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미 하우스푸어인 사람들은 하루하루 피 말리는 불안과 공포에 시달린다.
이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첫째로, 건설업자들과 부동산 업계를 광고주로 모신 언론들이 몇 년째 양치기 소년처럼 떠들고 있는 ‘바닥론’의 환상에서 탈출하는 것이 가장 먼저다. 수많은 하우스푸어들이 부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조금만 더 견디면 집값이 올라서 만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 때문이다.
둘째로, 이른바 ‘연착륙’의 타이밍은 늦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부동산 거품이 심각하다는 경고는 노무현정부 초기 때부터 계속해서 제기되었고, 고 노무현대통령 자신도 이를 경고한 바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정책 대응에 실패하면서 오히려 거품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결국 연착륙의 기회를 놓쳤다. 참여정부 후반부에는 강력한 부동산 대책으로 실낱같은 연착륙 가능성을 살렸지만 이명박 정부는 5년 동안 연착륙 대책이라는 미명 아래 가계부채라는 화약고만 잔뜩 키워놓았다. 이제는 원래 의미 그대로의 연착륙은 상상만 가능할 뿐 물 건너 간 상황이다. 지금이라도 충격의 크기를 줄이는 것만이 가능하다.
셋째로, 투자에 따른 이해득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책임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실 상당한 책임은 부동산 투기를 부추긴 건설업계와 언론, 부동산 부양책과 심지어 사실상의 투기 조장책까지 남발한 정부와 정치권에도 있다. 그러나 어떤 투자든 결국은 최종 결정은 자신이 판단해서 한 것이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자신이 져야 한다. 이것은 주식이나 펀드 투자든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원칙이다. 이익이 나면 모두 내 거지만, 손해를 보면 사회가 책임져줘야 한다? 시장경제에서 그런 건 통하지 않는다. 투자가 실패했다면 손해를 자신이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 세 가지 사실은 무척 인정하기 싫은 것들이다. 하지만 이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하우스 푸어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 경과가 상당히 진행된 큰 병에 걸린 사실을 알았을 때에 이 병의 치료가 무척 어렵다는 점, 조기 발견을 놓쳤기 때문에 상당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점, 잘못된 생활습관이 병을 키웠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우리 연구소도 당장 듣기 좋은 말은 얼마든지 해줄 수 있지만 그런 말은 하우스푸어인 분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언론의 선동적 정보를 믿고 무리하게 빚을 진 사람들이 여전히 같은 언론의 허무맹랑한 ‘집값 바닥론’을 믿어봐야 손실만 커질 뿐이다. 더 시기를 놓치면 중병이 백약이 무효인 불치병으로까지 악화되기 십상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현실을 눈물을 머금고 받아들인다면 이제 치료 방법을 찾아볼 때다.
하우스푸어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나 정치권에서도 하우스푸어 대책을 세우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내놓은 대책 가운데 하나는 하우스푸어가 가진 집의 일부 지분을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넘겨서 빚을 일부 갚는 ‘지분매각제도’ 방식이다. 하우스푸어는 캠코에 지분을 넘기고 받은 돈의 연 6% 수준에 해당하는 돈을 캠코에 ‘지분사용료’로 내야 한다. 예를 들어 캠코가 10억 원으로 책정 받은 집의 50% 지분을 캠코에 넘기고 5억 원을 받아 빚을 일부 갚은 다음, 내 집의 지분 50%를 가진 캠코에 연 6%인 3천만 원을 해마다 캠코에 내야 하는 것이다. 이 대책은 당시 주택가격을 어떻게 산정할 것인가가 가장 큰 문제다. 또한 지분사용료의 이율도 최근 주택금융공사가 취급하는 주택담보대출인 적격 대출의 약 4%는 물론 일반적인 주택담보대출보다도 비싸다. 그나마 하우스푸어의 투자 실패를 공기업이 떠맡는 게 옳은 일인가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아서 실행을 100% 장담할 수도 없다.
