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 이후 고물가 추세가 이어지는 가운데도 현 정부는 5% 성장 목표를 고수하겠다는 의사를 거듭 밝히고 있다. ‘3% 물가’를 립서비스처럼 달고 있지만, 저금리-고물가-고환율 기조를 가능한 한 유지하겠다는 속내가 뻔히 보인다. 

 

그런데 이 같은 ‘3단 콤보’ 기조는 매우 심각한 경제 형평성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현실의 시장 리스크 수준을 반영하지 않는 인위적인 저금리 기조를 생각해보자. 저금리의 장기화는 성실한 예금생활자에게 세금을 물려 빚을 지고 투기에 가담했던 가계나 민간기업, 그리고 2009년 이후 약 410조원의 부채를 끌어 쓴 정부공공부문에 보조금을 주는 셈이다. 따라서 이를 일반 가계 입장에서는 ‘저금리 세금’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고물가 상황은 어떤가. 여러 이유가 있지만 경기 부양 명목의 유동성 증가와 저금리의 지속 등으로 물가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현 정부로서는 물가 상승을 방조하려는 유혹에 강하게 노출돼 있다. 물가가 상승하면 상대적으로 화폐 가치가 떨어지게 되는데 이는 정부 공공부문 부채가 실질적으로 줄어드는 효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일반가계 입장에서는 실질소득이 줄어드는 정반대 효과가 발생한다. 물가가 오르는 만큼 일반 가계의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는 효과를 내는 셈인데, 이를 인플레이션 조세라고 한다. 이를 ‘고물가 세금’이라고 바꿔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환율효과 또한 대다수 국민에게는 세금을 부과하는 효과를 낸다. 2009년 경제위기 이후 경제성장의 상당부분은 급격한 수출 성장에 의존하고 있다. 수출이 급성장한 결정적 요인 중 하나는 원-달러 환율이 급등한 덕분이 크다. 실제로 2010년 수출 대기업들이 올린 사상 최대 실적의 상당부분은 환율효과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수입업자나 외국 원자재를 쓰는 중소 납품업체는 정반대로 경제위기 전보다 훨씬 더 비싼 원화 가격으로 원자재를 수입해야 한다. 이것이 수입 인플레이션의 형태로 소비자물가에도 전가되므로 소비자들도 상대적으로 더 높은 물가 부담을 져야 한다. 국민들의 대외 구매력도 크게 떨어지게 된다. 이렇게 보면 인위적인 고환율 유도 정책은 일반 가계와 수입업자 등에 세금을 부과하고 수출대기업에 막대한 수출 보조금을 지급해주는 꼴이다. 이를 ‘고환율 세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 정부는 저금리-고물가-고환율 조합을 상당히 의도적으로 오래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기조는 고물가와 양극화를 초래하는 등 경제의 질적 측면을 희생해 경제의 외형만 키우는 꼴이다. 또 부동산 거품을 부양하며 일반 가계와 성실한 근로소득자에 불이익을 주는 반면 재벌대기업과 부동산 투기 가계에 보상하는 구조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단순화하자면 없는 사람들에게 뜯어서 있는 사람들에게 막대한 규모의 소득을 재분배해주고 있는 셈이다.

 

사실 이 같은 ‘세금 아닌 세금’들은 국민 동의 없이 막대한 소득을 없는 자들로부터 가진자들에게 이전한다는 점에서 매우 악성 세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6.1%에 이르는데도 일반 가계의 체감경기는 거의 개선되지 않고 있다. 현 정부는 이런 기조가 경기회복의 지속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핑계를 대고 있다. 하지만 경기회복속도나 유동성 증가 추세에 비해 기준금리가 지나치게 낮다는 점, 부동산 거품을 거의 해소하지 못한 가운데 다른 국가들에 비해 물가상승률이 상당히 높다는 점, 경제위기 이후 대달러 환율이 강세를 띤 대부분 국가들에 비해 한국 원화만 유독 달러 대비 약세를 보였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납득하기 어렵다.

 

더구나 한국경제는 긴박한 경제위기 국면을 벗어난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언제까지 일반가계의 부를 가진자들에게 퍼줄 것인가. 한국에 정말 ‘망국적 복지’가 있다면 이처럼 각종 정책적, 제도적 지원을 통한 가진자들에 대한 퍼주기 복지일 것이다.

by 선대인 2011. 2. 18. 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