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나무를 심은 사람’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시절이었습니다. 군복무를 마치고 갓 대학에 복학한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사회 개혁에 대한 열망은 강했으나 여느 대학생들처럼 요지부동처럼 보이는 현실에서 무기력감을 많이 느끼고 있던 때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나는 왜 살아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속으로 되뇌어보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지금의 젊은 후배들만큼은 아니겠지만 취직 걱정 등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상당히 증폭돼 있던 시기였습니다. 학교 기숙사 뒤에 있던 무악산에 올라 남몰래 눈물을 훔친 적도 있었습니다.

 

그 무렵 우연히 애니메이션 ‘나무를 심은 사람’을 접했습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프랑스 문호 장 지오노의 동명 소설을 아름다운 파스텔 톤으로 그려낸 애니메이션입니다. 처음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난 뒤 느꼈던 감동을 잊지 못합니다. ‘나무를 심은 사람’ 엘지아르 부피에의 삶이 당시의 제 가슴을 뒤흔들었기 때문입니다.

 

엘지아르 부피에는 프랑스의 프로방스 산촌 여행길에서 소설 속 화자가 만난 노인입니다. 그는 날선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황무지에서 매일 도토리를 파종하고 있습니다. 당시 55세였던 엘지아르 부피에는 아내와 아들을 여의고 황무지에 들어와 양을 치면서 도토리를 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황무지의 계곡에 사는 주민들은 환경의 영향 때문에 심성이 사나웠으며 서로 으르렁댔습니다. 부피에는 아무 희망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황무지에서 아무도 알아주지도, 시키지도 않는 일을 묵묵히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가 하는 일이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마치 구도자같은 그의 성실한 노동은 계속됐습니다. 1, 2차 세계대전조차도 그의 수고로운 노력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10년, 20년이 지나면서 그의 노력은 조금씩 기적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뿌린 씨앗들은 울창한 숲을 이루었습니다. 메말랐던 계곡에 다시 물이 흘렀고 새들이 깃들었습니다. 모진 칼바람이 멈추고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불었습니다. 사람들이 떠나던 마을이 사람들이 찾아오는 마을로 변했습니다. 아귀다툼 소리가 그치지 않던 곳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황무지였던 그 곳이 울창한 숲으로 변하는 과정이 사람들에게는 저절로 그렇게 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변화가 보잘것없는 한 촌로의 한없이 조용하면서도 부지런한 손길에서 비롯됐음은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을 삭막한 황무지처럼 느낄지도 모릅니다. 소리쳐도 메아리 없는 황무지 말입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무력감을 느낍니다. ‘세상은 바뀌지 않아. 나서 봐야 나만 손해야’라는 생각으로 세상을 향해 난 마음의 문을 꼭꼭 걸어 잠급니다. 가끔은 용기를 내보지만, 변화를 낙관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분명 지금 대한민국은 여러 가지 모순과 질곡에도 불구하고 부피에가 마주한 황무지보다는 훨씬 더 좋은 여건을 갖고 있습니다. 당장은 상식 이하의 불량정부 때문에 고통받고 있지만, 그 같은 현실 때문에 다른 세상을 꿈꾸는 기운과 에너지 또한 커지고 있습니다.

 

