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알다시피 저는 최근 한 달 여 사이에 김진표 아웃, 민주당 혁신, 경제 민주화를 소리 높여 외쳐왔습니다. 민심의 뜨거운 호응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와 많은 분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김진표는 아웃되지 않았고 민주당 혁신도, 경제 민주화를 위한 공천 물갈이도 크게 진전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제 총선이 한 달 채 남지 않은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이 상황에서 제가 외쳐온 주장들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명확한 입장을 밝힐 시점에 이르렀다고 판단합니다.
내가 김진표 아웃과 경제권력 교체를 외치는 이유
먼저 제가 김진표 아웃과 경제권력 교체를 외쳤던 이유에 대해 다시 한 번 말씀드릴 필요성을 느낍니다. 저는 올 초 녹음했던 나꼽살 9회에서 올해 제 소망을 말한 바 있습니다. “올해는 집값, 땅값 대신에 사람값이 올라가는 한 해가 되면 좋겠다. 정치권력 교체뿐만 아니라 경제권력까지 교체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입니다.
이 소망은 단순히 올해만의 소망이 아닙니다. 제가 한국의 사회경제 현실에 눈 뜨고 난 뒤 줄곧 가져왔던 간절한 소망이었습니다. 저는 노무현정부에 많은 기대를 했지만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기득권세력들의 거센 저항 탓도 컸겠지만 노무현정부가 이 과제를 해결할 정책과 인물 모두 준비돼 있지 않았던 탓도 컸습니다. 실망감이 컸습니다. 아마 그 실망감은 저만 느꼈던 게 아닌 듯합니다. 많은 이들이 2007년 대선에서 기권했고, 결국 이명박정부라는 ‘민주화 이후 사상 최악의 불량정부’가 탄생했습니다. 당시 저는 ‘배가 고프다고 쓰레기통을 뒤지는 격’이라고 안타까워했지만, 결국 우리는 ‘건설족의 수괴’ ‘세금으로 재테크하는 대통령’을 뽑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민주주의와 인권, 대북정책에서뿐만 아니라 철저한 기득권 위주 정책으로 민생경제가 악화를 거듭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하지만 민생경제라는 관점에서 보면 안타깝게도 그 추세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외환위기 이후부터 지속되고 있습니다. 제가 최근 출간한 <문제는 경제다>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듯이 한국의 사회경제는 외환위기 이전과 이후에 극명하게 대비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국민소득 증가분 가운데 가계의 몫은 급감하고 재벌대기업의 몫은 급증하고 있습니다. 양극화라는 표현으로도 모자란, 국민 80%의 빈곤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부동산 거품은 엄청나게 부풀어 올랐고, 가계부채는 폭증에 폭증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재벌로 경제력이 집중되어 중소기업이 몰락하고 청년 일자리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 실업난 등 고용 사정은 지속적으로 악화돼 왔습니다. 물론 이명박정부 들어와 사태는 더욱 악화하고 있습니다. 이명박정부 4년 동안 공공부채를 400조 원 가량 늘려 이 나라를 단시간에 빚더미에 올라앉게 했고, 재벌들은 이제 골목상권까지 짓밟고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지 몰랐습니다. 아직 1987년 민주화의 열기가 남아있던 1990년에 대학에 입학했던 저는 당시 정치적 민주화만 진전되면 모든 것이 좋아지리라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외환위기 전 90년대 초중반까지는 느리지만 대체로 그런 흐름을 보이는 듯 했습니다. 이 시기에 한국경제는 견실한 경제성장을 했고, 소득격차는 확연히 줄어들었고 집값은 안정됐으며 젊은이들이 취직에 지금과 같은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습니다. 외환위기가 닥쳐왔지만, 50년 만의 정권교체로 탄생한 김대중정부가 들어서면서 한국의 사회경제는 더 좋아지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러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외환위기 여파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자 이것이 새로운 추세로 굳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서민 정부’라고 기대했던 노무현정부에서도 민생경제는 나아지지 않고 계속 후퇴했습니다. 알다시피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한국사회는 민주주의와 인권, 대북정책 등의 과제에서는 큰 진전을 이뤄냈습니다. 반면 부동산 거품과 가계 부채, 양극화, 비정규직 급증, 사교육비와 비싼 대학등록금 등 민생경제는 이 기간에도 악화됐습니다. 물론 이명박정부는 이 두 측면 모두를 빠른 속도로 악화시킨 것은 불문가지입니다. 그래서 외환위기 이후 10여 년 동안 민생경제는 늘 위기였고, 서민경제는 늘 불황이었습니다.
