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조금 전 정부가 또 다시 건설 및 부동산 부양책을 내놓은 모양입니다. 주요 내용은 대한주택보증을 통한 3조원 어치 환매조건부 미분양 매입과 LH공사를 통한 공공임대주택용 미분양 매입, 그리고 일반가계의 미분양 매입시 주택금융공사를 통한 자금 지원(DTI규제 대상 제외) 등으로 보입니다. 보도자료 제목을 '주택 미분양 해소와 거래 활성화로 경제회복 견인'이라고 해놓았습니다. 언제나처럼 포장은 국민경제 전체를 위하는 것처럼 눈속임을 하지만 결국 건설업계와 부동산 부자들을 위한 정책임은 너무나 뻔한 것입니다.
최근 빠른 속도로 주택시장이 침체로 접어드니 부동산 광고에 목을 맨 상당수 언론들이 온갖 핑계를 대가며 "건설업체들을 살리라"는 주문을 내놓았습니다. 심지어는 건설업계와 부동산업계 대변인들을 내세워 DTI규제를 완화해서라도 주택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이는 한마디로 파렴치하면서도 한국경제를 점점 더 위기로 빠져들게 하는 위험한 주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경제 위기의 핵심은 가계부채의 위기이지, 건설업계의 위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건설족들의 로비력은 대단해서 결국 정부가 지방부터 해서 주택시장 부양책을 내놓은 것입니다. 이미 토지주택공사와 대한주택보증을 통해 3조원의 미분양 물량을 매입해줬는데, 여기에서 추가로 미분양 물량을 더 사준다고 합니다. 지금 자영업자들과 제조중소기업들 가운데 어려운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고, 단 돈 몇 만원이 아쉬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은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부동산 거품기에 무모한 경영 판단에 따라 거품 잔뜩 묻은 고분양가 분양으로 스스로 위기를 자초한 건설업체들을 도와줄 때는 어찌나 한없이 너그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제조업체들 가운데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재고물량이 잔뜩 있다고 정부가 언제 대규모로 재고를 사준 적이 있습니까? 이처럼 건설업계에 대해서는 각종 특혜를 남발하면서 늘 '시장경제'를 외치고 있으니 가증스럽습니다. 이것은 '시장경제'가 아니라 '기득권만능경제' '토건만능경제'일 뿐입니다.
물론 이렇게 부양책을 내놓다고 해서 이미 대세하락 흐름에 들어있는 주택시장의 흐름을 바꿔놓을 수는 없습니다. 이미 주택시장에서 빚을 내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집을 사버려 추가로 집을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억지 부양책을 쓴다고 현재 상황에서 거래가 활성화될 가능성도 없습니다. 정부로서도 어찌보면 지방선거를 앞두고 억지 부양책을 내놓은 것일 가능성도 높습니다. 다만, 이렇게 언제인가 꺼질 수밖에 없는 부동산 거품에 국가 재정을 탕진하고 일반 가계를 재물로 삼아 국민경제 전체의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각설하고, 왜 지금 건설 부양책이 부적절한지 간단히 살펴봅시다. 아래 <도표>에서 보는 것처럼 건설업계는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 속에서도 외환위기 이후 세 배 이상 늘어난 건설업체수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 부도업체 수는 오히려 사상 최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업체당 평균 수주액도 오히려 최근 몇 년 동안 더 높아졌습니다. 물론 지표상으로 나타난 것과 달리 속으로는 골병이 들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이 같은 지표들은 건설업계에 대한 제대로 된 구조조정이 얼마나 지연되고 있는지를 보여줄 뿐입니다. 지금 건설업계 위기는 건설업계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며, 오히려 정상적인 구조조정을 지연시킴으로써 그 화를 키우고 있는 것입니다.
