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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권 뒤에 도사린 세일즈맨의 비애
[표]에스콰이어 캐주얼영업부가 2003년 추석 시즌 때 경기지역 지점별로 할당한 상품권 판매액. |
제화업체 '에스콰이어' 전직 직원 최모씨의 하소연이다. 최씨의 사연을 들어보면 일반인들이 무심코 주고받는 구두 상품권에 적지 않은 아픔과 눈물이 젖어 있음을 알게 된다. 최씨 등 전현직 에스콰이어 직원 5명은 최근 미디어다음에 에스콰이어의 상품권 강매 행태에 대해 제보했다.
이들에 따르면 에스콰이어는 하청업체 및 대리점들을 상대로 매년 추석과 설 명절을 앞두고 최소 수백억 원대 이상의 상품권을 팔도록 해왔다는 것. 회사측은 상품권 판매뿐만 아니라 상품권 판매로 생기는 추가 매출증대 효과를 노려 직원들을 통해 상품권 판매에 열을 올렸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소위 '시즌' 때마다 에스콰이어의 매장 직원들은 수천 만원~수억 원대의 상품권을 배정받아 팔아야 했다. 특히 주임이나 과장, 지점장 등 직급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액수의 상품권 판매를 할당받아 일부 지점장들은 한 해에 10억 여원의 상품권을 떠맡기도 했다. 직원들은 25% 할인된 가격에 상품권을 배정받았지만 이를 파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시중에서 이 회사 상품권이 38~40% 할인된 가격에 대량으로 유통되고 있었기 때문.이 과정에서 이 회사는 100만원 이상의 상품권은 카드로 결제할 수 없는데도 별도의 카드단말기를 사용, 일반 상품을 산 것처럼 수천만 원까지 카드로 결제하도록 했다. 상품권을 무더기로 팔기 위해 기업이 접대비 등 경비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불법으로 결제한 것. 이 같은 불법 카드 결제로 최소한 수백억 원대의 탈세가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직원들은 상품권을 사채시장 등에서 할인해 팔아 급전을 챙기려는 사업가 등에게 상품권을 팔지만 배정된 상품권을 모두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할당 목표를 채우지 못한 직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시중에서 상품권을 40%가량 할인된 가격에 팔아야 했다. 회사에서 배정받은 할인율 25%와의 차액만큼 자신이 떠안아야 해 누적된 빚이 수억원 대에 이른 경우도 있었다. 직원들이 이를 견디다 못해 직장을 그만두자 회사측은 '상품권 판매 대금을 다 갚지 못했다'는 이유로 횡령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이들 직원들은 "본사가 할당 목표를 채우지 못한 직원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등 인격적인 모독을 지속하고 이 상태로 회사를 떠나면 고발당한다는 등 협박하며 상품권을 사실상 강제로 할당해왔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직원들이 억지로 떠맡은 상품권을 모두 소화하지 못해 자신의 돈으로 메우는 과정에서 수억 원의 빚을 지는 것은 다반사"라며 "직원들이 주변의 가족과 친지, 친구들의 신용카드로 대납하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이 신용불량자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공익제보자 모임' 김승민 간사는 "에스콰이어의 각종 불법 행위가 확인된 만큼 회사가 이들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고 사과해 이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며 "만약 회사가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이들에게 보복한다면 회원들이 회사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불매운동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회사에서 배정한 상품권 다 못 팔아 매년 수천만원씩 빚져
회사에 대납하려 전세 보증금, 퇴직금 넣고 가족들 카드까지 빌려