왜 민주정부가 들어서 정치와 인권, 남북관계 등에서 커다란 진전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민생경제는 오히려 후퇴하게 됐을까? 끊임없이 고민하는 가운데 조금씩 그 답이 보였습니다. 우리는 정권교체는 해봤어도, 재벌과 토건으로 표상되는 경제권력 교체는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삼성 등 재벌들은 정부와 정치권, 언론, 사법기관, 국세청을 매수했고 정치적 민주주의의 외피 속에서 대다수 국민의 의사와 이해에 반하는 정책과 제도가 수립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도 경제정책의 수장들이나 핵심 참모들은 대부분 ‘삼성장학생’이나 낡은 개발연대의 관주도 방식에 익숙한 모피아 및 토건족 관료 출신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벌개혁’을 부르짖고, ‘부동산투기와의 전쟁’을 부르짖었지만 그 밑의 경제부총리와 건설교통부 장관들은 재벌들과 토건족들의 이해를 대변하기 바빴습니다. 한국사회는 군부철권통치에서 벗어나 잠시 정치적 민주화의 해방구를 맛보았으나 건전한 민주공화국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재벌독식, 금권정치로 이행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지금 한국사회는 크게 두 가지 과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첫째는 이명박정부 이후 크게 후퇴한 민주주의와 인권, 대북정책을 본 궤도에 되돌리는 과제가 있습니다. 둘째는 외환위기 이후 악화일로를 걸어온 민생경제를 개혁해 대다수 일반 국민들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건전한 경제구조를 만드는 일입니다. 첫 번째 과제를 달성하는 것이 정치권력 교체라면 두 번째 과제를 달성하는 것이 경제권력 교체라고 저는 봅니다.
첫 번째 과제는 아마 지금의 야권이 집권한다면 큰 무리 없이 달성할 수 있을 겁니다. 이미 지난 집권시절에도 상당한 성과를 보였고, 향후 집권한다면 더욱 이 과제들을 심화해 갈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두 번 째 과제에 대해서는 저는 낙관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지난 한 달 여 동안 야권의 맏형격인 민주당이 보여 온 행태들을 보면 정말 이들이 집권한다고 해서 민생경제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여전히 회의적인 느낌을 갖게 됩니다. 특히 정치권이 지금까지 기울여온 노력들을 보면 정권교체를 위한 연대에는 상당한 공을 들여왔고, 실제로 최근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 협상 타결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과제인 경제권력 교체에 대해 정치권이 그만큼 큰 공을 들이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저는 이런 문제의식 때문에 경제권력 교체를 목소리 높여 외쳐왔습니다. 정치권을 비롯해 대다수의 지식인들조차 첫 번째 과제에만 집중하는 상태에서 저 같은 사람이라도 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제가 김진표 원내대표의 사퇴, 이어 낙천 낙선을 주장해온 것도 바로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제가 이미 여러 차례 말씀드렸지만 김진표 의원은 노무현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에 취임하면서 일성으로 법인세 인하를 내놓았다가 여론의 반발에 밀려 철회하면서 재벌개혁을 포기하겠다는 신호를 분명히 줬습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외환은행 매각을 승인했던 장관이기도 합니다. 그는 또한 노무현 정부 초기 부동산대책에서 민간도 아닌 주택공사의 분양원가를 공개해달라는 요구를 ‘사회주의적 조치’라며 뿌리쳤습니다. 골프장 무더기 건설 등 부동산경기 부양책도 함께 추진했습니다. 이후 교육부총리로서 국립대 법인화에 시동을 걸었고, 사립대들의 등록금 인상 경쟁을 방조했습니다.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시절에는 한·미 FTA 추진을 적극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정권이 바뀌고 나서도 김 의원은 그 행태를 반성할 줄도 몰랐습니다. 민주당의 원내대표로서 그는 KBS 수신료 인상안을 일방적으로 한나라당과 합의했다가 질타를 받았는데도 한미FTA 비준과 관련해서도 여당과 합의문을 작성했다가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고도 한 신문과 인터뷰에서 ‘당내 강경파의 주장은 쇼’라는 적반하장식의 태도를 보였습니다. 지난 연말에는 외환은행 매각에 대한 국정조사 추진을 포기한 채 국회 등원을 주도했습니다.
