 큰가를 잘 보여줬습니다. 일반 가계들 입장에서 일해야 하는 공복들이 일반가계의 장밋빛 환상을 부추겨놓고 이제 와서 나몰라라 하는 행태야 말로 이 나라 서민들이 왜 계속 골병이 들고 있는지 잘 보여줍니다.
2. 제도적으로는 선분양제와 선분양제와 짝을 이뤄 3~5년 거치 원리금 분할상환 또는 일시상환하게 하는 주택담보대출 구조가 얼마나 큰 폐해를 낳고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거 민간건설자본은 취약한 가운데 급속한 도시화에 따른 주택수요 급증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된 선분양제는 이미 건설업체가 과포화상태인 지금은 시대착오적 정책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평생 살면서 사게 되는 가장 비싼 물건을 완성 상태가 아닌 주택업체의 홍보물만 보고 사야 하는 세계에 유례없는 제도는 사라져야 합니다. 영종신도시 입주 주민들이 만약 지금의 완공 상태를 봤더라면 누가 그 비싼 가격에 거기에 들어갔겠습니까?
분양후 입주까지 3년 정도 걸리는 선분양제와 거치식 주택대출은 호황기 때 건설업체와 금융권이 일반가계의 지나친 투기 심리를 부추겨 수분양자들이 무리하게 빚을 내 계약하게 합니다. 반면 주택시장 침체가 오면 수분양자들이 고스란히 하우스푸어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처럼 부동산 투기거품의 진폭을 키우고 수많은 가계들을 약탈적 금융의 희생자로 만들어 하우스푸어로 만드는 제도는 사라져야 합니다. 이런 제도를 고치는 것이 바로 진정한 개혁이고 정부가 해야 할 일입니다.
3. 지금 새로 들어서는 박근혜정부를 비롯해 정치권에서 떠들고 있는 하우스푸어대책은 원칙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몇 줄의 글로 선심쓰는 것은 쉽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는 투자는 자기 책임 아래 이뤄진다는 시장 기율을 무너뜨리는 것이고 길게 보면 부동산 거품의 조정을 지연시키고 부동산 거품을 키우는 등 한국경제에 더 큰 부담을 줍니다.
더구나 하우스푸어들을 구제하기 위한 재원은 어디에서 옵니까. 하우스푸어들을 구제할 돈이 있다면, 그 돈은 부동산 거품에 책임이 없지만 불똥이 튀고 있는 88만원세대나 단돈 몇 만원이 아쉬운 저소득·취약계층, 그리고 무주택서민들에 먼저 돌아가야 합니다. 특히 이번 방송에서도 나왔듯이 하우스푸어로 전락한 집주인들보다 세입자들의 입주 시점과 정황을 판단해 법적 대항력을 키워주고 그들이 세들어 사는 집이 경매에 넘어갈 때 일정한 거주 기간을 보장해준다든지, 아니면 그들이 그 집을 우선적으로 인수할 기회를 제공한다든지 하는 조치를 취하는 등의 해법이 훨씬 더 필요합니다. 그들이야 투기적 탐욕을 부린 사람들도 아닌데 애꿎게 피해를 입는 사람들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부터 지원하는 게 우선이지요. 이번 <피디수첩>은 바로 ‘깡통 전세’ 세입자들의 문제를 더 시급히 풀어야 할 문제로 제기했다는 점에서 잘 만든 수작입니다.
하우스푸어들은 분명히 ‘빚 권하는 사회’의 구조적 희생자인 측면이 분명히 있지만 그렇다고 최종 책임을 그들이 안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그들에게는 공공 차원의 대대적인 재무 컨설팅을 통해 부채조정을 위한 자구노력을 실행하게 하고 채권자인 금융권의 약탈적 대출에 책임을 물어 연체 이자를 재조정하게 하는 정도의 조치에서 그쳐야 합니다. 물론 그들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했을 때는 그들이 제기할 수 있도록 개인신용파산 및 제기 절차를 금융권이 아닌 가계 중심으로 개혁하고, 신불자 재기 펀드를 조성하는 한편 복지 인프라를 강화해주는 것이 공공의 올바른 해법입니다.
4. 굳이 ‘옥의 티’ 하나를 거론하라면 건설산업연구원 관계자나 우리투자증권 부동산팀장이 등장해 마치 전세입자들편인 것처럼 보도된 사정입니다. 그 관계자들은 건설업계나 부동산업계의 이해를 대변하고 현재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 제대로 경고하기보다는 안이하거나 오히려 선동성 정보들을 통해 가계의 무리한 투자를 부추긴 쪽에 가깝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아무런 반성도 없이 ‘서민의 편’인 양 등장하도록 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좋게 이해하자면 과거에 그랬던 그들조차 지금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를 줄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건설산업연구원 앞에 ‘대한건설협회 부설’이라는 수식어 정도는 달아서 일반인들이 ‘객관적인 전문가’가 아닌 ‘이해관계자’라는 것은 분명히 알도록 했어야 합니다.
5. 끝으로 주택담보대출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해 줬습니다. 저는 그 동안 수도 없이 주택담보대출이 정책당국에서 파악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심각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방영된 파주시의 한 아파트 부채 실태 분석을 도와주면서 살펴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사태가 훨씬 더 심각해 제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물론 파주가 상대적으로 수도권의 비인기 지역이고 중대형 열풍이 가라앉은 뒤 뒤늦게 입주한 아파트라는 특성이 있기는 해도 정말 너무 심각했습니다. 전체 933가구의 84.5%가 대출을 얻었고, 73.1%가 전세를 끼고 있습니다. 대출 받은 가구의 전체 평균 대출금액이 3억원이 넘고 전세액을 포함한 타인자본 총액은 3.89억원이나 됐습니다. 특히 평형이 넓을수록 대출금과 전세액의 규모도 커 부동산 하락기에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또한 <그림1>의 첫 번째 그래프에서 보는 것처럼 LTV(주택담보인정비율)도 호가 위주인 다음시세를 기준으로 할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금융권에서 고부채 가구로 분류하는 LTV 비율 60%이상 가구 비중이 이미 50.2%로 절반을 넘었습니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은행권에서 적용하고 있는 호가 위주의 국민은행 시세를 기준으로 한 LTV 비율과도 유사한 수준일 것입니다. 그런데 국토해양부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하면(두 번째 그래프) 이미 60%이상 가구 비중이 61.6%로 껑충 뜁니다. 특히 아예 100%이상인 가구는 1.8%에서 15.1%로 급증하게 됩니다. 더 심각한 것은 대출금에 전세액까지 포함할 경우(세 번째 그래프) LTV비율은 100이상이 절반에 육박하는 47.9%에 이르게 되고, 최근 경매낙찰가율인 70% 이상 가구 비중만 71%에 이르게 된다는 겁니다. 이들 가구는 이미 깡통아파트, 깡통전세인 셈입니다.
이만큼 상황이 심각합니다. 따라서 정책당국은 지금 상황이 일시적인 임기응변책으로 끝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요 아파트별 부채 실태를 조사해 위기 관리 시나리오를 하루빨리 수립해야 합니다. 이제부터라도 가계부채 폭탄의 화약고를 단계적으로 분산시켜 터뜨려서 통제해야지 그렇지 않고,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연착륙 미명 아래 계속 부동산 거품을 키우다가는 정말 금융시스템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닫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림1>
주) MBC 피디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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