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기득권 만능과 폭탄 돌리기
알다시피 나는 현 정부에 매우 비판적이다. 2007년 대선 결과를 두고 ‘배가 고프다고 쓰레기통을 뒤진 격’이라고 개탄했고, 이후에는 ‘민주화 이후 사상 최악의 불량정부’라고 비판했다.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서는 ‘건설족의 수괴’라는 표현까지 썼다. 그러다 보니 일부 방송사 간부들은 과격하다는 이유로 나의 출연을 꺼린다는 이야기도 여러 차례 전해 들었다. 물론 그런 사정 때문에 비판의 강도를 낮출 생각은 추호도 없다. 쓰레기를 쓰레기라 부르고 걸레를 걸레라 부르듯이 불량정부를 불량정부라 비판하는 것이 뭐가 문제란 말인가.
하지만 나는 비판할 때는 구체적 근거들을 밝혀왔다. 현 정부를 ‘신자유주의’니 ‘시장만능’ 등의 용어로 비판하는 경우를 종종 접한다. 하지만 어떤 신자유주의 정부가 토건공기업들을 중심으로 공공부문을 극도로 팽창시키고, 개발연대의 관치물가 억제책을 마구잡이로 동원한단 말인가. 또 어떤 시장만능 정부가 아파트 미분양 물량을 세금으로 매입해주고 금융계에 낙하산을 무더기로 내려 보내 사실상 관치금융 상태를 만든단 말인가.
굳이 표현하자면 현 정부는 기득권 만능일 뿐이다. 개발연대 이래 지속돼온 관주도, 재벌주도, 토건주도의 기득권 수호 집단일 뿐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 어떨 때는 엉터리 시장원리를 들먹이다가 또 어떨 때는 정부의 무한 개입주의를 옹호한다. 이들은 일관된 이념도, 지향도, 원칙도, 철학도, 논리도 없다. 굳이 그들에게 단 하나의 원칙이자 기준이 있다면 자신들을 포함한 기득권 세력의 이익 챙기기라는 탐욕일 뿐이다. 물론 ‘공정사회’니 ‘친서민’이니 ‘동반성장’이니 포장지를 바꾸기도 하고, 기득권 구조의 핵심은 손대지 않으면서도 재벌이나 관료들과 실랑이하는 장면을 가끔 연출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기득권 만능주의와 더불어 현 정부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내는 표현은 ‘폭탄 돌리기’라고 할 수 있다. 부동산 문제에 관한 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 당시부터의 거듭된 정책실패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지만 현 정부의 대응은 한결같이 미루기와 폭탄돌리기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당장은 ‘연착륙’이라는 미명 아래 충격을 줄이는 척하지만 갈수록 위기의 에너지를 키우고 있다. 위기의 에너지라고 할 수 있는 공공부채와 가계부채가 2008년 말 경제위기 이후 각각 410조원, 107조원씩 늘어난 게 단적인 사례다. 그 사이 정부가 구조조정을 하겠다며 요란하게 떠벌렸던 건설업체들은 각종 재정호흡기로 연명하며 좀비처럼 살아남아 부실 채권을 양산했다. 건설업계의 부실 PF 대출에 물린 저축은행들도 잇따라 무너지고 있다. 시장퇴출이 실질적으로 일어나는 건설업계와 저축은행의 진짜 구조조정을 가로막은 탓이다.
이미 수십 개 저축은행의 부실이 매우 심각한 상태로 추정되는데도 금융감독원은 여전히 ‘안심하라’는 말만 되뇌고 있다. 영업정지 전 특혜 인출을 한 자신들이야 안심해도 될지 모르지만 일반 서민들도 안심해도 되는 것일까. 어쨌든 정부가 쉬쉬하는 사이 저축은행뿐만 아니라 일반은행들에도 위기의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예금은행의 실질총자산 대비 당기순이익의 비율인 총자산수익률(ROA)도 2005~2007년 연평균 1.16%에서 2008~2010년 기간에는 연평균 0.47%로 급감했다.
이렇게 현 정부가 덮고 미루고 가리는 사이 잠재 부실은 곳곳에서 점점 커져가고 있다. 일례로 지금 LH공사가 잔뜩 빚을 내 끌어온 돈으로 사들인 상당수 토지들이 당시 사들인 장부 가치를 유지하고 있는지, 심지어 거래라도 되는지 심히 의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부채와 함께 자산도 함께 늘어났으니 별 문제 없다는 식이다. 언제까지 이런 속임수를 계속할 수 있을까. 현 정부는 자신들 임기 내에만 큰 탈 없이 폭탄을 떠넘기면 ‘문제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 정부 임기 이후에도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 나라에도 과연 문제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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