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부 무지가 판교를 집값 급등의 불쏘시개로 만들어
"강남을 대체할 제 2의 강남권 신도시를 판교에 만들어 투기를 막겠다."
2001년 정부는 당정협의를 통해 판교신도시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집값이 급등하자 이를 막기 위해 판교신도시를 추진하겠다고 한 것. 당시 집값 급등의 진원지인 강남에 살려고 하는 수요자가 아파트 공급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강남급 신도시'를 만들어 공급을 늘리겠다는 발상이었다. 이 같은 발상은 정부의 투기억제책 대신 '시장 원리에 따른 근본 대책'을 요구한 상당수 언론의 주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을 비웃듯이 그 후로도 집값은 계속 고공행진을 거듭했음은 물론이다. 더 나아가 지난해 하반기 이후 비교적 안정세를 보이던 집값이 올 들어 급등세로 돌아서게 된 진원지도 강남 재개발 재건축지역과 함께 판교였다. 정부는 2월 17일 부랴부랴 부동산투기방지대책을 내놨다. 정부 공급 늘린다며 신도시 개발 때 마다 오히려 집값 폭등
"건교부, 투기수요를 실수요로 우겨"
▲건교부, 어설픈 경제원리 들이대=
우선 건교부 당국자들은 판교 주변 분당과 강남 아파트 가격이 뛰는 이유를 수급원리에 따라 총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하지만 건교부의 주장은 전국적으로 균일하게 생산해 공급할 수 있는 자동차나 컴퓨터 등 공산품일 경우에는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아파트는 수요가 있는 곳에 즉시에 공급할 수 있는 성질의 재화가 아니다. 땅이 움직일 수는 없기 때문에 판교라는 특정한 지역에 공급이 한정될 수밖에 없는 셈. 반면 수요자는 전국에서 모여들 수 있다. 청약통장 등에 따라 청약자격을 제한할 수 있지만 투기세력이 이 같은 제약을 쉽게 극복한 것은 예전에도 쉽게 보아온 터다.특히나 정부의 분양가 규제로 판교아파트에 분양되는 동시에 1억원 이상의 차액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하고 있는 상황. 결국 전국의 투기 수요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투자 목적으로 판교 아파트 분양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누가 보더라도 막대한 시세차액을 볼 수 있으므로 전국 어떤 곳에서 아파트를 분양하더라도 투기 또는 투자 수요가 밀려들 수밖에 없다. 결국 이런 식이라면 국지적으로는 늘 수요 초과 상황이 될 수밖에 없는데도 정부는 정상적인 수급상황에서 공급이 부족한 것인양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물론 주택보급률이 이제 갓 100%를 넘어서 아직 선진국 수준(110~120%)에 못 미치는 점에서 장기적으로는 주택 공급을 계속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총공급과 총수요의 관점에서 봐야 할 문제를 지금 건교부가 하듯 국지적 상황에 그대로 대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경실련 김헌동 아파트값 거품빼기운동본부장은 "판교에 몰려드는 수요가 누구나 투기수요인 줄 아는데 유독 건교부만 실수요라고 우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 스스로 내놓은 정책을 봐도 앞뒤가 안 맞는다"며 "정부는 작년 9월부터 아파트 미분양을 걱정하면서 투기과열지구 해제, 전매 완화 등 각종 투기조장, 분양 촉진 정책을 써왔는데 이제는 그걸 억제한다니 불과 몇 달만에 수급상황이 뒤바뀌었다는 말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정부 말대로 공급이 모자라 생기는 문제라면 2000년 이후 지금까지 건설업체들이 매년 사상 최대 규모인 50만 가구 이상씩 주택을 공급했는데 집값이 떨어져야 정상 아니냐"며 "그런데도 오히려 그 기간에 집값이 가장 많이 오른 것을 어떻게 설명하느냐"고 지적했다. "국민 세금으로 운 좋은 분양 당첨자에 몰아주는 꼴"
원주민 강제 수용한 땅으로 다른 사람 특혜 누리는 위헌 요소도
▲'로또식' 분양으로 형평성 문제 심각=
판교신도시 개발에는 국민세금으로 조성된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다. 건교부는 판교신도시 개발에 용지비 3조1000억원과 개발비 2조8000억원, 금융비용 등 간접비 2조원 등 모두 7조 9000억원이 투입된다고 밝혔다.
