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사상 최대 이익을 올린 30대 기업이 늘린 고용 인원이 겨우 2667명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금융위기를 맞아 현 정부는 대기업에 법인세 감면 혜택과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등 온갖 특혜를 제공하고 고용확대를 주문했지만 성과는 사실상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국내 대기업들이 지난해 사상 최대의 이익을 올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경제위기 전에 비해 평균 30~40%가량 치솟았던 원달러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이 원달러 효과는 사실상 온 국민이 수입품을 비싸게 사주는 대가로 국내 대기업들에게 보조금을 준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대기업들은 마치 엄청난 투자를 벌이고, 대대적인 고용을 할 것처럼 정부와 국민에게 약속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 글에서 재벌들을 도덕적으로 무작정 비난할 뜻은 없다. 다만 정부 정책 측면에서 현 정부의 '친재벌' 위주의정책으로는 일자리 확대와 소득 증대를 핵심으로 하는 지속가능한 고용구조와 경제구조를 만들기 어렵다. 현재 한국의 경제구조는 2000년대 내내 지속돼온 부동산 거품 때문에 땅값은 금값이 된 반면, 사람값은 헐값이 된지 오래다.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에 납품단가를 낮춰가며 수지를 맞추기 어렵고 벤처기업은 제대로 싹을 틔우기도 전에 대기업들에게 잠식당하기 일쑤다. 대기업들도 국내 사업 전개가 어려워지면서 앞다투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는 사업 환경과 경제구조를 개선하지 않고 재벌에게 계속 특혜를 주고, 임기응변적인 대책을 내놓는다고 일자리가 늘지 않는다. 경제는 그렇게 단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왜 대기업 일자리가 늘지 않는지를 기업 규모별 국내 고용 구조를 통해 살펴보자. 우선,  아래 <도표1>을 참고로 종사자 규모별 사업체 및 종사사 수 추이를 살펴보자. 도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전산업의 경우 종사자 수 4명 이하와 9명 이하의 영세자영업 수준의 사업체수만 급증하고 있을 뿐 그 이상 규모의 사업체 수는 경제 규모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거의 늘지 않고 있다. 제조업의 경우로 좁혀보아도 사정은 비슷해서 4인 이하와 9인 이하 사업체만 비교적 늘고 있을 뿐 종업원 10인 이상의 사업체 수는 거의 늘지 않고 있다.


<도표1> 전산업 및 제조업의 종사자 규모별 사업체수 추이


(주) 통계청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이를 좀더 자세히 보기 위해 종사자 규모 300인 이상 사업체 수의 변동을 나타낸 별도의 도표를 보자. 먼저 전산업의 300인 이상 중견기업 이상 사업체수 추이를 보면, 종사자 300~499명 사업체 수는 1990년대 이후 1,200~1,400개 수준에 머물다가 2006년 이후 조금 늘어 2008년 1,600개 수준까지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종사사수 500명 이상의 대기업은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에 접어들어서도 거의 늘지 않아 여전히 1990년대 중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범위를 제조업으로 좁혀서 들여다 보면 사정은 더욱 심각한데 도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종사자 수 300명/500명/1000명 이상 대규모 제조업체 수가 지속적으로 줄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전산업의 300-499명 사업체수는 2006년부터 400개 가까이 증가하고 있는데 반해 제조 대기업의 300-499명 사업체 수는 2003년부터 2006년까지 100개 가량 감소한 후 정체를 보이고 있다. 이로부터 제조 대기업이 줄고 비제조 서비스업의 300-499명 사업체수가 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90년대부터 최근까지 제조 대기업의 지속적인 감소는 국내 경제가 재벌 위주의 경제구조 속에서 중소벤처기업의 활발한 창업과 성장이 이뤄지지 않는 한편 기존 사업체가 해외로 이전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고용 규모가 크고 일자리의 질이나 임금 수준이 비교적 양호한 대규모 사업장이 정체 상태이거나 지속적으로 줄고 있는 상황에서는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현실은 <도표2>에 나타난 종사자 규모별 사업체 종사자수의 추이를 살펴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먼저 전산업의 경우를 보면 인구 및 경제활동인구의 증가로 종사자수 300명 미만의 사업체 종사자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종사자 수 300명 이상 대기업의 종사자수는 시간이 지나도 늘지 않고 정체를 보이고 있다. 전산업의 경우, 300명 이하 중소기업의 종사자수 비중은 1993년 79%에서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가파르게 상승해 88%까지 치솟은 뒤 2008년까지 소폭 낮아지고는 있으나 거의 비슷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1,000명 이상 대기업 종사자수는 1993년 12%를 상회했으나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급전직하해 2001년 4.9% 수준까지 떨어진 뒤 완만하게 상승하고 있으나 2008년 기준으로 여전히 6.0% 수준에 불과하다. 전체 고용의 약 87%를 종사자 300명 이하의 중소기업이 담당하고 있으며 1,000명 이상의 대기업은 6%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도표2> 전산업 및 제조업의 종사자 규모별 사업체 종사자 추이


