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나라당과 정부가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위해 주택 매매자들에게 깎아줄 것으로 예상되는 취득세 약 2조1000억원을 국민 세금으로 메워주기로 했다고 한다. 지자체가 취득세 감면으로 못 받는 세금만큼 채권을 발행하면 이를 중앙 정부가 갚아주는 방식이라고 한다. 지난 ‘3.22 부동산 대책’에서 정부가 올 연말까지 9억원 이하 1주택자의 취득세율을 현행 2%에서 1%로, 9억원 초과 주택 소유자나 다주택자의 취득세율을 4%에서 2%로 감면해주는 방안에 대해 지자체들이 반발하자 이 같은 조치를 취한 것이다. 지자체들로서는 지금도 지자체 재정난이 심각한 판에 지방세수의 약 30% 가량을 차지하는 부동산 취득세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하니 반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취득세 감면과 이에 대한 국고 지원 조치는 결국 서민들 호주머니를 털어 부동산 부자들과 건설업계를 도와주겠다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어처구니가 없는 조치다. 더구나 이미 87조원 규모의 ‘부자감세’와 4대강사업 등 무리한 토건부양책 때문에 정부와 공공기관의 공적 채무가 2009년 이후 410조원 이상 늘어난 상태다. 더구나 기획재정부 주장대로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 거래세에 해당하는 취득세를 낮추는 게 기본원칙이라면 그 동안 정부가 주장해왔고, 대다수 선진국이 취하고 있듯이 상응해서 부동산 보유세를 올리는 것도 기본원칙이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종합부동산세는 거의 무용지물이 됐고, 국내 부동산 보유세의 실효세율은 미국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낮다. 집 없는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다주택 투기자와 건설업계를 지원해주는 대책일 뿐이다.
더구나 이 같은 정부의 취득세 감면 및 국고 지원 방안을 보면 현 정부가 얼마나 겉 다르고 속 다른지 명확히 드러난다. 현 정부는 지난달 31일 ‘공정사회 구현을 위한 조세정의 실천방안’을 내놓았다. 이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국세청에서 열린 제2회 공정사회추진회의를 주재하며 "성실한 납세가 바로 국가를 사랑하는 애국자"라고 말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도 "조세정의의 핵심가치는 공정과세와 성실납세"라고 말했다.
현 정부가 그 동안 해온 것을 보면 처음부터 이 같은 발표나 말은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려웠다. 이대통령은 수백억원대 자산을 보유한 2000~2002년 동안 사실상 세금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강보험료를 1,2만원만 냈던 분이다. 또 특검 수사결과 밝혀진 비자금만 4조5000억원이 드러난
더구나 이명박 정부의 기조는 ‘부자감세, 서민증세’ 아니었던가. 현 정부 들어 국세 수입의 3대 축 가운데 법인세, 소득세수는 주는데 모든 국민이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내는 간접세인 부가가치세는 계속 증가했다. 부동산 보유세인 종합부동산세는 무력화됐다. 민주노동당
㈜ 통계청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정직하고 성실한 납세자들만 '봉'이 되는 현실은 어떤가. 부동산, 주식에서 수천만원, 수억원 양도차익을 얻은 사람들도 양도차익에 대한 세금 한 푼 안 내는데 연봉 수천만원인 근로소득자는 연간 수백만원의 세금을 원천 징수당한다. 건강보험의 직장 가입자는 고소득자가 많지만, 지역가입자중 고소득자는 멸종위기종으로 보일 정도로 탈세가 만연해 있다. ‘함바집 비리’에서 고위급 인사들이 줄줄이 엮여 나오는 데서 볼 수 있듯이 부패와 각종 비자금의 온상인 건설업계에서는 매년 10조~20조원씩 비자금이 조성돼 수조원의 탈세가 횡행하고 있다.
이처럼 이 사회의 기득권 세력에게 철저히 유리한 과세 구조와 재정 지출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는 한 결코 조세정의는 이뤄질 수 없다.
한국은 과거 70년대에 구축된 조세체계를 근본적인 변화 없이 지금까지 땜질식 세목 변경으로 일관해왔다. 새로운 경제구조 변화에 대응하는 조세체계의 재정비가 시급한 상황이다. 이미 한국경제는 과거 자본집약적 성장의 생산경제에서 90년대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자산투기 중심의 자산경제로 급격히 옮겨가고 있다. 과거 생산경제 활동의 비중이 클 때에는 법인세나 소득세, 부가세 등 가계나 기업의 생산 활동에 대한 세금 비중이 클 수밖에 없었다.
