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얼마 전 현대경제연구원이 "부동산 대세하락"을 경고했는데, 이미 기업은행연구소가 올초 "부동산 대세하락"을 주장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네요. 저도 몰랐는데, 아고라 부동산방에 어떤 분이 최근 기업은행 보고서를 링크한 것을 보고 알게 됐습니다. 제가 보고서를 훑어보니 현대경제연구원이나 기업은행연구소 자료 모두 저희 연구소가 주장해온 것을 상당히 많이 참고한 듯한 자료를 내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이들 보고서를 보면서 드는 짦은 생각 두 가지.
첫째는, 이들 연구소들이 하는 행태를 보면 '사전경고'라기보다는 분위기에 편승한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둘째는, 그나마 '경제'연구소나 금융권 연구소는 경고를 하기 시작하는데, 부동산업자들과 건설업계 부설 연구소들은 절대 이런 얘기 안 한다는 사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반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비슷한 얘기지만 그동안 자신들이 사기쳤던 것이 탄로날까봐 그렇기도 하지요. 두번째는 그 사람들은 심하게 말하자면 땅만 훑고 다니는 사람들이어서 부동산시장을 둘러싼 한국경제의 구조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속성이지만, 구조적 흐름을 보지 못하고 당장 나타나는 현상을 쫓아다니기 때문이지요.
사실 이 같은 속성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한국만의 현상은 아닙니다. 미국의 경우에도 부동산 버블 붕괴 가능성을 경고했던 사람들은 로버트 실러 예일대 경제학과 교수,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국제경제학 전공),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 등 대부분 이해관계가 없으면서도 부동산 버블의 경제적 위험 구조를 잘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얼마전 현 정부가 마련한 '글로벌 코리아 2010' 학술회의에서도 "한국의 부채문제가 미국이나 다른 아시아국가에 비해 사태가 심각하다"고 말한 하버드대 케네스 로고프 교수도 유명한 경제학자입니다.
물론 현대경제연구원이나 기은연구소의 경고는 제가 볼 때 상당히 때 늦은 것이고, 시류에 편승하는 느낌마저 있지만 그나마 이들은 뒷북이라도 치지만, 부동산 업계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염두에 두십시오.
참고로, 한국신용평가에서도 최근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과거 일본 건설사 위기가 남긴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국내 건설사들의 위기 가능성을 제기하고 '분양가 할인'을 적극적으로 주문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다수의 국내 연구기관들이 이런 상황에서 건설업계 부양책을 주문한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달라진 주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국내 건설사들의 디레버리징이 지연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미분양물량 해소 및 예정사업 지연
에 기인하고 있으며, 일본 건설사들이 경험한 자산 부실화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손실을 감
수하더라도 할인 분양을 통한 미분양물량 해소 및 예정사업 정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시행사
나 기존 분양자의 저항은 미분양이나 예정사업 정리 지연에 따른 부작용에 비교할 때 부차적인 문
제로 생각된다."
이른바 이 사회에서 기득권을 점하고 있는 연구소들마저 이제는 곧 눈 앞에 닥칠 압도적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감히 입밖에 내기를 꺼리던 이들 연구소들마저 "대세 하락"이라는 주장을 버젓이 하고 있고 있다는 현실 자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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