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한국경제’라는 중환자가 어느 날 응급실에 실려 왔다. 50대의 이 환자는 이미 10년 전인 1998년에도 비슷한 증상으로 1년여에 걸친 대수술을 받고 살아난 적이 있었다. 당시 수술은 완벽하지 않았다. 그래서 2차 수술이 필요했지만 ‘한국정부’라는 의사는 어려운 수술을 기피하고 환자에게 강심제를 투여했다. 시간이 지나자 이 환자의 상태는 점점 좋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1999년에 놓아준 ‘IT붐’이라는 강심제는 상당히 효과가 좋았다. 힘이 없어 축 처져 있던 환자가 갑자기 건장한 청년처럼 동네를 활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부작용이 나타났다. 상체는 갈수록 살이 찌는데 하체는 빼빼 마르기 시작했다. ‘양극화’라는 신종 만성질병이었다. 그러면서 다시 체력이 떨어졌고, 체력이 떨어질 때마다 수술 당시 치료하지 못했던 속병 증상이 툭툭 불거지곤 했다. 2002년경 다시 병원을 찾은 환자에게 의사는 ‘카드채 버블’이라는 강심제를 놔주었다. ‘IT버블’만큼은 아니었지만, 이 강심제도 상당히 효과가 좋았다. 다시 원기가 살아난 환자는 다시 정상인의 생활로 돌아간 듯 했다. 그런데 1년여쯤 후 ‘카드채 버블’이라는 강심제의 부작용으로 앓아눕자 의사는 다시 응급처방을 했다. 이 과정에서 환자의 하체는 더욱 부실해졌고, 발목 아래가 곪기 시작했다. ‘카드채 버블’이라는 강심제를 맞으면 몸 속에서 ‘신용불량’이라는 독소가 생겨나는데 그 탓이었다.
환자 가족들이 차츰차츰 이 의사의 실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환자 가족들은 “왜 환자가 괜찮아졌다고 하는데 조금만 지나면 다시 문제가 생기느냐”고 따지고 들었다. 사실 그 의사는 1960년대에 레지던트와 인턴을 거쳐 1970~1980년대에 전문의로 일하면서 실력을 쌓았다. 하지만 이후에는 안주하기 시작해 새로운 의술을 배우는데 나태해졌다. 새로운 의술을 익히기보다는 제약업체들의 리베이트를 챙기고 골프접대를 받는데 더욱 열심이었다. 그러다 보니 여전히 1970~1980년대 자신이 배운 의술에 의존했다.
궁지에 몰린 이 의사는 환자 가족들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자 다른 묘책을 생각했다. 이때 쯤에는 환자 몸에 ‘부동산 버블’이라는 종양이 자라고 있었다. 환자 가족들은 잘 몰랐지만, 이 이 종양의 증식을 방치하면 나중에 치명적인 중병을 앓을 수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종양은 증식 과정에서는 ‘자산효과’라는 호르몬을 분비하는데, 이 호르몬은 일시적으로 환자의 체력과 기분을 좋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적어도 종양이 말기 단계에 이르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환자 가족들은 의료진에게 “종양이 더 커지기 전에 빨리 치료해달라”고 의사에게 요구했다. 하지만 의사는 종양을 치료하는 척했지만, 실제로는 그 종양을 조금씩 더 키우고 있었다. 종양 치료에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은 몇몇 약을 처방하면서도 뒤로는 ‘가계부채’와 ‘개발호재’라는 각종 종양 증식 단백질을 환자 몸속에 투여했다. 그리고 환자 가족들에게는 “이 종양은 잘못 치료하면 환자가 죽을 수 있으니 서서히 치료해야 한다”고 핑계를 댔다. 환자가족들은 의심스러웠지만 환자가 겉보기에 멀쩡해 보이니 환자가족들도 그러려니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2008년 어느날 드디어 ‘부동산 버블’이라는 종양 증식이 한계에 이르러 온갖 급성 증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환율폭등’이라는 고열 증상이 주기적으로 나타났고, ‘신용경색’이라는 심혈관이 막히는 증상도 나타났다. 환자는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면서 다시 병원 은급실로 실려왔다. 더 이상은 ‘부동산 버블’이라는 종양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수술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에 이른 게 분명해보였다. 그러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체질개선이 불가능해보였다. 하지만 이 시대착오적인 의사는 다시 급성 증상만 가라앉히는 요법을 썼다. 체온강하제를 써서 고열을 잡고, 혈관 확장술을 써서 심혈관도 다시 뚫었다. 이에 더해 ‘100조 감세’와 ‘토건부양책’이라는 강심제를 써서 가뜩이나 비대한 환자의 상체만 보양했다. 또 ‘환율효과’라는 환각제를 써서 환자의 몸 상태가 좋아지도록 느끼게 했다. 더 큰 문제는 급성증상의 발현을 가라앉힌다는 명목으로 ‘가계부채’라는 종양 증식세포를 더 주입했다. 급성증상은 줄었지만 종양은 다시 증식되고 있었다.
