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제 블로그에 개인적인 글은 거의 쓰지 않는데, 오늘은 개인적인 소감을 좀 쓰겠습니다.
며칠 전 양평으로 이사했습니다.
경북 경산의 시골이 고향이다 보니 대학 이후 도시 생활을 하면서도 늘 고향 마을의 흙 내음과 풀 내음이 그리웠습니다. 봄 아지랑이도, 녹음이 우거진 여름 강변도, 황금빛 벼 이삭이 융단을 깐 듯한 가을 들판도, 아이들이 썰매를 지치는 겨울 저수지도 늘 그리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전원생활이 그리웠습니다.
서울시내에서는 답답하고 복잡해서 살기 어려워
일산에서도 주로 시골 들판과 가까운 변두리 쪽에 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늘 뭔가 몸에 안 맞는 옷을 서너 겹 껴입은 듯 갑갑했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아내에게 좀 더 나이들면 전원생활을 하자고 많이 꼬드기곤 했는데,
서울 토박이인 아내는 질색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유학 시절 동안 미국 보스턴의 찰스강가 아파트에서 생활하면서
아내 생각도 많이 달라진 듯 합니다.
아시겠지만, 미국은 도시라고 해도 한국과 같이 삭막하지 않은데다 특히 보스턴은 고풍스러운 주택가와 목가적인 전원이 어우러진 도시거든요.
그곳에서 생활한 뒤로는 아내 생각도 조금씩 바뀌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양평으로 이사할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아이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유치원에 다녀 와서 아파트 옆 놀이터(한국 아파트처럼 형식적으로 놀이기구 몇 개 늘어놓은 놀이터가 아니라 진짜 널찍한 놀이터입니다)에서 온갖 나라 아이들과 장난질하며 즐겁게 놀던 아이가
한국에 와서는 그러질 못했습니다.
학교에 다녀와도 같이 놀 친구들이 없었고, 보스턴에서 보던 찰스강도, '초록 놀이터'(놀이터 바닥이 초록색이라 아이가 그렇게 불렀습니다) 같은 자연도 놀이터도 없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아이에게 수학이나 영어 같은 공부를 하라고 닥달하지도 학원에 보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저희 아이만 안 보낸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더군요. 겨우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들 가운데 영어, 수학 학원 다니는 아이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요.
결국 저희도 아이를 학원에 보냈습니다. 그렇다고 영어, 수학 학원은 아니고요. 수영, 인라인 강습이나 피아노, 미술학원 같은 아이가 배우고 싶어 하는 것만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한계가 명백했습니다. 이런 수업들은 아이가 나름대로 재미있어 했지만, 학원에서 돌아오면 자꾸 TV나 게임을 하게 해달라고 졸라댑니다. 아이의 그런 모습을 매일 지켜보는 것도 참 고역입니다.
아이 친구를 만들어 줄 심산으로 토요일에 자원해서 아이 반 '즐거운 생활' 시간에 선생님을 대신해서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더군요.
그런데 어느날 아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더군요.
양평에 조그만 시골학교가 있는데, 아이들을 공부에 시달리지 않게 하면서도 자연과 교감하게 하는 학교라고요. 몇 차례 고심한 끝에 결국 실행에 옮기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남한강이 바로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이사온 것입니다.
남한강의 물 안개 피어오르는 풍경을 보니 어릴 적 고향에 돌아온 느낌입니다.
어제는 떡 대신 던킨도너츠 세트를 사서 아이와 함께 이웃한 몇 집에 돌리고 인사도 드리고 왔습니다.
다들 외지인이지만, 마음만은 시골 사람들처럼 푸근하게 느껴졌습니다.
이곳에 있으니 이른바 학군이 좋다는 곳의 삭막한 콘크리트 더미를 몇 억, 몇 십억씩 부르는 한국의 현실이 더더욱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물론 양평에도 경관이 조금 괜찮다 싶은 웬만한 곳에는 각양각색의 전원주택이 어지러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전원주택 각각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웅장하고 멋있는 자태들을 뽐내지만 주변 환경이나 주변의 다른 주택들과 조화되지 않습니다. 행정당국이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면서도 주위 환경 및 주택들과 조화되는 건축이 이뤄지도록 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것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양평은 여전히 시골의 모습이 많습니다. 일단 주변부터가 산과 물이고, 조금만 나가면 논과 밭이니 뭘 더 말하겠습니까. 물론 도시의 아파트보다는 실내가 많이 춥고, 근처에 문화시설 및 마트 등 편의시설이 부족한 것은 아쉽지만 그 정도 불편은 감수할 만합니다.
이른 아침 창가에서 칠읍산 봉우리 위로 솟아오른 붉은 태양이 강물 위에 반사되는 모습을 지켜보니 제 마음도 강물 위를 유유히 헤엄치는 물오리가 만들어낸 잔물결처럼 일렁입니다. 또 이른 새벽 강가에서 티끌 한 점 없을 듯한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것은 도시인들에게는 도저히 허용되지 않는 특권 아닐까요.
일산에 있을 때보다 훨씬 마음도 차분해지고 머리도 맑아지는 느낌입니다.
다행히 아이도 학교가 마음에 드는 눈치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아이가 자연스럽게 사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하지만 걱정도 됩니다.
지금은 삭막한 도시의 아파트 콘크리트 숲과 비인간적인 교육 환경으로부터 피해왔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수는 없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결국 바꿀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우리와 우리 아이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쾌적하게 살 수 있는 주거 공간과 교육 환경을 만들 수 있을 때까지 미약한 필력이나마 보태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며칠 전 양평으로 이사했습니다.