건설업계 부양을 위해 언제까지 가계가 빚을 내 집을 사줘야 한다는 말입니까. 또 이런 부동산 부양책과 건설 부양책을 주장하는 이들은 부동산 시장의 버블을 부인합니다. 국토해양부조차 얼마 전 "집값 거품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그렇다면 이들 주장대로라면 현재의 주택시장 침체는 지극히 정상적인 시장 상황으로 위기로 치달을 가능성이 없는데 왜 부양책을 쓰야 합니까.정말 집값 거품이 아무것도 없다면, 왜 지난 2008년말 집값이 급락할 때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면 금융시스템이 위험해진다며 각종 유동성 지원과 분양권 전매 제한 완화 등 투기 조장책, 그리고 미분양 물량 매입과 주택대출 규제 등 온갖 전방위적인 부동산 부양책은 왜 사용한 것입니까? 그리고 그렇게 집값 버블이 없어서 버블 붕괴 가능성이 없다면 왜 건설사들을 위한 추가적인 지원책을 내놓는 것입니까? 이 같은 행태들을 보고 있으면 현 정부부는 '건설족의, 건설족에 의한, 건설족을 위한 정부'이지 일반 국민 대다수를 위한 정부가 아님이 분명합니다. 이런 정부 부처는 향후 한국 사회가 근본적 개혁을 할 기회가 있을 때 사실상 해체하고 새로운 주택정책의 틀을 짜는 수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정부가 이런 대책을 내놓으면 항상 핑계삼아 내놓는 표현이 '연착륙'입니다. 이에 대해 한 번 따져봅시다. 지금까지 나온 연착륙론은 사실은 집값 거품을 서서히 꺼트리는 방향으로 작용하지 않았습니다. 연착륙론이 구체적으로 주장한 내용들은 지금까지 부동산 경기 부양, 건축 규제 완화, 금리 인상 반대 등이었기 때문입니다. 말이 연착륙론이지 사실상 부동산 거품을 계속 키우게 하는 정책 방향이었던 것입니다. 2003년경부터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상당수의 정치권 인사와 관료들, 재벌계 연구소, 금융기관, 건설업계가 이런 식의 연착륙론을 내세웠습니다. 이 주장은 특히 2003년 10.29대책 이후 2004년 상반기 집값이 약보합세로 접어들었을 때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이후 2004년 하반기 당시 이헌재 재경-강동석 건교 라인이 10.29대책을 무력화하고, 적극적인 집값 부양책을 쓰게 됩니다. 이때도 그들은 ‘집값 연착륙을 위해 경기 부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힘입어 2005년 초부터 서울 강남과 분당 등 경기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집값은 다시 거세게 뛰어 올랐습니다.
만약 그때 ‘연착륙’을 명분으로 집값 부양책을 쓰지 않고 확실히 투기심리를 잡았다면 지금 어떻게 됐겠습니까? 거품이 지금의 절반밖에 안 됐을 때니 지금처럼 거품 붕괴의 위기감이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계속 ‘연착륙’ 운운하며 집값 거품을 빼는 작업을 늦춘 결과 어떻게 됐습니까? 2008년 말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위기가 극대화된 상태에서 부동산 버블 붕괴의 위기를 맞게 됐습니다.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위기를 이제 가래로 막아야 하는 상황이 돼 버렸던 것입니다. 2004년에 잡았으면 국가 전체로 2~3년 고생했으면 됐을 것을 지금은 최소 5~6년은 고생해야 하는 상황이 돼버렸습니다. 그리고 지난해말 이후 정부가 막대한 부동산 부양책을 쓴 결과 어떻게 됐습니까? 가계부채가 지난 한 해에만 45조원이 늘어났습니다. '연착륙'을 내걸었지만, 사실상 부동산 거품의 규모를 더 키워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에서 또 미룰 수는 없습니다. 현 정권이 이런 식으로 건설 및 부동산 부양책을 통해 거품 붕괴를 막으려 한다면 실질적으로는 계속 거품만 커지고 향후 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거품 붕괴를 더 큰 거품으로 막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카드채 사태 때 이런 사실을 경험했습니다. 카드 남발 문제가 처음 문제됐던 2001년 문제를 수습했더라면 2003년 카드대란 사태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라도 막았다면 같은 해 11월 LG카드 붕괴 사태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빼야 할 거품을 제때 빼지 못하고 엄청난 신용불량자만 양산한 채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파국을 맞고 말았던 것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버블 붕괴의 충격을 줄이겠다는 근시안적 시각을 탈피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현 정부는 자신들 임기 내에 돌아올 버블 붕괴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이 우선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대대손손 이 땅에서 살아갈 국민들에게는 중장기적으로 한국경제를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구조로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물론 어떤 경우에도 한국 경제가 파탄나는 상황은 피해야 하겠지만, 지금 한국의 재벌급 건설업체 가운데 단 하나라도 쓰러지기라도 했단 말입니까? 집값이 여전히 일반 가계의 소득 수준 대비 지나치게 높은 상태이고, 어떤 은행도 파산 위험에 처해 있지 않은데 온갖 부양책을 동원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파렴치합니다.
