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근 부동산 투기 조장꾼들 사이에서는 '한국에서는 전세제도가 있어서 집값이 폭락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른바 '진보적 성향'이라는 학자들도 이런 주장을 답습하고 있다고 합니다. 답답한 노릇이다.
국내의 경우 전세를 끼고 사는 경우가 많아 겉으로는 GDP 대비 부동산대출 비중이 낮아보이는 착시현상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전세도 결국 레버리지라고 봐야 합니다. 특히 국내에서는 다주택투기자들 가운데 전세 끼고 빚을 내 차례로 여러 채를 산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국 전세제도 때문에 다주택 투기가 훨씬 용이해졌고, 결과적으로 그만큼 부동산 버블이 커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전세제도 때문에 오히려 고소득 다주택자들을 중심으로 레버리지가 매우 커져버린 상태입니다. 레버리지가 커지면 부동산 버블이 꺼질 때, 즉 디레버리지 상황으로 들어갈 때 그만큼 충격은 커지는 것입니다. 집값이 하락할 때 은행 빚은 갚아도 세입자에게 전세금은 안 내줘도 된다면 모를까, 세입자가 요구하면 전세금을 반환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결국 전세금도 빚입니다.
그리고 '전세제도가 있어서 폭락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부동산시장의 가격 결정 메커니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제가 여러 차례 썼지만 집값은 전체 주택 재고의 단 1%만 거래돼도 전체 집값이 결국 1%가 거래된 가격에 수렴되는 것입니다. 이미 지난해 하반기 이후 올초까지 강남3구 등 수도권 주요 지역에서 거래량이 극히 저조한 가운데 단기간에 20~30%씩 급락한 것도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지금 정확한 계산은 안 해봤지만 수도권의 경우 전체 주택 재고 (약 700만호) 가운데 1만호 정도가 매월 거래돼 가격이 급락한 것입니다. 전체 주택 재고의 약 1/700이 거래돼 그런 시세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대세 하락 초기에 폭락 양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자신의 소득 대비 레버리지 정도가 큰 사람들이 부채 청산을 하기 위해 투매를 하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폭락의 도화선' 같은 존재들입니다. 부동산 거품에 만취한 사람들이 스스로 부동산 폭락을 초대하는 꼴이니 참 역설적이지요?
제가 최근 출간한 '위험한 경제학' 에서도 인용했지만, 한국은행 연구자들 분석에 따르면 이 같은 고위험, 고부채 가구 비율이 5% 이상으로 상당히 높습니다. 이들 고위험, 고부채 가구의 대부분이 전세 끼고 무리하게 빚 얻어 다주택 투기를 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들은 지금 부동산 덫에 가장 심각하게 물려 있는 사람들입니다. 부동산 시장 내외부의 조그만 충격만 가해져도 그들은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 사실 지난해 하반기 이후의 급락세가 불과 몇 달만 더 지속됐어도 국내 집값도 확연한 폭락세가 지속됐을 것입니다. 폭락의 임계점 직전에 정부의 각종 부동산 투기 조장책과 유동성 폭격으로 집값 폭락세를 저지시킨 것일 뿐이지요.
더구나 우리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의 급락세를 통해 이미 '전세제도 때문에 집값이 폭락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짱 허구임을 알고 있습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급락한 지역들에서 주택 소유자들이 전세를 안 끼고 있어서 급락했나요? 예를 들어, 지난해 하반기 집값 급락을 주도했던 강남 재건축 단지들 경우에는 실제 소유자가 거주하는 비율이 20% 정도에 불과합니다. 거꾸로 전월세 비율이 80%나 된다는 것입니다. 부동산 투기 선동꾼이나 변교수 등의 주장 대로라면 그들 지역 집값이 왜 급락했나요? 한 마디로 말도 안 되는 주장입니다. 강남 3구나 분당, 용인의 집값 급락세가 가장 심했던 것은 그만큼 레버리지 비율이 높았던 것이 주요인 가운데 하나입니다. 전세든, 은행 빚을 냈던 레버리지는 레버리지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들은 '그때 집값은 정상적인 가격이 아니다'라고 또 주장하겠지요. 도대체 말도 안 되는 궤변으로 이리저리 둘러대며 사람들을 현혹하기에 바쁜 집단입니다. 부동산 투기꾼들이 그런 주장을 하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이른바 양심적인 교수라는 분들도 이런 주장을 한다면 정말 서글퍼집니다.
부동산 버블 붕괴의 양상은 집값의 절대적 수준과 부동산 버블의 규모, 그중에서도 레버리지의 규모와 가장 상관도가 높습니다. 제가 지금의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면 1990년대 초중반처럼 연착륙하기 어렵다고 보는 가장 큰 이유도 지금의 집값이 상대적으로 그때보다 훨씬 높고,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막대한 가계 부채를 통해 이룬 모래성 같은 집값 거품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현 정부의 부동산 부양 총력전으로 지난해 말의 집값 폭락 양상은 저지했지만, 그것은 연기됐을 뿐 결코 해소된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부동산 투기꾼들이 '역시 한국의 특성상 집값은 폭락 안 해' 이런 식으로 선동하고 있습니다. 그 같은 '한국 특성론'의 최근 변종 가운데 하나가 '전세제도' 운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위에서 본 것처럼 설득력 있는 근거가 없습니다.
우리 연구소는 부동산 시장에 관련된 매우 구체적인 분석과 진단을 통해 부동산시장 안팎의 구조를 샅샅이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동산 투기 선동가들이 어떻게 현실을 조작하고 왜곡하며 선동하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사기술이 우리 연구소 때문에 점점 힘을 잃어간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이 입에 게거품을 물고 저나 우리 연구소를 공격하고 매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연구소가 그런 엉터리 투기 선동꾼들의 공격에 위축될 정도라면 처음부터 시작도 하지 않았겠지요. 제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동산 거품이 완전히 해소될 때까지 부동산 시장의 제대로 된 현실을 알리고, 그들의 사기와 조작, 허구를 끊임없이 폭로할 것입니다. 저는 줄기차게 글을 쓸 것이고, 발언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저는 한 치의 물러섬이 없을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추석 연휴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돌아와서 뵙겠습니다.^^
*제가 쓴 책 '위험한 경제학1-부동산의 비밀편'에 이어 '위험한 경제학2-서민경제의 미래편'이 출간됐습니다. 부동산 광고에 목을 맨 기득권 언론들이 전하지 않는 진실을 담으려 밤을 지새워 가며 노력했습니다. 저는 가족들이 오순도순 살아갈 집 한 채 마련하는 것이 목표인 일반 서민가계가 현재 부동산 시장의 위험 구조를 모르고 언론의 선동보도에 휩쓸려 자칫 그릇된 판단을 하게 될까 걱정할 뿐입니다. 신중하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정부와 언론이 왜곡하는 경제 정보를 꿰뚫어보고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