저는 김진표 원내대표에 대해 그의 공적 역할에 대한 반성과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지 개인적 사감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기득권의 본산인 새누리당에 무엇을 기대하겠습니까. 그러면 야권에 기대할 수밖에 없고, 결국 야권의 맏형격인 민주당의 정책 혁신과 인물 혁신을 기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민주당의 경제정책통이고 직책상 당내 2인자격인 원내대표가 바로 모피아 정치인의 핵심인 김진표 의원입니다. 만약 김진표 의원으로 대표되는 모피아 정치인들과 이들에 의존하는 정치인들로 민주당이 다시 채워진다면 경제권력 교체는 어려워진다고 봅니다. 물론 잠시 개혁적인 것처럼 포장하겠지만, 거대한 경제기득권에 맞서서 민주당이 총력투쟁을 해도 어려운 판인데, 모피아 정치인이 중책을 맡는다면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물론 민주당 안에 김진표 의원 한 사람만 문제는 아닙니다. 그 동안 경제민주화와 배치되는 행태들을 보여온 적지 않은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나 세금혁명당이 가진 영향력과 자원은 제한적입니다. 그래서 경제권력 교체를 위해 핵심고리라고 생각하는 김진표의원의 낙천 낙선을 요구해 온 것입니다.
저에 대한 오해와 왜곡에 대하여
제가 이렇게 김진표 아웃과 민주당 혁신, 경제 민주화를 부르짖어온 데 대해 민심의 호응은 뜨거웠습니다. 2월 한 달 동안 트위터에서 1만8000여 회나 부정적으로 언급돼 가장 욕 많이 먹은 정치인으로 김진표 의원이 꼽힌 것이 이를 보여줍니다. (위키트리 기사 참조 http://bit.ly/wZGiYf )
이처럼 트위터 민심이 뜨거운 상황에서 일부이지만 점점 저를 비판하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일정하게 일리 있는 주장들이 있었지만, 왜곡된 사실에 근거한 인신공격도 난무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제가 동아일보 출신이면서 지금의 민주당을 깔 자격이 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동아일보에 들어가던 96년은 동아일보가 지금과 같은 꼴통 신문이 아닐 때였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외환위기 직후에 서울역에서 일주일 동안 노숙자 체험을 해 르뽀기사를 썼고, 99년에는 참여연대와 공동기획으로 ‘공정과세로 가는 길’ 시리즈를 주도했습니다. 지금의 동아일보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시도였지만 당시에는 충분히 가능했습니다. 또한 저는 그 신문에서 열심히 ‘정의의 필봉’을 휘두르려 노력했고요. 그런데 재벌 광고주들에게 종속되기 시작한 동아일보는 점점 변질되기 시작해 조선일보 아류 신문이 돼갔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제가 원하지 않았지만 정치부에 배치돼 한나라당을 출입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당시 김대중정부의 조중동 세무조사가 진행되면서 한나라당과 조중동이 한 편을 먹고 김대중정부와 싸우는 형국이 됐습니다. 저는 한나라당 출입기자인데다 막내기자다 보니 최전방 소총수처럼 굳은 기사를 도맡아 처리해야 했습니다. 지금 저를 흠집 내는 사람들이 주로 거론하는 기사들이 그 당시에 쓴 기사들인 것 같습니다. 솔직히 너무나 괴로웠던 시절이었습니다. ‘정의의 필봉’을 휘둘러보고 싶었던 저로서는 마음의 상처와 자괴감이 너무 컸습니다. 당시에 우리 큰아이가 태어났는데, 그 아이가 10년 후 내가 쓴 기사를 볼 때 내가 당당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결국 국제부에 지망해서 간 뒤 6개월 후 동아일보를 사직했습니다. 너무 대책 없이 퇴사했기에 이후 1년 반 동안 돈 한 푼 벌지 못했습니다. 회사가 자른 게 아니라, 제 스스로 사직했다는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 일부러 실업보험 한 푼 타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한 때 동아일보에서 원치 않게 부끄러운 기사를 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확히 그 이유 때문에 회사를 나왔습니다. 생계 벌이도 제대로 못하며 어려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후의 삶에서 최대한 올바른 정보를 알리고 기득권보다는 다수 국민 입장에서 활동해왔다고 자부합니다. 특히 그 때의 경험이 있었기에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보게 되었고, 특히 조중동 등 언론의 왜곡보도와 문제점을 누구보다 강력히 지적해왔습니다. 이런 역할 때문에 동아일보에 남아 있는 선후배와 동료들에게는 숱한 욕을 먹었습니다. 그래도 진실을 알린다는 생각으로 노력해왔는데, 이런 식으로 인신공격을 당하니 서글픕니다.
