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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운영위원회가 열린다. 7월 기준금리 인상 이후 8,9월 연속 기준금리를 2.25%에서 동결한 뒤 이번 금통위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관심이 쏠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한국은행은, 더 나아가 한국경제는 매우 곤혹스러운 물가-금리-환율의 삼각 딜레마에 빠져 있다. 즉, 생활물가 급등과 늘어난 시중 유동성으로 인한 인플레 압력이 점점 가중되고 있는 한편 미중일간 환율전쟁 여파로 인한 원달러 환율 하락으로 그 동안 현상적인 GDP 고성장을 이끌어온 수출대기업의 가격경쟁력이 약화될 상황에 빠지게 됐다. 이런 가운데,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여전히 일부 수출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민간 경기가 취약한 상황에서 민간 경기 위축을 부를 수 있고, 정부가 말은 하지 않지만 가뜩이나 가라앉고 있는 부동산 시장 침체를 가속화할 수 있다는 점도 큰 부담이다. 더구나 이미 외국자본이 잔뜩 쏟아져 들어온 증시-채권시장의 외국자본 유입을 가속화해 가뜩이나 불안한 증시-채권시장 변동성을 키울 공산이 커지기 때문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물가 현황부터 살펴보자. 익히 알다시피 최근 채소값 등 식품 물가의 상승 등으로 일반가계의 부담감과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신선식품류 물가상승률은 전년동월대비 45.5%나 상승해 월간 상승률로 거의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신선채소류는 84.5%나 상승해 소비자들의 체감물가 상승률이 극도에 이르는 주원인이 됐다.
이어 소비자물가와 근원물가, 생활물가지수를 살펴보면,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동월대비로 3.6%, 생활물가지수는 4.1%로 상승폭이 커지고 있다. 반면 물가 변동성이 큰 농산물과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은 1.9% 로 상대적으로 낮지만 올해 4월 이후 점진적인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한국은행의 소비자물가 관리목표가 2.0~4.0%인 점을 감안하면, 소비자물가 수준이 관리 목표치를 조만간 넘어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까지 한국은행의 소비자물가 관리 목표치였던 2.5~3.5% 범위는 이미 넘어선 상태이다.
<도표1> 각종 소비자물가 현황
(주) 한국은행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더구나 연간 물가지수 상승률을 살펴보면, 매우 가파르게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미 소비자물가지수는 올 들어 9월까지 3.8%가량 상승했으며, 생활물가지수는 이미 4.7%까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환율 폭등으로 인한 수입물가 상승 등의 영향으로 소비자물가지수가 급등한 2008년을 제외하고는 2005년 이후 가장 가파른 상승세다. 물론 근원물가 지수 상승세는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2008년의 경우에는 10월 이후 경기 급락세가 확산되면서 수요 위축으로 자연스럽게 물가상승세가 꺾였으나, 올해 상황은 정반대라는 점이다. 물론 최근 원달러 환율 강세로 인해 수입물가 상승 압력이 둔화되고 있지만 현 정부 전망처럼 경기 회복세가 계속될 경우 올해 물가 상승률은 4%를 넘어설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물가상승 가능성을 유동성 측면에서 살펴보자. 주지하다시피 시중 유동성의 증감에 따라 소비자물가가 상승 또는 하락 압력을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한국은행은 유동성 공급확대를 목적으로 본원통화를 큰 폭으로 늘리기 시작해 경기 급락에 대응해왔다. 그러나 본원통화 급증에도 불구하고 협의통화인 M1 정도만이 따라 움직일 뿐 M2(광의통화)와 Lf(금융기관 유동성)은 크게 늘어나지 않고 있다. 이는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와 본원통화 공급 확대 등 유동성 공급확대가 민간부문의 유동성 증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통화지표와 소비자물가지수의 관계를 좀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다소 다른 흐름이 나타난다. 전통적으로 소비자물가지수의 추이와 상관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M2의 증가폭은 2008년 상반기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M2보다 좀더 경제 전반의 유동성과 전반적인 향후 물가 수준 추이를 가늠하는데 연관성이 큰 것으로 인정받고 있는 Lf 추이를 보면 이미 2009년 초부터 증가율이 높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소비자물가지수의 점진적 상승세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9월의 소비자물가 상승이 채소류 등 농산물 가격의 폭등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소비자물가 상승세가 시중 유동성 증가를 통한 잠재적 상승압력에 노출돼 있다고 할 수 있다. 물가와 시중 유동성 상황만 보면 기준금리를 분명히 인상해야 할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 유럽 및 미국 등의 경기 회복세가 둔화되면서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은 부담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최근 환율전쟁으로 원화환율이 1,100원대 초반으로 떨어지면서 미국과 유럽, 일본 등에 비해 상대적 고금리 기조를 유지할 경우 원화 강세 현상을 가속화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인상으로 민간의 경기회복세에 부담을 줄 수도 있다는 게 한은의 고민일 것이다.