95년부터 지방의 한 에스콰이어 지점에서 근무를 시작한 최모씨는 지난 1월21일 해고당했다. 호주머니 한 쪽에는 유서를 써서 넣고 다닐 정도다. 왜 이렇게 됐을까.그는 97년부터 추석과 연말, 구정 때마다 상품권을 할당받기 시작했다. 특히 2000년부터 주임 진급 대상자가 되자 상품권 할당액이 대폭 커졌다. 회사의 명문화된 규정과는 별도로 상품권 판매액이 진급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됐기 때문. 2000년 이전에는 할당 물량이 명절 때마다 1000~1200장 정도(회사 납입 금액 기준 약 6500만~7500만원 정도)였으나 2000년 이후에는 2500~3000장 정도로 늘어났다. 이런 식으로 1년에 4억여원 어치를 할당받은 적도 있었다.회사는 이렇게 개인별로 할당 목표를 정해준 뒤 이들에게 할당 목표를 채우기 위한 진도율을 제시하게 했다. 할당 목표와 이를 바탕으로 정한 진도율이 처음부터 과다한 목표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직원들이 이를 달성하지 못했다. 이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회사측은 거의 매일 전화해 독촉하고 목표를 채우지 못할 경우 개인들이 떠맡는 조건으로 회사에 납입할 금액을 채우게 했다. 최씨는 "시즌에는 수시로 전화해 진도를 못 맞출 경우 소위 '(액수를) 더 부르라'라고 해서 반강제로 나중에 납입할 금액을 정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같은 진도율을 못 맞추면 본사에서 전화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로 매일 전화해 '영업사원이 맞느냐, 지원비가 아깝다'는 등의 말로 모욕을 주고 실적이 부진한 직원들을 본사에 소집해 호통을 쳤다"며 "직원들은 압박감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달성 액수를 높여 부르게 된다"고 말했다.회사는 상품권 판매는 강제로 떠맡긴 반면 명절이 지난 뒤 팔지 못하고 남은 상품권을 반환받는 데는 인색했다. 반환되는 상품권을 할당량의 2~5% 선에서 맞추라고 한 것. 이 때문에 최씨는 2000년 이후 매년 할당량의 30~40% 가량을 자신이 떠안아야 했다. 이렇게 남은 상품권은 도저히 팔 수 없어 결국 시중 상품권 유통상에게 40% 할인된 가격에 팔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서 받은 할인율 25%와 유통상에 판 가격의 차인 15%가량이 고스란히 최씨의 부담으로 떨어진 것. 이럴 때마다 번번이 그는 가족이나 친구, 선후배 등의 신용카드를 빌려 회사에 모자라는 금액을 입금해야 했다. 이렇게 해서 주위에 지게 된 빚이 매년 2500만~3600만 원이나 됐다. 특히 2003년 추석 때는 최씨가 6000만원 가량 판 상품권의 대금을 회수하지 못하자 이마저도 대납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는 다시 누나들의 카드를 빌리고, 원룸 보증금 1800만원을 빼고, 퇴직금 중간정산분 1900만원 등으로 겨우 이 돈을 채워 넣었다. 당시 회사에 입금한 6000만원을 빼고도 그의 빚은 1억원에 이르렀다.그는 지난해 1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사표를 냈다. 하지만 그는 결국 회사를 떠나지 못했다. 회사측이 "내년부터는 상품권을 할당 안 할 테니 회사 다니면서 빚이나 갚으라"고 최씨를 붙잡은 것. 하지만 한 달 120~130만원의 월급으로는 주변에서 빌린 돈을 갚을 수 없었다. 친구와 선후배에게서 빌린 돈부터 갚느라 결국 그와 그의 누나는 지난해 3월 신용불량자가 됐다. 이 여파로 5월부터는 급여의 절반이 카드사로부터 압류되기 시작했다.최씨가 신용불량자 상태인데도 회사는 추석이 다가오자 약속을 어기고 다시 3500장의 상품권을 할당했다. 그는 이번에도 다시 1700여만원을 스스로 부담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아는 선배가 사간 5700만원 어치의 상품권 대금을 받지 못하자 회사측은 그를 횡령 혐의로 고소했다.최씨는 "본사 영업부에서 내려와 선배가 상품권을 인수한 사실을 확인하고 인수증과 지불 각서까지 받아 올라갔는데 나를 중간에서 돈을 떼먹은 사람 취급했다"고 말했다.이 문제와 관련, 그는 지난 1월17일 본사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그는 회사 임원과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동안의 사정을 설명했으나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는 "지난 해 퇴사하려고 했을 때 영업팀 간부가 내게 종용해 6000만원을 대납했는데도 그 자리에서 영업팀장은 부인하고 다른 임원들은 처음 듣는 소리처럼 반응하더라"며 "그러니 내가 얼마나 억울하겠느냐"고 하소연했다.