이처럼 막대한 국민 세금으로 개발되는 판교 아파트에 당첨되는 사람들은 결국 분양 아파트 수만큼에 불과하다. 문제는 판교 분양권 당첨은 주변 시세 등에 비춰볼 때 누구나 1억원 이상의 차익을 올릴 수 있는 '로또'로 변해 있다는 점이다. 이는 판교 아파트에 운 좋게 당첨된 사람에게 국민 세금으로 1억원 이상의 주택구입 보조금을 지급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독립적인 민간 싱크탱크인 김광수경제연구소의 김광수 소장은 "정부의 판교신도시 정책은 공익성과 형평성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며 "이는 서민들의 주거생활 안정이라는 정부의 주택공급 정책 목적에 부합하는 것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현행 방식은 서민 주거생활 안정을 위해 마련된 택지개발촉진법에 근거해 판교 원주민들의 토지를 강제수용해 다른 개인이 특혜를 누리게 한다는 점에서 위헌적 요소마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을 펼쳐온 경실련은 이를 근거로 위헌 소송까지 검토하고 있다.
김헌동 본부장은 " 아파트가 로또도 아니고 어떤 사람은 당첨되면 떼돈을 벌고, 어떤 사람은 살던 집에서 강제로 쫓겨나는 게 무슨 제대로 된 주택정책이냐"며 "돈 없는 사람에게 세금을 걷어다가 몰아다 주자고 하는 식의 발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건설업체들, 큰 위험 없이도 막대한 개발이익 보장돼
▲공공택지에 집 지어 공기업과 건설업체 배 불려=
현재 판교택지개발 방식은 공기업과 민간 건설업체에게 막대한 개발이익을 안겨준다는 점에서도 큰 문제다.경실련은 지난 8일 토공과 주공 등 공기업과 민간건설업체, 분양 당첨자 등이 모두 16조 3000억원의 개발이익을 얻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뒤늦게 간접비 2조원이 더 들어간다고 주장하며 반박했으나 공기업 등이 수조원대의 시세차익을 남기는 것은 분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더구나 공기업 등 공공부문이 개발이익을 남기지 않는다고 한다면 거꾸로 그만큼 민간건설업체나 분양 당첨자에게 개발이익이 돌아간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물론 건교부나 토공, 주공 등은 "공기업이 개발이익을 남겨도 결국 다른 지역의 택지개발이나 도로 건설 등 공익적인 목적에 쓰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국감에서도 지적됐지만 이들 개발이익의 상당 부분이 토공, 주공 등 방만한 공기업의 운영비용으로 탕진된다는 점은 문제다. 또 특정한 지역의 개발로 생긴 수익을 다른 지역의 개발 비용으로 쓰는 것도 지역간 형평성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민간건설업체들은 그들 나름대로 "민간이 적절한 수익을 남기는 게 뭐가 잘못이냐"고 따진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 택지개발사업의 경우 수익이 100% 보장되는 구조라는 점이다. 민간건설업체가 사업을 할 때는 일정한 위험 부담(risk)을 떠안는 대신 일정한 수익률을 누리는 게 보통이다. 이 때문에 '저위험 저수익, 고위험 고수익' 논리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것이다. 그런데 판교 개발 사업의 경우 100% 분양이 사실상 확정된 상태에서 정부가 각종 제도로 건설업체의 수익을 보장해주고 있다. 특히 건교부는 원가연동제 등 사실상 분양가 규제책을 도입하는 대신 건설업계의 요구대로 시공비용의 기초가 되는 표준건축비를 지난해 220만원에서 1년도 안돼 339만원 이상으로 대폭 상향조정했다. 여기에 40~50만원 정도를 더 가산할 수 있어 실제로는 표준건축비를 390만원까지 올릴 수 있게 했다. 김헌동 본부장은 "땅값 차액으로 배 불리던 건설업체들의 수익을 건축비 인상으로 보전해준 셈"이라고 꼬집었다. 건교부, 집값 상승 부추기는 분양 방식만 고집
실패한 판교식 대책, 3개 신도시 건설로 되풀이 강행
▲분양아파트가 집값 상승 부추긴다=