그러나 경제 운영은 특정 부분만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전반에 걸친 총체적 입장에서 기회비용을 생각해야 한다. 수출대기업을 위해 국내 소비자들과 수입기업, 중간 생산업체들이 보는 피해도 감안해야 한다.
<도표2>에서, 환율이 오르면 수출대기업의 가격 경쟁력에는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수출물가 추이를 보면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수출물가는 원화기준으로는 소폭 상승했지만, 국제시장에서 통용되는 달러기준으로는 오히려 내렸다. 이른바 ‘환율효과’가 수출물가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원화 환율 하락을 달러 수출단가 하락에 반영하여 가격경쟁력을 확보해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환율효과’는 수입업체와 외국 원자재를 쓰는 중간가공업체, 그리고 일반 가계들 입장에서는 더 비싼 가격으로 수입 재화와 서비스를 이용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미 2008년 이후 지속돼온 고환율 상황으로 인해 원화기준 수입물가가 매우 높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다. 반면 높은 수입물가에 비하면 생산자물가나 소비자물가는 놀라울 정도로 상대적으로 안정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생산자물가 단계에서 수입물가의 충격을 모두 흡수할 정도로 국내 기업들이 놀라운 생산성 향상을 보였거나, 그게 아니라면 물가 통계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물론 단기간에 그런 충격을 모두 흡수할 정도로 기업들이 생산성 향상을 보였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러면 통계 부실 때문이든, 국내기업들이 가격인상 대신에 제품 용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실질적인 가격인상을 했을 것이다. 어떤 방식이든 고환율로 인한 수입물가 부담을 수입업체와 생산자, 소비자 등이 분담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생산자의 경우에도 가공단계별로 물가지수 추이를 보면 원재료, 중간재, 최종재의 순으로 단계별로 환율 급등에 의한 물가상승 충격을 흡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도표2> 각종 물가지수 추이 및 시장금리 현황
(주) 한국은행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정부나
기준금리 인상을 말하면 가뜩이나 침체된 부동산시장을 더욱 침체하게 만들 가능성을 염려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도표2>에서 보는 것처럼 부동산 버블이 꺼지기 시작하면서 대출 수요가 준 은행들이 보유 자금으로 국공채 등을 대거 매입하는 바람에 정작 시장금리는 거의 오르지 않고 있다. 시중 자금수요가 없어서 시장금리가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서민들이 체감하는 물가는 매우 심각한 지경이다. 경기부양보다도 당장의 서민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 현 정부는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310조원 규모의 예산편성을 하면서 내년성장률도 5%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정도면 서민물가 안정을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는 것이 필요하다.
올해 상반기 GDP 분기별 성장률이 7~8% 수준을 기록하는 호황을 지속하고 있다. 채소파동이 아니라도 이미 일반서민들이 체감하는 물가는 2008년 말의 경제위기 전후로 거의 배 이상 올랐다. 채소파동을 계기로 생선과 일반 소비재 등 다른 물가들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물가상승 압력 가중과 부동산 거품의 점진적 해소 필요성이라는 국민경제 전반의 상황을 감안할 때 기준금리를 단계적으로 인상해갈 필요가 있다. 현 정부와 통화당국은 물가 조절 실패로 커다란 사회적 혼란이 초래된 사례가 적지 않은 만큼 물가 안정이 정권 유지에 직결되는 중요한 민생과제임을 깨닫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