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며칠 전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소속의 학자 한 분이 프레시안과의 좌담인터뷰에서 제 주장을 왜곡하면서 논평했습니다. 생산적인 논쟁은 상대방 주장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우선돼야 한다는 점과 그 분 주장을 기사로 읽은 분들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 짧게 해명합니다.
저는 <프리라이더>에서 올바른 조세재정구조개혁을 통해 50조원의 추가 세수를 확보하고 50조원의 낭비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과제가 매우 어려운 과제이니 10년 정도에 걸쳐 단계적으로 실현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사실 이론적으로는 매우 보수적인 주장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상당히 이상적인 주장이라고 저 스스로도 생각합니다. 사실 10년 안에 이 같은 조세재정구조개혁을 하는 것도 근본적인 개혁세력이 나와 전력을 다해 추진해도 매우 어려운 과제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지국가소사이어티’ 학자 분은 이 같은 제 주장을 제가 10년 동안 복지는 손 놓고 있자는 주장으로 왜곡하고 있습니다. 제가 <프리라이더> 전반에서 국내 복지 인프라 취약에 대해 우려하고 저출산고령화 충격 본격화되는 2020년 이전에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복지 확충 및 관련한 정책,제도 개혁 필요하다고 역설했는데 왜 그렇게 이해하시는지 의문입니다.
또한 그 분은 제가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과세를 다른 선진국처럼 ‘정상화’하고 각종 부패와 비자금 조성 등을 매개로 일어나는 광범위한 탈세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결국 ‘증세하자’는 이야기 아니냐며 제가 국민을 속이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조세 정의를 바로세우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막대한 세수가 늘어나는 것을 두고, 그런 문제에 대한 해결은 등한시한 채 세목을 신설하거나 각종 세율을 인상해 증세하자는 ‘증세론’을 동일시하는 그 분의 단순화에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또한 이 분은
그런데 ‘복지국가 소사이어티’의 이 분은 부동산 보유세 더 걷는 것은 어려워 현실성이 없다면서 ‘보편적 복지’를 위해 국민에게 직접세 100조원을 더 걷는 것은 어떻게 가능하다는 것인지 의문이네요. 설사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저출산고령화 충격으로 인한 생산경제 위축과 복지지출의 급증, 이미 현 정부 들어 450조원의 공공부채가 늘어난 현실 등을 고려할 때 생산경제 영역을 중심으로 100조원을 더 걷는 것이 바람직한지 의문. 더구나 그 분 주장대로라면 10년에 걸쳐서가 아니라 당장이라도 지체없이 100조원을 더 걷는 구조로 만들자는 것인데, 제 주장에 대해 현실성이 없다면서 그 같은 방안은 어떻게 가능하다는 것일까요?
사실 제가 <프리라이더>에서 제기하는 주장은 복지 재원 마련 차원에서 주장한 것이 아닙니다. 한국의 과세 구조와 재정지출 측면에서 근원적인 형평성이 무너져 있으며, 70년대 개발연대 때 형성된 시대착오적인 조세재정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향후 저출산고령화 충격이 본격화된다는 점에서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 그런 점에서 조세정의를 바로세우고 토건사업 위주의 예산 낭비를 줄이는 것은 복지 재원 마련과 별도로 반드시 추진해야 할 중요한 과제입니다.
예를 들어, 직접세 100조원을 거두면 선진국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부동산 보유세를 안 거둬도 된다는 얘기인지, 각종 턴키담합을 통해 매년 벌어지는 엄청난 건설업체 퍼주기 관행을 개혁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인지 의문입니다. 스웨덴이나 핀란드와 같은 대표적인 복지국가들의 국민들이 높은 세 부담을 감수하는 것은 투명한 소득 파악을 바탕으로 한 공평한 과세와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제대로 된 재정지출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복지국가를 만들자면서 왜 올바른 조세재정구조개혁은 등한시하는지 의문입니다.
복지학자인 그 분이 한국사회의 열악한 복지 현실에 가슴 아파하고 획기적인 복지 확충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은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 하지만 복지 재원 마련의 구체적 방법론에 관해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의 주장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매도하는 것은 올바른 학자의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분은 복지 분야 전문가일지는 몰라도 한국의 조세 재정 구조에 대해 얼마나 폭넓고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자신이 잘 모르지만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구체적인 논거를 제시한 주장에 대해 ‘국민을 속이는 일’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올바른 학자의 태도도 아니며, 생산적인 논쟁을 하기 위한 태도도 아닙니다.
곁들여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언제부터 ‘보편적 복지’에 동의하고 ‘증세’를 거론하며복지를 획기적으로 늘리자고 주장할수록 선명한 진보로 여겨지는 상황이 됐는지 의문입니다. 보수, 진보를 떠나 중요한 것은 쉽게 말해 대다수의 국민들이 잘먹고 잘살수 있는 사회경제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정책의 우선순위는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경제구조를 만들어 일반 국민들이 상대적으로 저비용으로 쾌적한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동산 거품을 빼고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는 구조를 만들고 저렴한 비용으로 양질의 교육을 골고루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우선입니다. 그런 구조를 만드는 과정에서 복지 확충은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지만 복지 확충만으로 그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복지만능론’은 환상일 뿐 가능하지 않습니다.
또한 한쪽에서는 지금 당장은 복지 재원 문제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보편적 복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 국민들의 동의를 확대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구체적 재원 마련 등 구체적 전략이 빠진 ‘보편 복지’ 비전이 얼마나 설득력 있을까요? 정말 비전을 잘 제시하기만 하면 된다면 지난해 말부터 이른바 각종 진보매체들을 통해 ‘보편적 복지’ 주장에 관해 얼마나 많은 기사들이 소개됐는데도 왜 국민들의 반응이 미온적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또한 그렇게 떠들어댔는데도 ‘망국적 복지포퓰리즘’을 주장하는
복지국가 소사이어티의 학자분을 비롯해 복지 문제에 고민이 많은 다른 분들께 호소드리고싶습니다. 제발 다른 나라의 모델에서 출발하지 말고 국내 사회경제의 구체적 현실과 맥락에서 해법의 실마리를 찾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