어쨌거나 환자의 급성 증상은 가라앉았고, 환자가 다시 조금씩 원기를 회복하는 듯 했다. 이 의사는 “같은 증상을 앓는 다른 환자들보다 가장 빨리 회복하고 있다”며 “저의 뛰어난 의술 때문”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던 환자가 원기를 조금씩 회복하는 듯 하자 환자가족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의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가족중 일부는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 비슷한 케이스의 경우 다른 의사들은 대부분 시간이 걸리고 당장은 환자의 고통이 커도 종양 제거 수술을 하는데, 이 의사는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종양 제거 수술을 하지 않으면 언제든 상태가 다시 악화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따졌지만 의사는 들은 척 만 척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한국경제의 현 상태를 환자에 비유해보았다. 이 비유에서 본 것처럼 지금 한국경제의 문제는 외환위기 이후 정부와 정치권의 거듭된 정책실패가 누적돼 생겨난 구조적 위기다. 마치 돌팔이 의사의 잘못된 진단과 처방, 수술 미루기 등에 의해 속병이 더욱 깊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 가운데 일반 국민들은 이 같은 구조적 문제점들 때문에 신음하고 있다. 이 같은 한국경제의 구조적 위기 한가운데 있는 부동산 버블이 무너지면서 2008년말 한국경제는 환율폭등과 신용경색, 실물경기 침체 등 급성 증상을 폭발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국민들의 위기감과 불안감도 매우 컸다. 하지만 앞에서 설명했듯이 정부의 온갖 부양책 때문에 금방이라도 한국경제를 백척간두의 위기로 몰고 가던 각종 위기 현상들은 많이 가라앉았다. 비유하자면 한국경제는 이제 응급실에서 나와 만성 중환자실로 옮겨진 정도의 상태가 됐다. 위급한 상황은 넘겼지만, 여전히 중병을 치료해야 하는 상황이다. 더구나 한국경제의 급성 위기를 다시 촉발할 수 있는 부동산 버블이라는 종양은 전혀 제거되지 않은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한국경제는 대규모 부양책이라는 강심제와 ‘외환위기 학습효과’라는 환각제에 취해 거리를 활보해도 될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오히려 부동산 버블이라는 종양이 커지는데도 경기 회복의 신호인양 반기고 있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실은 한국경제는 여전히 매우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다. 현재의 경기 회복은 인위적인 저금리와 막대한 재정 투입 등으로 만들어진 자산시장 중심의 경기 회복일 뿐 지속가능하지 않다. 시중에는 실제 이상으로 한국경제가 크게 호전된 것으로 일반 서민들이 착각하게 하는 왜곡된 정보들이 난무하고 있다. 특히 현 정부 엄호 아래 방송 진출에 목을 맨 기득권 언론들의 장밋빛 분칠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이 같은 경기 회복의 신기루에 일반 서민들이 홀려 있을 때가 실은 가장 위험하다. 비유하자면, 현재 국면은 1세계 대공황 진행과정에서 1930년 봄과 비슷한 상황이다. 1929년 9월 폭락했던 미국 다우지수 주가는 1930년 봄이 되자 저점 대비 48%까지 상승했다. 당시 미국 후버 대통령은 공황의 종말을 선언했고 시장에는 낙관론이 고개를 들었다. 투기세력들의 작전에 혹해 개인 투자자들은 저가매수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1930년 4월 이후 다우지수는 다시 내리막길을 걸어 폭락에 폭락을 거듭했다. 물론 현재의 한국경제나 세계경제가 당시와 꼭 같은 길을 걸으리라는 것은 아니다.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반등한데 따른 경기 회복의 착시현상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경고하기 위한 비유일 뿐이다.
멀리 볼 것 없이 한국의 2002년과 비교해보면 어떨까. 2002년 카드빚 거품에 기대 한국경제가 6% 대의 GDP성장률을 기록했을 때 대부분 언론들은 장밋빛 전망을 쏟아냈다. 한국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 언론들도 한국경제에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2003년 수백만명의 신용불량자를 양산한 채 카드빚 거품이 터졌고 경제성장률은 2%대로 곤두박질쳤다. 현재의 한국경제 또한 부동산 버블 붕괴를 억지로 틀어막고 잠시 ‘막간 파티’를 즐기고 있을 뿐이다.
부동산 거품과 그 거품에 편승한 과욕의 폐해가 어떠한지는 지금 전 세계가 목도하고 있다. 이제 전 세계의 부동산 버블이 꺼지는 시기이고, 우리도 피할 수 없다. 그 과정에서 큰 충격이 있겠지만, 한국경제가 정상궤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감내해야 하는 충격이다. 근본적 수술을 통해 부동산 거품이라는 악성 종양을 떼 내지 않으면 한국경제는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현 정권은 자신들 임기 내에 거품 붕괴의 충격을 최소화하고 다음 정권에 폭탄을 떠넘기려는 속셈으로 근본 수술을 미루고 있다. 오히려 악성 종양을 더욱 키우고 있다. 선량한 국민들을 선동해 부동산 투기판을 더욱 키우려 하는 것이다. 부동산 경기와 이와 연관된 건설경기를 띄우기 위해 한국 경제 전체를 희생하고 있다. 말끝마다 ‘시장원리’를 외치는 정권이 하는 짓마다 시장의 정상적인 조정 과정을 방해하고 있다. 그동안 땅값, 집값이 너무 높았고 사람값은 똥값이었으므로 이제 사람값을 높이고 땅값, 집값은 낮추는 조정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정부는 이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있다.
언제까지 무능과 무지로 점철된 정부 관료들과 정치적 탐욕에 이끌린 정치권의 거듭된 정책실패 때문에 국민들이 투기꾼들의 노리개가 돼야 한단 말인가. 그러는 사이 한국 경제는 끝없는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는데 말이다. 공동체의 경제적 기반과 공동체 구성원간의 연대가 무너지면 그 사회의 구성원인 개개인이 행복하기란 어렵다. 이제라도 한국 경제의 파탄은 피하면서도 부동산 거품을 빼고 우리 모두가 집단 바보 상태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유주택자와 무주택자간의 계급투쟁을 마무리 짓고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하고 능력과 창의성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공정한 게임규칙에 따라 정당하게 보상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건설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나라를 물려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제가 '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온다'에 이어 1년 만에 새로 쓴 책 '위험한 경제학1-부동산의 비밀편'이 출간됐습니다. 2권 '서민경제의 미래'는 9월 25일경 출간됩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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