재정부도 겉으로는 ‘선진 조세체계’를 구축한다고는 하고 있다. 하지만 고작 하는 것이 2008년말 종부세와 양도세, 상속세 등 대대적인 부동산 감세정책을 추진했다. 여기에서 한 술 더 떠 사실상 극소수 부자들만 내게 되는 상속세를 아예 폐지하자는 주장을 버젓이 내놓고,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정상화하기 전까지 한시적으로 내놓았던 양도세 중과제를 보유세를 무력화하면서도 동시에 무력화했다. 한 마디로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생산경제 비중이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언제까지 그 같은 체계를 그대로 가져갈 수는 없다. 생산경제 중심의 70년대 조세체계로는 더 이상 재정건전화와 조세 형평성을 기할 수 없게 되었다. 조세체계 역시 자산경제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명박정부는 한국 경제구조의 급격한 변화에 걸맞은 세입세출 구조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인식 자체가 없다. 나라가 어떻게 되든 말든 자식세대가 죽든 살든 상관없이 자리에 앉아 있을 때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기득권 챙기기에만 급급해 있는 것이다.
물론 자산경제로 이행해가고 있다고 해서 무턱대고 법인세나 소득세를 깎을 수도 없다. 아래 <도표2>에서 이명박정부가 대규모로 감세를 추진하고 있는 법인세와 소득세의 세율을 국제적으로 비교해보면, 한국은 거의 최저 수준으로 더 이상의 감세를 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소득세의 경우 한국은 평균임금의 167%를 받는 고소득자에 대한 세율이 OECD 국가가운데 두 번째로 낮고, 평균임금 소득자의 경우 네 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도표2> OECD 국가별 소득세율 및 법인세율
(주) OECD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한국언론의 왜곡된 보도로 한국의 법인세 수준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OECD 국가들 가운데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오히려 경제대국인 일본과 미국이 법인세율 1,2위를 다투고 있으며, 한국보다 경제수준이 높은 대부분 국가들이 한국보다 법인세율이 높다. 법인세가 높아서 한국 재벌대기업들의 투자가 일어나지 않는다거나 법인세를 낮춰야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이명박정부의 감세정책은 현실의 경제문제를 구조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시대착오적 이념에 젖어 재벌기업과 부동산부자 등 기득권층에 특혜를 주기 위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의 감세정책과 한국의 감세정책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은 성장잠재력 저하 등 경제활력을 잃고 있으며 고령화와 실업 증가등 재정소요가 계속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안정적인 세원을 어디에서든 확보하지 않으며 안 된다. 경제구조 변화에 대응하여 새로운 세원을 확보해야 한다. 부동산 등 자산과 자산의 시세차익 소득에 대한 과세 확대는 피해갈 수 없다.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등의 보유세는 계속 높여갈 수밖에 없다. 양도세는 명목상 거래세이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부동산투기 시세차익에 대한 과세에 해당한다. 양도세 감면을 위해서는 투기적 시세차익에 대한 과세장치를 먼저 마련해야 한다. 또한 자산 임대소득이 크게 늘게 될 텐데, 그에 따른 과세도 확대 보완해야 한다. 피땀 흘려 일하는 근로소득에 대해서는 수백만, 수천만원의 세금을 부과하면서도 불로소득이나 마찬가지인 부동산 투기소득 및 임대소득에 대해 미미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민주주의 시장경제의 정의 면에서도 맞지 않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명박정부는 정반대로 치닫고 있다. 종부세를 무력화하고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한다는 등의 명목으로 양도세와 상속세를 크게 줄여 부동산 투기자들의 불로소득과 대물림까지 용인해주고 있다.
향후 급속한 고령화나 경제성장률 추이 등을 감안할 때 향후 재정악화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그런 가운데 이명박정부는 무리한 감세정책과 대규모 토건사업 남발로 국가 재정을 위기에 빠트리고 있다. 나중에 벌어질 일은 생각하지 않고 자식세대가 써야 할 몫까지 당겨와서 자신들의 쌈짓돈인양 부유층과 재벌기업 등에 마구잡이로 퍼주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정부 감세정책의 문제점은 이미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그러면서도 부족한 세수를 보완한다는 명목으로 3년 연속으로 간접세 비중을 높이며 서민들 세 부담만 늘리고 있다. 이번 취득세 감면 조치처럼 심각한 경기침체 상황에서도 정부가 서민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부유층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사태가 계속된다면 이 땅의 정직하고 성실한 납세자들의 대규모 ‘세금혁명’은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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