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한국의 GDP 대비 법인세액 비중이 OECD 4위이니 기업들의 법인세 부담 낮춰야 한다는 전경련과 기획재정부, 박근혜 후보 등의 주장은 악의적 왜곡과 심각한 논리적 오류가 결합돼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GDP 대비 법인세 부담액(과세당국 입장에서 보면 법인세 과세액)이 올라갈 가능성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1)과세 대상자가 늘거나 2)과세대상 소득이 늘거나 3)세율이 올라가는 것 등이다.
그런데 개별 기업 입장에서 보면 법인세 부담이 커지는 경우는 법인세 세율이 올라가는 것(세제상 나타난 명목 법인세율뿐만 아니라 비과세/감면 혜택 등이 줄어 실질 법인세율이 올라가는 것 포함)을 말한다. 실제로 전경련과 기재부, 박근혜 후보 등이 얘기하는 ‘기업의 법인세 부담이 크다’는 것은 개별 기업들이 내는 법인세액이 늘어나서 어떤 식으로든 실효세율이 올라간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들은 기업들의 법인세 부담이 국제적으로 비교해 크다는 주장의 근거를 GDP 대비 법인세 부담액 비중을 끌어다 대고 있다. 그런데 그 동안에 감세정책으로 인해 한국의 명목 법인세율뿐만 아니라 각종 세액공제혜택 등으로 실질 법인세율은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GDP 대비 법인세 부담액이 늘어난 것은 세율이 올라서라기보다는 1), 2)번의 영향이 크다. 우선, 국세통계연보에 수록된 1982년 이래 2010년까지 법인수는 17.9배 늘어났다. 그런데 그 사이 이들 법인들이 가져가는 국민처분가능소득의 몫은 65.7배가 늘었고, 법인세 과세소득 금액은 83.9배 늘었다. 하지만 과세금액은 52.5배 느는데 그쳤다. 그 사이 1개 법인당 과세소득금액은 4.7배 늘었지만, 1개 법인당 과세금액은 2.9배 느는데 그쳤다. 즉, 평균적으로 법인세 과세소득이 늘어난 것에 비하면 과세액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또한 지난 30년 가까이 법인세액이 늘어난 것은 한국경제와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고속성장을 하면서 과세대상자가 늘고, 과세대상 소득이 크게 늘어서이지 세율이 올라서가 아니다.
개별 기업들의 법인세 부담을 정확히 나태내주는 지표는 말 그대로 실효 법인세율이다. 실효 법인세율은 나라마다 달라 정확히 국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명목 법인세율은 한국이 OECD 평균보다 상당히 낮다. 2012년 기준 한국의 명목 법인세율은 24.2%로 OECD 34개국 가운데 21번째로 낮은 편에 속한다. 한국보다 법인세율이 낮은 13개국 대부분은 자본을 유치해야 먹고 사는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같은 도시형 국가이거나 헝가리, 폴란드, 슬로베니아 등 과거 동유럽국가들이 대부분이다. 법인세율이 가장 높은 일본과 미국 등 오히려 선진국일수록 법인세율은 높다.
더구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국세통계연보상의 수치로 분석해본 2010년 기준 한국의 실효세율은 명목 세율보다 훨씬 낮은 16.56%에 불과하다. 더구나 전경련이나 기재부, 박근혜 등이 걱정하는 5000억원 이상 42개 대기업의 실효법인세율은 수백억원대 중견기업이 내는 실효 법인세율보다 낮다.
주) 2011년 국세통계연보를 바탕으로 선대인경제연구소 분석, 작성
이처럼 한국 개별 기업들이 내는 법인세 부담은 국제적으로 비교할 때 오히려 상당히 낮은 편이다. 최근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OECD국가들 가운데 일부가 경기 진작을 위해 실효 법인세율을 한국보다 더 가파르게 내린 것은 맞다. 반면 기본적인 법인세율이 낮았던 데다가 특히 경제위기 속에서도 사상 최대의 실적을 연거푸 올린 재벌대기업들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다른 일부 국가들처럼 법인세율을 낮출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일부 대기업들의 비과세감면 혜택을 대폭 줄여 실효세율을 높이고, 명목 법인세율을 일정하게 올릴 여지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5000억 이상 법인 42개 기업이 수백억원대 중견기업 수준의 세금만 내도 2010년 기준 약 9000억원의 세금을 더 거둘 수 있다. 이들 대기업들이 내지 않은 세금만큼 국민들 호주머니에서 세금이 더 나가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마지막이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포인트는 GDP 대비 법인세 부담액을 비교할 때 매우 중요한 함정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경우 법인세로 잡히는 상당 부분의 소득이 미국과 독일, 프랑스 등 상당수 국가에서는 개인소득으로 잡힌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파트너쉽 회사나 S-corporation 이라고 하는 기업체들의 소득은 궁극적으로 개인들의 소득으로 보고 개인소득으로 잡는다. 그런데 이처럼 법인세 과세 대상에서 빠져나가 개인소득세수로 잡히는 파트너십회사나 S-corporation이 기업 수의 비중으로는 70%, 세수 비중으로는 30~40%에 이른다. 그런데 한국은 이들 회사들에 대한 구체적 법제도가 없이 모두 법인으로 잡혀 법인세수로 잡힌다.
이 때문에 OECD 통계에서 GDP 대비 한국의 법인세액은 상대적으로 과대 평가되고, 개인소득세액 과소평가되는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만약 미국이나 독일 등 상당수 국가들처럼 한국의 법인세액과 소득세액을 구분하면 한국의 GDP 대비 법인세액 순위는 크게 떨어질 것이다. (GDP 대비 법인세 부담액의 비중 차이가 국가별로 큰 차이가 안 나 조금만 비중이 늘거나 줄어도 순위가 크게 변동하게 된다.) 문제는 이 같은 주장을 기득권세력들뿐만 아니라 복지국가를 지향한다는 일부 전문가들조차 ‘OECD 평균론’을 들먹이며 한국의 법인세 부담은 사실상 낮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결론적으로 ‘GDP 대비 법인세 부담액이 높으니 법인세율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은 사실관계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비교상에서 나타난 통계상의 맹점을 전혀 감안하지 못하고 있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몇 년 전부터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에서 한국 기업들의 법인세 부담이 적지 않다라는 근거로 떠들기 시작했는데, 이제 기획재정부장관과 여권의 유력한 대선주자까지 앵무새처럼 읊조리고 있다. 도대체 이들은 국민의 편인가, 재벌대기업들의 편인가?
선대인경제연구소 www.sdinomic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