"10년동안 뼈 빠지게 일 했더니 회사에서는 범죄자 취급"
매년 7~12억원어치 할당받은 경우도
회사측 "정상적 영업활동했는데 일부 직원들 자기관리 못한 탓"
피해자 가운데 한 사람인 정모씨 형의 신용카드 사용내역. 빨갛게 표시된 2800여만원은 정씨 형이 지난해 3월 정씨의 상품권 판매할당액 중 일부를 에스콰이어에 대납한 금액이다. |
그는 "10년동안 뼈 빠지게 회사를 위해 일하면서 빚만 잔뜩 지고 주위 사람들을 신용불량자로 만들었는데 회사는 이용할 대로 이용해먹다가 쓸모 없어지니 범죄자로 만들어 내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는 최씨의 경우에 국한되지 않는다. 93년에 입사한 정모씨와 김모씨도 사정은 비슷하다. 김씨의 경우도 회사에 입금하지 못한 금액이 9200만원, 가족과 주변 지인들에게 진 빚이 1억원이 넘는다. 퇴직금 중간 정산분 2000여만원도 회사에 입금시켰다. 정모씨도 99년 이후 매년 7억~12억원 가량의 상품권 판매를 할당받았다. 그러는 동안 부모님과 누나 등이 사는 집을 담보삼아 갚아준 돈 등 모두 3억여원의 빚을 졌다. 김씨와 정씨 모두 회사에서 횡령 혐의로 고소를 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정씨는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 수억원의 빚만 진 채 이렇게 고소까지 당하니 정말 비참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이들은 "가정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직장을 구하기 쉽지 않아 회사의 부당한 압력을 거절하지 못한다"며 "회사가 한편으로는 '다음에는 상품권 판매 안한다'고 달래고 다른 한편으로는 욕하고 징계 운운해 상품권을 안 떠맡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회사 직원 1400여명이 모두 이런 식으로 상품권 강매를 당하고 있다"며 "이렇게 피해를 보고 떠난 사람들이 한 두 명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에스콰이어 최수호 상무는 "이 회사가 비교적 정상적으로 움직여온 회사인데 직원들 말대로라면 회사가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며 "입사 후 자동가입이 보장된 유니언숍 노조가 있는데도 노조가 가만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회사는 최대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영업하려 하지만 일부 영업 사원 가운데 부도난 업체에 상품권을 판 뒤 돈을 갖고 도망가는 등 자기 관리가 되지 않는 분들이 있어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최씨 등이 "회사와의 관계가 썩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으며 회사쪽에서 볼 때 사고를 낸 뒤 오히려 회사에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씨 등의 주장이 일부 일탈적인 사원들의 사례에 불과하다는 것.
그는 또 상품권 판매를 전화 등으로 독촉한 사실 등에 대해서도 "부서와 개인별로 판매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도록 진도를 관리하는 것은 모든 회사들이 하는 정상적인 영업활동"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상품권을 일반 물품처럼 불법으로 판매한 사실에 대해서는 "그런 실태를 알고 있었지만 상당수 고객이 요구하고 업계에서도 관행적으로 해온 부분이라 지속했다"며 "차후에는 이 같은 불법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회사 김능연 영업부장은 "판매 목표에 대해 직원들과 협의하지만 직원들 입장에서는 강압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반품율을 2%이하로 정한 것은 기존의 반품률을 토대로 정한 것"이라며 "하지만 직원들이 다 못 판 상품권은 최대한 반품하도록 했으며 실제로 4000만원어치를 반품한 경우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씨 등의 경우 압박감 때문에 상품권을 반환하지 못하고 자신이나 주변의 돈으로 대납했다면 사실관계를 조사한 후 돈을 돌려주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