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근 비교적 가파르게 환율이 하락하면서 언론들이 연일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환율 등락에 따라 수출기업과 수입기업 등의 이해관계가 다르고, 대다수 일반가계도 큰 영향을 받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한국 언론 대부분은 매우 일관되게 환율문제를 수출 대기업 편에서 보도한다. 수출 가운데 70% 비중을 차지하는 재벌대기업들이 돈을 잘 벌어야 자신들의 광고 수입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일본 아베 신조 신임 내각의 엔 약세 유도정책 등에 따라 최근 몇 달 동안 원달러 및 원엔 환율이 떨어지자 예의 보도들이 쏟아졌다. ‘환율폭탄’ ‘환율하락 비상’, ‘한국경제 빨간불’과 같은 자극적인 제목들을 내세우며 정부가 환율 하락을 막아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환율이 오르면 수출기업에는 유리하다. 예를 들어, 원달러 환율이 1,000원에서 1,200으로 올랐다면 똑같이 1달러짜리 물건을 팔아도 200원을 더 벌 수 있다. 또는 1달러로 팔았던 물건을 더 싸게 내다 팔 수 있기 때문에 해외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이 좋아진다. 그러나 수입업체에는 불리하다. 1달러짜리 물건을 사오려면 전보다 200원이 더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환율이 떨어지면 수출기업에는 불리해지고, 수입업체에는 유리해진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1달러로 들었지만, 분기별로만 수백억 달러 어치씩 수출하는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 입장에서 보면 분기에만 수천억~수조원이 왔다 갔다 하는 문제다. 물론 지금처럼 환율이 내리면 정반대 상황이 펼쳐짐은 물론이다.
그런데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어떨까. 일단 우리가 쓰는 필수품들 중에 이미 상당 부분이 수입품이다. 아이들 토마스장난감이나 레고, 화장품이나 의류 등 상당수 소비재가 수입품이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국산품의 경우에도 원자재는 수입품이 상당히 많다. 예를 들어 서민들의 대용식인 라면만 해도 면을 만드는 밀가루, 면을 튀기는 팜유, 포장에 필요한 플라스틱 등은 거의 대부분 수입 원재료를 사용한다. 게다가 한국 브랜드가 붙어 있는 제품들 중에서도 외국에서 만들어져서 한국으로 수입되는 것들이 부지기수다. 이미 한국 브랜드의 옷도 중국 아니면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만든 것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따라서 환율이 오르면 대다수 가계에는 손해다. 당장 수입 물가가 오를뿐더러 수입 원자재 가격이 올라 생산자 물가도 오르고 최종적으로는 소비자물가에도 전가된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2012년 7월 발간한 <물가보고서>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포인트 오르면 생산자물가와 소비자물가는 이후 2분기까지 0.51%포인트와 0.12% 포인트 정도 오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2008년 이후 소비자물가가 급등했던 데에는 2007년 말까지 930원 수준이었던 원달러 환율이 1100~1200원대까지 올랐던 탓이 크다. 정부가 수출대기업 위주로 인위적 고환율 정책을 지속했던 것이다. 그 결과 일반 소비자들은 치솟는 물가에 한숨을 푹푹 내쉬어야 했다. 결국 시장이나 마트에서 우리가 몇 년 전보다 1, 2만원씩 비싸게 장을 볼 때마다 그 돈들 중 일부가 수출대기업들 보조금으로 쓰였던 셈이다.
사실 한국은 인위적인 고환율 정책으로 수출대기업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경제성장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림1>을 보면 환율이 올라가면 경상수지 흑자폭이 증가하는 추세가 확연하다. 1960년대 원달러 환율은 250원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1970년대에는 500원 선으로 뛰더니 1980~1990년대에는 800원대까지 치솟은 뒤에 이 수준에서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러다가 1998년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한때 1800원까지 치솟았던 환율은 2007년 10월경에는 910원대까지 떨어졌다.
<그림1>
주) 한국은행 자료를 바탕으로 선대인경제연구소 작성
그러다가 다시 2008년 경제위기가 닥치자 환율은 한 때 1,300원대 이상으로 치솟기도 했다. 이때 환율이 급등했던 데는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국내 부동산시장과 증권시장에 들어와 있던 외국 자본이 급격히 빠져나가고 수출이 급감했던 탓이 크다. 하지만 당시 한국정부의 어처구니없는 정책 실패 탓도 크다. 세계 경제위기 가능성이 계속 커지는데도 당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수출대기업을 통한 성장을 늘리겠다면 고환율 정책을 대놓고 발표했다. 가뜩이나 환율 폭등의 불길이 타오르는데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이처럼 인위적 고환율 기조가 뻔히 들여다보이는 상황에서 외국 투자기관들은 외환 거래를 통해 막대한 돈을 벌어갔다. 실제로 한 외국계 투자은행 대표는 “당시 외환거래로 우리 회사만 해도 최소 1조원 이상을 벌었다”고 사석에서 털어놓기도 했다.
