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많은 이들이 집값 추이에 대한 언론 보도에 일희일비하며 휘둘린다. 그런데 집값 자체가 부실 투성이고 왜곡된 것이라면 어떨까.
현재 주택가격 통계는 정부 공인 통계로 삼는 국민은행 주택가격지수와 사설 부동산정보업체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지수들이 있다. 하지만 사설 부동산정보업체들이 작성하는 통계는 현장 부동산 중개업소들이 불러주는 호가 위주의 통계로 사실상 조작에 가깝다. 대부분 업체들이 회원 중개업소들로부터 매월 수십만원에 이르는 수수료를 받고 있고, 보고 가격에 대한 필터링(filtering)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회원 업소의 수수료 수입이 사업의 주요 기반인 사설 정보업체들이 엄격한 필터링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들 회원 중개업소들은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 등을 의식해 실제 거래 가격보다 상당히 높은 가격을 신고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 거래가격이 아닌 아파트 부녀회가 담합한 호가가 이들 가격을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국민은행 주택가격 통계는 그나마 양반이다. 일단 회원업소들로부터 회비를 받지 않는데다, 사설 정보업체들보다 모니터링 인력이 두 배 이상 많아 그나마 현재로선 가장 신뢰할만한 통계라고 할 수 있다. 특히 1986년 이후 시계열 자료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국민은행 주택가격지수가 유일하다. 필자가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 전반에서 국민은행 주택가격 지수를 사용한 까닭이다.
이에 비해 각 지자체들에 신고된 실제 거래내역을 국토해양부가 집계해 발표하는 국토부 실거래가 자료는 현재로선 주택시장 상황을 가장 정확히 보여주는 자료다. 물론 다운계약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정부가 일정한 기준 이하 거래금액은 제외한다는 점은 문제의 소지가 많다. 특히 2008년 하반기와 같은 가격 급락기에는 전월에 비해 거래 가격이 낮다는 이유로 정상적인 시장 거래가격을 제외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국토부 실거래가 자료를 국민은행 주택가격 지수나 부동산 정보업체 주택가격 자료와 비교해보면 어떨까. 우리 연구소는 2009년 상반기 국내 부동산시장을 분석한 <경제보고서>를 작성하면서 기초 지자체별로 실거래가 추이를 살펴보았다. 기초 지자체별로 1000세대 이상 대규모 아파트 가운데 그 지역 주택시장상황을 잘 나타낼 수 있는 아파트 단지의 월별 실거래가 추이를 평형별 평균가격으로 살펴본 것이다.
분석 결과 드러난 몇 가지 주요 포인트는 이렇다.
우선, 서울 대부분 지역과 경기 남부 및 주요 신도시 지역 등은 대부분 2006년 말에 고점을 찍은 뒤 2009년 초까지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그 하락폭은 아파트 단지와 평형별로 차이가 있지만, 20~40%씩 큰 폭으로 하락한 경우가 많았다. 2년여 간의 물가 상승 수준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는 더 큰 폭으로 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는 2006년말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폭등한 뒤 거래가 뚝 끊기면서 사정이 급한 매도자들이 집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실거래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는데도 부동산 중개업소가 불러주는 호가 위주로 작성된 국민은행 가격지수와 조작에 가까운 부동산정보업체 가격은 완만한 하락세를 나타낸 정도에 그쳤다. 실거래가는 큰 폭으로 하락했는데도 지역 주민들과 부동산중개업소들이 결탁해 호가로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2008년 10월 서울 상계동의 한 아파트 24평형은 2억4,000만원에 현장에 매물로 나와 있지만, 국민은행 시세 하한가는 3억1,000만원으로 돼 있었다. 또 비슷한 시기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한 아파트 32평형은 급매 물건 가격이 6억5,000만원이었지만, 국민은행 주택 통계 사이트에서는 상한가 9억 원, 하한가가 8억 원에 올라와 있었다. 또 2008년 10월 경기도 수원시 매탄동의 한 아파트 32평형의 경우 현장 시세 3억5,000만 원에도 매수세가 없었지만, 한 사설 부동산업체의 인터넷 사이트에는 하한가가 4억원으로 잡혀 있었다. 가격을 낮춘 매물이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시점이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그 괴리가 너무 과도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실거래가가 계속 하락하는 상황에서도 2006년말 이후 계속 호가 거품을 지탱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꾸로 2009년 상반기처럼 집값이 반등할 때는 실거래가보다 훨씬 큰 폭으로 호가를 올리며 마치 그것이 시장 거래가격인 것처럼 사람들을 현혹하기도 한다. 아파트 실거래가와 사설 부동산정보 사이트에 올라있는 매매가를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참고로, 아파트 실거래가는 rt.mltm.go.kr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으니 집을 사려는 사람들은 꼭 한 번씩 확인해보기 바란다.)
