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연초부터 식료품을 중심으로 물가 상승세가 확산되고 공공요금 인상 요인 등이 불거지면서 정부가 13일 청와대 국민경제대책회의에서 물가안정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라는 것이 관치경제 시절의 ‘물가 억제 대책’ 위주의 임시방편적 대책에 그치고 있다. 우리 연구소를 비롯해 국내 상당수 경제전문기관이 지난해 하반기 유동성 증가와 고환율 등의 영향으로 물가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지만 정부의 물가 대책은 두더지잡기 게임을 하듯 땜질 처방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다만,
어쨌거나 이 같은 정부의 정책실패 누적으로 소비자물가는 계속 불안한 양상을 보여왔다. <도표1>을 통해 최근 국내 소비자물가 현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시피 지난해 9월 신선식품류 물가가 전년동월대비 45.5%나 상승해 월간 상승률로 거의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뒤 정부의 뒤늦은 대책으로 다소 진정되기는 했으나 지난해 12월말 현재 여전히 전년 동월 대비 33.8%나 높은 상태를 기록하고 있다. 거의 만성적인 고물가 상태에 접어들어 있는 것이다. 또한 집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세가의 경우에도 지난해 말 이후 주택 가격이 하향세를 보임에 따라 상승세가 떨어졌으나 정부가 지난해 8.29 대책에서 DTI규제 등을 해제하는 등의 조치로 부동산 가격을 떠받치면서 최근으로 올수록 전세가 상승률이 커지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서민들 입장에서는 당장 가계에 큰 영향을 주는 주거비용과 식료품 비용이 뛰고 있어 경제적 고통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도표1> 각종 소비자물가 현황
(주) 한국은행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이에 따라 지난해 10월 전년동월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1%로 한국은행의 물가 관리 목표치(2~4%)의 상한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이다가 정부의 단기 억제책으로 다시 주춤했으나 지난달 3.5%까지 뛰는 등 다시 불안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중점 관리하라고 지시했던 생활
이처럼 사실상 물가관리에 실패한 가운데 정부가 13일 내놓은 대책들의 내용은 대학 등록금 동결, 공공요금 인상 억제, 식료품 가격 인상 시기 분산, 기업들의 불공정 및 담합 행위 조사 등이었다. 특히 이대통령이 '물가와의 전쟁'을 거론하자 지난주 공정거래위원회는 사무처장 직속의 물가대책반을 구성해 물가단속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기업들의 독과점과 담합을 분쇄하고 공정거래 질서를 확립해야 할 공정위가 본연의 역할은 접어두고 기업들에 대한 자신들의 권한을 이용해 억지로라도 물가 단속에 나서겠다고 하니 70~80년대 관치 경제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다른 정부부처들도 제각기 각종 행정력을 동원한 물가대책을 내놓는 등 전 부처가 갑자기 ‘물가잡기’경쟁에 나서고 있다.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누적되기 시작한 물가상승 압력을 생각할 때
주지하다시피 현재 물가 불안은 원자재값 상승과 경기회복세 지속으로 인한 수요 증가의 측면도 있지만 고물가 구조가 지속되는 근원은 지속되는 저금리와 수출대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인위적인 고환율 정책, 부동산 가격 거품 떠받치기, 치킨에서부터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재벌기업들을 중심으로 한 독과점과 담합 등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6% 전후로 추정되는 성장에 올해에도 5% 성장을 달성하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올해 물가 상승률을 3% 수준에서 억제하겠다는 목표도 동시에 내놓고 있다. 이미 한국경제 전반의 상황을 감안하면 물가 상승 압력이 누적되고 있어 이 같은 물가 상승 압력을 일으키는 환율, 금리, 부동산 가격 등에 대한 조정을 유도해야 하지만 이 같은 조치들은 도외시한 채 행정력을 동원한 ‘찍어 누르기’식 시대착오적 물가억제 대책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정부가 쓰고 있는 물가억제 대책 가운데는 공공요금 인상 억제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공공요금은 정부 산하 관련 공기업들을 통해 정부가 가장 손쉽게 찍어 누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방식으로 공공요금 인상을 단기적으로는 억제할 수 있다고 해도 장기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렇게 할 경우 온갖 무리수를 동원할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 연구소가 여러 차례 지적한 것처럼 현 정부 들어 공기업들의 부채가 급증하고 있는데, 공공요금을 주요 수입원으로 하는 공기업들도 예외가 아니다. 공공요금을 주요 수입원으로 하는 공기업들이 현 정부 출범 이후 급증한 부채로 허덕이는 가운데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 등이 대체로 악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정부 재정을 지원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결국 공공요금을 상당폭 인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최근의 물가 인상 압력을 저금리와 고환율, 높은 부동산 가격 등을 조정해 정공법으로 풀지 않고 당장 ‘고성장 생색내기’ 욕심에 빠져 찍어 누르기식 단기 공공요금 억제책 등으로 대응한다고 해봐야 오래 지탱할 수 없다. 공공요금 인상을 억제한다는 핑계로 관련 공기업들의 요금인상 요구를 거부하면 결국 정부 재정으로 지원할 수밖에 없는 양상이 된다. 그런데 정부 재정은 결국 국민의 세금이 원천이라는 점에서 결국 어떤 식으로든 국민의 부담을 늘리는 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속이 뻔히 보이는 상황인데도 현 정부는 근원적 대책을 쓰기보다는 단기 미봉책으로 국민의 눈을 속이려 하고 있는 것이다.
현 정부가 두더지게임 하듯이 자장면 값이나 치킨 값 같은 것만 잡지 말고 대다수 국민들의 소득에 비해 너무 높은 부동산 가격을 낮춰야 한다. 생산원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부동산 비용만 낮춰도 국내 물가가 지금처럼 계속 높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이미 지난해 환율효과로 사상 최대 매출을 올린 수출대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수입 인플레를 유발해 국내 물가에 부담을 주는 인위적 환율 떠받치기도 이제는 중단해야 한다. 또한 공정위가 자신들의 힘을 이용해 물가억제에 나서는 시대착오적 행태는 그만두고 국내 각 부문별로 난무하는 재벌기업의 독과점과 담합 행위를 철저히 분쇄해 나간다면 중장기적으로 시장경쟁을 통해 자연스레 가격 인하 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물론 지나치게 풀린 유동성과 경기 회복세에 따른 수요 증가 효과 등을 감안하면 기준금리를 현실화하는 것도 더 늦출 수 없다. 이처럼 경제구조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근원적 대책을 쓰지 않고 시대착오적인 미봉책만 써서는 효과도 없을뿐더러 장기적으로 한국경제 전반에 더 큰 충격과 혼란을 초래할 뿐이다.
제가 지난해 <위험한 경제학> 출간 이후 1년여만에 <프리라이더: 대한민국 세금의 비밀편>을 출간했습니다. 세금이라는 동창회비를 잘 내지도 않는 사람들이 동창회장과 총무를 맡아 자기들 멋대로 돈을 쓰는 행태를 비판한 책입니다. 평생 내가 내게 되는 세금 5억원이 제대로 걷혀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의구심이 드시는 분들께서는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