동아일보 기자 경력 외에 제가 오세훈 시장 보좌진의 일원으로 일한 것을 문제 삼기도 합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제가 한나라당 당원이었고, 오세훈 선거를 뛰고 들어갔다는 식으로 왜곡하던데 그런 사실 전혀 없습니다. 저는 오세훈 시장 취임 일 년 후 유학길에서 귀국해 전문가로서 스카웃돼 서울시에 들어간 경우입니다. 물론 한나라당 출입 기자 시절 당시 당내 소장개혁파로 분류됐던 그와 맺게 된 인연이 작용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당시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아파트 분양원가 심의위원회, 입찰제도 개혁, SH공사 아파트 후분양제 도입, 장기전세 주택 등 제가 유학 가기 전 공저한 책에서 주문했던 정책들을 당시 오세훈이 추진한 데 대해 좋은 인상을 받았던 게 사실입니다. 이는 당시 노무현대통령도 높이 평가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당시 오세훈의 제의를 받고 함께 뜻을 나눴던 경실련 관계자 분들과 상의한 끝에 서울시 주택정책과 입찰제도 개혁 등을 통해 모범 사례들을 만들어내면 그 자체로 사회에 큰 기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서울시에서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기존 관료들과 싸우면서 쓰레기시멘트 문제와 아토피문제에 대해 서울시가 관심을 기울이게 했고, 뉴타운 재개발 지역이나 지하철 역사의 석면문제에 대해서도 서울시가 조치를 취하는데 기여했습니다. 하나은행에 특혜 주는 식으로 변질되던 은평자사고 문제를 조금이나 개선하기도 했고, 성미산 개발을 막기 위해서도 노력했습니다. 또 지하철 9호선 2단계 사업에서 건설업체간 담합을 분쇄해 약 1000억원 가까이 아꼈습니다.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건 2008년 총선 직후 한나라당 의원들의 정치적 압박에도 불구하고 뉴타운 추가 지정을 막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습니다. (이 부분은 나꼽살 17회 뉴타운 특집을 통해 자세히 밝히겠습니다.) 정말 그 시절에 관료들과 오세훈의 정치권 똘마니들과 싸워가며 공익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정부가 들어서고 낙 직후 오세훈이 줏대 없이 중앙정부에 영합하는 걸 보게 됐습니다. 늘 한국 사회의 바람직한 변화를 위해 최선의 기여를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생각을 가진 저로서는 서울시에 들어간지 일 년도 안 돼 미련 없이 나왔습니다. 그 뒤 잘 알려져 있다시피 2010년 말 무상급식 논쟁을 계기로 오세훈을 본격적으로 공격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저를 ‘대인배’라고 박수치다가 이제 와서는 민주당의 공천 과정을 비판하는 저를 ‘오세훈 똘마니’로 비난하는 일부 사람들을 보면서 정말 인심의 변화가 험악함을 느낍니다.
