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권에 ‘복지 논쟁’ 이 뜨겁다. 이른바 일부 진보세력들이 일찌감치 ‘보편적 복지론’을 주장해온 가운데 유력한 대선주자인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 공청회를 열면서 ‘박근혜발 복지논쟁’을 불러온 것이다. 최근 의무급식 지원 문제에 대해 ‘망국적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부르짖은 오세훈 서울시장이나 여당의 내년 예산안 날치기 통과 과정에서 각종 서민예산이 누락된 것도 정치권과 일반인들의 복지 문제에 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이처럼 정치권에서 ‘복지’ 담론이 쏟아지는 상황은 그동안 '개발'만을 떠들어온 데 비하면 상당한 시대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마냥 환영할 수만 없는 찜찜함이 남는다. 구체적 재원 마련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말만 너무 앞서간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 가격 폭등과 사교육비 급증, 만성적인 취업난과 고용불안, 내수 침체, 상위 10%만 잘 사는 승자독식구조 등으로 일반 가계가 느끼는 민생고는 극심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가계가 느끼는 극심한 불안과 불만을 달래기 위해 '개발' 대신 '복지' 담론이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의 민생고 문제는 복지를 강화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집값을 낮추고 사교육비를 줄이고 일자리를 늘리며 공정한 경쟁규칙 아래 독과점 폐해 없이 일반 생활인들이 잘 살 수 있는 건전한 사회경제구조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고 근본적 해법이다.


물론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사회경제구조를 만드는 과정에서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열악하기 짝이 없는 사회안전망과 복지 인프라를 확충하는 작업 또한 필수 과제다. 선제적으로 이 같은 예방적 복지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으면 향후 복지지출 비용은 훨씬 더 커질 수 있다. 특히 저출산 고령화 충격이 본격화하기 전에 전략적으로 복지 인프라를 구축해가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최근 발표된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잠정결과를 보면 인구증가율이 통계청 추계치보다 더 빨리 줄고 있는 등 인구충격이 현실에서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복지 확충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것이 재원 문제와 복지 인프라 확충의 방법론이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복지 재원 확충 문제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고 있거나 부유세 등 새로운 세목을 신설해 증설하면 되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어떤 식이든 복지 재원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한 그것은 공허하거나 재정 악화 등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안타깝게도 현 정권은 자신들 생색내는데 이미 수백조원의 공공부채를 끌어써버려 향후 재정이 급속히 악화할 가능성이 매우 큰 상태다. 따라서 가급적 향후 재정적자 증가와 생산경제 위축을 최소화하면서도 복지 인프라를 선제적으로 구축하기 위한 세입세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같은 방안에 대해 이 글에서 모두 소개하기는 어렵다.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알고 싶은 이들은 필자가 최근 출간한 <프리라이더: 대한민국 세금의 비밀편>을 참고해 보기 바란다.) 다만, 개략적인 구상만 설명해 보자면, 개발연대 때 구축된 시대착오적인 조세구조와 재정지출구조를 개혁한다면 양쪽에서 50조원씩, 약 100조원의 추가 재정 여력을 중장기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50/50전략이다.


우선, 부동산 등 자산경제에 대해 제대로 세금을 부과하고 탈루소득을 잡아내면 근로 직장인들의 세금을 더 늘리지 않고도 50조원의 세수는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 1970년대 개발연대에 기본 틀이 짜인 현행 세제는 수십년이 지났지만 기본 틀은 그대로다. 7500조원으로 평가되는 자산경제 규모가 국내총생산으로 대표되는 생산경제보다 7배나 커졌지만, 이에 대한 과세 규모는 전체 조세 수입의 17.8%에 불과하다.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경제에서 생겨난 자본이득 등 사실상 불로소득에 비해 생산경제에서 발생하는 근로소득에 30배 가까운 세 부담을 지우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건희 삼성 회장 일가를 비롯해 씨제이그룹, 한화그룹, 태광그룹, 신한지주, 씨앤우방 등의 검찰 수사 과정에서 막대한 비자금과 탈세 사실이 드러났다. 세금계산서를 주고받지 않아도 되는 간이과세제를 배경으로 한 개인사업자들의 탈세 또한 만연해 있다. 생산경제 부문에서 성실하고 정직하게 세금 내는 가계와 사업자들만 억울한 상황이다.