부피에가 마주했을 황무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더구나 부피에는 아내와 아들을 저세상으로 먼저 떠나보낸 사람입니다. 황무지에도, 그의 마음 속에서도 늘 스산한 바람이 멈추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도 그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부피에가 다른 모든 이들처럼 황무지의 현실을 주어진 것으로 생각했다면 수십 년 후 울창한 숲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복한 삶은 가능했을까요. 지금 대한민국에서 특권층 프리라이더들이 활개치며 국가의 자원을 농단하는 현실은 많은 이들에게 암담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하지만 암담한 현실을 주어진 것으로만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삶도, 후대의 삶도 달라질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지금 이 나라가 우리 아이들을 마음껏 키우고 싶은 나라가 돼가고 있습니까? 저는 그렇게 느끼고 있지 못합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피땀 흘려 일군 이 나라가 점점 우리 아이들을 키우고 싶지 않은 나라가 돼갈 때 우리는 한없는 서글픔과 무기력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나라를 우리 아이들이 마음껏 자신의 재능을 키우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고 싶다는 열망은 여느 부모처럼 저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심는 한 그루의 나무가 당장은 우리가 바라는 수준의 결실을 안겨주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보지만 우리 당대에는 결실을 아예 맛볼 수 없다고 합시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우리가 심은 나무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풍성한 결실을 안겨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습니까. 그런 미래를 볼 수 있다면 부피에가 눈을 감을 때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호소합니다. 지금부터라도 조세정의를 바로세우고 재정구조개혁을 위한 한 그루 나무를 각자의 생활영역 속에서 심어가자고. 저는 지금 우리의 결의와 행동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나무를 심은 사람’이 제게 주는 교훈입니다.

 

장 지오노의 소설을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캐나다의 애니메이션 작가 프레데릭 백은 또 한 사람의 부피에입니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표현을 패러디하자면, 그는 5년 반에 걸쳐 ‘이태리 장인처럼 직접 한 장 한 장’ 그림을 그려 이 아름다운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작업 과정에서 그는 한 쪽 눈을 실명했을 정도로 이 작품에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의 제작과 상영 이후 캐나다에서는 대대적인 나무 심기 운동이 벌어져 2억50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프레데릭 백은 애니메이션을 완성한 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나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이 큰 격려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뜻대로 ‘나무를 심은 사람’은 대학시절의 저에게 큰 위안과 격려가 됐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세금혁명’을 출간하면서 저도 다른 분들께, 특히 이 땅의 젊은 후배님들께 손을 내밀고 싶습니다. 지금 당장은 상황이 암울해 보이지만 함께 묵묵히 노력하면 얼마든지 세상은 바꿀 수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현실을 올바로 인식하고, 잘못된 현실을 바꾸려는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합니다. 그 같은 노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하나가 저는 진정한 세금 혁명이라고 믿습니다. 이 나라 납세자들의 공동자금인 세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세금을 반칙의 제왕들인 특권층 프리라이더들의 배를 불리는데 지금처럼 쓰이도록 놔둘 것이냐, 아니면 우리와 우리 아이들을 위한 희망찬 미래를 만드는데 쓸 것이냐 결정할 기로에 서있습니다. 저는 물론 세금이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최선의 돈’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이 책이 진정한 세금 혁명으로 가는 조그만 주춧돌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합니다.

 

이 책을 쓰는 동안 제 대학시절 ‘사상의 은사’로 여겼던 리영희 선생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 분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의 대기를 감싼 잿빛 황사가 많이 옅어졌다고 믿습니다. 평생을 참 언론인, 참 지식인으로 사셨던 리영희 선생님은 한국 현대사에 진실의 나무를 심은 사람입니다. 새벽까지 원고와 씨름하는 날들이 거듭될 때도 그 분이 남기신 말씀이 큰 힘이 됐습니다. 이 책을 삼가 리영희 선생님 영전에 바칩니다.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우리에게는 현실의 가려진 허위를 벗기는 이성의 빛과 공기가 필요하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가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괴로움 없이는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

-출처: <우상과 이성>

 

 

 

프리라이더 1권에 이어 프리라이더 2권 <세금혁명: 세상을 바꾸는 최선의 돈>이 출간됐습니다. 또한 제가 조세재정구조개혁을 추진하는 시민들의 모임인 가칭 '세금혁명당'을 추진하려 합니다. 이에 대해 관심 잇는 분들은 트위터에서 저(@kennedian3)를 팔로우하시거나 #세금혁명_ 주제어로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


by 선대인 2011. 3. 28. 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