이런 인신공격들로 시작됐던 저에 대한 공격은 결국 ‘선대인=새누리당 프락치’라는 악의적인 프레임 덧씌우기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저 스스로를 보수나 진보로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 정체성을 그렇게 한두 마디로 규정하는 것이 마뜩치 않고, 한국의 왜곡된 이념 논쟁과 편 가르기를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저는 그 동안 수많은 글쓰기를 통해 저만의 시각과 소신, 원칙을 밝혀왔습니다. 굳이 표현한다면 제 정체성을 표현하는 말들은 반재벌, 반토건, 친생활, 경제민주주의로 표현하는 게 좋을 겁니다. 실제로 그 같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줄기차게 부동산 거품 해소를 주장하고, 조세 정의와 재정지출 구조개혁을 부르짖어왔으며 재벌 개혁을 주장해온 것입니다. 또한 그런 맥락에서 저는 반이명박, 반새누리당, 반박근혜임은 명확합니다. 실제로도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그 누구보다 강력하게 이명박정부와 새누리당의 정책을 각종 매체 등을 통해 가열차게 비판해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방심했던 모양입니다. 제가 최근 한 달 여 동안 민주당 공천과정을 중심으로 비판한다고 해서 설마 ‘새누리당 프락치’라는 식의 악의적 공격까지 나올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제가 그 동안 줄기차게 현 정부와 새누리당을 비판해온 것은 도외시하고 이렇게 몰아가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제가 ‘새누리당 프락치’라면 민주당 지도부 경선 때 모바일경선 참여를 그토록 독려하고, 민주당 지도부인 박영선, 문성근, 이인영 후보와 정책협약까지 맺었겠습니까? 또 청년유니온과 함께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청년 비례대표 후보들을 지원하고, 녹색당과 청년당의 멘토 역할을 맡았겠습니까? 정말 모든 것을 정치적 피아로 나눠서 ‘우리 쪽을 비판하면 적군’이라는 식의 이런 이분법은 어디에서 나오는 겁니까? 정권 교체를 왜 합니까? 저쪽 정치 엘리트들을 이쪽 정치 엘리트들로 교체해서 그 사람들이 권력 나눠먹으면서 떵떵거리는 것 보고 싶어서 하는 겁니까? 대다수 국민들이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면서 삶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하는 것 아닙니까? 거기에 역행하는 흐름을 보일 때는 당연히 민주당이라 하더라도 채찍질을 가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좀 더 민심에 부합하는 조치들을 내놓으라고 말입니다. 물론 그 비판을 가하는 과정에서 지금 생각해보면 이해찬 전 총리 등 일부 분들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과격한 표현을 쓴 적이 몇 차례 있었고, 그에 대해서는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큰 틀에서 저의 비판은 정당했으며 저의 이 같은 노력을 악의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절대 수용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행동이 결과적으로 새누리당을 돕는 것 아니냐?’는 ‘결과론적 프락치론’도 나옵니다. 그런 분들에게 문제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제가 가락시영 종상향 결정 때를 제외하고 제가 박원순시장님에 대해 비판하는 것 보셨습니까. 오히려 박시장님을 자주 칭찬하거나 옹호했고, 실제로 각종 공식, 비공식적 통로를 통해 서울시정을 돕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저는 지난 연말에는 민주당을 정책적으로 돕기도 했습니다.
민주당이 제대로 해보십시오. 왜 저나 수많은 트위터리안들뿐만 아니라 이른바 진보 매체인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조차 비판하겠습니까? 문제의 근원이 민주당의 쇄신 부족과 나눠먹기식 소탐대실형 공천에 있는데, 문제의 근원은 보지 않고 그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을 나무라는 격입니다. 비판을 하면 오히려 문제의 근원은 보지 않고 ‘조중동 프레임에 놀아난다’며 비판을 무력화하기 바쁜 분들도 계십니다. 기득권 언론의 문제점은 제가 누구보다 강력히 비판하는 사람이지만, 모든 문제를 그렇게 치환활 수 있습니까? 분명히 지금의 민주당이 개혁을 바라는 뜨거운 민심을 저버리고 있는 것이 근본 문제 아닙니까? 제가 그렇다고 지금의 민주당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요구하는 겁니까? 민주당 스스로 재벌개혁, 탈토건, 조세 정의, 복지 강화, 탈원전 등을 강령으로 내걸었고 그 가치와 정체성에 부합하는 인물들을 공천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걸 실현할 수 있는 인물들은 제대로 공천하지 않고 김진표와 같은 모피아 정치인이나 박기춘 의원과 같은 토건족 정치인을 공천하니 비판한 것 아닙니까?