이런 상태에서 급속한 인구감소와 고령화에 따라 향후 경제 활력은 떨어지고 사회복지 수요는 급증하게 된다. 따라서 경제활동을 위축시키지 않으면서도 급증하는 사회복지 수요에 전략적으로 대비하는 근본적인 세수구조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그 기본 작업이 자산경제 부문에 대한 세 부담을 늘리고 투명한 소득 파악과 탈세에 대한 엄격한 처벌을 통해 근원적인 세 부담의 형평성을 확보하는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처럼 주로 불로소득에 가까운 자산경제 부문에서 세금을 걷게 됨으로써 지금처럼 부동산이 아닌 생산경제로 돈이 몰리도록 해 경제의 활력을 높일 수 있다. 또한 비자금과 탈세로 빠져나가던 돈들을 세수로 확보함으로써 경제의 투명성과 효율성, 조세 형평성을 동시에 올릴 수 있다. 충분한 세수를 확보하면서도 오히려 생산적이고 건전한 경제활동을 자극하는 방안이다. 


이 같은 조세 구조개혁과 더불어 무분별한 토목사업 등 세출 구조조정을 제대로 단행하고 시대적 소명을 다한 정부부처와 공공기관들의 사업을 정리하는 등의 방법으로 매년 50조원 정도의 낭비성 지출을 추가로 줄일 수 있다. 엉뚱하게 소수 건설업계와 재벌 기업들을 배불리며 시대적 소명을 다한 정책사업들을 지탱하고 관료들의 밥그릇을 키웠던 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이렇게 확보한 재정을 납세자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면서 지식정보화 시대, 창의경제 시대에 부응하는 재정사업들에 쓸 수 있다.


예를 들면, 추가로 확보한 재정 100조원 가운데 연간 5조원의 예산만 추가로 쓰면 한국의 교육을 확 바꿀 수 있다. 초중고뿐만 아니라 대학과정까지 국공립에 자녀가 입학할 경우 등록금 한 푼 안내고 다닐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10조~15조원 정도면 지금보다 공교육 인프라를 더욱 확충해 북유럽식 전면 의무교육도 얼마든지 실시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사교육비 부담도 대폭 줄일 수 있고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 등록금 부담에 허리가 휘던 가계 부담도 크게 줄일 수 있다. 물론 5조~15조원은 매우 큰돈이지만 이 나라의 미래가 미래세대의 교육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이 정도 투자를 할 재정적 여력은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초등학교 아이들 친환경 식단으로 밥 먹이는 정도의 문제를 가지고 티격태격하거나 감세정책의 세율 일부를 가지고 노닥거릴 만큼 한가하지 않다. 더구나 생산경제 위축과 복지부담 증가라는 ‘이중의 충격’을 불러올 저출산 고령화 충격이 본격화되는 시대를 앞두고 근본적인 조세구조개혁과 세출 구조조정은 절실히 필요하다.


그렇다고 기존 정부와 정치권이 이 문제에 대해 충분히 잘 대응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정부와 정치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이런 구조개혁을 요구하는 납세자들의 목소리를 모아 ‘납세자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 실제로 최근의 의무급식 지원 논란과 예산안 날치기 과정 에서 많은 유권자들이 우리의 세금이 어떻게 걷혀 어떻게 쓰이는가에 대해 상당한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그런 점에서 2011년은 한국에서 진정한 납세자 혁명이 시작되는 원년으로 기록될 잠재력이 큰 한 해로 보인다. 한국 경제의 건전한 발전과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면서도 미래세대에 막대한 빚 부담을 남기지 않기 위해 많은 이들이 납세자혁명에 나서주길 간절히 기대한다.




제가 지난해 <위험한 경제학> 출간 이후 1년여만에 <프리라이더: 대한민국 세금의 비밀편>을 출간했습니다. 세금이라는 동창회비를 잘 내지도 않는 사람들이 동창회장과 총무를 맡아 자기들 멋대로 돈을 쓰는 행태를 비판한 책입니다. 두 권으로 나눠 내는 책의 첫 번째 책입니다. 특히 최근 의무급식 지원 논란과 예산안 날치기 통과 과정에서 '내가 낸 세금 제대로 쓰이고 있나?'라는 의구심이 드시는 분들께서는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by 선대인 2011. 1. 3. 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