예를 들어, 은평뉴타운 1지구 12단지 85㎡형의 경우 국토부 실거래가는 2009년 4월에 4.0억원과 4.23억원에 거래가 이뤄졌고, 5월에는 3.8억원에 두 건, 5.3억원에 한 건의 거래가 이뤄졌다. 6월에는 아예 거래가 없었다. 하지만 한 부동산 정보업체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있는 이 평형의 하한가는 4.7억원, 하한가는 5.3억원이었다. 5월에 5.3억원에 이뤄진 거래를 제외한 4건 모두가 정보업체가 게시한 하한가보다 크게 낮은 3.8~4.2억원 수준에서 거래가 이뤄진 것이다. 은평뉴타운 1지구 13단지 135㎡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09년 5월 이뤄진 실거래가는 각각 6.9억원, 7.16억원, 6.85억원으로 세 건 모두 사설 정보업체에 게시된 하한가 7.2억원(상한가는 7.8억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런 사례는 만성화돼 있다. 지역 주민들과 부동산 중개업소 등이 짜고 호가 거품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은평뉴타운 2지구가 분양하면 ‘1억원의 웃돈이 붙을 것’이라고 일부 언론이 선동하고 있지만, 현실은 거리가 멀다.
이처럼 매도자와 매수자간 건전한 중개인 역할을 해야 할 부동산 업소나 부동산정보업체들의 부도덕성 문제는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실거래가 조사를 하고도 이런 호가 올리기에 수수방관인 정책당국의 태도다. 부녀회의 가격 담합이나 부동산업소의 호가 조작 등을 방지한다는 목적으로 실거래가 조사를 시작했는데, 이런 상황들을 방치하고 있으니 실거래가 조사를 왜 하는가. 국토해양부 조직을 키우고 자리나 늘리려고 실거래가 조사를 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둘째, 평형별 추이를 보면 중소형에 비해 투기가 극성을 부렸던 중대형, 특히 대형 평형의 실거래가 변동이 심했다. 이는 ‘그래도 블루칩 아파트는 오른다’는 부동상 투기 선동가들의 주장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거꾸로 필자는 금융권 차입을 통해 부동산 투기 거품이 많이 낀 지역과 중대형아파트일수록 집값이 많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는데, 실거래가 자료는 필자의 주장이 옳음을 입증해준다. 물론 2009년 반등기에 투기적 거래가 준동하면서 상대적으로 이들 아파트의 반등폭도 더 컸다. 하지만, 이는 투기적 거래에 많이 노출된 아파트일수록 가격 진폭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도표1>에서 서울 강남 3구와 양천구 목동 아파트 단지의 하락률과 반등폭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당히 크다는 점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이들 아파트 단지들이 이렇게 가격이 뛴 상태로 머문다면 괜찮겠지만, 반등기에 가격이 많이 뛴 아파트일수록 재하락기에 그만큼 다시 하락폭이 커질 것임은 자명하다.
셋째, 2009년 상반기 부동산정보업체들의 가격 조작과 선동이 얼마나 심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부 부동산정보업체가 2009년 5월부터 2006년말 고점을 회복했다고 주장했던 송파구 잠실동 주공5단지를 보자. 물론 고점 대비 단기 가격 저점을 기록한 2009년 초에 비하면 큰 폭의 반등을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2009년 6월 현재에도 고점 대비 14% 하락한 상태다. 부동산정보업체의 주장은 잠재적 매수자들을 현혹하기 위한 선동일 뿐 실거래가 상으로는 아직 사실과 거리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2009년 상반기 반등세에도 불구하고 서울 대부분 지역의 아파트 단지들은 여전히 고점 대비 10~30% 떨어져 있는 상태다. 그나마 서울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경기 인천 등에서는 가격 반등폭이 서울에 비해 더 적어 5% 전후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이 같은 반등폭도 거래량 및 매도-매수세 동향 등과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지속될 여력은 많지 않다. 매월의 주택대출 증가액을 매월의 아파트 거래량으로 나눈 결과 2009년 초에는 2006년 하반기의 폭등 양상 때처럼 주택대출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난다. 2009년 초의 주택 거래 역시 2006년 하반기 때처럼 투기적 거래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방증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2009년 상반기의 집값 반등이 마치 ‘돈 있는 사람들’이 차입 없이 주택을 매입한 것이라는 주장이 낭설임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이번 집값 반등이 오래 지속되지 못하면 이번에 주택을 거래한 사람들은 1~2년 이상 버티지 못하고 다시 헐값에 매물을 내놓아야 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2006년말 집값이 폭등한 뒤 거래가 끊어지면서 빚을 많이 진 가계들이 매물을 토해내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사설 부동산정보업체들이 매도 호가를 바탕으로 사실상 조작에 가까운 통계자료를 내고 대부분 언론이 이를 보도한다. 이렇게 해서 호가를 마치 시장 거래가격인 것처럼 인식하게 한다. 매도자들과 부동산중개업소, 부동산정보업체, 언론이 결탁해 사실상 현실을 조작하는 것이다. 집을 사려고 하면 집값이 터무니없이 비싼데 팔려고 하면 매수자를 찾기 힘든 것도 이 때문이다. 오죽하면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실제로 살 사람은 없는데, 신문에서 오른다, 오른다 하니 팔려든 사람들도 호가를 높이는 바람에 거래가 안 일어난다”고 하겠는가.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는 못한다. 매도호가와 매수호가의 괴리가 이처럼 큰 상황에서는 결코 예전과 같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현재의 높은 집값을 호가 거품으로 유지하려 해봐야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이번 투기 선동의 약발이 다하면 호가 거품이 무너질 뿐만 아니라 실거래가도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때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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