경북 경산의 시골이 고향이다 보니 대학 이후 도시 생활을 하면서도 늘 고향 마을의 흙 내음과 풀 내음이 그리웠습니다. 봄 아지랑이도, 녹음이 우거진 여름 강변도, 황금빛 벼 이삭이 융단을 깐 듯한 가을 들판도, 아이들이 썰매를 지치는 겨울 저수지도 늘 그리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전원생활이 그리웠습니다.
서울시내에서는 답답하고 복잡해서 살기 어려워
일산에서도 주로 시골 들판과 가까운 변두리 쪽에 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늘 뭔가 몸에 안 맞는 옷을 서너 겹 껴입은 듯 갑갑했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아내에게 좀 더 나이들면 전원생활을 하자고 많이 꼬드기곤 했는데,
서울 토박이인 아내는 질색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유학 시절 동안 미국 보스턴의 찰스강가 아파트에서 생활하면서
아내 생각도 많이 달라진 듯 합니다.
아시겠지만, 미국은 도시라고 해도 한국과 같이 삭막하지 않은데다 특히 보스턴은 고풍스러운 주택가와 목가적인 전원이 어우러진 도시거든요.
그곳에서 생활한 뒤로는 아내 생각도 조금씩 바뀌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양평으로 이사할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아이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유치원에 다녀 와서 아파트 옆 놀이터(한국 아파트처럼 형식적으로 놀이기구 몇 개 늘어놓은 놀이터가 아니라 진짜 널찍한 놀이터입니다)에서 온갖 나라 아이들과 장난질하며 즐겁게 놀던 아이가
한국에 와서는 그러질 못했습니다.
학교에 다녀와도 같이 놀 친구들이 없었고, 보스턴에서 보던 찰스강도, '초록 놀이터'(놀이터 바닥이 초록색이라 아이가 그렇게 불렀습니다) 같은 자연도 놀이터도 없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아이에게 수학이나 영어 같은 공부를 하라고 닥달하지도 학원에 보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저희 아이만 안 보낸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더군요. 겨우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들 가운데 영어, 수학 학원 다니는 아이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요.
결국 저희도 아이를 학원에 보냈습니다. 그렇다고 영어, 수학 학원은 아니고요. 수영, 인라인 강습이나 피아노, 미술학원 같은 아이가 배우고 싶어 하는 것만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한계가 명백했습니다. 이런 수업들은 아이가 나름대로 재미있어 했지만, 학원에서 돌아오면 자꾸 TV나 게임을 하게 해달라고 졸라댑니다. 아이의 그런 모습을 매일 지켜보는 것도 참 고역입니다.
아이 친구를 만들어 줄 심산으로 토요일에 자원해서 아이 반 '즐거운 생활' 시간에 선생님을 대신해서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더군요.
그런데 어느날 아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더군요.
양평에 조그만 시골학교가 있는데, 아이들을 공부에 시달리지 않게 하면서도 자연과 교감하게 하는 학교라고요. 몇 차례 고심한 끝에 결국 실행에 옮기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남한강이 바로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이사온 것입니다.
남한강의 물 안개 피어오르는 풍경을 보니 어릴 적 고향에 돌아온 느낌입니다.
어제는 떡 대신 던킨도너츠 세트를 사서 아이와 함께 이웃한 몇 집에 돌리고 인사도 드리고 왔습니다.
다들 외지인이지만, 마음만은 시골 사람들처럼 푸근하게 느껴졌습니다.
이곳에 있으니 이른바 학군이 좋다는 곳의 삭막한 콘크리트 더미를 몇 억, 몇 십억씩 부르는 한국의 현실이 더더욱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물론 양평에도 경관이 조금 괜찮다 싶은 웬만한 곳에는 각양각색의 전원주택이 어지러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전원주택 각각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웅장하고 멋있는 자태들을 뽐내지만 주변 환경이나 주변의 다른 주택들과 조화되지 않습니다. 행정당국이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면서도 주위 환경 및 주택들과 조화되는 건축이 이뤄지도록 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것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양평은 여전히 시골의 모습이 많습니다. 일단 주변부터가 산과 물이고, 조금만 나가면 논과 밭이니 뭘 더 말하겠습니까. 물론 도시의 아파트보다는 실내가 많이 춥고, 근처에 문화시설 및 마트 등 편의시설이 부족한 것은 아쉽지만 그 정도 불편은 감수할 만합니다.
이른 아침 창가에서 칠읍산 봉우리 위로 솟아오른 붉은 태양이 강물 위에 반사되는 모습을 지켜보니 제 마음도 강물 위를 유유히 헤엄치는 물오리가 만들어낸 잔물결처럼 일렁입니다. 또 이른 새벽 강가에서 티끌 한 점 없을 듯한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것은 도시인들에게는 도저히 허용되지 않는 특권 아닐까요.
일산에 있을 때보다 훨씬 마음도 차분해지고 머리도 맑아지는 느낌입니다.
다행히 아이도 학교가 마음에 드는 눈치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아이가 자연스럽게 사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하지만 걱정도 됩니다.
지금은 삭막한 도시의 아파트 콘크리트 숲과 비인간적인 교육 환경으로부터 피해왔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수는 없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결국 바꿀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우리와 우리 아이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쾌적하게 살 수 있는 주거 공간과 교육 환경을 만들 수 있을 때까지 미약한 필력이나마 보태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