위에서 본 것처럼 판교신도시처럼 분양가를 주변 시세보다 낮게 공급하면 사실상의 '로또'로 변해 투기수요를 불러들이게 되는 것은 뻔한 이치다. 이 같은 투기수요가 준동하면 현재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분당과 서울 강남 등 주변 집값이 다시 올라가는 현상도 뚜렷하다.현행 방식은 또 다른 측면에서도 집값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전월세가격이 상승하면 집값은 상승 압력을 받기 마련이다. 이는 최근 한국개발연구원이 내놓은 '주택시장 분석과 정책과제 연구' 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가는 토지와 주택 매매가 등 부동산 가격에 큰 파급효과를 미치고 있다는 것.판교 아파트가 분양될 경우 현재 시세대로라면 전월세를 살고 있는 무주택 서민들은 도저히 살 수 없는 가격이 된다. 실제로 판교개발지구 인근에서 만난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판교 청약 1순위인 성남 구시가지 주민들은 전세 5000만~6000만원에 살고 있어 판교 분양에 당첨된다고 해도 최소 2억~3억원대의 아파트에 살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결국 분양을 할 경우 집값을 감당할 수 있는 중상층 이상의 집을 더 늘려주는 효과만 낳을 공산이 크다. 반면 서민들 입장에서는 이처럼 아파트 소유자들의 아파트에 들어가 전월세를 살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럴 경우 서민들의 전월세 수요는 아파트 소유자들의 임대 수입을 보장해주는 셈이어서 집값을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현재 일괄 분양 방식의 판교 개발은 서민 주거 안정과 집값 안정이라는 정부 주택정책의 목표와는 상반된 개발 방식인 셈이다.그런데도 정부는 '2.17대책'에서 고양 삼송 등 3개 신도시의 개발 계획을 발표하며 분양주택 비율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강남 대체 신도시로 판교 개발을 내세운 것과 똑같이 '판교급 신도시'로 짓겠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이들 3개 지구는 원래 그린벨트로 묶여 있던 곳으로 지난 정부 때 공영개발해 장기 임대주택을 짓겠다는 명목으로 그린벨트에서 해제한 지역들. 하지만 정부는 이번에 다시 "장기 임대주택만 건설하면 택지지구로서 제 기능을 못한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분양주택을 절반 이상 짓겠다고 밝혔다.이에 대해 김헌동 본부장은 "정부가 집값을 안정시키겠다고 내놓은 대책을 잘 뜯어보면 이처럼 오히려 집값 상승을 유도할 가능성이 높은 대책"이라며 "특히 고양 삼송지구 등 위치 좋은 곳은 공기업과 건설업체들이 땅 장사를 하도록 변질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전문가, 시민단체 "공공임대주택이 해법"
"정부, 무지의 소치든 악의에 의해서든 국민에게 짓는 것"
▲"공공임대주택 늘리자"=
건교부는 줄기차게 주택은 소유 대신 활용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판교신도시 개발과정은 건교부가 자신들의 주장과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분양아파트는 기본적으로 주택을 소유할 사람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반면 건교부 주장대로 주택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가려면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짓는 것이 옳다는 것이 경실련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의 일치된 주장이다.
더구나 분양을 하든, 공공임대아파트를 짓든 공급 방식의 차이일 뿐 공급 물량은 같다. 따라서 분양 아파트 대신 임대 아파트를 지어도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건교부 주장에 전혀 배치되지 않는다. 또 건교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건설 경기 부양'이라는 관점에서 봐도 똑같은 공급물량이 공급되기 때문에 효과에서 전혀 차이가 없다. 건설 경기 부양은 아파트 건설과정에서 나타나는 효과이지 높은 아파트 가격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무조건 분양아파트만 고집하는 건교부의 주장은 옹색하기 짝이 없다.
