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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 잠시 눈을 돌려 미국 주택 경기에 대해 살펴보자. 미국발 금융위기와 세계 경제위기의 단초는 부동산 버블 붕괴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미국 주택 경기는 세계경제의 향방을 가늠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특히 미국 주택 가격이 계속 하락할 경우 금융권의 부실 채권은 계속 늘어나 경기 회복을 지연시키게 된다.
그런데 2009년 초 미국 주택 경기와 관련해서도 섣부른 낙관론이 불거졌다. 2월 신규주택착공 및 신규주택 허가, 주태 거래량 등이 일시 상승세로 돌아서면서다. 2009년 2월 미국 주택허가 건수는 54만 7000채로 전월 대비 5.0% 급등했다. 또 주택 착공 건수도 2009년 2월 57만 2000채로 전월 대비 19.9%나 증가했다. 또 2월의 기존주택 판매 실적치가 472만 채로 전월대비 5.1% 증가하고, 1가구 신규주택 판매량도 1월 32만2000호에 비해 다소 늘어난 33만 7000호를 기록한 것도 주택경기 바닥론이 나온 한 배경이 됐다. 하지만 기존 주택 거래량이 증가한 것은 차압주택 및 부실 채권 관련 주택 거래가 다소 증가하고 모기지 금리 하락으로 저금리로 갈아타기 위한 거래가 일시적으로 늘어난 때문이었다. 또 전체 모기지대출의 11% 이상이 연체 또는 차압 상태에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우리 연구소는 일시적 반등에 불과하다고 진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일시적 반등을 근거로 미국과 한국 등 전세계 주가지수는 상승세를 지속했다.
이후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주택 착공 허가 건수는 전월 대비로 3월 6.2%, 4월 3.3% 각각 감소했고, 주택 착공 건수도 3월 10.8%, 4월 12.8% 급락했다가 5월에 다시 3월 수준으로 회복했다. 주택 압류 건수도 2009년 1분기 80만 3000건으로 전분기대비 9.0%(전년동기대비 24.0%) 증가했다. 이는 미국 주택 경기가 바닥에 근접하고 있다는 낙관적인 기대와는 달리 여전히 미국 주택시장의 거품 붕괴가 지속되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었다.
그런데 미국 주택 경기와 관련해서도 성급한 낙관론은 최근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 주택가격지수인 S&P 케이스실러지수의 20개 도시 지수가 하락한지 34개월만인 2009년 5월 아주 미미하나마 반등한 것으로 8월 발표되면서다. (케이스실러지수는 3개월 후에 발표된다) 기존 주택 거래도 7월까지 3개월 연속 늘어났다. 이에 따라 주택 경기가 바닥을 쳤다는 보도가 또 다시 국내외에서 이어졌다. 특히 국내 부동산 투기 선동가들은 이를 근거로 ‘거 봐라. 이미 미국 부동산도 이제 반등하는데, 국내 부동산이 오르는 게 뭐가 이상하냐’라는 식의 엉터리 논리를 인터넷 공간에서 전파하고 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여전히 섣부른 낙관을 불허한다. 우선 이 같은 지표들이 상당 부분 단기적 요인이 작용한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오바마 행정부의 경기부양책에 포함된 첫 주택 구입자를 위한 세액공제 혜택이 일정하게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5월 이후 주택거래 회복이 대부분 저가 주택 중심으로 이뤄진 것이 이를 방증한다. 하지만 첫 주택 구입자 세액공제 혜택은 11월말까지 거래가 종료되는 경우에만 주어지므로 10월 이후가 되면 그 효과는 다시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주택시장 안팎의 상황도 조기 회복을 점치기 어렵게 한다. 앞에서 본 것처럼 미국의 실업률은 계속 상승하고 있는데, 실업률이 상승하게 되면 주택 수요를 위축시키게 되는 것은 물어보나 마나다. 주택 모기지 대출 상황도 주택가격 상승을 어렵게 하고 있다. 미국 연방주택금융공사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은 신규 대출 기준을 강화했고, 다른 금융기관들도 신규 모기지 대출을 여전히 꺼리고 있다. 여전히 점증하는 기존의 주거용 모기지 부실과 씨름하는 것만도 벅차기 때문이다. 주택 가격 폭락세를 진정시키는데 도움이 됐던 주택 모기지 금리도 다시 조금씩 오르고 있다. FRB가 금리를 억누르고 있지만, 미국 재정지출이 급증하면서 미 재무부 채권 금리가 조금씩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주택 모기지 대출 연체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 미국 주택경기 회복의 최대 난제다. 미국 모기지은행가협회에 따르면 2009년 2분기 모기지 대출자 가운데 약 13%가 1회 이상 대출금 상환을 연장했거나 주택 압류 조치를 당한 것으로 집계됐다. 주택모기지대출 7~8건 가운데 1건꼴로 원리금 상환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압류 주택 수는 1분기보다 4.3% 증가해 30년 만에 가장 큰 증가폭을 나타냈다. 이처럼 미국 가계가 주택모기지대출 원리금을 제대로 상환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고용과 가계소득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압류주택이 꾸준히 주택시장에 쏟아지면서 주택가격을 계속 끌어내리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2007년 초 전체 주택거래의 약 10%를 차지하던 압류주택의 거래 비중은 2009년 상반기에는 25%에 육박하고 있다. 압류 전단계인 경매등록 공지(notice of trustee sales) 건수도 계속 증가하고 있어 주택 압류 건수는 더 늘어날 공산이 크다. 또한 압류주택 가운데 상대적으로 우량 대출인 프라임과 준우량 대출인 알트-A 대출 비중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점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미국 부동산 버블 붕괴를 촉발한 서브프라임론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됐지만, 주택 가격 하락세가 지속되면서 상대적으로 우량한 모기지 대출로 불이 옮겨 붙고 있는 것이다.
또한 주택가치가 향후 갚아야 할 모기지대출 금액보다 낮아진 ‘깡통(underwater)주택’의 비중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도이체 방크에 따르면 깡통주택의 비중은 2011년까지 전체 모기지 대출 주택의 48%에 이를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이처럼 ‘깡통주택’이 늘어나면 대출자들은 그 집에 그냥 눌러 앉거나 은행에 집을 넘기게 되므로 주택 수요를 위축시키거나 경매를 통한 주택 공급을 늘리게 된다. 이 또한 주택 가격을 끌어내리는 압력으로 계속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 전문가들은 “주택압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주택시장의 바닥론은 성급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상황을 두고 미국 주택가격이 바닥을 친 것처럼 보도하는 것은 매우 성급한 것이다. 오히려 케이스-실러 지수의 창안자 가운데 한 사람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 등 상당수 전문가들은 미국 주택가격이 앞으로도 10~15% 이상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필자가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이번 세계의 주택 경기 침체는 오래갈 것이다. 보통 주택시장의 경기 사이클은 일반적인 경기 사이클보다 훨씬 더 긴 10~20년 주기를 보인다. 부동산 거품이 크면 클수록 사이클은 길어진다. 2000년대 한국의 부동산 거품이 컸던 만큼 부동산 가격의 하락세가 본격화되면 10년 전후의 긴 하락기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