왜 민주당만 비판하느냐고 하는데, 분명히 말씀드렸지만 제 비판의 주대상은 현 정부와 새누리당입니다. 물론 최근 민주당 비판에 치중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경제권력 교체를 염원하는 제 입장에서는 현 국면에서 민주당의 공천 개혁이 너무나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같은 시기에 새누리당 비판을 좀 더 많이 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제가 했던 민주당 비판이 잘못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저는 개인 선대인이기도 하지만, 풀뿌리 정치압력조직을 지향하는 세금혁명당 대표이기도 합니다. 정치압력조직은 기본적으로 정치에 영향을 미쳐 정책의제를 관철하려는 조직입니다. 세금혁명당의 역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제한된 힘으로 최대한 효과를 얻는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솔직히 공천 개혁 과정에서 저나 세금혁명당이 떠든다고 한나라당이 콧방귀나 뀌겠습니까? 그나마 정권교체와 함께 경제권력 교체의 가능성이 있는 민주당의 공천 개혁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민주당이나 그 열렬한 지지자들에게는 불쾌할 수도 있겠으나 세금혁명당의 활동 방향과 정체성을 생각하면 결코 무리한 활동이 아닙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면 이제 남은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겠죠. 민주당이 민심을 수용해 김진표 의원을 공천에서 배제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김진표 의원은 공천됐고, 이제 총선일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야권연대협상에서도 김진표 의원은 야권 단일 후보로 인정된 상태입니다. 현실적으로 김진표 의원이 당선되지 않으면 새누리당이 당선될 수밖에 없는 상태를 가정해야 합니다. 이에 따라 많은 선의를 가진 분들도 이 같은 구체적 고민에 부닥치게 된 것 같고, 저도 며칠 동안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심지어는 많은 분들께서 제가 무소속으로 김진표 의원 지역구에 출마해 대안이 되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지나친 활동입니다. 많은 분들의 기대를 저버리게 돼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하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저자와 연구자로서, 그리고 세금혁명당 대표로서, 나꼽살 진행자로서 살고 싶습니다. 이 역할들이 매우 중요하며 이 역할들을 통해 저는 훨씬 더 많은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양해를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김진표 의원의 낙선을 기대합니다. ‘그래도 새누리당 의원이 되는 것보다는 김진표가 낫지 않겠어’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최악보다는 차선 또는 차악이라도 골라야 한다는 논리죠. 저도 그 동안 늘 비슷한 말씀드려왔고,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번 문제와 관련해서는 오히려 김진표 의원이 최악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새누리당 의원이 이기면 새누리당 의석 한 곳이 늘고 민주당 의석 한 곳이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김진표 의원이 이겨 19대에 입성하면 김의원은 민주당의 중책을 맡아 새누리당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정책방향으로 당을 이끌고 갈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일반인들은 직접적인 부정부패를 저지른 정치인들의 해악은 잘 알지만 잘못된 정책방향을 이끄는 정치인들의 해악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후자의 해악이 훨씬 큽니다. 당장 김진표 의원이 경제부총리로서 부동산 거품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 생겨난 가계부채 문제와 재벌독점 강화로 인한 서민경제의 위축, 사립대 등록금 방치로 인한 학부모와 청년세대의 고통을 생각해 보십시오. 잘못된 외환은행 매각을 승인함으로써 투기자본에 빼앗기는 4조원대 이상의 국부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로 인한 해악은 너무나 큰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도 김진표 의원은 지금이라도 공천 반납은 물론 국민에게 석고대죄해야 마땅하다고 저는 봅니다.