반면 '공공택지에는 공영개발'이라는 주장이 점점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다. 김광수 소장은 "정부가 진정으로 부동산 가격의 안정을 원한다면 판교신도시는 100퍼센트 영구임대아파트로 가야 한다"며 "판교의 입지가 좋은 데다가 평형을 다양하게 공급해 적정한 임대료를 정한다면 전월세 수요 감소로 집값도 떨어뜨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투기 수요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주현 시민경제사회연구소장은 공공임대주택의 비율을 지속적으로 늘리되 100% 공공임대 주택 건설로만 갈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물론 다양한 평형의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늘림으로써 부동산이라는 것이 소유하거나 투자하는 자산이 아니라 거주자산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는 김소장의 의견과 같다.
하지만 그는 다양한 평형의 분양 주택을 계속 공급하는 방식도 투기 억제 효과가 클 것으로 본다. 구체적으로는 임대주택을 제외한 나머지 물량의 분양가를 주변 시세보다 10~30% 낮춰 공급하는 대신 무주택 서민들에게 공공분양 할 경우 청약조건과 전매제한을 더 엄격하게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분양가를 낮춰 공급 물량을 늘려 가면 주위 집값이 오르는 것을 막고 집값 안정에 상대적으로 기여하게 된다는 논리다.
박소장은 이 두 가지 방식의 아파트를 공공개발 지역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비율로 짓도록 하자고 주장한다. 그는 "공영개발이라고 하면 시장경제에 역행하는 사회주의 정책 아니냐는 분들이 있지만 그건 그렇지 않다"며 "사실상 민간이 주택공급을 독점하고 분양가가 자율화된 상황에서는 정부가 일정 정도 공영개발해 가격 제어기능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 경제전문가는 정부의 판교 개발 정책과 관련, 뼈 있는 한 마디를 던졌다. 그는 "현재 정부의 주택정책은 어설픈 시장주의 논리를 내세워 투기를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며 "정책 당국자가 무지해서 이렇게 하는 것도 죄고, 그게 아니라 나쁜 의도를 가지고 했다면 더더욱 죄가 된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2001년 정부는 당정협의를 통해 판교신도시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집값이 급등하자 이를 막기 위해 판교신도시를 추진하겠다고 한 것. 당시 집값 급등의 진원지인 강남에 살려고 하는 수요자가 아파트 공급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강남급 신도시'를 만들어 공급을 늘리겠다는 발상이었다. 이 같은 발상은 정부의 투기억제책 대신 '시장 원리에 따른 근본 대책'을 요구한 상당수 언론의 주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을 비웃듯이 그 후로도 집값은 계속 고공행진을 거듭했음은 물론이다. 더 나아가 지난해 하반기 이후 비교적 안정세를 보이던 집값이 올 들어 급등세로 돌아서게 된 진원지도 강남 재개발 재건축지역과 함께 판교였다. 정부는 2월 17일 부랴부랴 부동산투기방지대책을 내놨다. 정부 공급 늘린다며 신도시 개발 때 마다 오히려 집값 폭등
"건교부, 투기수요를 실수요로 우겨"
▲건교부, 어설픈 경제원리 들이대=