금융 기관이 주도하는 방식인 세일 앤 리스백은 원래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이후에 대량으로 발생한 하우스 푸어를 대상으로 실시한 정책으로, 빚을 진 금융기관에 집의 소유권을 넘긴 다음에 임대료를 내고 일정 기간 그 집에서 살 수 있는 방식이다. 그러나 2006년 정점과 비교해서 2009년까지 30% 이상 거품이 걷히면서 안정세를 보였던 미국 시장에서는 이 방식이 효과가 있었으나 무리한 부동산 부양책으로 집값이 여전히 계속해서 느리게 빠지고 있는 한국에서는 그 효과가 제대로 실현되기 어렵다. 집의 소유권이나 매매권을 받은 금융기관으로서는 집값이 계속 떨어지면 그만큼 손실을 보므로 부실화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에서는 이를 변형시킨 트러스트 앤 리스백을 내놓았다. 세일 앤 리스백과 다른 점은 형식적으로 소유권은 신탁회사에 넘긴 뒤 금융기관에는 매매에 대한 권리를 준 다음에 연체이자 대신에 일반 대출 이자 수준의 임대료를 내고 그 집에서 계속 사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결과적으로는 원금 상환 기간을 늦춰주고 이자 부담을 약간 완화시켜줄 뿐 결국은 빚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므로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볼 수가 없다.
하우스 푸어가 점점 늘어나서 사회 문제로 번지는 이유도 정부와 정치권의 무리한 대책 탓이 크다. ‘버티다 보면 정부에서 해결해 주겠지.’라는 기대 때문에 빚 갚는 일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상황이 악화된 것이다. 현실적으로 모두가 만족할 하우스 푸어 대책은 없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부 재정이 지원되어야 하는데, 하우스 푸어가 아닌 사람들이 자신들의 세금으로 개인의 빚을 메워주는 것에 찬성하기를 바라기는 어렵다. ‘뭔가 좋은 대책이 나오지 않을까.’ 하고 기다리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이자가 빠져나가고 가계의 병이 더욱 악화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슨 수를 써서든 스스로의 힘으로 더 이상의 손실을 막거나 최소화하는 것이다. 하우스푸어 상태에서는 이자를 갚는 것만으로도 허덕이게 되며, 원금 상환은 언감생심이다. 시간이 갈수록 문제는 심각해진다. 앞에서 말한 대책을 활용하거나 금융기관에서 만기를 연장해 주어도 결국 문제 해결이 안 된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출 원금을 최대한 줄이는 수밖에 없다. 결국은 집을 팔고 규모를 줄이거나 임대하는 수밖에 없다.
‘집을 팔려고 해도 팔리지 않는다.’라는 하소연이 많다. 맞는 이야기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에는 실제 시장에서는 팔리지 않는 가격에 집을 내놓는다. 집값이 떨어지는 추세에서는 시가 또는 시가에서 약간 낮춘다고 해도 더 떨어질 것을 예상하고 집이 팔리지 않기 때문에 과감하게 낮춘 가격으로 내놓을 수밖에 없다. 속이 쓰라릴 일이지만 당장 볼 손실을 생각할 게 아니라 앞으로 몇 년 동안 내야 하는 이자와 만기가 되었을 때 원금의 비용이 얼마나 될지를 생각해야 한다.
집만이 아니라 팔거나 줄일 수 있는 자산은 처분해서 최대한 빚을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불필요한 보험이나 투자 상품을 해지하고, 자동차를 줄이거나 아예 없애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과 같이 가계의 모든 분야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줄일 수 있는 지출은 최대한 줄여야 한다. 참으로 힘겨운 일이다. 생활수준을 높이는 것은 쉬워도 낮추는 것은 너무나 힘든 게 사람 마음이다. 그러나 난치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머리카락이 다 빠지는 방사선 치료를 받고, 독한 치료약의 부작용에 시달리고, 몇 번씩 수술을 받는 아픔을 겪어야 하듯, 가계의 난치병 역시도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현실을 솔직하게 말하고 고통스럽더라도 모두가 합심해서 최선을 다 할 수 있도록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힘든 과정을 겪을수록 가족들과 더 많이 대화하고, 더 많은 이해를 구한다면 가족 구성원들이 피폐해지는 것을 많이 완화할 수 있다. 오히려 물질적인 풍요에만 빠져서 대화가 단절되고 냉랭했던 가정이 합심해서 빚을 청산해 나가는 과정에서 더욱 화목해지는 사례들도 찾아볼 수 있다. 필요한 경우에는 개인 재무상담을 해 주는 에듀머니와 같은 사회적 기업이나 공공기관을 찾아가서 상담을 받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하우스 푸어에서 탈출하려면 혼자 힘으로는 힘든 결정을 여러 번 내려야 한다. 이럴 때에 전문가의 도움은 결심을 하는데 많은 의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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