환율 인상은 수출업체와 수입업체, 일반 소비자 등의 사이에서 이해득실에 큰 변화를 낳지만, 환율 인상에 따른 충격은 2차, 3차의 파급효과도 낳는다.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비용이 늘어난 납품 업체들은 인건비 등 다른 비용에 손을 대게 된다. 노동자 수를 줄이거나 비정규직을 늘리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우리 일자리가 줄어들고 월급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또 수입물가 인상으로 소비자물가도 덩달아 오르면 결국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수출대기업 위주로 경제를 살리겠다며 고환율 정책을 편 결과 고물가로 내수는 오히려 위축되는 것이다. 내수가 위축되면 결국 자영업 등을 중심으로 서민 경제는 더욱 나빠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한국 언론 대부분은 ‘한국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라며 고환율 정책을 옹호하는 보도를 쏟아내는데, ‘내수가 죽어 서민들은 죽어나는 나라’라는 절반의 사실은 보도하지 않는다. 문제는 한국처럼 아무리 수출 비중이 크고 내수(민간소비)가 위축돼 있는 나라라고 해도 내수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라는 점이다. 참고로, 미국의 내수 비중은 약 70%, 일본과 유럽 대부분 국가들은 60% 이상을 차지한다. 수출이 늘어 내수 위축 효과를 상쇄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이미 수출과 내수의 연계효과가 과거에 비해 크게 약화돼 그도 기대하기 어렵다.
2008년 이후 가계실질소득은 거의 정체상태였는데, 고환율 덕을 본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는 사상 최고의 실적을 잇달아 기록한 것도 이런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지난 몇 년 동안 인위적 고환율 정책으로 가장 많은 수혜를 입은 기업이다. 국내 최대 수출기업이기 때문이다. 우리 연구소가 추정해보니 적정 환율을 어느 정도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삼성전자 영업이익 가운데 아무리 보수적으로 잡아도 최소 30% 가량은 환율효과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2012년 4분기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8조 8000억원 가량이라고 잠정 집계됐는데, 최소 2조 6400억원 가량은 순전히 환율효과 때문에 얻은 영업이익이라는 것이다. 경제위기 속에서 환율이 치솟으면서 서민들이 높은 물가와 내수 침체로 시달리는 동안 삼성전자는 막대한 환율효과를 챙긴 것이다.
이처럼 수출대기업들이 막대한 환율효과를 누리고 있고, 이를 상당수 전문가들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언론보도는 찾아볼 수가 없다. 모두 대기업 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율효과가 얼마나 막대한지 가끔 언론에 보도되기도 한다. 하지만 환율 하락으로 수출대기업들 앞날이 걱정된다는 식의 기사에서 살짝 언급될 뿐이니 일반 독자 입장에서는 알아채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해당 부분만 인용한 아래 기사와 같은 식이다.
삼성전자[005930]는 작년 4분기 환율 영향에 따른 손실액만 3천600억원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올해 한해 동안 3조원 가량의 이익 감소가 예상된다. (중략)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원ㆍ달러 환율이 10원 하락할 때 2천억원의 매출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해왔지만, 이는 엔ㆍ달러 환율은 변화가 없는 것으로 가정한 것인데다 이미 수년 전에 계산했던 것" 이다.
‘환율폭탄’에 4개월간 운수장비 시총 34조원 증발 (연합뉴스, 2013년 1월 27일) 기사에서
원달러 환율은 2012년 3분기 평균 1133.54원에서 4분기에 1090.86원으로 42.68원 하락했다. 원달러 환율이 경제위기 전인 2008년 중반만 해도 920원 수준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2012년 4분기 기준으로 약 170원 이상 높은 수준이다. 그런데도 42.68원 하락해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 등 수출기업들의 영업실적이 줄었다고 ‘환율폭탄’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지난 몇 년 동안 2008년 중반에 비해 200~300원 이상 높은 환율을 감당해온 일반 가계 입장에서는 ‘환율핵폭탄’을 맞았던 셈이다. 이처럼 환율이 높을 때는 일반 가계가 지는 부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던 전문가와 언론들이 환율이 하락하자 금방이라도 한국경제가 추락할 것처럼 아우성이다. 이런 식으로 보도하니 일반 가계들은 환율효과로 얼마나 큰 부담을 지는지, 반면 수출대기업들이 얼마나 큰 이득을 보는지 알 수가 없다. 심지어는 환율이 하락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을 옹호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어떤 방향이든 환율이 널뛰면서 급변동하는 것은 좋지 않다. 2008년 금융위기 때처럼 환율이 급변동할 때는 정부가 나서서 일정하게 속도를 조절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환율이 그 나라 경제체력에 맞게 조절되지 않고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하면 서민들 물가 부담을 키우는 등 부작용이 커진다. 이제는 수출대기업을 위해 소비자들의 지갑을 얄팍하게 만드는 인위적 고환율 정책은 멈춰야 한다. 그리고 언론들도 수출대기업 입장에서 환율이 떨어질 때만 ‘환율폭탄’ 운운하는 식의 보도는 자제해야 한다. 물론 43원 가량 하락한 것이 수출대기업에 폭탄이라면 지난 몇 년간 경제위기 전에 비해 200~300원 높은 환율 부담을 져야 했던 서민들은 가히 핵폭탄을 맞은 셈이기 때문이다.
선대인경제연구소(www.sdinomics.com) 는 99%가 1%에 속지 않는 정직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연구소의 연간 구독회원이 되시면 경제를 보는 안목을 키우는 한편 연구소의 정직한 목소리를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