어렵더라도 당분간은 냉철한 자산시장의 가격 조절 메커니즘에 따라 부동산 거품이 자연스레 해소되도록 해야 합니다. 부동산 거품에 취해 무리하고 부실한 경영을 해온 건설업체는 명확한 원칙과 기준에 따라 자연스레 퇴출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집값이 일정한 바닥을 찾고 유효수요가 살아나도록 하는 것이 부동산 경기를 가장 빨리 활성화하는 방법입니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인위적으로 가격을 떠받치면 거래가 형성되지 않아 부동산시장의 침체가 길어질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도 부동산 중개업소들은 이제 대세가 기울었다는 것을 깨닫고 정부에 집값 부양책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해야 합니다. 새시 업체나 인테리어업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동산 거품이 해소돼 시장의 가격 신호에 따라 거래가 일어나는 것이 가장 빨리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하는 방법입니다. 오히려 지금처럼 집값 거품 해소가 늦어져 거래가 계속 침체되면 부동산 관련 업체들은 모두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수 있습니다. 또 가계 입장에서도 자꾸 부동산시장의 언저리를 맴돌게 하지 않고 빨리 손절매를 하고 부채를 청산하게 해 정상적인 경제생활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실물 경제를 하루라도 빨리 살리는데 도움이 됩니다. 부동산에 돈이 묶여 있을수록 실물 경제는 악화되고 이것이 다시 부동산 시장을 더욱 위축하게 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반면 건설업계를 부양하기 위한 재정력과 행정력은 아껴뒀다가 부동산 가격이 소득 수준에 맞게 조정된 일정한 시점에서 붕괴의 충격으로 고통받는 가계와 기업들에 대해 원칙과 기준을 정해 도와줘야 합니다.
현재 집값은 일반 가계의 소득수준 대비 여전히 너무 높습니다. 부동산 부자들을 핵심 정치기반으로 하면서 자신들부터가 부동산 부자들인 현 정권의 주요 인사들과 선동 언론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민들이 집값이 너무 높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건설 부양책을 쓰기보다는 오히려 지연된 건설업계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할 때입니다. 건설업계 구조조정 지연으로 장기 침체를 겪었던 일본의 전철을 피해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부동산 부양책을 쓸 때가 아니라 집값 거품을 빼야 할 때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오히려 거품 붕괴의 규모를 줄여 그나마 중장기적으로 거품 붕괴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길입니다. 또한 한국경제가 선진경제로 도약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삽질경제'패러다임을 극복하고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경제구조를 만드는 첫걸음이기도 합니다.
*우리 연구소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일반인을 대상으로 무료 공개세미나를 개최합니다. 주제는 최근 10년간 한국경제 및 부동산시장 진단과 전망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거나 우리 연구소포럼을 방문하셔서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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