우선 건교부 당국자들은 판교 주변 분당과 강남 아파트 가격이 뛰는 이유를 수급원리에 따라 총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하지만 건교부의 주장은 전국적으로 균일하게 생산해 공급할 수 있는 자동차나 컴퓨터 등 공산품일 경우에는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아파트는 수요가 있는 곳에 즉시에 공급할 수 있는 성질의 재화가 아니다. 땅이 움직일 수는 없기 때문에 판교라는 특정한 지역에 공급이 한정될 수밖에 없는 셈. 반면 수요자는 전국에서 모여들 수 있다. 청약통장 등에 따라 청약자격을 제한할 수 있지만 투기세력이 이 같은 제약을 쉽게 극복한 것은 예전에도 쉽게 보아온 터다.특히나 정부의 분양가 규제로 판교아파트에 분양되는 동시에 1억원 이상의 차액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하고 있는 상황. 결국 전국의 투기 수요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투자 목적으로 판교 아파트 분양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누가 보더라도 막대한 시세차액을 볼 수 있으므로 전국 어떤 곳에서 아파트를 분양하더라도 투기 또는 투자 수요가 밀려들 수밖에 없다. 결국 이런 식이라면 국지적으로는 늘 수요 초과 상황이 될 수밖에 없는데도 정부는 정상적인 수급상황에서 공급이 부족한 것인양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물론 주택보급률이 이제 갓 100%를 넘어서 아직 선진국 수준(110~120%)에 못 미치는 점에서 장기적으로는 주택 공급을 계속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총공급과 총수요의 관점에서 봐야 할 문제를 지금 건교부가 하듯 국지적 상황에 그대로 대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경실련 김헌동 아파트값 거품빼기운동본부장은 "판교에 몰려드는 수요가 누구나 투기수요인 줄 아는데 유독 건교부만 실수요라고 우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 스스로 내놓은 정책을 봐도 앞뒤가 안 맞는다"며 "정부는 작년 9월부터 아파트 미분양을 걱정하면서 투기과열지구 해제, 전매 완화 등 각종 투기조장, 분양 촉진 정책을 써왔는데 이제는 그걸 억제한다니 불과 몇 달만에 수급상황이 뒤바뀌었다는 말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정부 말대로 공급이 모자라 생기는 문제라면 2000년 이후 지금까지 건설업체들이 매년 사상 최대 규모인 50만 가구 이상씩 주택을 공급했는데 집값이 떨어져야 정상 아니냐"며 "그런데도 오히려 그 기간에 집값이 가장 많이 오른 것을 어떻게 설명하느냐"고 지적했다. "국민 세금으로 운 좋은 분양 당첨자에 몰아주는 꼴"
원주민 강제 수용한 땅으로 다른 사람 특혜 누리는 위헌 요소도
판교택지개발 예정지구 인근에 부동산 중개업소가 잔뜩 들어서 있다.[사진제공=연합뉴스] |
판교신도시 개발에는 국민세금으로 조성된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다. 건교부는 판교신도시 개발에 용지비 3조1000억원과 개발비 2조8000억원, 금융비용 등 간접비 2조원 등 모두 7조 9000억원이 투입된다고 밝혔다.
이처럼 막대한 국민 세금으로 개발되는 판교 아파트에 당첨되는 사람들은 결국 분양 아파트 수만큼에 불과하다. 문제는 판교 분양권 당첨은 주변 시세 등에 비춰볼 때 누구나 1억원 이상의 차익을 올릴 수 있는 '로또'로 변해 있다는 점이다. 이는 판교 아파트에 운 좋게 당첨된 사람에게 국민 세금으로 1억원 이상의 주택구입 보조금을 지급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독립적인 민간 싱크탱크인 김광수경제연구소의 김광수 소장은 "정부의 판교신도시 정책은 공익성과 형평성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며 "이는 서민들의 주거생활 안정이라는 정부의 주택공급 정책 목적에 부합하는 것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현행 방식은 서민 주거생활 안정을 위해 마련된 택지개발촉진법에 근거해 판교 원주민들의 토지를 강제수용해 다른 개인이 특혜를 누리게 한다는 점에서 위헌적 요소마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을 펼쳐온 경실련은 이를 근거로 위헌 소송까지 검토하고 있다.