(주) 통계청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이는 제조업으로 범위를 좁혀 보아도 비슷하다. 300명 미만 제조업체의 종사자 수는 대체로 증가하고 있지만, 1,000명 이상 제조업체의 종사자 수는 가파르게 줄어들고 있다. 이에 따라 300명 미만 제조중소기업의 종사자수 비중도 1993년 66% 수준에서 2001년까지 80% 수준에 이른 뒤 횡보를 하고 있다. 반면 1,000명 이상 제조대기업의 종사자수 비중은 같은 기간 23% 수준에서 11% 수준으로 떨어진 뒤 12.5% 전후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이처럼 한국경제는 대규모 사업장에서 양질의 일자리는 전혀 늘어나지 않고 있는 반면 영세한 중소사업장이 크게 늘어나고 있어 일자리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한국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 고용의 양적, 질적 차원에서 큰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사회의 전문화, 산업의 고도화에 따라 변호사, 의사, 한의사, 회계사, 금융전문가 등 관련 직업도 늘고는 있으나 이 같은 일자리는 크게 늘지 않고 있으며 수급 불균형도 심화되고 있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런가 하면 비정규직이나 단기 일자리, 저부가가치 저임금 일자리가 훨씬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비교적 안정적이면서도 고임금인 대규모 사업체는 2000년대 이후 정체를 보이고 있으며 대규모 사업장의 종사자 수도 전체 고용자 가운데 5~6% 수준에 머물고 있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 경쟁력 약화와 중국 및 동남아 등 해외 이전으로 대규모 사업장이 계속 줄고 있다.


지역별로는 경남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지방에서 일자리가 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서울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일자리가 줄고 있고 인천과 경기도의 일자리 증가도 주춤하고 있는 상태다. 또한 급속한 고령화의 진행으로 50대 및 60대 이상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있지만, 이들의 노후 생활을 뒷받침할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며, 신규 일자리 창출의 부족으로 20대 등 청년층 일자리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처럼 일자리의 양과 질이 함께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사업체 규모별로, 근로형태별로, 성별로 임금 격차가 커지는 등 임금의 양극화까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고용 및 임금 구조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현실은 단순히 정부의 고용정책 및 노동정책 때문만으로 보기 어렵다. 그보다는 한국경제 전반에서 안정적이면서도 고부가가치 일자리가 생겨날 수 있는 구조가 점점 훼손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2000년대 이후 부동산 버블의 급속한 팽창으로 인한 고비용 구조 및 생산경제의 위축, 부동산 투기에 가담한 가계의 금융이자 부담으로 인한 내수 위축, 수출 대기업 위주의 각종 지원책 및 재벌 독과점 구조의 방치로 인한 벤처기업들의 고사, 가뜩이나 인구와 자원 감소에 시달리는 가운데 가속화되는 수도권 집중 정책, 양질의 일자리를 양산하지 못하고 자원을 고갈시키는 중앙과 지방자치단체의 토건사업 위주의 개발정책 등이 점점 일자리의 양과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양질의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창출, 유지할 수 있는 경제구조와 환경을 구축하기는커녕 이를 오히려 훼손하는 구조를 만들어놓고 적자재정 투입과 몇 가지 대책을 도입한다고 해서 안정적인 일자리가 늘어나지는 않는다.



그런데 현 정부는 이처럼 일자리 문제가 심각한데도 불구하고 미분양 물량 매입과 각종 부동산규제 완화, 대규모 토목사업 전개 등으로 부동산 거품을 떠받치고, 이미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건설업체들을 먹여 살리기에 여념이 없다. 정부는 당장 일자리 창출을 위해 건설업체들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질 낮은 단기 일자리만 창출될 뿐이며 제대로 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자원과 시간을 소진하고 있는 셈이 된다. 또한 여전히 고환율 떠받치기와 각종 수출대기업 위주의 R&D 편성, 임금 억제 등을 통해 재벌대기업 위주의 경제 운용을 강화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지방 균형발전을 위해 여야 합의로 추진해온 세종시 사업을 무산시키고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는 등 이미 경제 전체의 중장기적 경쟁력 강화에 역주행하고 있다. 심지어는 가뜩이나 비정규직 비중이 높은데도 정부 스스로가 나서 ‘100만 해고대란설’ 등을 유포하면서 비정규직보호법의 개악을 시도하거나 희망근로사업 등을 통해 의미 없는 단기 일자리 양산에 재원을 낭비하고 있다.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는 구조적 환경을 만들어 놓지 않고서 정권 홍보를 위한 전시적 고용대책을 나열하는 식으로는 구호만 요란할 뿐 예산과 인력만 다시 낭비하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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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인 2010. 4. 6. 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