더구나 김진표 의원은 일개 의원이 아닙니다. 민주당 내부 공심위원들이 대부분 김진표 영향권 안에 들어 있고, 이해찬 고문과 박지원 최고위원 등이 감싸고도는 민주당의 핵심입니다. 숱한 정치인들도 떨어지는데, 수원의 인접 지역구에는 그의 보좌관 출신이 공천받은 것도 그의 힘을 보여줍니다. 그런 사람이 19대에 입성해 말로는 개혁을 내걸면서도 실제로는 민생을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민주당을 이끌고 갈 경우의 해악이 훨씬 크다고 봅니다. 그래서 김진표 낙선운동은 계속돼야 합니다. 앞으로도 쭈욱~. 이게 저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이미 총선유권자네트워크에서 발표한 낙선자 명단을 보면 새누리당 대다수 후보들과 함께 3개 단체 이상에서 유일하게 낙선대상으로 꼽힌 야권 인사가 김진표의원입니다. 그만큼 김진표의원 낙선에 대한 여론은 상당한 공감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만약 김진표의원이 이번에 당선된다면 저는 19대 국회에서도 그가 중책을 맡지 못하도록 요구하고 가열찬 비판을 지속할 것입니다.
하지만 김진표 의원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향후에는 새누리당을 비판하는데 치중할 생각입니다. 사실 야권연대 협상이 타결되고 각 지역별 대진표가 윤곽을 잡아가는 시점에 그렇게 할 계획을 처음부터 갖고 있었습니다. 특히 새누리당의 수도권 모피아와 토건족들의 핵심인 정몽준, 홍준표, 구상찬, 서장은, 이종구 등에 대해서는 집중 낙선대상으로 삼을 것입니다. 반면 유종일, 최재천, 정동영, 이종걸, 천정배, 노회찬, 심상정, 이정희 의원 등에 대해서는 집중 당선운동을 펼칠 생각입니다. 이와는 별도로 제가 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고,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 원내 진출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녹색당과 청년당, 진보신당 등의 선전도 기원할 것입니다.
마무리하며
어제 점심 때 과거 금융감독원에서 일했던 한 분을 만났습니다. 삼성생명 상장에 반대했다가 상부에서 사퇴 압력을 받고 지금은 사업을 하고 있는 분입니다. 그 분 말씀이 “삼성생명 상장을 반대하니 온갖 곳에서 압력이 오더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쫓겨나다시피 나온 뒤로 그는 “세상을 자꾸 냉소적으로 보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정책도 정책이지만 사람이 정말 중요하다. 아무리 정책 잘 만들어 놔봐야 관료나 위정자가 악용하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소망은 “빨리 돈을 벌어서 재벌에 놀아나지 않는 학자나 법조인, 언론인 등 전문가 그룹들을 후원하는 재단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말이 증언하듯이 지금 이 나라는 곳곳이 재벌들에 장악돼 손쓰기 쉽지 않은 상황이 돼버렸습니다. 예를 들어, 삼성그룹은 여야 정치권 의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전담 마크맨을 두어 평소에 물 샐 틈 없이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경제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부동산 거품과 가계부채도 해소하지 못했는데, 재벌독식구조로 서민경제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2010년대에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저출산 고령화 충격이 몰아닥치게 됩니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야권도 그 절박함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해찬이나 문재인, 문성근 같은 분들이 임종석 사무총장의 사퇴는 요구하면서도 김진표 의원의 사퇴는 요구하지 않는 게 방증이라고 봅니다. 또 재벌 개혁을 내세우면서도 민주당 경제민주화특위위원장인 유종일 교수나 노무현정부에서 삼성에 휘둘리지 않았던 법무장관인 천정배 의원의 지역구를 아직도 결정하지 않고 내돌리고 있는 현실이 이를 웅변합니다. 제가 모르면 몰랐지 이 같은 현실을 아는 사람으로서 지금 하는 일을 멈출 수 없습니다. 총선뿐만 아니라 대선 때까지 ‘경제권력 교체’를 외칠 것입니다. 정권교체도 중요하지만, 경제권력 교체를 병행하지 않으면 한국 사회는 10년 후 멕시코형 사회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낍니다.
빌게이츠는 그 유명한 ‘창조적 자본주의’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30년 후 당신이 직업적 성취뿐만 아니라 세상의 가장 깊은 불평등과 어떻게 맞서 싸웠는지를 돌아보면서 스스로의 삶을 평가하기를 바랍니다.” 현장에서 직접 이 연설을 들으며 벅찬 감동의 눈물을 흘렸던 그 마음 그대로 ‘불평등에 맞서는 활동가’로서 앞으로도 저는 살아갈 생각입니다. 제발 저의 충정을 이해해주시고 많은 분들의 성원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