김헌동 본부장은 " 아파트가 로또도 아니고 어떤 사람은 당첨되면 떼돈을 벌고, 어떤 사람은 살던 집에서 강제로 쫓겨나는 게 무슨 제대로 된 주택정책이냐"며 "돈 없는 사람에게 세금을 걷어다가 몰아다 주자고 하는 식의 발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건설업체들, 큰 위험 없이도 막대한 개발이익 보장돼
▲공공택지에 집 지어 공기업과 건설업체 배 불려=
현재 판교택지개발 방식은 공기업과 민간 건설업체에게 막대한 개발이익을 안겨준다는 점에서도 큰 문제다.경실련은 지난 8일 토공과 주공 등 공기업과 민간건설업체, 분양 당첨자 등이 모두 16조 3000억원의 개발이익을 얻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뒤늦게 간접비 2조원이 더 들어간다고 주장하며 반박했으나 공기업 등이 수조원대의 시세차익을 남기는 것은 분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더구나 공기업 등 공공부문이 개발이익을 남기지 않는다고 한다면 거꾸로 그만큼 민간건설업체나 분양 당첨자에게 개발이익이 돌아간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물론 건교부나 토공, 주공 등은 "공기업이 개발이익을 남겨도 결국 다른 지역의 택지개발이나 도로 건설 등 공익적인 목적에 쓰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국감에서도 지적됐지만 이들 개발이익의 상당 부분이 토공, 주공 등 방만한 공기업의 운영비용으로 탕진된다는 점은 문제다. 또 특정한 지역의 개발로 생긴 수익을 다른 지역의 개발 비용으로 쓰는 것도 지역간 형평성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민간건설업체들은 그들 나름대로 "민간이 적절한 수익을 남기는 게 뭐가 잘못이냐"고 따진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 택지개발사업의 경우 수익이 100% 보장되는 구조라는 점이다. 민간건설업체가 사업을 할 때는 일정한 위험 부담(risk)을 떠안는 대신 일정한 수익률을 누리는 게 보통이다. 이 때문에 '저위험 저수익, 고위험 고수익' 논리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것이다. 그런데 판교 개발 사업의 경우 100% 분양이 사실상 확정된 상태에서 정부가 각종 제도로 건설업체의 수익을 보장해주고 있다. 특히 건교부는 원가연동제 등 사실상 분양가 규제책을 도입하는 대신 건설업계의 요구대로 시공비용의 기초가 되는 표준건축비를 지난해 220만원에서 1년도 안돼 339만원 이상으로 대폭 상향조정했다. 여기에 40~50만원 정도를 더 가산할 수 있어 실제로는 표준건축비를 390만원까지 올릴 수 있게 했다. 김헌동 본부장은 "땅값 차액으로 배 불리던 건설업체들의 수익을 건축비 인상으로 보전해준 셈"이라고 꼬집었다. 건교부, 집값 상승 부추기는 분양 방식만 고집
실패한 판교식 대책, 3개 신도시 건설로 되풀이 강행
▲분양아파트가 집값 상승 부추긴다=
위에서 본 것처럼 판교신도시처럼 분양가를 주변 시세보다 낮게 공급하면 사실상의 '로또'로 변해 투기수요를 불러들이게 되는 것은 뻔한 이치다. 이 같은 투기수요가 준동하면 현재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분당과 서울 강남 등 주변 집값이 다시 올라가는 현상도 뚜렷하다.현행 방식은 또 다른 측면에서도 집값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전월세가격이 상승하면 집값은 상승 압력을 받기 마련이다. 이는 최근 한국개발연구원이 내놓은 '주택시장 분석과 정책과제 연구' 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가는 토지와 주택 매매가 등 부동산 가격에 큰 파급효과를 미치고 있다는 것.판교 아파트가 분양될 경우 현재 시세대로라면 전월세를 살고 있는 무주택 서민들은 도저히 살 수 없는 가격이 된다. 실제로 판교개발지구 인근에서 만난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판교 청약 1순위인 성남 구시가지 주민들은 전세 5000만~6000만원에 살고 있어 판교 분양에 당첨된다고 해도 최소 2억~3억원대의 아파트에 살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결국 분양을 할 경우 집값을 감당할 수 있는 중상층 이상의 집을 더 늘려주는 효과만 낳을 공산이 크다. 반면 서민들 입장에서는 이처럼 아파트 소유자들의 아파트에 들어가 전월세를 살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럴 경우 서민들의 전월세 수요는 아파트 소유자들의 임대 수입을 보장해주는 셈이어서 집값을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현재 일괄 분양 방식의 판교 개발은 서민 주거 안정과 집값 안정이라는 정부 주택정책의 목표와는 상반된 개발 방식인 셈이다.그런데도 정부는 '2.17대책'에서 고양 삼송 등 3개 신도시의 개발 계획을 발표하며 분양주택 비율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강남 대체 신도시로 판교 개발을 내세운 것과 똑같이 '판교급 신도시'로 짓겠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이들 3개 지구는 원래 그린벨트로 묶여 있던 곳으로 지난 정부 때 공영개발해 장기 임대주택을 짓겠다는 명목으로 그린벨트에서 해제한 지역들. 하지만 정부는 이번에 다시 "장기 임대주택만 건설하면 택지지구로서 제 기능을 못한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분양주택을 절반 이상 짓겠다고 밝혔다.이에 대해 김헌동 본부장은 "정부가 집값을 안정시키겠다고 내놓은 대책을 잘 뜯어보면 이처럼 오히려 집값 상승을 유도할 가능성이 높은 대책"이라며 "특히 고양 삼송지구 등 위치 좋은 곳은 공기업과 건설업체들이 땅 장사를 하도록 변질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전문가, 시민단체 "공공임대주택이 해법"
"정부, 무지의 소치든 악의에 의해서든 국민에게 짓는 것"
박주현 시민경제사회연구소장은 "공공임대주택의 건설이 판교신도시 개발의 올바른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미디어다음 김준진 |
건교부는 줄기차게 주택은 소유 대신 활용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판교신도시 개발과정은 건교부가 자신들의 주장과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분양아파트는 기본적으로 주택을 소유할 사람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반면 건교부 주장대로 주택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가려면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짓는 것이 옳다는 것이 경실련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의 일치된 주장이다.
더구나 분양을 하든, 공공임대아파트를 짓든 공급 방식의 차이일 뿐 공급 물량은 같다. 따라서 분양 아파트 대신 임대 아파트를 지어도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건교부 주장에 전혀 배치되지 않는다. 또 건교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건설 경기 부양'이라는 관점에서 봐도 똑같은 공급물량이 공급되기 때문에 효과에서 전혀 차이가 없다. 건설 경기 부양은 아파트 건설과정에서 나타나는 효과이지 높은 아파트 가격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무조건 분양아파트만 고집하는 건교부의 주장은 옹색하기 짝이 없다.
반면 '공공택지에는 공영개발'이라는 주장이 점점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다. 김광수 소장은 "정부가 진정으로 부동산 가격의 안정을 원한다면 판교신도시는 100퍼센트 영구임대아파트로 가야 한다"며 "판교의 입지가 좋은 데다가 평형을 다양하게 공급해 적정한 임대료를 정한다면 전월세 수요 감소로 집값도 떨어뜨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투기 수요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주현 시민경제사회연구소장은 공공임대주택의 비율을 지속적으로 늘리되 100% 공공임대 주택 건설로만 갈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물론 다양한 평형의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늘림으로써 부동산이라는 것이 소유하거나 투자하는 자산이 아니라 거주자산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는 김소장의 의견과 같다.
하지만 그는 다양한 평형의 분양 주택을 계속 공급하는 방식도 투기 억제 효과가 클 것으로 본다. 구체적으로는 임대주택을 제외한 나머지 물량의 분양가를 주변 시세보다 10~30% 낮춰 공급하는 대신 무주택 서민들에게 공공분양 할 경우 청약조건과 전매제한을 더 엄격하게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분양가를 낮춰 공급 물량을 늘려 가면 주위 집값이 오르는 것을 막고 집값 안정에 상대적으로 기여하게 된다는 논리다.
박소장은 이 두 가지 방식의 아파트를 공공개발 지역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비율로 짓도록 하자고 주장한다. 그는 "공영개발이라고 하면 시장경제에 역행하는 사회주의 정책 아니냐는 분들이 있지만 그건 그렇지 않다"며 "사실상 민간이 주택공급을 독점하고 분양가가 자율화된 상황에서는 정부가 일정 정도 공영개발해 가격 제어기능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 경제전문가는 정부의 판교 개발 정책과 관련, 뼈 있는 한 마디를 던졌다. 그는 "현재 정부의 주택정책은 어설픈 시장주의 논리를 내세워 투기를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며 "정책 당국자가 무지해서 이렇게 하는 것도 죄고, 그게 아니라 나쁜 의도를 가지고 했다면 더더욱 죄가 된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